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097화
27. 개초보 뉴비들이 대형사고쳤어요-2
“와아, 이유빈이다.”
토마토 하우스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좀 떨어지세요. 이유빈 씨가 놀러 온 거 아니에요. 여러분 도와주러 온 거라고요.”
현장정리차 출동을 한 안선주와 장미순 등의 부녀회장들은 인파를 막느라 바빴다.
“선배님? 준비 끝?”
경도가 은빛에게 물었다.
“잠깐만.”
은빛이 급히 원고를 집어 들었다.
“피부하고 미세먼지, 그리고 스트레스 박살.”
유빈이 대신 소리쳤다.
토마토 동영상의 핵심이었다.
토마토는 보통 심장질환과 연결한다.
하지만 심장병 고치려고 토마토 먹는 사람은 드물다.
약으로 강조하면 소비 돌풍이 일어나지 않는다. 먹는 건 먹는 콘셉트로 가는 게 옳다. 경도와 임시 스태프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우리 스따일대로>
막 가기로 했다. 그래서 골라낸 게 미세먼지를 막아 꿀피부를 만들고 코로나에 이은 불황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준다는 콘셉트였다.
그냥 지어낸 뻥은 아니었다. 토마토에는 이런 성분이 있다. 강조하는 각도를 바꾼 것뿐이다.
비장의 무기는 여럿이었다.
읍장의 경직된 공무원 문화를 시작으로 톡톡 튀는 은빛의 펭수 버전, 여기에 생뚱맞은 유빈과 엄 팀장이 가세하면 마무리는 비장의 카드로 마련한 명혜의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다.
“시작하시죠?”
카메라 감독은 방순호 기자가 추천해 준 대학 후배가 맡아주었다.
나름 이름 좀 날리는 유튜버였으니 이 방송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엄 팀장님?”
경도가 엄낙기를 체크했다.
“아휴, 떨리네…….”
엄 팀장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손을 들어 보였다.
“은빛아, 파이팅.”
“팀장님도 파이팅입니다.”
민지와 태술도 힘을 보탠다.
“레디…….”
각도를 잡은 임시 카메라 감독이 손을 들었다. 앵글 속으로 은빛과 읍장이 들어왔다. 무대는 토마토밭이었다.
“고.”
카메라의 사인이 나왔다.
하지만……
“어떡해, 어떡해…….”
은빛이 발을 구른다. 첫 멘트부터 까먹는 바람에 벙어리가 된 것이다.
“아, 진짜…… 전에 어리숙한 민원인들 후려치던 기백 어디 갔어? 그 깡으로 밀어붙이란 말이야.”
민지가 소리쳤다.
“언니, 그걸 여기서 말하면…….”
은빛이 손사래를 치니 촬영장은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자, 다시 갑니다. 고.”
다시 카메라의 사인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토마토 못 팔면 80 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한 공무원에서 잘릴 수도 있는 여자, 용포읍 행정복지센터의 지방행정 서기 이은빛입니다.”
은빛이 발동을 걸었다.
“오, 굉장히 안정적인데요?”
경도 옆의 유빈이 엄지를 세워 보였다.
“그에 비해 제 옆에는 손가락 하나 까닭 안 해도 알아서 대접받는 자리까지 올라가신 지방행정 서기관 읍장님 나오셨습니다.”
“아이고, 그런 말 마세요. 읍장이라고 꽁으로 먹는 거 아닙니다. 아래서 치받고 위에서 깨지고, 솔직히 9급, 8급이 속 편해 보이는 읍포장 김창국입니다.”
“아니, 그럼 이제 보니 우리만 구르는 거였네요? 김경동 시장님, 당신 그렇게 살면 안 돼. 관내 토마토 농가들이 이 지경이면 친인척이라도 데려와서 밭떼기 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선거 때 공약 보면 우주도 사줄 거 같더니 맨날 죄 없는 하위직만 들볶고 말이야.”
