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맹활약 중입니다만-1> (94/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94화

26. 맹활약 중입니다만-1

“오 박사?”

조경철의 눈에 파란이 스쳐갔다.

그가 모셔온 손님이었다.

중간 중간 질문이 옆길로 새기는 했지만 복채도 쏠쏠히 내놓았다.

그냥 받아도 문제가 없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사양을 한다.

손님이 보기에는 사양이지만 조경철이 보기에는 거부였다.

이제는 경도를 아는 조경철이었다.

“딱히 봐드린 상괘도 없습니다. 복채는 다음에 제대로 봐드리고 받겠습니다.”

한 번 더 사양 의사를 확실히 하는 경도였다.

“어차피 후원회에 내는 것이니 일단 받아두시고 다음에 우리 아들이나 잘 봐주십시오.”

“그럴 수 없습니다.”

손님이 손을 내젓지만 경도의 선언은 취소되지 않았다.

“뭐, 정 그러시면…… 수일 내 다시 시간을 내주십시오.”

“2주일 후에나 시간이 납니다. 그때도 괜찮으시면 오셔도 좋습니다.”

“2주일이나요?”

“예.”

“알겠습니다.”

봉투를 챙겨든 손님이 일어섰다.

“오 박사?”

손님 차가 멀어지기도 전에 조경철의 궁금증이 불타올랐다.

전에 없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저 양태민 씨 뭐가 잘못됐어?”

“아직은 아니지만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럴 것 같다고?”

“저 복채는 깨끗한 돈이 아닙니다. 그래서 받지 않은 것이니 이해하십시오.”

“그러니까 왜? 사람 답답해 미치겠네.”

조경철이 가슴을 두드렸다.

“일종의 뇌물이라면 이해가 가겠습니까?”

“뇌물?”

“기부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아는 순수한 목적의 기부가 되겠고 또 하나는 불손한 기부입니다.”

“불손하다니?”

“만약, 저 돈이 범죄자의 돈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어떤 범죄자가 자기 범죄가 들통날 때를 대비해 소액을 기부하고 재판에서 선처를 구한다면 말입니다. 나는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기부도 하고 착한 일을 했습니다. 형량을 깎아주세요.”

“아니, 아까 그 분은 시청 공무원의 부친이셔. 자네 후원회 소문을 듣고 뜻에 공감해서 겸사겸사 나를 찾아온 거라고.”

“그래서 관상을 대충대충 봐달라고 했을까요? 목적은 관상이 아니고 후원회 기부라서?”

“그렇지.”

“아닙니다. 저 분은 제가 관상을 제대로 보면 자기 목적이 들통날까봐 변죽을 호기심성 질문으로 때웠던 겁니다.”

“그게 그렇게 된단 말이야?”

“명궁이 어두운 데다 말할 때마다 인당이 좁아집니다. 그건 곧 불안하고 초조하다는 뜻이며 집안에 풍파가 닥친다는 것입니다. 그런 판국에 무슨 기부입니까? 어불성설입니다.”

“그거야 역으로 생각하면 안정되지 못하기 때문에 안정을 찾기 위해서…… 오 박사도 공덕이나 음덕 같은 거 많이 강조하잖아?”

“이분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불손한 목적이 있는 후원금이에요. 술을 한 잔 마시긴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인당에 붉은 기운이 있습니다. 공적인 일로 횡액을 맞을 겁니다. 그 기색이 와잠까지 침범했으니 아들의 일이고요. 아까 그 아들이 우리 시의 공무원이라고 했습니까?”

“그렇게 말하더군.”

“확인한 건 아니시군요?”

“거, 뭐 후원금 좀 내신다는데 꼬치꼬치 묻기도 뭣해서…….”

“그건 그럴 수 있죠. 아무튼, 이 일은 이렇게 넘어가 주십시오. 저분이 다시 후원금을 건네시더라도 절대 사양하시고요.”

“알겠네.”

“그만 가시죠? 그래도 한 분은 구했으니 그게 어딥니까?”

“우종선 이사?”

“예.”

“하긴 그렇군.”

조경철이 웃었다.

경도 말에 승복한다는 의미였다.

500만 원.

돌아가는 길에 봉투가 떠올랐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

착한 일에도 정도가 있다.

불손한 돈인 줄 알면서까지 받을 수는 없었다.

이 사연은 뜻밖의 손님 덕분에 바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어, 조 실장님.”

집 앞에 차를 대고 내릴 때였다.

감사실장 조기룡이 눈에 들어왔다.

“오 주임.”

“여긴 웬일이세요?”

“오 주임 만나려고 왔지.”

“저를요?”

“시청에서 잔무 좀 정리하다가 방금 왔어. 전화를 할까 그냥 쳐들어갈까 생각하던 중에 오 주임이 온 거야.”

