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사는 세상 아닙니다-1> (98/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98화

28. 혼자 사는 세상 아닙니다-1

기회가 왔다.

용포읍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 위쪽 지자체의 벤치마킹을 완벽하게 마친 것이다.

공무원들은 벤치마킹 좋아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닥치고 카피 수준이다.

경도네는 그러지 않았다. 실제 그 지자체를 방문했다. 여기까지는 같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현장부서 방문은 요식행위에 그친다.

심하면 나들이 삼아 가는 지자체도 비일비재하다.

경도네는 각종 문제점 확인에 철저했다. 수사를 하듯 뒤진 것이다. 결론은 디테일의 부족이었다.

완판이라는 말에 들떠 일부에서 대충 출하를 한 게 결정타로 남은 것이다.

“돈 5,000원 내면서 뭘 따져?”

원인을 제공한 일부 농민의 마인드였다.

-90% 이상 썩은 물건이 왔습니다.

-박스 속에서 나를 맞은 건 썩은 냄새, 기부로 생각하고 다 버렸다.

극단적인 예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구매자들은 대개 반품을 하지 않았다.

말없이 버릴 뿐이었다.

가격이 착했고 취지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다시는 이런 착한 소비에 동참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

<싼 게 비지떡>

그 전철을 피해 지속적 소비로 연결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준비한 게 손편지와 소포장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물건이 안 좋으면 언제든 전화하세요, 홍길몽]

각 생산자가 A4에 손으로 적어 상품의 맨 위에 올려놓았다.

정감도 살리고 감사도 전하고, 혹시 모를 반품도 부담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포장단위도 줄였다.

토마토건 감자건 박스째 쟁여놓고 먹을 집은 많지 않았으니 이 또한 구매자들의 심리 조사에서 얻어낸 데이터였다.

이런 취지의 구매를 착한 소비라고 하지만 착한 소비에도 신뢰 구축이 필요했다.

그러자면 시작부터 제대로 해야 했다. 주문이 밀렸다고 마구잡이로 보내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토마토 작목반에도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인식시켰다.

대세에 휩쓸려 어느 한 농가라도 엉망인 물건을 내면 도매금으로 넘어간다.

저 위쪽에서 일어난 부작용을 설명하고 자체 검사를 강화했으니 품질관리가 안 된 농가는 자체 심사를 통해 제외시켰다.

-토마토가 아니라 양심을 팔자.

작목반도 그런 분위기였다.

경도네가 지원에 나선 곳은 가장 작은 작목반과 가장 큰 작목반이었다.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이런 곳들이 가장 위험했다. 두 곳 다 선별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할 수 있었다.

“토마토 선별법입니다.”

주인 부부가 나와 시범을 보였다.

될성부른 것은 떡잎만 봐도 안다고 처음이 중요했다.

기준 미달의 물건이 박스에 들어가 포장이 되어버리면 관상안의 경도라고 해도 발견할 도리가 없었다.

“작업 시작하세요. 일하면서 먹는 건 자유입니다. 특히 우리 읍장님과 팀장님, 저기 여자분은 먹고 남은 거 싣고 가도 좋습니다.”

주인 부부는 동영상의 주인공들을 알아보았다.

<따고 검수하고 담고 달고 포장하고 출하>

공무원들의 토마토 포장 지원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검수는 주인 부부가 했다.

한 박스, 한 박스 출하 물품이 쌓여갈 때마다 농민들의 웃음이 쌓여갔다.

시청에서도 지원군이 나왔다.

천군만마를 얻는 농가들이었다.

* * *

2주일 동안 토마토에 묻혀 살았다.

옷에서도 풋내가 나는 것 같았다.

시청과 읍 센터에서도 일부 구매를 했으니 구내식당에도 토마토 지천이었다.

<2,000톤, 24만 상자 완판>

마침내 토마토의 재난을 벗어나는 K시였다.

엽기 동영상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끈 읍장과 엄 팀장, 은빛에게 도지사 표창이 떨어졌다.

이날 민지와 경도도 박쌍태 건으로 함께 표창을 받았다.

경도와 은빛을 포함해 읍장, 행정팀장 등 토마토 판촉 영상물을 제작한 주요 관련자들에게는 해외여행의 특전도 부여되었다.

명혜와 유빈 역시 시장 표창과 함께 부상을 받았다. 유빈에게 돌아간 부상은 토마토 열 박스였다.

“오 주임.”

시상식장에서 행정팀장이 경도 옆구리를 찔러왔다.

“알겠습니다. 분위기 좀 봐서요.”

