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묘하고 또 현묘한-2> (89/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89화

24. 현묘하고 또 현묘한-2

“편작과 화타의 의술로도 고칠 수 없는 고질입니다.”

경도의 상괘가 나왔다.

천 거사는 무표정으로 귀를 세우고 있었다. 나름 관상의 일가를 이룬 사람이었다. 그러니 표정 관리가 되는 것이다.

“위태로운 적색 가운에 흑색과 자색의 찰색이 그렇습니다. 거기에 까마귀 깃털 색까지.”

“…….”

“입꼬리의 구각이 거사님 체념에 쐐기를 박았겠지요?”

“…….”

“여기까지는 다 맞습니다. 그러나.”

경도의 반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꿈틀, 천 거사의 눈자위도 이제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까마귀 깃털 색이 흩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

“보십시오. 적색과 흑색, 자색 사이에 아련하게 비쳐 나오는 청색과 황색……. 이는 곤란이 반으로 준다는 신호이니 편작은 몰라도 소문난 명의 정도라면 사모님 질병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청색과 황색?”

“거사님 시력이 좋지 않아 안에 맺힌 찰색을 읽을 수 없다면 손바닥을 보시죠. 거기는 청색 신호가 좀 더 또렷합니다. 이 또한 흉액이 절반으로 준다는 천기가 아니겠습니까?”

경도가 보살을 바라보았다. 잠시 숨을 고른 천 거사가 그녀에게 걸었다.

“이걸 쓰시죠. 특별한 것이라 상과 찰색 보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경도가 내민 건 두나에게 선물로 받은 돋보기였다. 그걸 들이대고 노려보니 약한 시력에도 검푸른 느낌이 감지되었다. 그 부분에 손을 얹는다. 천 거사 식의 확인이었다.

“……!”

천 거사 이마에 아찔한 한기가 스쳐 갔다.

“가능하면 얼굴의 찰색도 같이 보시죠. 까마귀 깃털이 흩어지는지 아닌지…….”

경도의 말을 따라 천 거사 손이 움직인다. 이제는 그 손이 떨고 있다.

“……?”

천 거사가 경련은 그 강도가 더 강해졌다. 과연 불길한 색들이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흑색은 조금 더 상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경도의 추가 주문이 들어왔다. 천 거사가 돋보기를 다시 들이댔다.

‘어억.’

천 거사 입안으로 엷은 신음이 삼켜졌다. 까무잡잡한 기색 안에 흰 찰색이 감지된 것이다.

이것은 직관이다. 일반적인 수련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흰색의 조짐. 흑색 찰색 안에 백색이 깃든다는 건 희망이었다. 액운을 막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제가 보건대 사모님의 병은 거사님이 잡은 날이 길일이었습니다. 당연히 그걸 알고 잡으셨겠지요. 그러나 아직은 가능성이 남았으니 내일 아니면 모레라도 수술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일 아니면 모레…….”

천 거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수술이 통할 수 있는 길일의 마지막이었다. 그조차 꿰고 있는 경도였다.

“하지만 하필이면 담당 의사가 미국 연수를 떠나게 되어서…….”

“그분이 아니면 안 되는 수술입니까?”

“그렇다고 하네.”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런데 왜 액운 타파의 기색이 남은 겁니까?”

경도의 물음은 준엄했다. 이제는 관상 대가들의 설전이었다.

관상에 엿보이는 희망의 조짐들. 만약 그 의사만이 희망이었다면 이 조짐도 사라지는 게 옳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으니 다른 대안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병원이 어디입니까?”

“서울의 A병원이네.”

“그 방향이 아닙니다.”

경도가 잘라 말했다.

“아니라고?”

천 거사가 경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사님은 처음 맺힌 적색 찰색에 홀린 겁니다. 그 찰색은 강렬했으니 미혹되면 북쪽으로 가는 게 옳았겠지요. 그러나 흑색 안에 희망이 깃든 것이니 흑색 방위를 따르는 게 옳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길이 관상의 길이지 죽이는 길이 아니지 않습니까? 남쪽으로 가야 합니다. 사모님이 목형상이니 아무래도 남쪽입니다.”

“남쪽?”

천 거사가 보살을 바라보았다.

“그럼 옥 선생님?”

이름 하나를 떠올린 보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 양반은 중국에 가셨지 않나?”

“맞아요. 두어 달 더 있어야 오는 것으로 아는데…….”

“연락해 보시죠.”

경도가 쐐기 포를 날렸다.

“잠깐만…….”

