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086화
23. 열일 한 번 해보려고요-5
“괜찮아?”
소란이 일자 은빛과 엄 팀장까지 돌아왔다.
“괜찮습니다.”
경도가 숨을 고르며 일어섰다. 바로 재확인에 들어간다.
‘억.’
충격으로 한 번 더 비틀거리는 경도였다.
“오 주임…….”
은빛과 민지 눈에 우려의 빛이 깊어졌다.
“저기요.”
숨을 고른 경도가 박쌍태 앞으로 나섰다. 표정은 더없이 비장했다.
“뭐야?”
박쌍태가 눈을 부라렸다.
“제가 이 팀 차석입니다.”
“그래서?”
“권 주임은 일 봐.”
일단 태술부터 빼주었다.
“어이, 가긴 어딜 가? 신청 안 받아?”
“제가 받습니다.”
박쌍태가 흔드는 출소증을 경도가 받아들었다.
“좋아. 높으신 분이 해주겠다는데야…….”
박쌍태가 빈정거렸다.
“잠깐만 기다리시죠.”
태술의 자리에 앉은 규정집을 열었다.
“어이, 예쁜이 공무원, 하늘 같은 민원인들이 왔는데 차 같은 거 한 잔 안 줘? 너희가 우리 때문에 월급 받는 거 아니야?”
박쌍태는 그 사이에도 은빛에게 추파를 날렸다.
“접수 안 할 겁니까?”
경도가 주의를 환기시켰다.
“아, 접수…… 아이고, X발, 돈이 웬수라니까.”
“어머니하고는 단절이시다?”
“그렇다고.”
주민등록에 기재되어 있음에도 간단하게 부정을 해버린다.
“그럼 딸은요? 열네 살이군요?”
“딸은 집에 있지. 미우나 고우나 내 딸이잖아?”
딸을 인정하는 건 지원금 때문이다. 미성년자니 딸의 몫도 지원이 되는 것이다.
“그럼 가시죠.”
경도가 일어섰다.
“어딜?”
“현장 확인해야죠.”
“아, 씨……. 작년에 확인했으면 그만이지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가지고…….”
“형식적이지만 필수 사항입니다. 선수가 왜 그러세요?”
“나 지금 볼일 있는데?”
“그럼 볼일 보시고 집에 가 계세요. 제가 오후에 가겠습니다.”
“오후까지는 필요 없고 한 시간쯤 있다가 오라고.”
“그러죠.”
“우리 형님은?”
“개인정보동의서 써주세요. 금융 계좌 확인하고 별문제 없으면 1주일 후에 입금될 겁니다.”
동행자는 바로 접수를 했다. 그는 확실히 혼자였다. 다만 타 시군구에서 전입 온 지 보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뿐.
“봤죠? 주잖아요? 저 시퀴들 나한테 꼼짝도 못 한다니까요.”
민원실을 나가던 박쌍태가 승전고를 울렸다.
“키햐, 역시 사람은 똑똑하고 볼 일이라니까. 빵에 갔다 와도 돈 주는 줄은 몰랐어.”
“입금 꽂히면 삼겹살 한 판 쏘세요.”
“삼겹살뿐인가? 방석집 가서 코 삐뚤어지게 한번 마셔보자고.”
두 남자는 득의양양하게 사라졌다.
“오 주임…….”
은빛은 여전히 걱정스럽다. 민지도 그랬다.
“몸 안 좋아? 왜 기절한 거야?”
“그냥 한 번 약한 척해봤습니다.”
“진짜야?”
“아무튼 해결책은 찾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무한돌봄으로 연결하게?”
“그것 가지고 되겠어요? 기왕이면 장기 혜택을 주려고요.”
“오 주임의 후원회에서 지원하려는 거야?”
“미쳤어요? 저런 개악질 인간에게.”
경도가 부정했다.
“장기 혜택 준다며?”
“마무리한 다음에 말해줄게요. 배 주임님, 저 좀 도와주실래요?”
경도가 민지와 눈을 맞췄다.
“나?”
“이번 일은 배 주임님이 딱이네요.”
“뭔지는 몰라도 오 주임이 원한다면…….”
민지가 콜을 받았다.
“권 주임, 박쌍태 씨 출소증은 파쇄해 버려. 아마 필요 없게 될 거야.”
태술에게 말을 전하고 밖으로 나왔다.
태술은 아직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경도가 어깨를 건드려 주고서야 숨을 제대로 쉰 것이다.
민원실에 있으면 험한 꼴 많이 본다. 언젠간 겪을 일이었으니 약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경도가 운전하는 차가 지구대 앞에 멈췄다.
“여긴 지구대잖아?”
민지가 물었다.
“경찰 협력이 필요한 일 같아서요.”
“경찰까지?”
민지가 긴장한다. 경도가 차에서 내렸다. 계 경위와의 사전 상의가 필요했다.
“성폭행요?”
경도의 설명을 들은 계 경위가 경악을 했다.
“그렇습니다. 박쌍태가 어떤 상황인지 좀 체크해 주실 수 있습니까?”
