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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묘하고 또 현묘한-4> (91/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91화

24. 현묘하고 또 현묘한-4

“여기 있습니다.”

쌍둥이 중 동생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경도의 요청이 있었으니 아버지 사진을 꺼낸 것이다.

이틀 전의 것으로 집 안이었다. 시한부를 명 받고 집에서 요양 중이었다.

“…….”

경도의 시선이 그대로 멈췄다. 확대해 보니 틀림이 없었다. 남편은 목형상이다.

입과 준두, 인당과 귀의 네 곳에 상극의 기색이 자리를 잡았다. 죽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백 여사를 보니 금형인이다. 남편에게는 좋지 않았다.

“혹시 집안에 다른 사람도 있나요?”

“기사와 가정부, 그리고 간호를 전담하는 요양사가 한 분 있습니다.”

“그분들 사진도 필요합니다.”

“그건 여기 있어요.”

이제 백 여사의 핸드폰까지 동원이 되었다.

기사는 남자고 나머지는 여자였다. 기사와 가정부는 수형이고 요양사는 금형상이었다.

“여사님.”

핸드폰을 돌려준 경도가 운을 떼었다.

“예, 박사님.”

백 여사는 아이처럼 공손해져 있었다. 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죄송하지만 아드님들을 좀 내보내 주시겠습니까?”

경도가 말하자 백 여사가 쌍둥이를 돌아보았다. 둘은 알아서 문밖으로 나갔다.

“아드님을 내보낸 것은…….”

잠시 말문을 흐린 경도가 나머지를 이어갔다

“아드님은 올가을에 합격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 사람만이니 동생 쪽입니다.”

“우리 아들들을 구분하셨어요?”

“왼쪽이 동생 아닙니까?”

“어멋!”

경도의 상괘에 백 여사의 안색이 밝아졌다. 쌍둥이는 일란성이었다. 가끔은 백 여사와 남편도 실수를 한다. 둘은 거의 복사본이기 때문이었다. 그걸 한 번에 구분해 내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만 하세요. 정성이 필요하면 복채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복채…….”

“예. 박사님.”

“미리 말씀드리지만 복채는 받지 않습니다.”

“예?”

“저는 오늘 제 스승의 사명을 받들고 있는 겁니다. 그분이 이룬 기묘한 인연으로 뵙게 된 분이니 복채는 사양합니다.”

“…….”

“가족들 상을 보니 부군의 주검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만은 명명백백하지만 아드님의 합격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방이 필요한데 다행히 그 처방이 부군의 목숨과도 연관이 되고 있습니다.”

“……?”

“일단 부군부터 말씀드리자면 한 달 이상의 목숨 연장에는 모험이 필요합니다. 이거 하시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백 여사는 주저가 없었다.

“두 가지를 하셔야 합니다. 하나는 여사님께서 가능한 한 부군과 멀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요양사를 바꿔야 하는 겁니다.”

“요양사를요?”

경도의 상괘에 백 여사가 반응했다.

“문제가 있습니까?”

“그게…… 이 요양사가 간병을 기가 막히게 하거든요. 남편도 굉장히 만족스러워하고요. 그러니 그것만은 고려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러시다면 제 상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경도도 강공이었다.

“박사님…….”

“9월까지 연명하시는 것, 그 길밖에는 없습니다. 부군은 목형상이라 화형의 배합이 필요합니다. 목형인이 청색이면서 상생이 되는 홍색을 얻으면 이로움을 얻게 되는 것인데 여사님과 요양사가 공히 금형이시거든요. 금극목이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지만 금형은 목형을 극하는 생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

“…….”

“그렇다면 하겠습니다. 남편의 소원이 중요하죠.”

“요양사를 구하게 되면 제게 사진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아예 지금 골라주시죠. 후보들 사진을 가지고 있거든요.”

백 여사가 다시 사진 파일을 열어주었다. 안에는 두 명의 요양사들이 있었다. 다행히 한 사람이 은은한 화형인이었다.

“이분이 좋겠습니다.”

경도가 택일을 했다.

“그런데 아들들 일은……?”