천 거사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한의원의 번호를 누르지만 받지 않았다. 천 거사가 망연히 고개를 젓는다. 보살의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한 번으로 포기하는 겁니까?”

“역시 중국에…….”

“다시 해보세요.”

경도의 주문이 추상 같으니 천 거사가 재발신을 눌렀다.

신호는 무심하다. 너무 무심해 거실을 울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한숨처럼 늘어지던 신호음이 벼락처럼 멈춰버렸다.

-여보세요.

응답 음이 나온 것이다.

“어, 계시네?”

집중하던 천 거사가 화들짝 놀랐다. 그가 통화하는 동안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밖으로 나오니 땀이 흥건했다. 경도도 미친 듯이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들어오시게.”

잠시 후에 천 거사의 목소리가 나왔다.

“자네 말이 맞았네. 남쪽에 방도가 있었어. 옥 선생이라고 중환자만 돌보는 한의사신데 중국 일정이 일부 연기된 것이 있어 이틀 전에 들어왔다고 하시네. 내일 오후에 진료를 해주신다고 하네.”

“잘되었군요.”

“결과도 읽었는가?”

“입술 구각이 푸르면 가망성이 없지요. 하지만 이마 모서리인 변지가 밝으면 어떨까요?”

“아.”

경도의 힌트에 천 거사가 무너졌다. 바로 보살에게 돋보기를 들이댔다. 그 자리에서 돋보기를 놓치고 만다.

변지였다.

구각은 푸르지만 변지에 서광이 깃들었다. 이렇게 되면 구각에 맺힌 푸른 살성을 밀어낼 수 있는 것이다.

“허헛, 이거야 원…….”

자리로 돌아온 천 거사가 무릎을 쳤다. 아직 새파란 경도의 나이. 그런데 이런 경지를 이루었으니 차마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가서 내 수련함을 가져오시게.”

탄식만 쏟아내던 천 거사의 입이 묵직하게 열렸다. 보살이 일어나 서재로 걸었다.

잠시 후에 그녀가 작은 상자를 들고 나왔다. 천 거사가 여니 맨 위에 숯으로 그려놓은 그림 한 장이 보였다.

“아.”

이번에는 경도가 휘청 흔들렸다. 싸목 할아버지가 거기 있었다. 그 그림은 할아버지가 화로의 재 위에 그리던 것과 같았다. 지문을 보듯 선명하고 명쾌한 건 경도의 관상 DNA가 할아버지에게서 이식된 까닭이었다.

혼을 다해 주고 간 관상 축복. 그걸 모르면 인간이 아니었다.

“무슨 상인가?”

“최고의 길상과 최악의 흉상?”

“알아보는군? 황순감이 그린 관상의 극치라네.”

천 거사가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그림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극귀상인가 싶으면 극흉상으로 보이고 극빈상인가 하면 극부상으로 보이는 그 그림…….

“마무리는 이거였지.”

다음으로 꺼낸 것은 주먹만 한 종이었다. 천 거사가 흔들자 소리가 났다.

댕대엥대애앵.

소리가 구른다. 차마 맑고 윤택한 소리가 차츰 높아진다. 관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소리다. 실제로 극귀상의 마지막은 눈이 아니라 목소리이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관상에 관한 목소리가 봉인된 상태였기에 실물로 제시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것…….”

천 거사가 바닥의 물건을 더 꺼내놓았다. 흰 천을 벗기자…….

‘윽.’

경도가 움찔 흔들렸다. 두 개의 천 안에서 나온 건 해골바가지의 앞면이었다. 하나는 남자의 것이오, 또 하나는 여자의 것이었다.

해골바가지.

100년도 넘은 세월의 손길이 잠들었다. 이건 또 무슨 이유인가?

“황순감을 만난 이후에 대학 해부학교실에 가서 이걸 구했네. 눈의 장애도 그때 만들었고.”

<만들다.>

그 단어가 채찍처럼 경도의 의식을 후려쳤다. 사고나 선천이 아니라 의도된 자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거사님은…… 조선의 전설적인 관상가를 닮기 위해?”

묻는 경도의 목소리가 떨렸다.

“맞았네. 자네 말대로 나는 일본 사람이야. 자네 나이대까지 교토에서 자랐지. 천애 고아였네. 거지로 헤매다 청수사의 이카이 스님 눈에 띄어 절에서 심부름을 하며 관상을 배웠네. 그 스님이 바로 일본 관상의 전설로 불리는 미즈노 남보쿠 님 제자의 한 분이셨네.”

“……!”

경도 뇌리에 폭발이 인다.

미즈노 남보쿠.