“어쩔 생각인데요?”

“내 스타일은 후자인데?”

“그럼 가시죠.”

경도가 원룸 입구를 가리켰다.

“드세요.”

안으로 들어서자 음료수를 따라주었다.

“뭐야? 관상 대가라서 여자들이 줄줄 따를 줄 알았는데 분위기 보니 그것도 아니네?”

조 실장이 음료를 한 모금 넘겼다.

“관상 잘 보면 여자들이 줄줄 따르나요?”

“대개는 그렇지. 여자들이 사주니 역학이니 관상이니 하는 데에 더 관심이 많잖아? 나 어릴 때 우리 친척 한 분이 역학을 했는데 여자만 한 다발이었어. 물론 단 한 여자하고도 제대로 산 적은 없는 것 같았지만.”

“흐음, 마구 부러워지려고 하는 데요?”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관상 대가시니 내가 온 목적도 알고 있겠지?”

“아뇨. 그런 것까지 알지는 못합니다.”

“실은 좀 곤란한 일이 터졌네.”

말문을 튼 조기룡의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자네 코로나 극성기 때 터진 n번방 사건 기억하나?”

“예…….”

“그때 경찰과 구청 공무원 등 공직자 세 사람과 구청 사회복무요원들이 연루되었었지?”

“그렇게 들었습니다.”

“엊그제 공판이 열렸는데 거기서 좀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다네.”

“충격적이라면?”

“공범의 한 사람으로 구속된 사회복무요원이 공판 직전에야 다른 시군구에도 협력자가 있다는 걸 흘린 모양이야. 그게 우리 시고.”

“……?”

“검찰에서 관련 자료를 재검토 중인 모양인데 나한테 은밀하게 연락이 왔네. 미리 협조가 되면 일 커지지 않아서 서로 좋지 않겠냐고.”

“현재 우리 시 소속이란 말입니까?”

경도도 긴장 모드로 돌입했다. 사실이라면 엄청난 파장이 될 일이었다.

“그렇다는군. 그런데 검토를 하다 보니 모레 소집해제가 되는 네 명에 다음다음 주 해제가 되는 두 명까지 여섯이나 용의선상에 올라 버렸네. 자네도 읍에 근무하니까 알겠지만, 새올에 접속하는 사회복무요원은 한둘이 아니네. 그러니 소집해제가 코앞인 네 명을 조사하기에 이틀은 너무 짧네.”

“그렇겠군요.”

“그렇다고 물증도 없이 소집해제를 막을 수도 없고.”

“…….”

“이 국장님께 상의했더니 염치 무릅쓴다며 자네를 추천하더군. 자네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미안하지만 좀 도와줄 수 있겠나? 이게 우리가 선수를 쓰지 않으면 감당 못 할 이슈가 될지도 모르네.”

“도와드려야죠.”

“고맙네. 이 업무는 자네가 추천한 마지웅 주임에게 맡겨놓았네. 내가 자네 과장님께 적당한 이유를 대고 협조 부탁해 둘 테니 아침에 출장 달고 바로 시청으로 와주시게. 마 주임에게도 그렇게 말해둘 테니 둘이 은밀하게 파악 좀 해주게나.”

“알겠습니다.”

“고맙네.”

용무를 마친 조기룡이 일어섰다.

‘사회복무요원……’

조기룡이 멀어지는 걸 보며 생각했다.

이건 처음부터 문제가 많은 일이었다.

사회복무요원 중에는 행정 보조가 많았다.

말이 보조지 공무원의 업무를 대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이들이 주민들의 개인정보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새올에 들어가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기본이고 핸드폰 번호에 주소, 심지어는 가족구성과 그들의 신상 정보까지 알게 된다.

사실 공무원 중에도 드물게 이 정보를 누출시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직업 공무원도 아닌 사회복무요원들……

경도의 센터에서도 그런 일이 많았다.

호기심 많은 사회복무요원 하나가 예쁜 여자 민원인의 정보를 따두었다가 문자를 보낸 것이다.

이 민원이 시청에 공식 항의를 하자 읍장과 과장이 민원인을 찾아가 사과를 한 적이 있었다.

만행(?)을 저지른 사회복무요원은 다른 곳으로 전출이 되었다.

그러나 그 사회복무요원은 형식적인 사과만 했을 뿐 큰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K시 시청의 문제는 사회복무요원들이 전용 아이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원칙적으로는 있어서 안 되는 일이지만 행정 편의를 위해 허용된 관행이었다.

그러니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들은 그걸 죄다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다른 부서의 아이디까지도 공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접속을 하면 누구의 접근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조기룡의 고민이 거기에 있었다.

피해 여성들의 정보를 대입한다고 해도 어떤 사회복무요원의 로그인이었는지를 가늠하기 곤란한 것이다.

