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열일 한 번 해보려고요-6> (87/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87화

23. 열일 한 번 해보려고요-6

“아오, X발…….”

강력한 충격에도 박쌍태는 쓰러지지 않았다. 침 하나가 빗나간 것이다.

“X방새들.”

악을 쓰며 계 경위에게로 돌진한다.

빠작.

다시 한번 테이저건이 발사되었다. 그제야 박쌍태가 무릎을 꿇었다.

“우리 오 주임 말이 다 맞았어요. 수희가 말했어요. 오늘 아침에도 그리고 그제 낮에도…….”

민지가 소리쳤다. 민지 옆의 수희가 어깨를 떨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미란다 법칙 알려드려야지? 아니면 불법 체포였다고 법원이고 인권위에 죄다 제보하실 테니까.”

계 경위가 박쌍태 앞으로 다가섰다.

“박쌍태 씨, 당신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진술거부권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수갑을 거부할 거부권은 없네요.”

계 경위가 경도를 돌아보았다. 경도가 그 신호를 전하자 민지가 수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철커덩.

수갑은 그제야 채워졌다.

그래도 아버지다. 어린 수희에게 충격을 주지 않으려는 계 경위의 배려였다.

“이, X발 놈들.”

박쌍태가 몸부림을 치지만 때는 늦었다.

소란 속에 박쌍태의 어머니가 돌아왔다. 상황을 본 그녀가 이마를 가슴을 짚으며 무너졌다. 경도가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이 미친놈, 또 수희를 건드린 거야?”

어머니가 울부짖었다.

“아, 씨…….”

박쌍태는 여전히 반성하는 기미가 없었다.

“이 미친놈아, 그러려고 아침부터 나한테 심부름을 시켰구만. 나 없는 사이에 수희를 건드리려고.”

“아, 진짜.”

“이놈아, 네가 인간이냐? 다시는 안 그런다고 맹세했잖아? 네 아버지 이름에 걸고 맹세했잖아?”

“X발, 여기서 아버지가 왜 나와?”

“아이고, 경찰관님, 이놈 제대로 처벌해 주세요. 이놈이 저 어린 수희 건드린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때마다 다시는 안 그런다고 맹세를 하길래 마누라 없는 게 불쌍해서 그냥 넘어갔는데……. 인제 보니 내가 죄인이네요. 이런 걸 낳고 자식새끼라고 믿었으니……. 나도 같이 잡아가세요. 나도 수희한테는 죄인입니다. 진작 내가 신고를 했어야 했는데…….”

“그만해. 그만하라고.”

“닥쳐, 이놈아. 내가 이제 너한테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그냥 못 있겠다. 이 인간 말종 같은 놈아.”

흥분한 어머니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박쌍태를 후려쳤다.

“아, 이 쌍, 이 늙은이가 진짜…….”

테이저건을 맞고도 발악하는 박쌍태.

계 경위가 그 몸통을 밀자 음식물 쓰레기 더미 위로 쓰러져 버렸다.

“아, 옵. 퉤에에.”

그래도 인간이랍시고 더러운 건 안다.

노는 꼴이 가상해 경도가 물을 한 바가지 부어주었다.

그때 다른 서의 형사팀들이 들이닥쳤다.

“뭡니까?”

계 경위가 물었다.

“송파서 황동량 형사입니다. 저 친구가 혹시 박쌍태?”

형사가 신분증을 내밀었다.

“맞습니다만.”

“저 친구가 우리 관할 내의 공범과 함께 미성년자 성폭행을 저질렀습니다. 그 동영상을 전문적으로 돌리던 공범 체포하고 자백을 받아서 왔습니다만.”

“그렇군요. 여기서는 딸을 성폭행하고 흉기를 휘두르다 현장 체포가 되었습니다.”

“딸까지요?”

형사 얼굴이 구겨졌다.

“알았으니 일단 돌아가시죠. 저희 서에서 먼저 수사를 한 후에 공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계 경위가 상황정리를 했다. 지구대에 근무하지만 경대 출신이다. 공사의 구분에 명쾌했으니 형사들도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수희야.”

박쌍태가 연행되자 어머니가 손녀를 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모두가 피해자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 수희였다. 민지와 함께 병원으로 옮겨주었다.

다행히 몸의 상처는 크지 않았다. 심리 상담까지 연결해 주고 센터로 가는 길에 다시 지구대에 들렀다.

“오 주임님.”

보고서 정리를 하던 계 경위가 반색을 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악질범을 검거했네요.”

지구대장이 나와 고마움을 전했다.

“지금 본서에서 조사 중인데 형사들이 혀를 내두르네요. 출소 15일 만에 폭행에 성폭행만 세 건이었답니다. 그중 한 건은 미성년자 노예팅이었다는데 동영상 보니 이건 인간도 아니더군요.”

“그럼 그 딸은요?”

경도가 물었다. 딸의 동영상도 만들었을지 걱정이 된 것이다.

“그래도 자기 딸 것은 찍지 않은 모양입니다. 핸드폰하고 같이 압수한 컴퓨터 하드를 털었는데 나온 거 없고, 여기저기 SNS 가입한 곳에도 딸 관련 저장물은 없었답니다.”