그 상법인 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통인 줄은 몰랐던 경도였다.

“청수사에 있으면서 한국 손님들 시중을 많이 들었지. 그러다 보니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네. 관상에 익숙해진 어느 날 스님 초대로 온 한국 거물 기업가의 관상을 봐주고 거액의 사례를 받았네. 우쭐하던 차에 거지꼴의 후배 에이사이가 들어왔네. 이 친구가 거의 천재였지.”

천재.

천 거사의 시선이 추억을 더듬는다.

“그 비범함을 알아본 스승이 에이사이를 토굴로 보냈네. 스승이 아끼는 관상 계보 다섯 권을 안겨준 채. 토굴 수련 반년 만에 나온 에이사이는 스승을 넘어서는 관상 실력자가 되었네. 스승의 관심은 자연 그 친구에게 쏠렸고 나는 찬밥 신세가 되었지.”

“…….”

“그 마음 짐작이 가시는가?”

“압니다.”

경도가 잘라 말했다. 그 경험은 관상이 아니라 공무원이었다. 모두의 눈길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의 애달픔이 관상의 세계라고 다를 리 없었다.

“선배라는 자존심에 금이 가 골탕을 먹이려다 들키고 말았지. 스승이 내린 108가지 관상 그리기 과제에 먹물을 들이부었거든. 그런데 이 친구, 그걸 들고 나와 불에 태우더니 밤을 새워 다시 그리더라고. 스님에게 발설조차 하지 않은 채 말이야.”

“…….”

“나는 그게 더 불편했네. 차라리 스님에게 고해 혼이라도 났으면 속이 편했을 텐데…….”

“이해가 됩니다.”

“그 후로는 에이사이와 같이 못 있겠더라고. 마침 한국 거물 기업가가 방한 초대를 하길래 청수사를 떠나 한국에 들어와 눌러앉았지. 관상의 대가로 좋은 대우를 받았음은 물론이고.”

천 거사의 회상은 계속 이어졌다.

* * *

한국에 입성한 그는 전성을 누렸다. 거물 기업가가 소개한 기업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 것이다.

내친김에 한국인으로 귀화를 했다. 에이사이가 있는 한 교토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관상을 보러 온 미모의 아가씨를 후려 결혼도 했다. 물론 경도가 봐준 관상처럼 오래가지는 못했다.

한국 생활이 안정되자 한국의 관상 대가들을 찾아 나섰다. 그동안 알게 된 두어 명 유명한 관상가들의 실력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진짜 관상 대가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부산항에서 시작된 그의 탐색은 강원도 화천을 거처 K시의 천겹산에서 끝났다.

화천까지는 그저 그랬다. 여수와 삼척, 공주와 천안 등지에서 괜찮은 관상가를 만났지만 그들은 천기에 겨우 발을 들여놓는 정도였다. 나머지는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수준에 불과했다.

<외눈의 조선 관상 대가>

스승에게 들었던 조선의 관상 줄기는 태백을 넘기 전에 사라진 모양이었다.

-한국 땅에는 천기를 읽는 관상의 맥이 끊겼다.

화천 장터에 산다는 강원도 관상의 전설을 만난 후에 마음속으로 선언을 했다.

그의 상법 역시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찰색이 그의 득도를 막았다. 형상에는 강하되 색에는 약했으니 반쪽 관상가에 불과했다.

‘헛수고를 했군.’

그와 겨룬 것은 자살 시도자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명궁과 인당의 흉살에 매달렸고 천 거사는 삼양삼음을 앞세웠다.

천 거사의 압승이었으니 그가 지목한 건 전과자일 뿐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내리 잠을 잤다. 3년 가까운 여정이 이렇게 끝나니 허망함이 컸다. 동시에 자만심의 배가 태백산맥처럼 불러왔다.

‘한국 관상 별것 아니군.’

그러다 꿈을 꾸었다.

관상의 섬이었다. 흰색 도포를 휘날리는 관상 신들 중에는 스승과 미즈노 남보쿠, 심지어는 한국의 외눈 관상 대가도 있었다.

그들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로 앞에 앉은 사람이었다. 아련한 자태의 그가 잿더미 위에 상을 그렸다. 역대의 관상 대가들이 그를 향해 경배했다.

천 거사가 다가서자 관상 대가들은 잿더미가 되어 흩어졌다. 화로 앞의 인물도 보이지 않았다.

화로에 남은 건 지도였다. K시의 천겹산이었다. 그 지도를 보는 눈에 불덩이 같은 뜨거움이 느껴졌다.

“억.”

꿈에서 깨어났다. 신기한 꿈이었다.