“이 주임, 시장님 들어.”
“들으라죠. 어차피 우리는 철밥통이잖아요? 김경동 시장은 임시직이라 우리 못 잘라요.”
“오 주임.”
“알았습니다. 일단은 토마토를 팔아야죠. 시장이야 다시 뽑으면 그만이지만 토마토는 한번 떨어지면 영원히 팔 수 없으니까요.”
“하하핫!”
은빛의 즉석 애드립에 구경꾼들이 배꼽을 잡았다. 경도도 그랬다.
잘하고 있지만 은빛의 연기는 어색하다. 읍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더 진솔해 보인다. 몰입감만 따지면 최고 연예인들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읍장님.”
“왜?”
“나가라니까 나오긴 했는데 우리 토마토가 왜 좋은 건가요? 왜 우리 국민이 팔아줘야 하나요? 이유 아셈?”
“완전 모르지. 내가 읍장이지, 토마토 박사야?”
“아니, 읍장님이 모르시면 어떡해요? 맨날 뭐든지 다 아는 것처럼 가오만 잡으시더니.”
“이 주임, 그걸 여기서 까발리면 어쩌자는 거야?”
“저기요, 카메라, 카메라, 이거 잠깐 중지시켜 주세요. 예? 중지 안 된다고요? 그럼 편집은요? 아, 씨…… 그럼 나 이거 안 해요. 토마토 판매는 내 업무 아니라고요. 나 인권위에 제소할 거예요.”
은빛의 익살이 슬슬 위력을 더해간다.
“어이, 거기 엄 팀장, 이리 나와서 분위기 좀 띄워봐. 이 주임이 안 한다잖아?”
읍장이 엄 팀장을 끌어들였다.
엄 팀장이 복날 개 끌리듯 끌려 나왔다.
“뭐해? 일단 자기소개부터?”
“안녕하세요? 저는…… 에, 저는…… 용포읍 팀장 엄낙기입니다. 저도 이런 거 못 하는데 안 나가면 징계 준다길래 할 수 없이 끌려 나왔습니다.”
“아, 사람…… 허튼소리 말고 연습한 거나 해요.”
읍장이 호통을 날렸다.
“아, 이런 거 하면 집안 망신인데…….”
“거, 참. 누구는 하고 싶어서 여기 나왔나?”
“그럼 읍장님도 같이 하시죠.”
엄 팀장이 읍장을 끌어냈다. 이 막춤판에 유빈이 여신처럼 등장했다.
기진맥진한 두 남자 앞에서 유빈이 꿀피부와 미세먼지, 스트레스 박살표 토마토 효능을 강조한다.
그 앞으로 거대한 토마토 박스가 등장했다. 토마토 무더기를 밀고 나온 건 명혜였다. 토마토의 바다에서 수영을 쳤다.
“토마토를 먹으면 이런 천사가 됩니다. 누가 증명하냐고요? 그건 우리 김경동 시장님에게 물어보세요. 시간 외 수당도 안 받고 열 연습하다 나왔는데 우리가 다 책임지면 억울하잖아요.”
은빛의 마무리 애드립 역시 시원했다.
“오케이, 좋습니다.”
카메라 감독이 화답했다.
“끝난 건가요?”
은빛이 물었다.
“예, 하지만 좋은 그림을 위해 한 번 더 갑니다.”
“악, 한 번 더요?”
“한 번 가지고 뭘 그래요? 우린 열 번, 스무 번 찍은 적도 있어요.”
유빈이 은빛의 등을 밀었다. 은빛은 꼼짝없이 재촬영에 돌입했다.
“괜찮을까?”
촬영이 끝나자 촬영 분량을 검토한 읍장 표정이 어두워졌다.
읍 자체의 동영상이라지만 결국은 시청과 도청 홈페이지 등에 올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시장의 후환을 우려하는 것이다.
“어머.”
옆에 있던 유빈이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를 냈다.