경도가 행정팀장을 진정시켰다.

경도를 재촉하는 건 읍 잔치 때문이었다.

요즘은 읍면동도 자체 축제를 연다. 대개는 읍면동 건물 앞의 공간이나 작은 공원을 이용한다.

연예인도 초청한다. B급이나 C급에서 한두 명 정도 부르는 게 대세였다.

그러나 읍민들은 수준이 높다.

가급적이면 유명한 사람이 오기를 원한다. 예산은 정해져 있으니 그럴 수가 없다. 그걸 경도에게 떠민 게 행정팀장이었다.

유빈을 통해 연예인을 소개받았으면 하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토마토 작목반이 걷어준 찬조금도 이유가 되었다.

수고한 모두에게 고마움을 돌리고 싶다며 읍 축제 찬조금 의사를 밝힌 것이다.

“유빈 씨.”

시상식 후에 경도가 유빈을 불렀다.

“부탁요? 저도 있는데?”

유빈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그럼 유빈 씨가 먼저 말하세요.”

“저야 뭐겠어요? 관상 박사님에게 관상 요청이죠? 전부터 제가 말했었죠?”

“아, 예…….”

“괜찮으시겠어요?”

“저는 괜찮습니다.”

“혹시 오늘은 어떠세요? 제가 여기 상 받으러 간다고 하니까 오 박사님도 오냐고 물어요? 그렇다고 했더니 만났으면 좋겠다고…….”

“이따가 퇴근 후에는 괜찮습니다.”

“와우, 정말이죠?”

“예.”

“좋아요. 그럼 박사님 부탁은 뭐죠?”

“실은 우리가 얼마 후에 읍민 축제가 있습니다. 센터 앞 주차장에서 소박하게 하는 건데 몇 년 전부터 가수들을 초청하고 있어요. 예산은 얼마 없지만 그걸 안 하면 읍민들이 오시지를 않거든요.”

“흐음, 감 잡았어요. 자원봉사해 줄 연예인이나 가수 없냐?”

“자원봉사는 아니지만, 출연료는 많이 드리지 못합니다.”

“혹시 거기에 옵션 같은 게 있나요? 나이라든가 장르라든가?”

“그런 건 절대 없습니다. 솔직히 매번 한 물도 아니고 두 물, 세 물 간 분들이 오셨습니다.”

“그럼 제가 책임지고 대표님 쪼아볼게요.”

“고맙습니다.”

“그럼 딜 맺은 거예요.”

환하게 웃는 유빈에게 경도가 답했다.

“저희 센터 앞에 체리 커피 있잖습니까? 거기로 오시면 칼퇴근해서 나오겠습니다.”

* * *

“축하합니다.”

“축하해.”

용포읍 센터는 축하의 물결로 미어터졌다. 직원들은 물론, 이장단과 부녀회장, 토마토 작목반까지 총출동을 했다.

“이것 좀 먹으면서 하세요. 내가 이번처럼 공무원들 필요성 느낀 건 머리에 털 나고 처음입니다.”

작목반원들이 내놓은 토마토 요리였다. 토마토잼을 이용한 샌드위치부터 생주스까지 없는 게 없었다.

“거기 읍장님, 엄 팀장님, 막춤 한 번 더 부탁해요.”

여기저기서 조크가 나왔다.

“허어, 그 명춤을 아무 데서나 추나? 정 원하면 출연료를 내세요. 나도 유튜버 계에서 스카우트 제의 오는 사람입니다.”

엄 팀장이 조크로 받아쳤다.

“조심해 가세요.”

이장단과 부녀회장들을 배웅했다.

[퇴근 직후 테이블 하나 예약, 가능?]

인희에게 깨톡을 쐈다.

[VIP로 모셔드리죠.]

바로 답문이 왔다.

자리로 돌아와 사통망을 확인하고 밀린 업무를 진행했다.

“자자, 오늘은 제가 재택이니 다들 칼퇴근하시기 바랍니다.”

6시가 되자 엄 팀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어, 저 30분쯤 후에 상담 예약 있는 데요? 시간이 그때밖에 안 된다고 하셔서…….”

은빛이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가십시오. 재택은 폼으로 합니까? 제가 다 처리해 드립니다.”

엄 팀장이 은빛의 등을 밀었다. 몇 달 전까지는 상상도 못 할 변화였다.

“동기들이 한번 뭉치자던데?”

가방을 챙겨 든 태술이 물었다.

“뭉치지 뭐.”

“시간 되냐? 맨날 바쁜 거 같아서?”

