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090화
24. 현묘하고 또 현묘한-3
그는 결국 결행에 옮겼다. 두 눈으로는 이르지 못한 관상의 경이.
그걸 갖고 싶었다. 이제라도 에이사이를 넘고 싶었다.
길이 여럿이면 인간은 갈등한다. 눈도 그랬다. 정작 중요한 것을 볼 때는 한쪽 눈을 감지 않는가?
게다가 천 거사는 짝눈 시력이었다. 오른쪽은 1.5지만 왼눈은 0.6에 불과했다. 그 눈을 버렸다.
지인을 통해 구입한 눈머는 독초를 눈에 흘렸다. 그러나 득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관상 보기가 조금 나아졌나 싶었지만 기대는 반대로 흘러갔다.
남은 눈에 녹내장이 오면서 시야가 흐려진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시야 몇 개를 건졌지만 시력은 거의 바닥나고 말았다. 한국의 관상 대가를 따라 하다가 두 눈을 다 잃은 꼴이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고대의 일본 관상가들 중에서 기행을 일삼던 자의 수련을 알고 있었으니 그쪽으로 개발시켜 나갔다. 어렵게 구한 두 개의 해골이었다.
그 관상가는 눈을 감고도 관상 보기를 원했다. 눈에 현혹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니 해골을 구해다 같은 길을 간 것이다.
고된 수련 끝에 천 거사도 손으로 눈을 대신한 관상법을 체득할 수 있었다. 손끝의 감각만으로 상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고는 기다렸다. 이 집터는 그때 그 자리였다. 화천에 오던 버스에서 현몽 후에 달려왔던 자리. 재 위에 그림을 그리던 황순감을 만났던 자리.
이곳에 관상 간판을 내걸고 황순감을 기다렸던 것이다.
한 번은 오겠지.
그렇게 세월을 쌓아온 것이다.
“결국은…….”
회상을 끝내는 천 거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만나게 되었군. 그 사람의 그림자를…….”
“…….”
“그가 내 이야기를 하던가?”
“하셨습니다.”
“뭐라던가?”
“누군가 당신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그뿐인가?”
“…….”
“말해도 괜찮네. 그 어떤 말이라도.”
“혹시 만나게 되거든 관상의 현묘함을 잘 일깨워 주라고.”
“관상의 현묘함?”
“…….”
“과연, 과연…….”
천 거사가 제 무릎을 쳤다.
“이보다 현묘할 수 있겠는가? 그때는 한국 관상을 무시하는 내 마음에 108상이 담긴 그림 한 장으로 경종을 울려놓더니 이번에는 소위 관상쟁이라는 놈이 제 마누라 운명도 제대로 못 읽어 저승길로 밀어 넣은 걸 구해주다니…….”
“…….”
“과연 현묘함이로다.”
“…….”
“황 대인…… 그분을 만난 게 큰 축복이었구나. 내 그릇으로는 관상의 궁극에 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어. 하긴 일본에서 에이사이에게 밀린 주제에 한국의 관상을 평정해 보려는 것 자체가 무리였겠지.”
“…….”
“그림 한 장으로 내 한계를 꾸짖더니 이제는 자네를 보내 오른 눈에 남은 광명의 허위를 꾸짖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
“내가 자네 관상을 다시 봐도 되겠는가?”
“그러시죠.”
경도가 얼굴을 대주었다. 천 거사의 손이 다가왔다. 머리를 만지고 얼굴을 쓰다듬는다. 대충 보는 것은 아니었으니 아예 눈을 감고 감각으로 상괘의 길을 찾고 있었다.
“그렇구나.”
천 거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그 얼굴…… 이제야 느껴진다. 무와 유가 뒤섞여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던 상. 길상인지 흉상인지 알아낼 길이 없어 가슴이 내려앉던 그 상…….”
“…….”
“그래서 귀물의 상이었구나. 온갖 형태가 다 들어 있는 귀물의 상.”
“상괘가 나오지 않는 겁니까?”
“내 실력으로는…… 내 후배 에이사이라면 몰라도…….”
‘에이사이…….’
“내 일본 이름은 사토시일세.”
“예.”
“이보시게, 은진보살.”
뒤로 물러앉은 천 거사가 보살을 불렀다.
“네.”
“백 여사의 쌍둥이가 내일 예약되었던가?”
“예.”
“지금 부르시게.”
“지금 말입니까?”
“그쪽이야 몸이 달았으니 한밤이라도 올걸세. 우리는 내일 아침에 내려가야 하니 지금이 좋아.”
“알겠습니다.”
보살이 접수대 쪽으로 나갔다.
“그러시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경도가 일어섰다.
“아닐세. 이번 손님을 좀 봐주고 가셔야겠네.”
“예?”
“얼마 전에 내가 남편 암을 예시해 준 여사신데 송파에 재산이 좀 되시네. 이분이 애지중지하는 아들이 있는데 관운점을 예약하고 가셨네.”
“그런데 왜 제게?”