“왜요? 뭐가 잘못되었어요?”
은빛이 물었다.
“그게 아니고요, 기막힌 스토리가 떠올랐어요. 시장님 분량을 넣는 거예요.”
“시장님 분량요?”
“이거 누가 찍었어. 이거 절대 안 돼 하면서 두 팔을 흔들며 막는 권위적인 모습. 어때요? 이 콘셉트의 화룡점정이 되는 거죠.”
“진짜 그렇겠는데요?”
카메라가 동의를 했다.
“그럼 그 방울은 누가 달 건데?”
엄 팀장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오 주임?”
은빛이 경도를 바라본다.
“그건 내가 하지.”
읍장이 총대를 멨다.
“제가 아이디어 냈으니까 거기까지는 지원해 드릴게요.”
유빈도 지원 의사를 밝혔다.
그 길로 스태프 전원과 이장단, 부녀회장 등이 시청으로 진격했다.
“……!”
동영상을 본 시장 표정이 굳었다.
펭수 버전이 빅히트를 치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건 공직사회 밖의 일이었다. 아직도 기관장님들은 자신들의 우상화에 열중이다.
그렇기에 희화화에는 공감하지 않는 게 공직 분위기였다.
그러나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읍장이나 엄 팀장만 있다면야 단칼에 잘라 버리겠지만, 연예인에 이장단, 부녀회장단까지 와 있었다.
게다가 어린 명혜……?
“용포읍에서 따로 만들었다?”
“예.”
“나보고 엔딩을 맡아달라?”
시장 미간이 구겨졌다.
“예.”
경도가 거듭 답했다.
시장은 유빈을 시작으로 각각 인물들의 얼굴을 탐색했다.
그렇지 않아도 용포읍 분위기는 토마토를 싣고 와서 시청 바닥에 뿌릴 기세였다. 그러니 거부권 행사는 힘들 것만 같았다.
“오 주임.”
“예.”
“이것도 관상인가?”
“예?”
“내가 엔딩을 쳐야 대박 나는 관상이냐고?”
“그렇습니다.”
할 수 없이 관상을 팔았다.
시장에게도 합리화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오예에!”
시장의 허락이 나오자 일동 환호를 울렸다. 즉석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동영상을 보고 정색을 하는 장면이다.
시장의 주특기이도 했으니 단 한 방에 촬영이 끝났다.
동영상이 올라갔다.
반응의 시작은 용포읍과 시청직원들이었다.
“아, 이거 골 때리네?”
“읍장님 봐라. 저 케케묵은 공무원 포스.”
“여자는 누구야? 아주 죽이네?”
“막춤 봤어? 나, 원 참…….”
“시장님 마지막 엔딩은 어떻고? 아주 작살이라니까.”
주목성은 대성공이었다.
여러 동영상 중에서 압도적인 조회 수를 보였다. 그러나 시청 내의 분위기일 뿐이었다.
문제는 주문이었다. 시청 홈페이지에는 온종일 열다섯 건의 주문이 들어왔고 그중에서 직원 지인의 것이 절반이었다.
경기도 농산물 쇼핑몰에서는 단 한 건의 주문도 없었다.
“아, 씨…….”
쇼핑몰을 본 은빛이 쓴 물을 삼켰다. 역시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공무원들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오후까지의 스코어였다.
오후 2시가 넘으면서 이상 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청의 홈페이지 접속에 장애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시작이었다. 농산물 쇼핑몰에 주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오후2시부터 5시까지 세 시간 만에 3만 건의 주문이 몰린 것이다. 시청의 홈페이지에도 댓글이 무려 600개가 넘게 달렸다.
“오 주임.”
읍장이 뛰어 내려왔다.
“읍장님.”
“시장님께 전화가 왔네. 이거 대박이 난 모양이야.”
“저희도 확인했습니다.”
“으아, 이게 되네?”
“메인 쇼호스트가 죽여줬잖아요?”