게다가 시간도 많이 흐른 사건이었다.

‘여섯 명.’

60명보다는 작았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튿날 오전, 엄 팀장과 육 과장에게 출장 보고를 마치고 시청으로 향했다.

로비에 나와 있던 마지웅이 경도를 맞이했다.

“오경도.”

“오, 감사실 가더니 스타일부터 신박한데?”

“장난하냐? 머리 터져 죽을 지경이다.”

“처음부터 능력 발휘 좀 하라는 거지.”

“능력은…… 태술이는 잘 있냐?”

“매우, 몹시, 아주.”

“흠, 그 반전 팩트?”

“아니, 진짜야. 우리 읍 센터에서 인재로 거듭나고 계시다.”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군. 그건 그렇고…….”

마지웅이 경도를 밖으로 잡아끌었다.

“조 실장님 말씀이 네가 관상으로 도와줄 거라던데 그게 실화냐?”

“뭐가? 관상이 조 실장님 말이?”

“관상 말이야. 실장님은 네가 마치 관상 수사관인 것처럼 말씀하시던데?”

“당장 증거 내놓으라는 거냐?”

“아니. 유란 누님도 그렇게 말하고 나한테 말한 것도 맞기는 했지만, 이 사건이 워낙…….”

“너 해외여행 갈 거지?”

경도가 뜬금포를 날렸다.

“응?”

“가는 건 좋은데 가서 조심해라. 자잘한 사고 날 거 같으니.”

“야, 오경도.”

“그리고 지난주에 어머니께 좋은 일?”

“억.”

“마지막으로 머잖아 상복이 터질 거다. 더할까?”

“오케이, 거기까지.”

경도의 관상 팩트 폭격에 마지웅이 두 손을 들었다.

“용의선상에 올린 사회복지요원은 모두 여덟 명이다.”

마지웅이 본격 설명에 착수했다.

넷은 원스톱민원실에 근무했던 경력이 있었고 넷은 일자리경제과와 청소년과에서 행정보조를 하는 친구들이었다.

조 실장 말로는 여섯이었지만 마지웅은 그 외에 둘을 더 선상에 놓고 있었다.

바로 체크에 돌입했다.

원스톱민원실은 민원인들에게 섞여서 오가며 확인했다.

둘은 무난했고 둘은 문제가 좀 있었다. 그중 한 명인 남경일이 경도의 시선을 끌었다.

미간에 흉살이 맺힌 것이다.

재복궁을 보니 사회복무요원 봉급 외에도 수입이 있었다. 봉급보다도 많았다.

일할과 월할로 날짜를 짚어보니 n번방 범죄가 일어난 기간도 속했다.

‘후우.’

긴장 백 배로 고무된 경도가 거친 숨을 골랐다.

“뭐가 있어?”

슬그머니 다가온 마지웅이 나지막이 물었다.

“나머지 넷 다 보고.”

그대로 원스톱민원실을 나왔다.

다른 넷 중에서도 한 명을 건져 올렸다. 일자리경제과에서 근무하는 안상욱이었다.

“두 명?”

간격을 좁혀놓자 마지웅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경도는 둘의 관상 정리에 들어갔다.

‘안상욱……’

코가 납작한 무능비에 콧대까지 죽었으니 겁쟁이다. 그나마 귓불이 좋으니 정에 약한 스타일이었다.

누군가 청탁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상인 것이다.

‘남경일……’

이 친구는 비공이 크니 낭비가 심한 편이었다.

좌우 횡부가 발달하고 턱이 뾰족하니 허영심에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일할과 월할로 지난 행적을 짚어도 남경일 쪽이 더 의심스러웠다.

“원스톱민원실 남경일이 최고 근접, 두 번째가 안상욱.”

경도의 상괘가 나왔다.

“알았어. 잠깐만.”

마지웅이 민원실 창구 주임에게 다가갔다.

“감사실 직원인데요. 저기 남경일 사회복무요원 말입니다. 민원제기 들어온 게 있어서 잠깐 감사실 데려가서 확인 좀 하겠습니다.”

“민원제기요?”

노란 셔츠의 민원주임이 고개를 들었다. 무심하게 바라보던 경도 눈에 민원주임의 공무원증이 들어왔다.

<양광호>

그 이름에 이어 어젯밤에 500만 원을 내밀던 사람의 얼굴이 겹쳤다.

<양태민>

둘은 부자지간이었다. 관상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마가 높으니 부모 운은 나쁘지 않다. 그런데 눈썹과 눈이 좋지 않았다. 그것은 곧 30대의 몰락을 뜻하는 관상이었다.

부모운도 괜찮고 7급 중견 공무원이 된 사람이 왜?

순전히 본능으로 관상안을 겨누게 되었다. 이 돌발이 진범 색출의 완전판이 될 거라는 사실. 경도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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