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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상이라니까요-1> (92/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92화

25. 자영업 상이라니까요-1

집으로 돌아온 경도는 싸목도감부터 펼쳤다.

오면서 생각하니 이 도감에도 천 거사의 상자에서 보았던 그림이 있었다.

그러나 한 장이 아니었으니 앞에서부터 펼쳐가면서 삼정에서 12궁까지 따로 떼어내어 합치면 그 그림이 되는 것이다.

‘아.’

맥이 풀렸다.

이 현묘함을 일깨운 건 천 거사였다.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비밀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싸목 할아버지는 경도의 업그레이드를 천 거사를 통해 예비해 두었던 모양이었다.

‘할아버지……’

뼈가 시려 왔다. 만렙 관상가로도 형언하기 어려운 분을 치매 환자 정도로 생각하다니……

싸목도감은 볼수록 현묘했다.

이 안에는 한중일 삼국 관상의 도가 다 녹아 있었다.

그렇기에 경도는 미즈노 남보쿠의 상법을 쓰고 있었고 중국 고래의 상법도 쓰고 있었다.

미즈노 남보쿠는 찰색뿐만 아니라 기색 전반에 대해 큰 성취를 이루었다.

할아버지는 그걸 쌀알에 녹여냈다.

도무지 구분하기 어려운 쌀알의 투명함을 골라내는 수련과 노력으로 인간의 얼굴과 몸에 어리는 청-백-적-흑-황에 자색까지 아울렀던 것이다.

경도의 관상 줄기는 이제 관상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중국으로 넘어갔다.

중국 관상가 중에는 고포자가 압권이다.

그가 공자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일준월각에 하목해구요, 용형구배에 미유십이채등 유사십구표 한 상이니 후일 필연 대성인지격이라.’

경도가 외우고 다니는 구절이 바로 고포자가 내놓은 공자의 상괘였다.

우리말로 설명을 붙이면 이렇다.

‘이마와 코의 준두가 반듯하고 눈은 물처럼 은은한데 입은 바다와 같고 용의 형상인 데다 등조차 거북의 형상이라 그 눈에는 열두 가지 광채가 빛나고 마흔아홉 가지의 위표가 있으니 훗날 반드시 성인의 반열에 오르리라.’

중요한 것은 이 상괘가 공자가 이름을 떨치기 전에 알았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관상가는 성공한 사람의 상에 설명을 갖다 붙이기에 바쁘다.

그러나 그것은 수련자에게 허용되는 영광이지 관상가로 이름을 내건 사람이 자랑할 일이 아니었다.

관상가라면, 성공한 사람의 퍼즐을 맞추기에 앞서 성공할 사람을 골라내야 하는 것이다.

책을 덮은 경도가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사람에게 상괘를 내렸다.

그러나 관상의 높은 뜻을 생각하면 도취될 일이 아니었다.

천 거사는 현묘함을 말했지만, 경도는 자신의 관상이 갈 길이 멀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만족한다면 싸목 할아버지가 열반으로 넘겨준 불후의 관상에 보답할 수 없었다.

‘화로의 재.’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최고의 상법을 구하기 위해 한눈을 포기한 한국의 관상 대가.

역시 관상의 도를 구하기 위해 9년간 333 관상수련법에 정진한 일본의 미즈노 남보쿠.

그도 한국 외눈 관상 대가 못지않은 수련의 길을 갔다.

큰 성취를 위해 이발소에서 숱한 사람들의 두상을 만지고, 공중목욕탕에서 때를 밀고, 화장장에서 시체 태우는 일을 하며 두상, 체상, 골상을 익혀 마침내는 심상까지 포용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최고였다.

그 누구에게도 못지않은 관상 파워의 소유자였다.

그렇기에 경도가 갈고 닦고 힘쓰지 않으면 그 뜻을 더럽힐 수 있었다.

오늘 천 거사를 만나, 돌고 돌아온 할아버지의 뜻을 되새기니 마음이 새로웠다.

결론은 정진이었으니 현재에 만족할 때가 아니었다.

일단은 쌀알이었다. 그 단계를 하나 높였다. 한 가지 색으로 세 줄을 세우던 것은 여섯 줄로 늘였다.

찰색은 형상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적기와 홍기는 자칫 실수할 수 있었고 미세한 자색과 청색도 구분이 쉽지 않았다.

백색 역시 빛에 따라 농담이 다를 수 있으니 시선부터 가다듬었다.

싸목 할아버지는 저 옆에서 화로의 재에 상을 그리고 있다.

상상이지만 뿌듯했다.

천 거사의 줄기와도 얼마든지 대적하는 싸목 할아버지.

그 숨결은 경도의 관상안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있었다.

그 수련이 막 끝나갈 때였다.

경도 핸드폰이 얌전히 울렸다.

조경철 지국장이었다.

“어, 회장님?”

경도가 전화를 받았다.

“회장은? 후원회 머슴이지.”

조경철의 조크가 나왔다.

“죄송합니다.”

“아닐세. 머슴도 이런 머슴이면 할 만해. 방금 백성심이라는 분이 다녀가셨네.”

“네?”