백 여사의 질문이 나왔다. 당연히 나와야 할 질문이었다.

“두 아드님도 목형인입니다. 목형이 높은 관록을 먹으려면 맑고 깨끗한 기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두 귀의 귓불과 명문, 코의 년상과 수상의 자색 빛이 공히 눈썹까지 물들여야 하는데 그 기세가 약합니다. 그나마 동생 쪽이 나으니 이 가을이 지나면 그 기세에 이를 것이나 미약합니다. 역시 화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목형에 미미한 화기가 자극이 되어주어야만 가을 합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아하.”

“확인하고 싶으시면 돌아서셔서 유두를 만져보시기 바랍니다. 둥글고 단단하면 아들이 벼슬길에 나가는 것이니 아직은 조금 무른 감이 있겠지만 가을이 오면 조금 더 탄탄해질 겁니다.”

경도의 추가 상괘가 나갔다. 백 여사의 시선이 자기 가슴으로 내려간다. 그녀 얼굴이 화사한 기색이 깃든다. 유두가 둥근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더 평안한 상괘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시한부는 여러 의사들이 공히 선언한 일이고 우리 아이들도 준비 기간이 짧아 올해는 좀 어려울 것 같다는 고백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라도 비방을 받고 오니 제 마음이 다 날아갈 것 같습니다.”

“위로가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요양사는 당장 바꾸겠습니다. 그동안 고생한 분이니 섭섭지 않게 해드리면 될 것 같고 아들의 합격까지 딸린 문제라면 망설일 것이 없지요. 아울러 저 역시 가능한 한 남편 옆에서 멀리 있도록 하겠습니다.”

“…….”

“하지만 복채는요? 박사님 마음은 알겠지만 저는 그냥 갈 수 없습니다.”

백 여사는 진솔했다.

“그러시면 제가 명함 한 장을 드리겠습니다. 제 관상을 높이 사 결성된 후원회인데 복채를 모아 어려운 분들을 돕는 데 쓰고 있습니다. 거기에 작은 성의만 표해주시면 되겠습니다.”

“OK 후원회요?”

명함을 받아든 백 여사가 중얼거렸다.

“예.”

“아쉽지만 그렇게 하죠. 승준아, 상준아.”

백 여사가 쌍둥이를 불러들였다.

“오늘 귀한 상괘를 받았구나. 인사드리고 가자꾸나.”

백 여사가 말하니 두 아들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경도도 일어나 모자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마음에 드셨습니까?”

그제야 천 거사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들다마다요. 거사님께 또 한 번의 은혜를 입습니다.”

백 여사도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다 백 여사님의 복입니다. 부디 소원대로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백 여사 모자가 떠나갔다.

“거사님 명성에 누를 끼친 것은 아닌지요?”

경도가 조심스레 물었다.

“현묘했네. 더는 할 말이 없어.”

천 거사가 웃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하얀 미소였다.

“돌아오시면 손으로 기색의 궁극을 느끼는 법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천만에. 내 것은 잔재주에 불과하네. 보아하니 일본의 관상법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겸손하지 않아도 되네.”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

“가 봐야지. 자네의 상괘에 곤란이 반이라는 말이 있었지 않나? 나머지 반에 집사람 일정이 결정될걸세.”

“올라오시는 대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세. 내 죽기 전에 황순감을 다시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네만 이렇게 대리인을 만나고 보니 다른 소원이 생겼네.”

“……?”

“내 후배라는 에이사이 말일세. 그라면 자네와 용호상박의 상괘를 나눌 수 있을걸세.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지만 선이 닿으면 만남을 주선해 보겠네. 나도 사과를 전해야 하고.”

“그분 이야기를 좀 더 해주시겠습니까? 굉장히 궁금하군요.”

“에이사이…….”

“돌아보기 싫으시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에이사이.’

천 거사 눈에 과거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방금 쌍둥이가 왔으니 그 얘기를 하면 되겠군.”

“…….”

천 거사의 입이 열리니 경도가 주목을 했다.

“그날도 쌍둥이였네. 스승께서 몰려온 손님 일부를 우리에게 맡겼지. 그분은 주렴 뒤에서 듣기만 하셨고.”

