소설리스트

<혼자 사는 세상 아닙니다-4> (101/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101화

28. 혼자 사는 세상 아닙니다-4

“박사님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좀 쉽게 말해주세요.”

유빈이 울상을 지었다.

“강물에 바다를 담아야 합니까? 아니면 바다에 강물을 담아야 합니까?”

“네?”

“그 두 분의 관상 관계가 그렇습니다.”

“그 말은 혜란 언니 동생의 상이 더 좋다는 건가요?”

“현재는 물론 이명기 이사장님이 월등합니다.”

“그럼?”

“따라서 이명기 이사장님 휘하로 가도 되기는 합니다.”

“그런데 왜?”

“지금 이명기 이사장님은 인재를 고르고 있는 것 아닙니까?”

“맞아요.”

“그렇다면 그 휘하로 들어가는 인재는요? 인재가 주인이라는 한계 속에 갇히는 것 아닙니까?”

“그렇…… 죠?”

“그러자면 최소한 주인의 한계가 넓어야겠죠?”

“…….”

“관상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윗사람을 극할 상이 없는 사람은 그 아래서 성공하기 힘들다. 그러나 극할 상이 있어 치고 올라가면 반드시 곤란을 맞는다.”

“……?”

“아직도 어렵나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조직에 충실하고 성실한 사람은 높은 지위에 오르기 어렵다.”

“그건 공감해요. 우리나라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니까요.”

“둘 다 비슷한 개념입니다. 조금 더 풀고 가자면 코디의 동생은 이명기 이사장님을 극하고도 남을 상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사장님 휘하에서 성공하려면 이사장님의 배포가 커야 합니다. 그래야 포용이 되니까요.”

“……?”

“코디의 동생분 박영찬 씨는 이마의 미릉골이 예술입니다. 난관 돌파의 대가로 자랄 겁니다. 그것은 곧 정신력까지 좋다는 것이니 전략과 전술의 달인이 되는 것이죠.”

“…….”

“그런데 이명기 이사장님…… 부와 명예를 가진 관상이지만 이마가 박영찬에 비해 좁은 데다 입술의 윤기도 미치지 못합니다. 거기에 코가 너무 단단하니 외고집이고 눈썹과 눈썹 사이, 귓구멍이 좁으니 포용력이 약하죠. 당장은 위엄과 관록으로 박영찬을 누르겠지만, 조만간 역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사장님 같은 분들은 자존심이 세니 그냥 넘어가지 못하죠. 그때부터 의심의 칼날을 들이댈 것이니 종국에는 진액만 빨린 채 토사구팽 될 것입니다.”

“어머.”

유빈이 비명을 막았다. 상상도 못 하던 상괘가 나온 것이다.

“그럼 귀인은 어디 있다는 건가요?”

“박영찬 씨의 이마를 보니 이마의 천양에서 인당으로 윤기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귀인의 중용을 점쳤는데 두고 생각해 보니 그 윤기가 관록까지 미치는지라 귀인은 새로운 인연이 아니라 기존의 인연에서 나오게 됩니다.”

“기존의 인연요?”

“원래 미국 투자회사에서 일했다면서요? 아마 그쪽에서 다시 데려갈 것 같습니다.”

“거긴 한국 사업을 접었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이 일이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르죠.”

“계기라면?”

“아무튼, 박영찬 씨에게 전화해서 사양하도록 전하세요. 이명기 이사장님도 그 세계에서 유명하시다니 소문이 날 겁니다. 이명기의 스카우트를 거절한 능력자. 그 소식이 박영찬 씨의 능력을 아는 분들에게 자극이 될 겁니다. 실제로 박영찬 씨는 그 세계에서 최상급 능력자가 될 관상이고요.”

“정말이죠?”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이명기 이사장님의 그릇으로는 박영찬 씨를 제대로 담을 수 없다고. 자칫하면 이명기의 그릇마저 깨질 수 있으니 둘은 인연이 되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습니다.”