‘현몽이다.’

서울에서 내려 바로 K시 천겹산으로 향했다. 닷새를 물어물어 인근을 뒤졌지만 관상 대가의 흔적은 없었다.

그렇게 돌아서다 만난 게 황순감이었다.

작은 계곡이 보이는 낡은 평상이었다. 커다란 복숭아나무 아래서 재를 만지고 있었다. 꿈속의 재가 생각나 다가갔다. 그는 작대기로 뭔가를 그렸다. 그러나 작대기가 멈추면 사라지니 천 거사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거 말 좀 물읍시다.”

혹시나 해서 말을 붙였다.

“이 근방에 혹시 관상 잘 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황순감이 퀭한 시선을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손은 재 위에다 상을 그려대고 있었다.

“있어요, 없어요?”

오랜 여정으로 피로에 찌든 천 거사였기에 말투는 친절하지 않았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겠지.”

“장난합니까?”

“세상일이 그런 것 아니겠소? 알면서도 모르겠고 모르면서도 알겠고……. 바람이나 물이라면 모를까 사람이 어찌 다 알겠소.”

“모르는 모양이군.”

“…….”

“괜한 걸음이었어. 하긴 스승님의 과장이었는지도 모르지. 이 손바닥만 한 땅에 무슨 관상 대가가 있겠어? 겨우 관상으로 사람 후리는 인간들뿐인 것을.”

“이 나라 사람이 아니시군?”

“그래요. 일본에서 났습니다.”

“댁네가 용하시오?”

“아저씨가 관상을 알 리 없지만 저 아래 부산부터 저 위의 화천까지 방귀 좀 뀐다는 한국 관상가들 잘근잘근 밟아주고 오는 길입니다.”

“그럼 내 상은 어떻소?”

“이봐요. 내가 아무나 상 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한테 관상을 보려면 기본이 100만 원이에요.”

100만 원…….

천 거사가 회상하는 그 당시에는 거액이었다.

“야박하군. 얼굴보다 마음이라는 말도 있는 것 같던데…….”

그 말이 천 거사의 심기를 툭 하고 건드렸다. 이 인간이 심상불여관상이라는 말을 주워들었나 싶어 황순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순간 천 거사의 시선이 정지되어 버렸다. 황순감의 상은 평범했다. 그러나 너무 평범했으니 상법의 어느 기준에도 넣을 수 없었다. 물 같고 바람 같아 읽어낼 수가 없는 상이었다.

“못 보겠소?”

되묻는 목소리가 천둥처럼 느껴졌다. 제풀에 놀란 천 거사가 한 걸음 물러섰다.

황순감은 입술 끝 구각을 밀어 올려 귀격의 상을 보이나 싶어 평상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누런 종이를 펼치더니 검은 숯으로 슥슥 선을 그었다. 그런 다음 그걸 엎어놓고는 휘적휘적 도로로 나가 마을버스에 올랐다.

그때까지 그는 관상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뭐 하자는 거야?’

혼자 남은 천 거사가 종이를 뒤집었다. 그걸 본 순간, 천 거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셔버렸다.

황순감의 얼굴과 달리 단순한 그림 안에는 관상의 궁극이 동시에 들어 있었다. 최고의 길상과 최악의 흉상……. 그걸 종이 한 장으로 표현한다는 건?

예지몽 속의 관상 대가?

“어억.”

비명도 다 지르지 못하고 마을버스를 향해 뛰었다.

다시 만나지 못했다. 천 거사가 알아낸 건 이름이 황순감이라는 것뿐이었다. 인근 사람들이 아는 황순감의 전부였다. 산에 사는 건지 거처도 모른다. 관상을 보는 건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천 거사는 알았다. 관상의 도를 이루지 않고서야 그런 상을 그려낼 수가 없었다. 최고의 길상과 최악의 흉상이 한 얼굴에 든 그림…….

그날 이후 한 달여 간 인근을 뒤졌다. 천겹산도 열 번 이상 올랐지만 끝내 다시 볼 수 없었다.

자택으로 돌아온 천 거사는 그림을 볼 때마다 절망했다.

-황순감.

그는 환상이 아니었다. 환상이라면 이 그림이 남을 리 없었다. 단 한 장의 그림으로 관상의 오묘한 이치를 다 꿰뚫어버린 신의 경지…….

-조선 땅에는 외눈의 관상 대가 계보가 있다.

-관상을 더 잘 보기 위해 그 선지자는 스스로 한쪽 눈을 버렸다.

스승 이카이의 경구가 머릿속에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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