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영업 상이라니까요-2> (93/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93화

25. 자영업 상이라니까요-2

“제 나이가 이제 육십 줄에 가깝습니다.”

우종선의 시작은 활기차고 겸허했다.

대기업에 공기업까지 오가며 수만 명의 직원을 이끈 경험도 있었다.

그럼에도 경도를 쉽게 보지 않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뭔가 굉장히 허전합니다. 아무래도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게 고민 중일 때 우리 조 기자님이 오 박사님 추천을 하시더군요. 한번 만나 봐라. 절대 손해는 안 난다.”

“귀한 시간, 헛걸음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경도가 추임새를 넣었다.

“우리 세대는 사실 적성이라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일거리만 있어도 감지덕지였죠. 그런데 요즘이야 어디 그렇습니까? 돈보다 적성이라는데 인생 포기하고 살기에는 남은 시간이 많고…… 그래서 뭐 요긴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왔습니다.”

우종선의 SOS는 솔직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관상을 보다 보니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첫째는 우종선 같은 스타일이다.

-내 얼굴에 담긴 인생의 블랙박스를 해독할 수 없습니다. 좀 도와주세요.

이런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더 많은 해독 정보를 주고 싶다.

두 번째는 반대의 스타일이다.

-네가 그렇게 관상을 잘 봐? 그럼 어디 한번 맞춰봐라.

이렇게 꼬인 사람은 난감하다. 상괘를 주면 그 상괘를 물고 늘어진다.

그럼 이건? 그럼 저건? 하면서 태클에 태클을 연결시킨다.

이렇게 배배 꼬인 사람은 상괘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관상이 뭔데?

의심의 칼부터 들이대니 상괘를 줘도 믿지 않는 것이다.

“대기업의 중역이시면 부러울 것도 없으실 텐데 다른 일을 해보시려고요?”

경도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제라도 내 길이 있으면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게 제 눈의 들보는 안 보인다고 직원들 훈계는 도맡아 하면서도 길을 모르겠습니다.”

“그럼 제가 관상으로 엿봐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그러자고 시간 내달라고 한 건데…….”

우종선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경도의 시선은 다시 인당과 명궁이었다. 거기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으음……’

잠시 숨을 고르고 본격 탐색에 들어갔다.

경영이라면 이마의 천창과 지고, 양쪽 광대의 관골 기색 체크가 기본이다.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 정도가 끝이었다.

뻗는 기세가 전문 CEO로 나가기에는 약했다.

우종선의 본능은 그걸 알았다.

그렇기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마는 둥글고 나름 넓었다.

네모진 모양에 살집도 보인다.

눈썹은 일직선이고 눈은 참새눈 작안을 가졌다.

“……?”

여기까지 읽어도 그의 직업은 부조화였다. 그에게 어울리는 직업은 따로 있었다.

확인을 계속해 나갔다. 코가 그랬다. 소의 코 우비에 소의 입 우구다. 귀조차 작고 둥글고 두툼하니 그의 길이 제대로 보였다.

그에게 어울리는 직업은 대기업의 중역이 아니라 따로 있었던 것이다.

“상괘가 나왔습니다.”

얼굴부터 목까지 체크를 마친 경도가 긴장을 풀었다.

“……!”

이제는 우종선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운명의 해석이 나오는 순간이었으니 누구든 진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업이 적성과 맞지 않는 것은 분명하군요.”

“아…….”

“원래 자수성가하신 분이죠? 인중의 위가 좁고 아래가 넓으니 그럴 것 같습니다. 이런 상은 자식운은 괜찮은데 현재의 찰색으로 보아 재물운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혹시 주식 같은 거 하시나요?”

“제가 여러 기업에 관여하다 보니 이런저런 정보로 조금씩…….”

“재백궁을 보니 딱 한 번 외에 재미를 본 적 없으시네요?”

“아이쿠야, 그걸 맞춰 버리시네?”

우종선의 입이 벌어졌다.

“죄송하지만 그건 정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잖아도 몇 종목 남은 거 치우려던 참이었습니다. 진짜 귀신이시네요.”

“자수성가를 하셨으니 경쟁력은 남다르시군요. 그러나 돌아보면 빈 수레에 불과합니다. 긴 직장 생활 동안 동분서주하셨지만, 눈에 띄는 업적은 없으셨을 겁니다.”

“허어.”

우종선이 무릎을 쳤다. 그 또한 족집게였다. 그가 추진한 프로젝트들이 그랬다.

부서나 직장을 옮기면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뛰었다.

굉장히 열심이었지만 크게 남는 건 없었다.

겨우 체면치레를 하는 정도의 결실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게 관상에 쓰여 있습니까?”

“예.”

“이야…….”

“눈썹 때문입니다. 눈썹 관리를 너무 안 하셨어요.”

“눈썹?”