“와아, 그 말이 대박이네요. 둘 다 잘되라고 박사님을 불러드렸는데 둘 다 잘못되는 건 안 되죠.”

“그럼 전화하시죠.”

경도가 핸드폰을 가리켰다.

“여보세요.”

유빈이 통화를 시작했다.

이마의 제모는 이명기의 그릇을 보기 위한 제의였었다.

이명기가 받아들였다면 경도의 상괘가 빗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명기의 심상이 크다는 뜻이었다.

심상이 크면 관상의 하자 정도는 보완하고도 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단칼에 거절했다. 그 말투에는 오만과 비웃음도 섞였다.

그는 심상으로도 박영찬을 담기 어려웠다.

“전달했어요. 제가 하도 박사님 자랑을 했던 탓인지 그러겠다고 하네요.”

“믿어줘서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고마운 건 접니다. 오늘 제 얼굴 제대로 세워주셨잖아요?”

“대신 저는 복채를 받았는데도요?”

경도가 봉투를 꺼내 보였다.

안에 든 건 500만 원이었다.

하룻저녁 수고치고는 행복한 대가가 아닐 수 없었다.

“키 주세요. 술 드셨으니 운전은 제가 합니다.”

경도가 손을 내밀었다.

“그전에 아까 그거요, 속 좁은 사람 관상…… 그것 좀 알려주세요. 저도 좀 써먹게요.”

유빈이 코앞까지 가까이 다가왔다.

“일단은 이마가 넓어야죠.”

경도가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요?”

그녀가 시선을 든다.

“눈썹과 눈썹 사이가 넓어야 합니다.”

“또요?”

“콧구멍 귓구멍이 작아도 소인배가 될 수 있지요.”

“또요?”

“이마의 흉터도 그쪽에 속하죠. 다만 다른 조건과 함께 판단해야 하는 것이니 주의해야 합니다.”

“찰색과 마음씨 말이죠?”

“맞습니다.”

“음…… 박사님은 최소한 소인배는 아니네요? 이마도 넓은 편이고 양 눈썹 사이도 넓고 귀도 코도…….”

이번에는 유빈의 손이 경도의 얼굴을 짚어왔다.

이마와 눈썹, 그리고 코…… 그러다 그녀의 손이 잠시 멈췄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어머. 진짜?”

전화를 받으며 몇 번이고 자지러진다.

“박사님.”

통화를 끝낸 그녀가 재빨리 경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몸서리와 함께 통화 내용을 전했다.

“혜란 언니인데 조금 전에 동생에게 전화가 왔대요. 동생 말이 다른 곳에 가게 되었다며 넌지시 사양을 했더니 아쉬워서 죽으려고 했다네요.”

유빈의 표정이 가로등처럼 밝아졌다.

원래 놓친 고기는 더 커 보이는 법이다.

* * *

“그게 정말인가?”

얼마 후의 읍장실이었다.

읍민 축제의 날 행사에 대해 경도가 의견을 내자 읍장이 반색을 했다.

“이따가 그쪽 기획사 대표님이 오기로 했는데 같이 만나보시죠.”

“기획사 대표까지?”

“유빈 씨가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허어, 출연료도 얼마 되지 않는데…….”

“허락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우리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땐가? 솔직히 아무나 연예인이면 될 판에…….”

“그럼 이따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수고했네.”

읍장의 치하를 듣고 민원실로 내려왔다.

“유빈 씨 온다고?”

은빛이 귀를 쫑긋 세웠다. 지난번 촬영 후로 은빛과 유빈은 연락도 하는 눈치였다.

“선배님이 같이 맞으실래요? 거기 기획사 대표님도 오실 건데?”

“그럼 당연히 내가 맞아야지.”

“얼쑤, 아주 연예인으로 나갈 기세네?”

민지가 웃었다.

“오 주임, 나 연예인 될 관상 없어?”

은빛이 경도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경도가 손을 내밀며 응수했다.