“소문을 듣자니 자네 후원회라는 게 있다고 하더군. 내 평생을 기다리던 황 대인의 소식에다 관상의 현묘 지도까지 알려주었으니 작은 보답을 드리려는 것일세.”
“보답이라뇨?”
“그 아들의 관상을 그대가 보시게나.”
“예?”
“백성심 여사는 내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쒀도 믿는 사람일세. 그러나 나도 양심이 있지 관상의 현묘함까지 알려준 사람 앞에서 어찌 관상을 논한단 말인가?”
“거사님.”
“게다가 사람들을 속인 죄도 있지 않나? 시력이 아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 눈이 먼 행세를 했으니…….”
“…….”
“안 그래도 내가 관상 천재 후배가 있다는 말을 해두었으니 그것으로 백 여사 손자를 맡아주시게. 복채는 섭섭지 않게 내놓을걸세.”
“거사님.”
“그걸 끝으로 관상관 간판을 내릴 걸세. 어차피 이 관상관도 황 대인을 만나기 위한 방편이었으니.”
“…….”
“지금 오고 계신답니다.”
잠시 후에 돌아온 보살이 상황을 전해왔다.
“부탁하네. 이 죄 많은 늙은이가 현묘한 관상을 감상하며 아름답게 퇴장할 기회를 주시게나.”
“거사님.”
그사이에 차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오셨습니다.”
마당에서 보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셔라.”
천 거사가 말했다. 경도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백 여사가 들어섰다.
이마가 제법 돋보인다. 커다란 간을 덮어쓴 것처럼 볼록하다. 특히 이마 양쪽 가장자리인 천장이 유난하다. 천창은 부의 창고로 불린다. 약간의 흠이 있지만 꺼진 기색이 없으니 초년 고난 이후에 말년 영화를 예약한 관상이었다. 이 천기는 관골이 높은 것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귀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것은 곧 그녀의 부귀가 부모에게서 출발한 게 아니라 자수성가를 했다는 뜻이다. 널찍한 법령이 뒤쪽으로 흐르는 것 또한 자수성가의 증거였다. 이런 관상은 땅 부자의 상으로 봐도 좋았다.
장수도 예약이다. 체형에 비해 목덜미가 굵은 것이다.
그 뒤로 20대 중반의 아들 둘이 들어섰다.
“…….”
경도 눈이 흠칫 흔들렸다. 일란성 쌍둥이였다.
“거사님께 인사 올려라.”
백 여사의 목소리가 나왔다. 울림이 묵직하니 듣기에 좋았다.
“죄송하지만 여사님.”
천 거사가 인사를 막았다.
“인사는 이쪽 오 박사에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
천 거사의 주문에 백 여사가 시선을 들었다.
“얼마 전에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설 속의 관상 대가들을 넘보는 천재 후배가 있다고…….”
“아, 그랬죠. 그럼 이분이?”
“나이는 어려 보이지만 일찌감치 천기에 눈뜬 천재입니다.”
“아유, 몰라뵈었습니다.”
백 여사는 정말 군말하지 않았다. 천 거사의 소개가 끝나기 무섭게 그 자신이 먼저 고개를 조아렸다. 일이 이리되니 아들들은 자동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거사님.”
경도가 천 거사를 바라보았다.
“손님은 내가 아니고 이분들일세. 내게는 귀한 분이시니 성심껏 현묘함을 뽐내보시게나.”
천 거사가 물러앉았다.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이제는 별수가 없었다. 백 여사의 시선이 경도에게 고정된 까닭이었다. 그냥 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흠.’
경도가 시선을 가다듬었다.
백 여사와 아들들은 자세와 마음을 가다듬었다. 가풍을 알 것 같았다. 가진 만큼 가진 집안이지만 교만한 눈빛이 아니었다. 나이 어리고 관상가에 불과한 경도를 함부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 백 여사 역시 시름이 있었다. 남편이었다. 부부궁에 횡액이 새겨졌으니 남편이 중병이다. 입이 새의 부리처럼 나올 기세를 보이니 독수공방을 예약한 것이다. 즉 남편의 목숨이 경각이라는 뜻이었다.
두 아들은 전도양양이다. 눈빛들이 맑고 기상이 철갑을 두른 듯 씩씩하니 고시생들이다. 둘은 합격한다. 다만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그 두 가지를 섞으니 백 여사의 바람을 알 것 같았다.
“오경도라고 합니다.”
이름을 알리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예.”
“제가 상괘를 내드려도 되겠습니까?”
경도 목소리가 잔잔하게 깔렸다. 백 여사와 아들들은 침묵 속의 미소로 동의를 했다.
“부군의 병환이 촌각을 다투는군요.”
“……!”
첫 상괘에서부터 기선제압이 되었다. 백 여사의 남편은 병원에 있었다. 지난봄부터 몸이 다운되었다. 보약을 먹고 온천을 다녀도 컨디션이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백 여사가 천 거사를 찾아왔다.
“남편 몸에 큰 병이 들었습니다.”