“미간 말입니다. 관상에서는 명궁이라고 부르죠. 명궁은 운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입니다. 회사로 치면 전략기획실쯤 되겠네요. 보통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갈 넓이면 대길합니다. 이게 넓어야 소통이 잘 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명궁은 잔눈썹이 어지럽게 번져 길을 막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소통의 길이 막힙니다. 사람과의 관계든 추진력이든 성과든…….”

“어? 그래요? 나는 남들이 눈썹이 개성적이라기에 살려둔 거였는데…….”

“무엇을 하시든 그건 당장 밀어버려야 합니다.”

“아…….”

“다행히 그 미간에 주름이 지다 말았습니다. 만약 주름이 제대로 졌다면 가정에도 어려움이 닥치고 재산도 곤궁해졌을 겁니다.”

“…….”

“아까 제가 직업과 적성이 맞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는데 평소에 생각하는 다른 일이 있으십니까?”

“있기는 하죠.”

“말씀해보세요.”

“그게 좀…….”

우종선이 뒷목을 긁었다. 입 밖에 내기가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제가 맞춰드리죠. 단란한 자영업이죠?”

“억.”

경도 상괘가 나가자 우종선이 비명을 토했다.

촌철살인의 상괘를 받은 것이다.

“그것도 제 관상에 나옵니까?”

그가 아이처럼 물었다.

매사가 솔직하니 경도도 기분이 좋았다.

살짝 삐뚤어진 사람이라면 조금 전, 마음에 둔 일을 말하라고 했을 때 빈정이 나왔을 일이다.

-그건 당신이 맞춰야 하는 거 아니야?

매사 의심하고 딴죽을 걸려 하면 좋은 상괘는 얻기 힘들다.

관상불여심상이라는 말은 이런 때도 적용되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이 적성을 따라 사는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의 적성은 자영업입니다.”

“자영업…… 아핫, 제가 그 말 하면 제 친구 놈들이 다 코웃음을 칩니다. 좋은 회사에서 중역이나 하고 있으니 배부른 소리라고 말입니다. 자영업의 세계가 얼마나 거친 황야인 줄 알고나 그러냐고? 아무나 하냐? 그냥 월급 또박또박 나오는 직장이나 잘 다니라고…….”

“제가 보니 자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신 게 두 번쯤 되는 거 같습니다. 한 번은 2000년 초반에 또 한 번은 올해? 맞습니까?”

“천리안이십니다. 처음에는 직장 생활에 빠져서 잘 몰랐지만, 부장급이 되면서 선배들 잘리는 거 보니까 발현이 되더군요. 결정적으로는 제가 모시던 부장이셨는데 정리해고를 당한 후에 육개장 전문 체인점을 하셨어요. 하지만 8개월 만에 3억 털어먹고 접으시더군요. 그때 불현듯 생각이 났습니다. 잘하면 재미있을 거 같은데 왜 저렇게 징징거리다가 망할까?”

“…….”

“그러다 IMF 위기가 끝나면서 제가 잘리게 되었죠. 정리해고의 칼을 휘두른 대가랄까요? 회사 사정이 조금 나아지면서 해고노동자들 일부가 복직되었는데 그다음 해의 노사협상에서 저를 지목했습니다. 저를 잘라야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그때 잠시 일을 쉬면서 자영업을 고려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

“두 번째는 바로 요즘입니다. 코로나 전성기 때 우리 회사도 힘들었죠. 솔직히 말하면 IMF 때보다도 더 힘들었습니다. IMF는 보이는 적이었지만 코로나는 보이지도 않는 적이었으니까요. 어찌어찌 위기는 넘겼는데 작지만 내 일에 대한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금 능력도 없는 주제에 말입니다.”

“하세요.”

이야기를 듣던 경도가 결론부터 내놓았다.

“예?”

“자영업 하시라고요. 저는 완전 지지합니다. 법령이 보증하거든요.”

“법령?”

“코를 따라 내려오는 팔자주름이 법령입니다. 관상에서는 상업의 운을 가늠하는데 많이 쓰이죠.”

“…….”

“선생님은 법령에 주름이 들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실주름까지 합쳐 여러 개로 보일 텐데 이런 사람은 자영업에 강합니다. 게다가 선생님 법령은 꽤 넓은 편이니 기왕이면 크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게다가 크게요? 처음부터?”

“무조건 크게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좀 크다 싶어도 부담 갖지 말라는 것이죠.”

“이햐, 이거…….”

우종선의 입으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표정을 보니 점점 더 달아오르고 있었다.

“광대뼈 뒤에서 턱뼈로 가는 지고의 기세가 어두운 것으로 보아 마음고생이 많으셨을 겁니다. 자영업 저지르면 그 어두운 기색도 사라지고 마음고생도 내려놓게 될 겁니다.”