“후우.”

“알고 보니 그 공범이 미성년자 성 착취물 동영상 전문이라더군요. 회원제로 운영하는 방에서 2만 명 가까운 유료 회원이 나왔답니다. 박쌍태가 동영상 조달자 역할이라 서장님도 고무되어 계십니다. 이게 굉장한 놈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쌍태는 어떻게 되나요?”

“딸 성폭행도 중죄지만 이 노예팅 성 착취물도 만만치 않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미성년 관련 동영상만 50개가 넘으니 성폭행 전과하고 경합하면 10년 이상도 가능할 겁니다.”

“그건 그렇고…… 박쌍태 딸 수희 말입니다. 아무래도 아버지를 영원히 격리시켜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도움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오 주임님 덕분에 제가 두 번이나 떴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계 경위의 답은 시원했다.

“그 악질 전과자가 체포되었다고?”

읍장실에 호출된 육 과장 이하 팀장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도와 민지가 보고를 하는 중이었다. 경도 혼자 해도 되지만 민지를 빼놓지 않았다. 자칫하면 경도 혼자 부각되어 민지의 공을 가로채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모두 배 주임님이 침착하게 사건 파악을 해준 덕분입니다.”

경과 속에도 민지부터 부각시켰다.

“아이고, 그놈……. 내가 그럴 줄 알았지.”

고참 팀장이 무릎을 쳤다.

“형은 얼마나 받을 것 같다던가? 설마 집행유예 같은 걸로 나오는 건 아니겠지?”

이 질문은 민원실장 입에서 나왔다.

“최소한 5년에서 10년은 살 것 같다고 합니다.”

“10년…….”

민원실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도하는 것이다. 그들 누구도 10년 후까지 이 자리에 있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진 팀장님, 우리 두 사람 표창 상신하세요.”

보고가 끝나자 육 과장이 새로 온 행정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진 팀장이 명을 받았다.

“오 주임.”

복도로 나오자 엄 팀장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잘했어. 배 주임도.”

“팀장님 덕분입니다.”

경도가 립서비스로 답했다.

“결재받고 내려갔더니 소란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새로 온 우리 권태술이는 하얗게 질려 있고 말이야. 뭐 오 주임이 떴으니 잘할 거라는 생각은 했네만 이런 쾌거라니?”

“그런 의미에서 커피 쏘시는 겁니까?”

“쏘다마다. 당장 체리 커피에 전화하게. 카드는 이미 준비가 되었네.”

엄 팀장이 신용카드를 흔들었다.

“우와아.”

은빛은 행복해 어쩔 줄을 모른다. 커피가 아니라 경도의 쾌거 때문이었다. 이제 또 그 진상에게 얼마나 시달려야 하나 걱정하던 차에 해결책이 나온 것이다.

게다가 친딸을 성폭행한 인간에게 먹인 빅엿이었으니 더욱 통쾌했다.

“언니는 겁 안 났어?”

은빛은 모든 게 궁금했다.

“났지. 하지만 오 주임이 있는 데다 지구대 경찰 아저씨들도 대기 중이니 용기를 낸 거야.”

“아오, 자세히 좀 얘기해 봐.”

“그러니까 그 반지하에 들어서는 순간…….”

민지의 무용담이 계속된다. 은빛은 찰싹 붙어 서서 귀를 기울인다. 인기 드라마보다도 더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태술의 자리만 퀭하니 비어 있다. 그의 몫으로 올라온 커피가 썰렁해 보였다.

“어, 권 주임은 물품 배분 나갔어. 오늘은 생수하고 감자라서 고생 좀 빡세게 할 거야.”

경도를 돌아본 은빛이 말했다.

생수와 감자…….

기증 물품 목록을 보니 여섯 병짜리 생수가 200묶음이고 감자가 50박스였다. 두 품목이 겹치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으니 126가구를 방문해야 한다.

2L짜리 생수는 약 2㎏의 무게다. 여섯 병짜리면 12㎏…… 보통 사람에게는 만만한 무게가 아니었다. 거기에 감자도 박스당 8~10㎏이었다.

‘권태술이는 하얗게 질려 있고 말이야…….’

엄 팀장의 말이 귀 안에서 바글거렸다. 한때는 얄미웠지만 지금은 동료가 되었다. 며칠 안 되지만 개고생에 악질 민원까지 경험했으니 민원실의 고충도 대략 파악했을 일…….

“저 출장 좀 다녀올게요.”

경도가 일어섰다.

“응?”

민지의 무용담이 끝나자 은빛의 고개가 살짝 기울었다. 태술 책상에 놓았던 커피가 사라진 것이다.

‘오 주임이 다 먹었나?’

궁금하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 상담자가 둘이나 왔으니 그들이 우선이었다.

* * *

태술은 언덕을 걷고 있었다. 어깨에는 생수를 매었다. 어깨는 아까부터 아파왔다. 파스를 붙였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잠깐 쉬면서 생수를 바꿔 매었다. 처음에는 그냥 집어 던져 버리고 싶었다. 감사실에서는 꿈도 꾸지 않던 일이었다.