“잠깐만요.”
경도의 협력 요청을 받은 계 경위가 일어섰다. 그는 잠시 후에 돌아왔다.
“전자발찌 부착 기간은 만료되었네요. 지난번 수감되기 직전에요.”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오 주임님 관상으로는 분명 성폭행의 상이었다?”
“그렇습니다. 눈과 간문에 맺힌 상이 굉장히 난폭했거든요.”
“혹시 여자가 생긴 건 아닐까요? 교도소에 오래 있었으니 와일드하게 하느라고…….”
“그것과 그것은 다릅니다.”
“그럼?”
“결정적으로 그의 눈꼬리 끝에 푸른빛이 번지고 인중에 살성이 서렸습니다. 나아가 와잠이 붉은빛이니 자식에게 액운이 왔다는 뜻이죠. 문제는 자녀궁에 맺힌 찰색이 난해하다는 건데…….”
잠시 생각하던 경도가 뒷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박쌍태의 성행위가 딸에 대한 성폭행 같아서요.”
“……?”
“……!”
계 경위와 민지가 동시에 소스라쳤다.
“그럼 아까 센터에서 기절한 게?”
민지가 물었다.
“맞습니다. 간문을 읽고 눈꼬리와 와잠, 인중까지 맞춰보니 딱 그렇지 않습니까? 제아무리 흉악한 인간 말종이기로서니 딸이라뇨? 차마 믿기지 않아서…….”
경도가 혀를 내둘렀다. 그 천기는 경도에게도 충격이었다. 속된 말로 그런 관상을 안 본 눈을 사고 싶을 정도였다.
“천륜을 어기는 인간들이 없는 건 아닙니다. 심지어는 딸과 살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몹쓸 짓을 한 인간도 있으니까요. 얼마 전에 일어난 부친 살해 사건도 그런 고백을 들은 딸의 애인이 칼로 찔러 죽인 것 아닙니까?”
“그래서 경위님을 찾아왔습니다. 이건 우리 센터의 힘만으로 해결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요.”
“오 주임님 관상이라면 무시할 수 없지요. 박쌍태는 사실 우리 지구대에서도 골통 진상 기피 인물이니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흉상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기왕 말이 나왔으니 계속해 보시죠. 솔직히 제가 오 주임님 관상 팬이지 않습니까?”
“일단 친구 문제가 있습니다. 눈썹 위의 제우라는 부위에 적색이 들었습니다. 이건 친구의 재앙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의미입니다. 가까운 시간에 어떤 친구에게 문제가 생길 겁니다. 관상 측면에서는 얼굴이 꺼지고 두상이 꺼지니 간악하고 음흉한 데다 표독하죠. 눈 아래 와당이 깊고 눈이 꺼진 데다 눈 주변이 붉고 구각마저 푸르니 이건 뭐 최악입니다.”
“하긴 그 인간이 작년에 주취 소동 벌일 때 우리 직원들 모두가 식겁을 했습니다. 자해에 탈의에 악다구니에……. 양아치도 그런 양아치가 없더군요. 우리 여경 하나는 기절까지 했다니까요.”
“저희도 그렇습니다. 이 인간이 센터에 뜨면 다들 공포에 질려버리죠. 특히 여직원들은 아예 피해버릴 정도입니다.”
“자, 그럼 이제 플랜을 들어볼까요?”
계치훈의 시선이 경도에게 고정되었다.
“준비됐어요?”
박쌍태의 집이 보이는 오동나무 아래에서 경도가 물었다.
“잠깐만.”
민지가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그걸 몇 모금 마시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랬다.
“후우.”
그녀의 심호흡은 길었다.
“됐어. 이제 가.”
민지가 답했다. 얼굴에는 칼 같은 긴장이 드리워졌다.
출장차가 박쌍태의 셋방 앞에 도착했다. 집은 반지하였다.
“배 주임님.”
“응?”
“스마일.”
“…….”
느닷없는 액션에 민지가 풋 하고 웃었다.
“좋아요. 그대로.”
경도가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보라구.”
박쌍태가 반지하의 문을 개방했다. 낡은 주렴이 주렁거렸다.
작은 거실은 나름 깨끗했다. 부조화는 구석의 술병과 개수대 위에 쏟아진 라면 찌꺼기였다. 그러나 그 아래의 음식물 쓰레기통에서는 부패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어머니…….’
경도와 민지의 눈빛이 통한다. 둘은 이런 경우의 베테랑이었다. 긴급 지원이나 기초수급자들의 경우, 요건을 속이는 경우가 있었으니 바로 박쌍태가 그랬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산다. 그걸 속이기 위해 시간을 벌었고 어머니를 잠시 내보냈다.
사람은 없지만 흔적은 남았다. 장식장 위에 개어놓은 옷이 그랬고 살림이 그랬다. 개차반 박쌍태와 어린 딸의 솜씨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잔머리를 굴려 라면을 엎어놓았다. 박쌍태 역시 고수인 것이다.
“됐어?”