경도가 놀랐다. 천 거사의 집을 나가면서 바로 들른 모양이었다.

“자네에게 상괘를 받고 왔다고 하던데?”

“예…….”

“게다가 천 거사 집에서 만났다고?”

“그것도 맞습니다.”

“뭐야? 혹시 천 거사와 관상이라도 겨룬 건가? 자네를 벼르고 있다는 풍문이 있던데?”

“그것도 대략 맞습니다.”

“오 박사.”

“하지만 저도 회장님처럼 기꺼운 만남이었습니다.”

“이햐, 그런 거라면 내가 봤어야 하는 건데…… 연락 좀 하고 가지 그랬어?”

“죄송합니다.”

“해본 말이야. 내가 운명을 보는 사람들 속내를 알 수 있나? 그나저나 봉투를 맡기고 가길래 받기는 했는데 이걸 어쩌지?”

“문제가 있습니까?”

“봉투 안에 1억이 들었어.”

“예?”

경도가 소스라쳤다. 1억이라니?

“혹시 수표를 잘못 넣은 건가 싶어서 명함 받은 것에다 전화를 드렸는데…….”

“……?”

“이번에는 내 귀가 잘못 들은 거 같아서…….”

“무슨……?”

“이분 말씀이 다 드린 게 아니라는 거야. 상괘가 맞으면 다시 찾아오는 핑계로 삼으려고 나머지 절반을 남겼다고 하시네.”

“그럼 2억을요?”

“셈법으로는 그런 셈인데 대체 무슨 상괘를 내준 건가? 이러다 우리 후원회가 대한민국 최고가 되겠어.”

“죄송하지만, 그건 천기누설이 되는 관계로…….”

“아, 미안…… 함부로 물어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워낙 궁금하다 보니…….”

“알겠습니다. 그 건은 제가 따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아니야. 연락하지 마시게.”

“그건 또 왭니까?”

“그분도 선견지명이 있는지 액수는 밝히지 말아 달라고 하더군. 나중에 알더라도 말이야.”

“예…….”

“아, 이번에 감사실 엘리트가 내부 징계 먹고 용포읍으로 좌천되었다며?”

“그런 것도 꿰고 계십니까?”

“내가 7급 이하는 오 박사님 말고 별 관심이 없는데 나름 유명세가 있던 친구라서…… 권태술이라고…… 알고 보니 오 박사 동기던데?”

“동기 맞습니다. 그런데 좌천은 아닙니다.”

“아니라고?”

“제가 스카우트한 겁니다. 용포읍이 복마전 이미지를 쇄신하려면 능력자가 필요해서요.”

“정말?”

“그럼요.”

“그럼 그 고질 민원 해결은? 그건 왜 미리 얘기 안 했어?”

“언제 뵈면 말씀드릴까 했는데…… 지금 말씀드릴까요?”

“아으, 이거 유명한 관상 박사님 모시고 있자니 조경철이 찬밥 되네. 존심 상해서 기사 안 써줘.”

조경철이 괜한 심통을 부렸다.

“죄송합니다.”

“벌로 내 지인들 관상이나 좀 봐줘. 여기저기서 청탁이 밀리네.”

“흐음, 그게 본론이셨군요?”

“전화로도 그게 보여?”

“당연히 농담이죠. 언제 오시게요?”

“K시 장기민원 건 해결인데 내일이라도 가야지. 끝날 때쯤 괜찮을까? 취재 좀 하고 퇴근 후에 연결시키면 딱인데?”

“그러세요.”

“고마워. 그럼 내일 보자고.”

조경철은 흐뭇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과연 관상값을 하는 백 여사였다.

그만한 음덕을 쌓으니 중년운에 노년운까지 예약하고 아들들의 입신양명을 누리는 것이다.

‘1억……’

그러고 보면 경도도 속물이다.

돈이 들어오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물론 경도 주머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돈은 복지제도로도 어쩔 수 없는 사각지대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오백만 원씩 주면 20명에게 희망을 줄 수 있고 천만 원씩 주어도 10명에게 생명수가 되는 것이다.

잘했다, 오경도.

기분으로 맥주 한 캔을 깠다.

목 넘김이 죽여줬다.

캬하!

“칼이라고요?”

다음 날 오후, 읍장을 인터뷰하던 조경철이 화들짝 놀랐다.

어혁배가 칼과 농약까지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취재가 늦은 것은 그의 태국행 때문이었다.

노모가 칠순이 되었다.

밥을 굶는 형편은 아니지만, 어머니 모시고 해외여행 한 번 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걸 결행하고 온 까닭이었다.

사실 경도 덕분이었다.

코로나 극성기 이후에 공격적 마케팅에 나선 단체관광 상품이 많았다.

거기 딸려 보낼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경도가 이뤄내는 뭉클한 사연들 때문이었다.

‘맨날 펜대 주둥이만 놀리지 말고 효도 좀 하자.’

눈 딱 감고 치앙마이 표를 끊었다.

가고 보니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리를 비우느라 시청의 최장 1인 시위가 끝났다는 걸 늦게야 안 것이다.

