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085화
23. 열일 한 번 해보려고요-4
“괜찮을까?”
은빛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안 괜찮죠.”
경도가 당연한 듯 답했다.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도와달라고 안 하잖아요?”
은빛이 엄 팀장을 돌아본다.
바로 그때였다. 지원을 부탁받은 우석이 인상을 찡그리며 민원실로 돌아왔다.
“오 주임님, 저 물품 배분 지원 못 하겠어요.”
“왜?”
“저분이 저한테 얌마, 점마 욕을 하면서 시켜만 먹잖아요? 자기는 손도 하나 까닥 안 하고 전화질만 해대면서…….”
“어머, 그렇다니까.”
은빛이 정색을 했다. 뒤를 이어 태술이 들어왔다.
“야, 너 이리 와봐.”
우석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린다. 우석은 못 본 척 민원응대석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야, 공익. 너 내 말 안 들려?”
태술이 다가가 눈을 부라렸다.
“오 주임…….”
민지와 은빛이 경도를 향해 울상을 짓는다.
태술은 읍면동의 생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감사실에서만 구르다 첫 이동을 한 까닭이었다. 그 쓰디쓴 체험의 시작이었다.
“저 공익 아니고 사회복무요원이거든요. 그리고 우리 호칭은 야, 너, 인마가 아니라 누구누구 씨입니다.”
우석은 절대 꿀리지 않았다. 바야흐로 복무 말년이었다. 경도에게 고분고분한 것은 경도가 잘 해주기 때문이었다.
읍장이나 과장이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컨트롤할 수 없는 게 말년 복무요원들이었다. 그러니까 우석에게 새로 전입 온 태술의 개싸가지 표 지시는 먹힐 리가 없었다.
“어쭈, 이 자식 봐라? 당장 못 일어나?”
“못 일어납니다.”
“이 자식이 정말…….”
우석을 잡아채려는 손을 경도가 말렸다.
“말리지 마. 이놈이 사람 우습게 보잖아?”
태술이 핏대를 올렸다.
“내가 볼 때는 네가 문제인데?”
“뭐야?”
경도의 말에 태술이 발끈했다.
“우석 씨 말이 맞아. 야, 너, 인마, 이런 건 안 돼. 그리고 그렇게 강압적인 태도도…….”
“오경도.”
“예전에 나도규 일 생각나냐? 호프집에서 네가 전한 일장 훈계.”
“나도규?”
“과 사회복무요원에게 이 새끼 저 새끼 했다가 그 친구가 인권위에 제소해서 제대로 깨진 거 말이야. 네 입으로 조심하라고 말하지 않았냐?”
“……!”
태술 눈동자에 파란이 스쳐 갔다. 인간은 내로남불이다. 태술 역시 그랬으니 자신의 과오는 보이지 않은 것이다.
“우석 씨, 녹음했지?”
경도가 우석을 바라보았다.
“예…….”
우석이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녹음?”
태술이 격하게 반응했다.
“한 번 들려드려라.”
“…….”
“괜찮아. 어차피 인권위에 제소해도 목적은 권 주임의 사과잖아? 다이렉트로 해결하면 간단하고 좋지.”
경도가 거듭 말하자 우석이 핸드폰의 녹음 파일을 열었다.
[못 해?]
[이 새끼가 공익 주제에?]
[까라면 까, 인마.]
[너 이리 와. 이리 못 와?]
[이 자식 봐라? 당장 못 일어나?]
“거기까지.”
경도가 손을 들자 우석이 파일을 정지시켰다.
“뭐야? 그걸 다 녹음했어? 이 새끼가 그런데…….”
태술이 발끈할 때 상담 중이던 어르신이 책상을 내려치며 일어섰다.
“어이, 거기 당신 말이야.”
일은 점점 커진다. 태술이 노려보니 어르신의 공격이 이어졌다.
“뭐야? 그 눈빛은? 넌 위아래도 없어? 당신 공무원이야? 그런데 왜 공무원증 안 찼어?”
“……!”
“여기 책임자 누구야? 여기가 민원인을 위한 공간이지 공무원들 고함지르는 곳이야? 살벌해서 어디 살겠어?”
“죄, 죄송합니다.”
엄 팀장이 재빨리 출동을 한다. 문제가 커지는 건 막아야 했다.
“거기, 당신 이름 뭐야?”
어르신이 태술을 향해 기세를 올린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저 직원이 전입 온 지 첫날이라서 서툴러서 그럽니다.”
“서툴면 물어서 배워야지. 타산지석도 몰라?”
“아, 뭐 해? 사과드리지 않고.”
엄 팀장이 태술의 등을 밀었다.
“…….”
“이 친구가.”
“죄송합니다.”
마지못해 한마디가 나온다. 태술도 민원 무서운 건 알고 있었다.
“조심해. 내가 다음에 와서 볼 거야.”
어르신은 불호령을 내리고 센터를 떠났다.
“우리 우석 씨에게도. 그나마 자네가 처음이라 지원을 붙여준 거야. 그럼 고마운 줄 알아야지 그렇게 막말을 하면 되나? 감사실에서 대체 뭘 배운 거야?”