“맞습니다. 그놈의 실적에 나이에…… 직함 때문에 실적은 내야 하고 아래에서는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중역 쯤 되면 누구 하나 흉금 터놓고 말할 사람도 없고…….”

“종합해 드리죠. 이걸 듣고 나면 결심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예, 박사님.”

우종선이 의자를 당겨앉았다.

“자영업이든 업무든 일단은 기세입니다. 기세가 없으면 뭐든 어렵죠. 선생님의 중장년 운은 천창과 지고, 양 관골의 기세가 괜찮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벌여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하던 일 하는 게 백 번 낫습니다.”

“…….”

“그러나 눈의 동공이 크면 역시 직장생활이 낫죠. 동공이 큰 사람은 장사를 해도 실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월급은 실익이 없어도 입금이 되지만 장사는 쪽박을 차게 되니까요.”

“…….”

“선생님의 관상을 뜯어보면 대인관계가 무난하고 일대일 영업에 탁월할 상입니다. 사교적인 데다 유머 감각이 있으니 조직에 속하는 것보다 독립이 유리하죠. 둥근 이마에 일직선 눈썹, 작안과 눈, 코, 입 등이 그걸 반영하고 있습니다.”

“…….”

“백미는 법령인데 이게 눈에 띄게 넓으면서 주름이 제법 있습니다. 게다가 뒤쪽으로 흐르는 상이라 장사수완으로 빛을 볼 관상이죠. 직장 생활은 여지껏 하던 가락이 있으니 큰 문제없겠지만 더 이상의 발전은 없어 보입니다. 유력 기업의 CEO 같은 자리 말입니다.”

이 상괘에서 우종선의 미간이 꿈틀 흔들렸다.

중역 다음에는 대표이사다.

그도 그것을 꿈꾸었다.

그렇기에 코로나가 퍼지던 때에도 중국과 유럽 출장을 마다치 않았던 그였다.

책임감이 강했으니 부하들만 사지로 몰지 않았다.

그럼에도 CEO의 오더는 없었다.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주저하던 우종선이 남은 생각을 밝혔다.

“제가 지금 자영업에 뛰어들 만큼 재산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주식으로 좀 말아먹은 것도 있고 부동산 매입을 잘못해 집도 저당 잡힌 상황이라…….”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단돈 1억도 동원하기 힘들다는 거. 금고를 상징하는 재백궁 코에 생기가 말라가고 있으니까요. 양쪽 정조의 구멍도 절반 가까이 열린 게 금고가 비었다는 신호거든요.”

“그럼 언제쯤이 좋을까요?”

“역시 지금입니다.”

경도가 잘라말했다.

“오 박사님.”

우종선은 울상이 되었다. 잘 나가던 경도의 상괘였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자영업을 권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길거리 노점이 아니라면 대략 3억은 필요한 게 자영업이었다.

“제가 로또 당첨 운이라도 오는 겁니까?”

슬쩍 말머리를 돌리며 경도의 의중을 묻는다.

“로또가 아니라 의인이 옆에 계십니다.”

“의인?”

“콧구멍 가장자리에 윤기가 맺혔습니다. 가까운 시일에 돈이 들어온다는 뜻이죠. 이마의 일각 월각을 보자면 어머니는 안 계시고…… 일각에 미색이 도는 걸 보니 아무래도 부친에게서 도움을 받을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요?”

“예.”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주말에 잠깐 내려오라시던 게?”

우종선의 머리에 불이 들어왔다.

그러잖아도 주말에는 별다른 집안 이벤트가 없어서 의아하던 차였다.

“잠깐만요.”

그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큰 아버지, 저 종선입니다.”

우종선의 아버지는 큰아버지와 이웃에 산다.

“오 박사님, 야, 진짜…….”

통화를 끝낸 우종선의 입에서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께서 지방에서 작은 목재 회사를 하고 계십니다. 최근 힘에 부치시다고 말씀하시더니 매각했다는군요. 제가 내려올 때까지는 비밀이라고 하셨는데 전화를 하니 말해주신다고 아버지께는 모른척하라고 하십니다.”

의인은 그의 부친이었다.

미리 정리한 재산을 아들에게 나눠주려고 내려오라고 했던 것이다.

우종선은 복채 100만 원을 후원회에 놓고 갔다.

다음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그는 별로 궁금한 게 없었다.

아들에 대해 몇 마디 물어대더니 바로 갈 기미를 보였다. 경도를 본 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복채는 꽤 많이 내놓았다.

무려 500만 원이었다.

“기부증이나 한 장 만들어주십시오.”

후원회가 좋은 일을 하니 도와주고 싶어서 왔다는 것이다.

“그거야 문제없지만 이렇게 무리를 하시면…….”

조경철이 고마움을 표시할 때였다.

남자 얼굴과 복채 봉투를 번갈아 바라보던 경도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목소리도 차갑게 나왔다.

“이 복채는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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