“…….”

“손님의 조건은 같았네. 내가 먼저 배웠으니 먼저 상을 보고, 그다음에 에이사이가 들어와 상을 보고……. 종종 벌어지는 테스트였지.”

“…….”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한 여자가 들어왔네. 40대였는데 굉장히 활달하더군. 상괘를 주고 몇 손님이 이어지더니 또 그 사람이 들어와 앉았네.”

“…….”

“조금 전에 본 사람이었네. 옷도 같고 머리 스타일도 같았네. 스승의 시험으로 알고 그냥 내보냈네. 같은 사람을 또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

“에이사이의 차례가 되자 내가 물러앉았네. 당연히 그 여자가 들어왔네. 같은 차례로.”

“…….”

“에이사이가 상괘를 주더군. 내가 본 것과 같은 그림이었네.”

“…….”

“그 여자는 잠시 후에 다시 들어왔네. 그때 나온 에이사이의 말은 나와 달랐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 상괘는 그냥 나가셔도 됩니다, 였고 에이사이의 상괘는…….”

“……?”

“아까 오신 분의 동생이시로군요, 였어.”

“……!”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네. 나는 쌍둥이로 생각지 않았지만 에이사이는 한눈에 알아본 거였지. 나중에 쌍둥이가 한자리에 앉았는데 모든 것이 같았네. 하지만 다른 것이 있었으니 눈빛과 귀의 형태로더군. 같이 놓고 보니 동생 쪽이 조금 더 귀상이고 언니는 그렇지 않았네.”

“굉장하신 분이로군요. 저도 아까 쌍둥이들을 따로 만났다면 구분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위로할 것 없네. 자네의 관상안이라면 문제없어.”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자네의 눈을 보았네. 그 눈빛은 에이사이 이상이었네.”

“거사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쌍둥이 구분이 어렵네. 아까도 자네가 말을 한 후에야 차이를 알았네. 역시 귀가 다르더군. 미세하지만 귀와 귓불이 형의 기세보다 나았네. 그것은 곧 중년 이후에 확연히 달라진 인생길을 간다는 뜻이겠지.”

“…….”

“그 정도면 되었나? 현묘한 상괘를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전하는 말보다 서로 직접 만나야 느낌이 오지. 에이사이와 자네는 어떻게든 만나게 될걸세. 내가 황순감 대인과 인연이었듯이.”

“기대가 되는군요.”

“그럼 가 보시게.”

천 거사가 문을 가리켰다. 은진보살에게 예를 갖추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녀의 희망 절반, 그건 경도가 건져주었다. 그러나 남은 절반은 그녀의 운명이 결정할 일이었다. 상괘를 준 사람으로서 당연히, 그녀의 치료가 성공하기를 빌었다.

“굉장하네요.”

경도가 멀어지자 은진보살이 중얼거렸다.

“이제 알겠나? 내가 황순감이라는 사람을 왜 기다린 건지.”

“결국 그분이 제 목숨에도 살길을 마련해 준 셈이군요?”

“그렇게 되었어.”

“나는 이 세상에 거사님 이상의 관상가는 없는 줄 알았어요.”

“이제 아닌 걸 알았으니 떠나가려나?”

“천만에요. 말이 그렇다는 거죠. 거사님은 제 마음속에 영원히 최고의 관상가세요.”

“그럼 약수나 한 그릇 떠오시게.”

“약수요?”

“황순감 대인에게 찬물이라도 한 그릇 올려야지. 관상의 관자도 입에 올리지 않은 채 내게 관상의 현묘함을 알려주신 분이니……. 일본에 이카이 스승님이 계신다면 한국에서는 황순감 대인이시네.”

“기다리세요.”

은진 보살이 물을 받아오자 천기득이 그림을 꺼내놓았다. 황순감이 그려준 그림이었다. 그림을 향해 절을 올렸다. 황순감에게 보내는 경이와 존경의 뜻이었다.

부창부수였으니 은진보살 역시 그 옆에서 정성 어린 절을 올렸다. 그림 속의 현묘한 상이 살짝 웃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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