은빛 목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읍장님이 출하반에 연락하셔서 품질관리 제대로 하라고 해주세요. 바쁘다고 절대 하자 있는 물건 넣지 말고요. 작목반에게도 우리랑 약속한 감사 메모, 박스마다 넣어서 앞선 지자체들 실수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요.”
“알았네.”
읍장이 2층으로 뛰었다.
그사이에도 주문은 계속 폭주를 했다.
알고 보니 유빈과 그녀의 지인들 활약 덕분이었다. 그녀들이 각자의 SNS를 돌린 것이다.
지인들을 위해 100박스를 선주문한 유빈, 인스타부터 깨톡, 페이셜북까지 돌려댔다.
여기에 이 국장의 조카가 참가하고 있던 맘카페의 지원이 기름을 부었다.
좋은 먹거리 채널을 가지고 있던 회원 하나가 재료로 소개하니 그 또한 기폭이 된 것이다.
그러나 뒷심은 역시 동영상의 재미에 있었다. 보는 사람마다 이 무모한 신박함에 뒤집혔으니 공유와 좋아요 기세를 타고 번져나갔다.
이 폭풍은 결국 뉴스에까지 소개가 되고 말았다.
시청자들 역시 완전 아마추어 팔색조들의 무모한 설정에 배꼽을 잡았다.
-이 동영상 기획 누구 아이디어랰ㅋㅋ?
-졸라 뒤집히는 줄?
-마지막 인물 시장 맞냐?
-인생 광고로 인정합니돳~~
-이 토마토는 먹어줘야 돼.
-쇼호스트로 나오는 여자공무원 내 스따일.
-공무원 막춤 눈물 난당.
-박스가 실용적이라 더 대박.
댓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박스의 실용성은 포장단위를 줄인 까닭이었다.
많은 경우 과일이나 채소 등을 박스로 사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 몇 개 먹고는 처박아 두기 때문이었다.
경도와 작목반은 그것까지 고려했다. 평상시 포장의 반으로 줄여 버린 것이다.
“고맙습니다.”
경도는 유빈에게 감사 전화를 잊지 않았다.
-고마울 거 없어요. 곧 박사님께 신세 지러 갈 거니까요.
“전에 말한 지인 관상 말인가요?”
-네, 시간 되세요?
“언제든지 오세요. 무조건 환영입니다.”
쿨하게 답하고 통화를 끝냈다.
“오 주임.”
시청 회의에 불려갔던 엄 팀장이 싱글벙글 민원실로 들어왔다.
“시장님이 우리 팀에 보낸 선물일세.”
엄 팀장이 내려놓은 건 케이크였다.
“아오, 출연료치고는 약하다. 특진 정도는 시켜주셔야지.”
은빛이 볼멘소리를 냈다.
“좋아. 이 주임은 다음 특진 무조건 예약이다.”
“진짜죠? 저 그거 녹음했어요.”
“그래. 특진. 까짓거 안 시켜주면 내가 시장님 바짓가랑이라도 잡는다.”
엄 팀장이 기세를 올릴 때 읍장과 육 과장이 내려왔다.
“엄 팀장, 오 주임, 토마토 농가에서 일손이 부족하다는데 지원 좀 가야겠어. 밀린 주문 쳐내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 같다는데?”
읍장이 말했다.
“그럼 알바 좀 지원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잖아도 시청에 요청했네. 필수 요원만 남고 가지들?”
“아오, 코로나 지원금 전쟁 끝나니 이제는 토마토 전쟁이네.”
은빛이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행복한 전쟁이지. 막말로 토마토 못 팔고 갈아엎었어 봐. 지금쯤 저 마당에 토마토 시위대가 몰려와 난리를 치고 있을걸?”
읍장이 앞서 나갔다.
그 걸음에는 뿌듯함이 실려 있다.
뒤를 따라가는 읍 직원 모두의 발걸음이 그랬다. 용포읍의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