“당연히 되지. 네가 적당한 날 잡아라.”

“알았다. 내일 보자.”

태술도 자리를 떴다.

이제는 모든 게 자연스러운 맞복팀이었다.

[박사님, 저 커피점 앞에 왔어요.]

잠시 후에 문자가 들어왔다. 유빈이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답문을 보내고 시스템 로그아웃, 가벼운 걸음으로 체리 커피로 향했다.

그런데……

유빈은 안이 아니라 밖에 서 있었다.

“어? 왜 나와 계세요?”

경도가 물었다.

“자수하려고요.”

“자수요?”

“실은, 한 분이 추가가 되었어요. 기다리는 동안 전화가 왔는데…… 어떻게 보면 이 분이 오 박사님 뵙기를 더 간절히 바라는 분이라서요.”

“저 안에 계시겠군요?”

경도가 체리 커피를 바라보며 웃었다.

“어머, 귀신…….”

“그럼 원래 약속하신 분은 어디 계시나요?”

“그분은 읍내에 유명한 한정식집으로 오시게 했어요. 이런 데로 모실 수 있는 분이 아니라서요.”

“높으신 분이군요?”

“좀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겁나는데요?”

“아니에요, 들어가세요.”

유빈이 경도 팔을 당겼다.

‘오빠.’

카운터의 인희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경도도 손을 들어 답하고 창가의 자리로 향했다.

“손 선배님, 오 박사님 오셨어요.”

유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년의 남자가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

경도 눈이 출렁 흔들렸다. 

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스크린을 달구던 유명한 배우 손민이었다.

그러나 옛날 말이다. 활동이 뜸하던 10여 년 동안, 그의 연예인 포스는 간 곳이 없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절실한 관계로 약속도 없이…….”

손민이 양해를 구해왔다.

한때는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던 사람이었다.

지금 봐도 관상은 괜찮다. 골격이나 외모에는 문제가 없었다.

“괜찮습니다.”

인사를 나누는 동안 유빈은 잠시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 정도 센스는 있는 그녀였다.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경도가 물었다. 관상이 아니라면 경도를 찾아올 리 없는 사람이었다.

“그게…… 제가 이제 한국 생활 접고 태국으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태국이오?”

“한국 관광객들 상대하는 4성급 호텔에서 지배인 제의가 들어왔거든요. 거기 사장님이 한국인인데 제 인상이 귀상이라 마음에 든다더군요. 그런데 제 팔자도 알고 보면 굉장히 기구한 편이다 보니 그 결정이 좋은 것인지 궁금해서요.”

“연기는 접으시는 건가요?”

“아실지 모르지만 제가 예전의 손민이 아닙니다. 몇 해 전에 재기를 시도해 봤는데 그 영화도 폭망이었고 덕분에 불러주는 곳도 없습니다. 읍사무소 계신다니 아시겠지만 한 때는 수급자 신세이기도 했거든요.”

-폭망

-수급자

두 단어가 경도 시선을 흔들었다.

한때는 대한민국 여자들의 우상이기도 했던 손민이었다.

삼정이 제대로 받쳐주는 얼굴에 오관과 12궁도 크게 나무랄 것 없는 관상이다.

아버지는 스물두 살, 어머니는 9년 전에 잃었지만 관골이나 재복궁, 부부궁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왜 폭망이란 말인가?

디테일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시선을 가다듬은 관상안이 관골로 내려갔다. 거기서 첫 단서를 잡았다.

부드러운 찰색이 간문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것은 곧 이 남자를 흠모하는 여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간문에는 결혼빛도 비친다. 그런데……

‘엇?’

경도 시선이 저 홀로 흔들렸다. 그 빛이 난해했다. 간문 전체로 퍼지지 못하고 굳어버린 것이다.

‘이것……’

관상안을 가다듬는다.

운명을 좌우하는 찰색은 대충 보면 착오가 올 수 있다.

그렇기에 더 큰 집중이 필요했다.

‘아.’

그제야 알았다. 누구도 생각지 못하던 이 스타의 불운.

오관이 아름답고 신체에 흠이 없어도, 골격과 외모의 조화가 완벽해도 만날 수 있는 불운이 거기 있었다.

맙소사.

탄식이 나왔다.

관상에는 소위 3-9-0 운세라는 게 있다. 즉 3년간 재수가 없는 운에 9년간 재수가 없는 운, 그리고 0은 영원히 재수가 없는 상이 그것이다.

손민은 9년간 재수가 없을 상에 속했다.

원인은 흠모하는 여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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