안을 다 돌아보기도 전에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따님은요?”
“X파, 언제부터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이렇게 투철해진 거야.”
박쌍태가 작은 방의 문을 열었다.
경도가 민지에게 눈짓을 보냈다. 여기가 중요한 것이다.
딸은 작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모자를 눌러썼다. 담요까지 덮었으니 겨우 눈만 보일 정도였다.
“애가 몸살이 났거든. 그러니까 지원금 빨리 좀 꽂아라, 엉? 아, 돈 썩어나는 대한민국에서 이게 말이나 되는 그림이야?”
박쌍태는 노련하다. 딸의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이죽거리니 어쩔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경도를 몰랐다. 눈은 관상의 5할 내지는 7할. 그 수치는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이름이 뭐야?”
경도가 딸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박수희.”
박쌍태가 대신 대답했다.
“본인에게 확인해야 합니다.”
경도가 질 리 없다.
“야, 말해줘라.”
박쌍태의 허락이 떨어지자 딸이 겨우 고개를 돌렸다.
“수희 맞아요.”
잔뜩 겁을 먹은 목소리와 함께 딸의 눈동자가 경도 시야에 들어왔다. 눈만 보인 게 아니었다. 당연히 명궁과 인당에 간문, 나아가 코와 관골까지 보였다.
‘윽.’
경도가 출렁 흔들렸다. 간문 때문이었다. 어린 딸의 가녀린 꽃잎 같은 간문이 더럽혀져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까지, 박쌍태의 출소 이후에만 적어도 세 번이었다.
그 간문의 기록을 박쌍태와 맞춰본다. 일자와 시간이 일치하니 경도의 긴장은 분노로 변했다.
‘이런 미친 새끼.’
사타구니를 걷어차 주고 싶지만 냉철하게 참아냈다. 관상으로는 형벌을 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많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죠. 의료비 지원해 드릴 테니 지금 가요.”
민지가 나섰다.
“아아, 됐고…… 얘는 이러다 괜찮아져.”
박쌍태가 민지를 막았다.
“얼굴이 안 좋잖아요?”
“내 딸은 내가 잘 알아. 이러다 괜찮아진다니까.”
박쌍태는 완곡하다. 눈알까지 뒤룩거리니 민지도 더는 어쩌지 못했다.
‘어쩐다?’
경도가 생각에 잠겼다. 일단은 딸에게 확인을 해야 했다. 계 경위가 온다고 해도 딸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다. 경찰이라고 해서 딸의 알몸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시 관상을 체크한다. 눈썹 위의 제우다. 친구의 길흉을 보는 곳이다. 적색이 진하게 번졌으니 친구는 이미 재앙의 칼을 맞았다. 그 여파가 박쌍태에게 온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올지는 경도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자, 우리 딸 쉬어야 하니까 그만들 가 보셔.”
박쌍태가 문을 가리켰다.
‘어떡해?’
민지의 눈빛이 오지만 경도도 어쩔 수가 없었다. 자기 구린 데를 알고 실드를 치고 있으니 박쌍태를 떼어놓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기회는 경도의 편이었다. 그때 박쌍태의 핸드폰이 울린 것이다.
“……!”
발신자를 본 박쌍태가 전화를 받았다.
“뭐야?”
눈동자에 바로 실금이 간다. 횡액의 비보였다.
“아, 이 X발, 그걸 그렇게 돌리면 어떡해? 야, 야.”
광분한 박쌍태가 민지와 경도를 밀어내며 거실로 나왔다.
“그래서? 으아, 미치겠네.”
통화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민지에게 눈짓을 보냈다. 민지가 딸의 방으로 들어갔다.
“야, 이 신발 놈아. 이 시국에 그걸 풀어? 이 미친 새끼……. 나 잠수 탈 테니까 알아서 해, 이 개자식아.”
통화를 끝낸 박쌍태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야, 확인 끝났으면 빨리들 꺼져.”
그가 눈을 부라리는 사이에 민지가 딸의 방에서 나왔다. 울먹이는 딸을 부축한 채였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못 하겠어요.”
민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뭐야?”
“당신 딸, 그냥 아픈 게 아니네요. 당신이 성폭행했잖아요?”
“뭐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당신이 인간이에요?”
민지가 대신 항변했다. 그 품에서 딸이 흐느끼고 있었다. 박쌍태가 통화하는 사이에 딸을 설득해 진실을 알아낸 것이다.
은빛이 아니라 민지를 선택한 게 이 때문이었다. 민지는 푸근하다. 내 편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이 순간의 딸은 박쌍태의 공포 앞에서도 민지에게 붙어 있었다.
“아, 이 X발 것들이 진짜…….”
흥분한 박쌍태가 부엌칼을 집어 들었다.
본능적으로 프라이팬을 잡은 경도가 민지와 딸을 막아섰다.
“뭐야? 나하고 해보자고?”
박쌍태가 냉소를 뿜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계 경위와 경찰 둘이 쏟아져 들어왔다.
빠자작.
테이저건이 불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