“복채 선불.”

“아, 진짜…… 아는 처지에 그냥 좀 봐주면 어때서. 알았어, 상담실 치워놓으면 되지?”

은빛이 손바닥을 밀어내며 웃었다.

“상담실은 내가 치웁니다. 내가 맞복팀 발령 막내잖아요?”

태술이 먼저 선수를 쳤다.

“안 돼. 내가 할 거란 말이야.”

태술을 쫓아가는 은빛을 보며 경도와 민지가 웃었다.

맞복팀의 케미는 이제 정상급으로 올라와 있었다.

“꿈만 같아.”

그걸 보며 민지가 중얼거렸다.

“뭐가요?”

“권 주임 말이야. 처음에는 저런 개싸가지랑 어떻게 일하나 걱정도 많이 했는데…….”

“배 주임님이 중심을 잘 잡아준 덕분입니다.”

“그런 소리 마. 우리 팀의 중심은 오 주임이야.”

“무슨 말씀, 우리 팀 실무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주임님입니다. 사회복지 베테랑이시잖아요? 우리야 솔직히 무자격자의 주먹구구들이죠.”

“아유, 또 왜 그런데?”

경도가 띄우자 민지가 얼굴을 붉혔다.

“주임님.”

수급자에게 쓰레기봉투 묶음을 지급하던 우석이 밖을 보며 소리쳤다.

주차장이었다.

유빈과 탁 대표가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오셨어?”

엄 팀장이 일어섰다.

경도보다 먼저 나가 유빈과 탁 대표를 맞았다.

민원실장도 은근히 인사를 빌미로 유빈의 손을 잡았다.

“읍장님, 오셨습니다. 지금 내려오십시오.”

경도가 읍장에게 콜을 넣었다.

“안녕하세요? 오 박사님.”

탁 대표가 경도에게 인사를 해왔다.

오늘도 그는 깍듯했다.

바로 상담실로 모셨다.

가는 길에 유빈이 경도에게 속삭였다.

“혜란 언니 동생 있잖아요? 진짜로 미국에서 연락이 왔대요.”

“그래요?”

“박사님 말대로 한국 책임자였던 분이 미국에서 새로운 펀드를 이끌게 되었다고 아예 미국으로 오라는 연락을 보냈다네요. 그 전화 받고 그냥 기절해 버렸답니다. 박사님 관상이 신기해서요.”

“잘됐네요.”

“박사님은 진짜 관상신이세요, 관상신.”

“어허, 두 분이 사귀세요?”

앞서가던 탁 대표가 조크를 던졌다.

“그러고 싶은데 우리 박사님이 곁을 안 주시네.”

유빈이 조크로 맞섰다.

“여기 미인이 많아서 그래요. 누님이 딸리네.”

“그렇지? 나도 공무원 시험 봐서 오 박사님 옆에 찰싹 달라붙을까?”

“죄송하지만, 요즘 공무원 시험이 장난이에요? 50 대 1, 100 대 1은 기본이던데?”

“이거 왜 이래? 나도 1400 대 1 오디션 뚫은 사람이야.”

“그렇군요. 그걸 몰라뵈었습니다.”

두 사람의 조크는 유빈의 압승으로 끝났다.

공무원 경쟁률이 높다지만 연예인 오디션에 댈 것은 아니었다.

“축제 진행이 어떻게 되죠?”

읍장과 인사를 나눈 후에 탁 대표가 물었다.

“토요일 오후 2시에 2시간 정도 예정하고 있습니다.”

대답은 행정팀장 진창선이 대신했다.

읍민 축제는 행정팀에서 주관한다.

경도는 출연자 섭외만 협조를 하고 있었다.

탁 대표와 유빈이 진행표를 받아들었다.

초대 가수란은 비어 있었다.

“이 시간표 말입니다. 아예 초대가수 시간을 뒤로 쫙 밀어주시면 제가 3팀까지는 맞춰드리겠습니다.”