거기서는 자체 물품도 들지 않는다. 기간제와 무기계약직들이 알아서 한다. 사회복무요원들 분위기도 읍면동 센터와 달랐다. 감사실 무서운 걸 아니 고분고분한 것이다.

전출 운동도 많이 했다. 아빠 찬스도 쓰고 친척인 문중회장 찬스도 썼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1년만 참아봐.”

자치행정과장을 역임했던 사무관이 그랬고 인사팀 차석을 했던 팀장도 그랬다. 경도의 말이 귀신처럼 들어맞은 것이다.

때려치울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실 태술의 실력은 공무원 합격선이 아니었다. 모의고사를 보면 매번 60점대에서 헤맸다. 지잡대를 나온 건 문제가 없지만 거기서도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법원검찰직을 보았을 것이다.

9급 공무원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었으니 엄연한 서열이 있다.

<법-일교출-노병우>가 그것이다. 으로 회자되는 대학서열처럼 공무원에도 레벨이 있었다.

일단 일반행정 한번 질러보고 딸리면 고용부나 병무청으로 돌린다. 태술의 목표였다. 그런데 운 좋게도 몇 개 찍은 게 맞아버리는 바람에 덜컥 합격의 영광을 차지한 것이다.

그렇게 7급까지 올라온 마당이었다. 1년을 버텨 인사팀이나 자치행정팀으로 옮겨가면 그만이었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분노가 가라앉았다. 물품도 첫날처럼 무겁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읍면동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감사실의 출근은 매일이 즐거웠다. 하지만 민원실의 출근은 매 순간이 긴장이었다.

그렇다고 출장을 나와도 별수가 없었다. 조금 전의 할아버지가 그랬으니 더러운 속옷 차림으로 벽에 기대 물병 저기다 놔라, 한 통은 까서 냄비에 부어라 하며 가정부처럼 시켜 먹은 것이다.

한숨 한 번 쉬고 요청에 부응했다. 며칠 만에 대략 감을 잡았다. 뭐라고 치받으면 바로 읍장이나 시청에 민원이 들어간다. 욱해봤자 자기만 손해였다.

“여기 사인 좀 해주세요.”

물과 감자를 내려놓고 인수증을 내밀었다.

“아유, 우리는 그런 거 몰라. 그냥 대충해.”

틀니도 없는 할아버지가 손을 저었다. 준비한 인주를 내주고 지장을 눌렀다.

다시 언덕을 내려오자니 땀이 얼굴을 적셨다. 시원한 물이 생각나니 헛웃음이 나왔다. 생수를 배분하면서도 태술이 마실 물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

동네 입구로 내려온 태술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뒷문 쪽에 내려놓았던 생수와 감자 박스가 보이지 않았다.

“뭐야?”

반대편을 살펴보지만 역시 없었다.

“아, 씨…….”

하늘이 노래졌다. 꺼내놓은 건 생수 네 세트와 감자 두 박스였다. 그걸 누군가 집어 간 것이다.

주변에는 20여 채의 집이 있다. 하나하나 수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미치겠네.’

물품 배분 대상자를 확인할 때였다. 옆에서 커피가 불쑥 디밀어졌다.

“네 몫이다. 엄 팀장이 산 거 가져오느라 얼음은 다 녹았을 거야.”

경도였다. 그 이마에 맺힌 땀이 보였다.

“여기 생수하고 감자……?”

“내가 배달했다.”

“……?”

“마셔.”

“…….”

“아까 그 악다구니 민원인은 구속됐어. 알고 보니 자기 딸까지 건드린 인간 말종이더라.”

“…….”

“그래도 감사실 출신이라 강단 있던데? 나는 처음에 그 인간 봤을 때 오금이 다 저렸다.”

“…….”

태술은 말이 없다. 커피도 받아만 들고 마시지 않는다.

“간다.”

그쯤에서 돌아섰다. 커피 배달을 온 것이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생수를 날라준 건 태술의 뒷모습 때문이었다. 허우대만 멀쩡하지 약골로 보였다. 훈련소만 세 번 갔다는 우석처럼 디스크라도 터지면 큰일이었다.

저나 나나 다 미혼 아닌가?

팀 입장으로 봐도 핑계가 있었다. 최근 들어 출산 휴직, 육아 휴직 등이 붐을 이루면서 직원 부족 현상이 만연했다. 그러니 장기 병가라도 들어가면 애로가 크다.

이제는 경도가 팀 차석이니 그런 것도 고려해야 했다.

읍내 네거리에서 신호 때문에 멈췄다. 옆에 태술의 차가 나란히 섰다.

[고맙다.]

문자가 들어왔다. 미운 놈의 문자가 반갑긴 처음이었다.

[맥주나 한잔할까? 용포읍 고참이 쏜다.]

답문이 날아갔다.

[내가 살게. 센터에서는 오경도가 오느님이더라?]

[쳇, 맥주 가지고 안 되겠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신청해 봐라. 다 된다.]

신호가 바뀌자 둘은 사이좋게 네거리를 건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