엄 팀장이 밀어붙인다. 상황 이용에는 노련한 사람이었으니 기세를 타는 것이다.
“미안…… 하다.”
건성이나마 사과가 나오긴 했다.
“됐습니다.”
하지만 우석이 씹어버렸다. 말년 복무요원의 자존심은 감사실 출신 전입 7급이 눈 가리고 아옹할 정도로 만만하지 않았다.
“우석 씨.”
경도가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갈게요. 아까 저 주임님이 등을 미는 바람에 중심이 무너져서 디스크 도졌어요.”
“…….”
일은 제대로 꼬였다. 시간상 첫 동선에 들어 있는 ‘리’의 배분을 시작해야 했다. 그 부작용은 폭탄 전화로 나타났다.
“지원 물품 올 시간인데 왜 안 와요? 나 나가야 하는데?”
“아, 씨……. 병원 갈 시간인데 오는 거요, 마는 거요?”
몇 통은 태술에게 넘겨주었다. 수급자들의 항의에 태술의 혈압은 극한까지 올라갔다.
읍면동 민원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모니터 보면서 하품이나 한다고 한다. 그건 등초본이나 서류 떼어주는 일부의 경우다. 그러나 사회복지팀은 늘 전쟁이었다.
직무위반 전리품이나 챙기러 다니던 태술이 알 리 없는 일이었다.
“아, 뭐 해? 빨리 나가보지 않고?”
엄 팀장이 태술을 닦달했다. 맞복팀으로 온 이상 엄 팀장의 갈굼을 피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엄 팀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전과가 있었다. 감사실에 있을 때나 무서웠지 수하로 온 이상 신규 전입자에 불과한 태술이었다.
“아흐.”
태술이 머리를 긁으며 나갔다. 창고 앞에 도착하니 한숨만 나온다. 노가다 택배기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도와줘?”
따라 나온 경도가 물었다.
태술은 대꾸도 않고 물품을 실었다. 집에서도 하지 않던 ‘노가다’였다.
“뭐, 싫음 관두고.”
경도가 돌아섰다. 어차피 끝난 업무 분장이었다. 태술 스스로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경도도 그랬고 은빛도 그랬다.
그래도 담요나 선풍기 같은 것은 약과다. 늦가을의 김장김치만큼 곤란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도와줘.”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태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은 현실의 동물인 것이다.
“이장님들, 부녀회장님들 연락처다. 여기서는 이거 없으면 일하기 힘들거든? 개취 같은 건 당분간 내려놓고 눈치 챙겨라. 그분들이 도와주면 쉽게 끝날 거야.”
경도가 넘겨준 건 이장단과 부녀회장단 전화번호였다. 태술이 받아 드니 벌떼처럼 달려들던 부녀회장들이 떠오른다.
이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니…….
‘으윽.’
좌절감만 끝 모르게 깊어갔다.
그날 저녁 현 주임 송별을 겸해 태술의 환영회를 열었다.
7시가 넘어서 돌아온 태술은 파김치였다. 수급자 물품 배급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짜증을 내는 사람도 많았다. 그 비위도 다 맞춰줘야 한다.
회식은 대충 끝났다. 2차 좋아하는 엄 팀장이었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태술과 어울리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다음 날, 태술의 옷차림이 바뀌었다. 단 한 번도 양복을 벗지 않던 감사실 엘리트였지만 물품 배분을 하려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아침에 슬쩍 보니 파스까지 붙였다.
엘리트의 굴욕이다.
그럼에도 이장단과 부녀회장에게는 전화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있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그랬다. 손을 내밀면 도와줄 준비를 했지만 태술의 오기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업무는 오기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품 배분에도 내공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분실 전화들이 몰아닥쳤다. 알고 보니 문 앞에 두고 온 물건이 많았다. 사전에 약속이 되었다면 상관없다.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된다.
물품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장애 때문에 직접 전달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물어내야지, 뭐.”
난감해하는 태술에게 은빛이 말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물품 배분은 사전에 통보가 나간다. 모월 모시에 어떤 물품을 드리겠다고 통지하는 것이다.
별것 아닌 물건들은 수령자의 양해로 넘어가도 된다. 그러나 수령할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면 어떻게든 전달을 해야 했다.
그러나 기탁 물품에는 여유가 없었다. 자칫하면 공무원들이 기탁 물품 꿀꺽했다는 소리가 나기 때문이었으니 자기 돈으로라도 물어내야 하는 것이다.
“…….”
태술의 이마에 황당함이 스쳐 갔다. 그 황당이 태술의 불운에 대한 암시였다. 밑반찬 배분을 앞두고 들이닥친 민원인 때문이었다.
“오 주임.”
그를 본 은빛이 몸을 사렸다. 민원실로 들어온 사람은 낯이 익었다. 그러나 전혀 반갑지 않은 인간이었다.
“저 사람?”
“오 주임 없을 때 인사랍시고 왔었어. 나중에 온다더니 진짜 또 왔네.”
은빛은 벌써 공포에 젖어 있었다.
“이어, 안녕들 하시오?”