그 상괘를 받아 든 다음 날 대학병원으로 갔다. 췌장암 말기 진단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늦었다기에 독일의 최신 항암 요법까지 받았다. 처음에는 나아지는 듯싶었지만 해가 바뀌자 다시 악화되었다.
“올해를 넘기기 힘들겠습니다.”
주치의의 선언이었다.
이 말은 백 여사와 아들들만 알았다. 천 거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걸 첫 상괘로 내주니 넋을 놓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쩜…….”
백 여사의 감탄이 나왔다.
“아드님들은 공무원 공부를 하고 있죠? 눈빛이 맑고 기상이 높으니 9급, 7급은 아닌 것 같고…… 고시입니까?”
경도의 눈빛이 두 아들을 겨누었다.
“아이들이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백 여사가 답했다. 그녀를 바라보던 경도가 정곡을 찌르는 상괘를 내주었다.
“부군이 떠나기 전에 급제 소식을 전하고 싶은 거지요?”
“맙소사.”
백 여사가 소스라쳤다. 두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제 마음을 꿰뚫어버리시는군요?”
백 여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가 오늘 온 목적이었다. 경도의 상괘처럼 그녀는 부동산 부자였다. 강남에 중간 규모의 건물이 두 개 있었고 강북에도 상가 빌딩이 셋이었다. 지방 곳곳의 토지와 임야가 수백만 평이었으니 돈은 남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어린 시절은 고달팠다. 밥을 굶지는 않았지만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부동산에 손을 대면서 승승장구를 했다. 돈은 벌었지만 내세울 만한 집안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부부의 꿈은 쌍둥이의 성공이었다.
올인을 했다.
다른 집처럼 돈으로 때운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과외 교사를 붙이면 공부가 끝날 때까지 거실에서 책을 읽었다. 맹모삼천지교의 흉내라도 낸 것이다.
늦은 밤, 학원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것도 남편이 맡았다. 운전기사가 있지만 부모가 할 노릇은 제대로 한 사람들이었다. 천성이 성실하고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대로 자라주었다. 고등학교 내내 상위권을 달렸고 인서울에서도 초상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처음에는 법학대학원을 생각했지만 이내 행정고시로 돌렸다. 그 와중에 남편에게 비보가 날아온 것이다.
“부군의 목숨은…….”
경도의 시선이 세 모자를 겨누었다.
“주치의 말로는…….”
쉬잇.
한쪽으로 물러앉은 천 거사가 백 여사의 입을 막았다.
경도의 시선은 고요했다. 너무 고요해서 주변의 잡소리마저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그걸 보는 천 거사는 머리가 아찔했다. 스승 이카이가 떠올랐다. 무념무상의 경지가 아니면 저런 눈빛이 나올 수 없었다. 그야말로 인간의 운명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관상안이었다.
현대의학.
굉장하다. 그러나 외형뿐이다. 실제로 한 사람의 운명 안으로 들어가면 의학이 할 수 있는 것은 보조의 위치에 불과했다.
그러나 저런 눈빛이라면 한 인간의 목숨이 꺼지는 시분초까지도 짚어낼 수 있었다. 즉, 여기서는 경도가 운명의 관장자인 것이다.
경도의 눈은 흐트러짐도 없이 바빴다. 백 여사의 부부궁과 유년운기부위를 읽고 두 아들에게 넘어가 아버지를 뜻하는 이마의 일각을 읽고 있다. 그 시선이 눈썹으로 옮겨간다. 푸르게 맺힌 기색의 농담을 가늠하는 것이다.
잠시 끊겼던 시선이 백 여사에게 한 번 더 이어졌다. 이번 시선은 조금 달랐다. 그 차이가 천 거사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고 말았다.
‘맙소사.’
천 거사의 눈빛이 지향도 없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본 것이 유년운기부위였다면 재확인에 들어간 것은 일본식의 월할과 일할, 그리고 유년운 리딩법이었다. 저 젊은 나이에 한중일의 유년운 리딩법을 다 마스터하고 있는 것이다.
“행정고시 발표일이 언제입니까?”
경도가 두 아들에게 물었다.
“보통 9월입니다.”
“하아.”
대답을 들은 경도가 깊은 탄식을 쏟았다.
“오 박사님…….”
묻는 백 여사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경도가 일어섰다.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밖으로 나온 경도가 하늘을 보았다. 어두운 하늘에서 별똥별 두 개가 스러진다.
두 별은 약속이 있었을까? 그러나 두 별은 손을 잡지 못한다. 찰나의 차이가 두 별에게 영원한 거리를 만든 것이다.
백 여사 남편의 운명도 그랬다. 남편의 운명은 길어야 8월 말이었다. 그러나 행정고시 합격자 발표는 9월.
두 희망은 같은 날에 만날 수가 없었다.
백 여사의 희망을 이루는 길은 남편의 명을 늘이는 길이었다. 행정고시를 앞당길 수는 없는 것이다. 8월로 예정된 남편의 목숨…….
후웁.
숨을 고른다.
길이 있기는 했다.
경도가 안으로 들어섰다. 모든 이들의 이목이 다시, 경도에게 쏠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