“세 팀요?”

행정팀장의 입이 쫘악 벌어졌다.

“대신 초특급 인기가수들은 아닙니다. 조희양과 장애정이 올 거고요, 한 팀은 우리가 키우는 아이돌 팀 리허설 무대로 꾸밀 겁니다. 괜찮겠습니까?”

“아유, 우리야 대환영이지만 출연료가…… 책정된 예산이 80만 원밖에 없습니다.”

행정팀장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저희가 오 박사님 신세를 많이 진 까닭에 재능 기부로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그 예산은 주민들 기념품 같은 거 만드는 데 쓰십시오.”

“정말입니까?”

“대신 사람이나 많이 모아주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오 주임.”

행정팀장은 격하게 고무되었다.

전입온 지 얼마 되지 않는 그로서는 축제가 스트레스였다.

예산은 쥐꼬리면서 구색은 맞춰야 했다. 읍민들 눈높이도 높았다.

가수라고 아무라 부르면 욕만 먹을 일이었고 그렇다고 인기가수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런 차에 탁 대표가 던진 제의는 시름을 단칼에 내쳐주는 처방이었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기타 변동사항이 있으면 여기 오 박사님을 통해 말씀해 주십시오.”

탁현민이 일어섰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경도를 위해 시간을 내준 것이다.

“이거 눈코 뜰 새 없는 분에게 민폐가 되었습니다.”

경도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무슨 말씀을요, 우리 투자자에게 시간 내주셨다는 말 들었습니다. 오 박사님 일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박사님, 저도 가요. 파이팅.”

유빈도 간지 애교를 끝으로 차에 올랐다.

“으아, 조희양에 장애정…… 게다가 아이돌까지…….”

행정팀장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토마토 위기도 넘겼으니 이번 읍민 축제 한번 제대로 살려보자고. 내가 시장님도 모셔올 테니.”

읍장이 기름을 부었다.

“시장님도요?”

행정팀장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시장에게 부각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된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행정팀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 * *

“아, 진짜 오느님 맞네.”

옆에 있던 태술이 몸서리를 쳤다.

“뭐야? 감사실 저승사자 출신이?”

“그때 내가 진짜 무모했지. 오느님을 몰라보고 저승사자 따위가 깝쳤으니…….”

“그만해라? 응?”

정담을 주고받을 때 세단이 한 대 들어왔다.

“어, 당숙님?”

태술이 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알아보았다.

“이쪽 아파트로 이사 예정이지 않냐? 네가 여기로 발령 났다니 전입신고도 하고 얼굴도 볼 겸 직접 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태술의 빽으로 불리던 권우일이었다. 그는 여러 차례 이번 시장 선거에 출마를 공표해 왔다.

그 사전 포석으로 인구가 많은 용포읍으로 전입하려는 것이다.

“오 주임, 인사드려. 우리 당숙님이시자 권씨 종친회 회장님.”

태술이 경도를 소개했다.

“우리 태술이 좀 잘 부탁해요.”

권우일이 손을 내밀었다.

손보다 이마가 먼저 태산처럼 다가왔다. 중정이 압도적이다.

귀격의 집약이었으니 풍요롭고 수려하다.

미릉골의 기세 역시 강철처럼 드높다.

눈빛까지 형형하니 그야말로 빛나는 관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손을 잡을 때 태술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당숙님 이번 시장 선거에 나오실 거면 우리 오 주임에게 잘 보이셔야 할 겁니다.”

총선과 지자체장 선거.

이제 코앞이다.

경도 앞에 우뚝 선 또 하나의 시장 후보 권우일.

그의 얼굴 옆으로 현직 김경동 시장과 홍상선 의원의 관상이 좌라락 줄을 섰다.

4년에 한 번, 단 한 명만 뽑는 시장 선거다.

천기는 누굴 택할 것인가?

시장선거의 광풍은 권우일의 등장으로 불이 붙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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