“우리 오 주임이 그걸 받아드는데 등골이 오싹하더라니까요.”

읍장이 이마를 훔쳤다. 다시 생각해도 식은땀이 나는 모양이었다.

“내 살다 살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사주팔자니 토정비결이니 손금이니 하는 말은 좀 들었지만, 관상으로 운명을 짚어내는 경우는 처음입니다. 관직 말년에 굉장한 행운입니다.”

읍장이 웃는다.

“신들린 관상 능력자를 부하로 둬서 말입니까?”

“그야 물론이지만 오 주임을 통해 인생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무언가 꼬였을 때 남 탓하고 환경 탓 할 게 아니라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거 말입니다.”

“행운 이상의 교훈이군요?”

“맞습니다. 또한, 우리 오박사가 내게 새로운 삶의 지표도 주었지요. 우리 읍을 제대로 경영해 달라는 건데 이건 대통령이나 시장님이 주는 임무하고 또 다릅니다. 뼈를 친다고나 할까요?”

“어혁배 씨도 그 말을 하더군요.”

조경철이 시점을 돌렸다.

“그분 만나셨습니까?”

경도가 물었다.

“어허, 앉아서 다 꿰고 사는 사람이 왜 이러시나?”

“지국장님도…… 제가 무슨 신입니까?”

“신 아니면? 오 주임을 오느님이라도 부르는 사람들도 있던데…….”

“농담 그만하시고 만나셨으면 소식이나 전해주세요.”

“자네에게 받은 상괘의 방향에서 괜찮은 가게를 찾았다더군. 열심히 단장해서 1인 식당 오픈한 후에 자네에게 말할 거라고 공개 말아달라고 했는데…….”

“알겠습니다. 절대 비밀로 하죠.”

“자, 마무리로 한 말씀해 주시죠, 읍장님.”

조경철이 읍장을 바라보았다.

“마무리는 필요 없어요. 내 기사내지 말고 우리 오 주임과 배 주임의 쾌거나 내주세요.”

“아, 그 악질 박쌍태 건요?”

“그것도 알고 오셨군?”

“말도 마십시오. 간만에 어머니 모시고 외유 좀 하고 왔더니 오 주임이 벌려놓은 특종들이 한둘이어야 말이죠. 지금 수습하느라 똥줄이 타고 있습니다.”

“그런 똥줄이야 백 번을 타도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당연하죠. 제 얼굴 해피한 거 안 보이십니까?”

“아무튼, 나처럼 무능한 기관장은 띄울 필요 없으니까 오 주임과 배 주임을 부탁합니다. 이제야 알았는데 밑에서 빛나면 위는 알아서 반사가 되는 것 같습니다.”

“흠, 절대 공감합니다. 제가 기자밥 먹으면서 깨달은 건데 기관장 대다수들은 자기 얼굴 나기를 원하죠. 그건 홍보의 초보 초식입니다. 밑에서 빛나면 그 빛이 어디 가겠습니까? 건방진 얘기 같지만, 읍장님도 오 주임 때문에 인격이 빛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기분 하나도 안 나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읍장님 기사는 스트레이트로 조그맣게 내고 배 주임을 박스 기사로 한번 조명해 보죠.”

“아이고, 고맙습니다.”

읍장이 반색을 했다. 경도도 대찬성이었다.

박쌍태 건의 백미는 배민지였다.

전체 상황을 리드한 건 경도라지만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은 그녀였다.

맥을 제대로 짚어주는 조경철이 너무나 고마웠다.

“제가 무슨 한 일이 있다고…….”

민지가 펄쩍 뛰었지만 내심은 아니었다.

인터뷰를 마친 그녀는 부끄러움과 함께 자부심에 빛나고 있었다.

“오 주임, 고마워.”

경도에게 인사도 잊지 않았다.

“나도 고맙네. 내가 할 일을 다 해주고 있어서.”

엄 팀장도 기꺼웠다.

전처럼 뒤에서 씹거나 자기도 무임승차하려는 모습은 일절 엿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개싸가지의 실종이었다.

조경철이 모셔온 두 사람을 만난 곳은 맑은 청실천이 보이는 야외 카페였다.

두 사람은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본래는 시차를 두고 모셨지만, 나중 사람이 일찌감치 오는 바람에 둘을 한꺼번에 보게 되었다.

관상은 본래의 차례대로 보았다.

한 사람에게는 주변 산책을 권유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요즘이 젊은이들 세상이다 보니 관상가도 이렇게 젊으시군요?”

덕담으로 입을 연 사람은 우종선 전무이사.

소위 팔방미인으로 불리며 대기업에 근무하는 중역이다.

평균 연봉만 5억에 이를 정도로 헤드헌터들에게 러브콜을 받는 능력자였다.

하지만……

경도는 알았다.

그 인생의 엇박자…….

‘일에 치이는 동분서주형.’

인당에 새겨진 운명이 눈에 밟혀온 것이다.

그의 직업은 그의 운명과 전혀 맞지 않았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억대 연봉의 중역. 그러나 그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으니 관상에 그 이유가 있었다.

경도의 관상안이 그걸 하나씩 벗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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