거드름에 느끼 만렙으로 무장한 인간이 다가왔다. 혼자도 아니었다. 헐렁하게 걸쳐 입은 민소매 티 사이로 험악한 문신이 드러났다.
“언냐, 나 또 왔어.”
은빛 앞에서는 추파를 잊지 않는다.
“선배는 잠깐 비키세요.”
경도가 은빛을 챙겼다. 은빛을 보면 성추행에 가까운 희롱도 서슴지 않는 인간이었다.
“어이, 섹시 언냐, 긴급 지원 접수받아야지 어딜 가?”
“저기 남자분이 담당이거든요.”
은빛에게 농을 건네는 박쌍태의 시선을 태술에게 돌려주었다.
“남자? 난 여자가 좋은데…….”
민원인이 태술을 바라보았다.
“못 보던 친구네? 아무튼 접수하자고.”
그는 아무 의자나 멋대로 당겨 앉았다.
‘어쩌지?’
민지가 경도를 향해 울상을 지었다. 돌아보니 엄 팀장도 자리에 없었다. 읍장실에 결재를 들어간 것이다.
민원인의 이름은 박쌍태였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폭행에 성폭행, 존속상해까지 전과가 20개는 되었다. 전자발찌 소문도 있었지만 부착 기간이 만료된 것으로 나왔다.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컴백이다. 보나 마나 교도소에서 출감한 것이다.
“여기 출소증.”
아니나 다를까? 출소증부터 내밀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그는 이 제도를 줄줄이 읊고 다닐 정도였다. 이번에는 곁다리도 붙었다.
“형님.”
박쌍태가 돌아보니 60대로 보이는 남자도 출소증을 꺼내놓는다. 이제 긴급 지원 전도까지 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뭡니까?”
태술이 물었다.
“어이, 이 친구 뉴비야?”
박쌍태는 민지에게도 추파를 보냈다.
“언제 출소하셨어요?”
“보면 몰라? 공무원이 서류부터 확인해야지.”
민지가 묻자 박쌍태가 출소증을 날려주었다.
민지가 보니 보름 전 출소였다. 60대 남자의 것도 같은 날이었다.
“긴급복지지원법 보고 서류 확인해서 하자 없으면 접수해 드려.”
민지가 태술에게 가이드라인을 주었다.
긴급 지원법 제2조의 위기 사유…….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안에는 전과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도 긴급 지원법의 보호를 받는다. 구금 기간이 1개월 이상이거나 교정시설에서 출소한 지 6개월 이내의 대상자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미성년이거나 65세 이상, 혹은 장애인과 생활하는 등의 옵션 조항이 있었다.
태술이 확인에 들어간다. 그사이에도 박쌍태는 태술의 일거수일투족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가족이 있으시잖아요? 어머니와 딸 하나…….”
태술이 말했다. 주민등록상에서 확인이 된 것이다.
“단절, 단절 몰라?”
박쌍태가 기다렸다는 듯이 책상을 치며 코치를 한다.
“어머니가 63세시네요. 65세 이상이 아니니 곤란합니다. 규정에 맞지 않아요.”
태술이 출소증을 반환했다.
쾅.
경도는 잠시 후의 미래를 먼저 알았다. 의자를 발로 차거나 쓰레기통을 엎는다. 그도 아니면 벽에 이마를 찧으며 자해를 한다.
“아, X발.”
경도의 상상은 빗나갔다. 이번에는 겉옷을 벗어 패대기를 친 것이다.
저만치 민원팀 직원들의 시선도 일제히 쏠려 있다. 불똥은 그들에게 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7급의 두 번째 과제.’
경도의 의지가 발동했다. 한동안 보이지 않기에 잊어버린 인간이었다. 그러나 다시 컴백한다면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악성 민원이었다.
이 인간은 인간 말종이자 극혐의 극치였으니 뜨기만 하면 센터가 공포에 떠는 까닭이었다.
“…….”
태술의 안면근육이 격하게 경련을 했다. 러닝셔츠 사이로 드러난 흉터와 문신 때문이었다. 자해도 밥 먹듯 하는 인간이었으니 센터에서도 그런 경력이 있었다.
“어이, 공무원님. 억울하게 빵 살고 나온 것도 억울한데 X같은 태클 걸 거야? 나 긴급복지지원법 제2조의 위기 사유에 명기된 일곱 가지 규정 중에서 그밖에 복지부장관이 정한 고시 5항 대상자야. 어머니가 있지만 단절, 해당 서류는 출소 증명서.”
박쌍태가 눈알을 부라리며 위협을 했다.
험악한 대시에 태술이 하얗게 질려버린다. 간악하고 음흉한 데다가 표독하기까지 한 인상이다. 짧은 공포의 순간에 경도의 관상안이 박쌍태를 더듬는다.
삼정, 사독, 오악, 육요, 12궁에 찰색까지…….
관상아, 말해다오. 이 공포유발자에 대한 해법…….
‘윽.’
필사적으로 상을 짚어가던 경도가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천인공노할 관상이 나온 것이다.
“오 주임.”
민지가 소리쳤다. 우석이 달려오고 민원 주임도 달려왔다.
오경도, 대체 무엇을 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