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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 한 번 해보려고요-2> (83/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83화

23. 열일 한 번 해보려고요-2

“국장님.”

긴급 상황이었다. 이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일인가?”

“저 지금 시청 앞입니다.”

“나 보려고 온 건가?”

“어혁배 씨 때문에 왔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혁배? 시위 그만둔 것 같던데?”

“그랬으면 좋으련만 오늘은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오늘 대형사고를 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말해보게. 나도 지금 아파트 주차장이야.”

“죄송하지만…….”

긴급 통화를 끝낸 경도가 겨우 숨을 돌렸다. 그때까지도 어혁배의 시선은 시장의 주차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후우.’

겨우 숨을 돌리고 어혁배에게 다가섰다. 그가 경도를 노려보았다. 경도는 두 말도 없이 어혁배 옆에 나란히 섰다.

“뭐야?”

그가 물었다.

“아무것도요.”

“…….”

어혁배가 시선을 거두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시장의 주차 자리뿐이었다.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어, 오경도?”

출근하던 마지웅이 경도를 발견했다. 그냥 가라는 손짓으로 보냈다. 조유란과 나도규, 민현아 등도 아는 체를 해왔지만 경도가 손짓으로 만류했다.

출근 시간이 지났다. 시장 차는 오지 않았다.

“오늘 시장님은 늦으십니다.”

긴 침묵 끝에 경도가 입을 열었다. 어혁배의 매운 눈길이 날아왔다.

“어머님 제사가 며칠 안 남으셨던데…….”

경도의 혼잣말이 계속되었다. 어혁배가 꿈틀 반응을 보였다.

“사장님 관상 보니까 아버님도 비슷한 날에 돌아가셨네요. 사흘 차이인가요?”

“……?”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니 어혁배의 시선이 경도를 겨누었다. 따가운 눈빛 속에서도 경도는 담담했다.

“사장님이 스물두 살 때였군요? 이마의 한가운데의 사공에 시름이 남았습니다.”

“뭐야?”

그제야 어혁배의 목소리가 나왔다.

“어머니 모시고 고단하게 사셨네요? 스물여섯에 결혼해 아이를 둘 낳았어요. 아니군요, 셋이었을 겁니다. 한 아이는 사산으로 보이거든요.”

“……?”

“그러나 아내도 자식도, 한결같이 지키지 못했죠. 결국은 어머니마저…….”

“너 뭐야?”

어혁배 목소리가 확 높아졌다.

빙고.

경도가 내심 쾌재를 불렀다. 관심을 돌리는 데는 일단 성공이었다.

“용포읍 직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

“제가 관상을 좀 보거든요. 오늘이 사장님 인생에 아주 중요한 날 같아서 관상 좀 봐드리고 있는 겁니다.”

“뭐야?”

발끈하는 그를 향해 경도도 몸을 돌렸다. 이제는 둘이 함께 정면이었다.

“그러나 그건 사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운명이었거든요.”

“운명?”

“잘 크던 아이들, 한 아이는 질병으로 죽고 한 아이는 사고로 죽었죠? 사모님과 함께요.”

“……?”

경도가 날린 상괘에 어혁배가 주춤거렸다.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벌써 오래된 비극들. 어머니 외에는 귀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곰곰 씹어보니 귀신이 곡할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아이 하나가 사산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의 제사가 어머니와 사흘 차이라는 것 또한 타인이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관상?”

“예.”

“닥쳐. 네가 무슨 귀신이라도 돼? 지금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야?”

어혁배가 눈을 부라렸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종종 시장의 주차 자리로 향했다.

“수작 아닙니다. 사장님의 관상…… 제가 제대로 봐드리면 복채는 4만 원만 내십시오.”

“4만 원?”

“지금 지갑 속에 가진 게 그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

어혁배가 격하게 반응했다. 경도는 모른 척 여세를 몰아갔다.

“지금까지는 사장님의 운이 나빴습니다. 관상에도 나오네요. 천장이 청색이니 눈보라 속에서 개고생하는 고난이죠. 눈덩이에 점이 찍혔으니 어머니 재산 못 지키는 건 당연하고 눈가 어미에도 그 색이 남았으니 누군가의 꼬임에 넘어간 겁니다. 그렇게 기색이 흩어지니 재물 항아리에 금이 갑니다. 물은 결국 저절로 흘러나가는 거죠.”

“……?”

“노복궁까지 흉이 졌으니 아랫사람들 때문에 손실이 늘고 고난은 고난을 낳는 법이라 여기저기 적색이 피어오릅니다. 적색은 소송을 뜻하니 아뿔싸, 송사까지 걸리셨네요.”

“…….”

“하지만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청색의 오싹함 속에 황색이 드리워지니 근심의 세월도 바닥입니다. 삼정에 윤기가 비치니 송사에 승산 있습니다. 재래시장은 사장님 집에서 서쪽이라 원래 맞지 않았고 동쪽이나 남쪽으로 가면 운이 풀릴 겁니다. 다만 법령이 좁고 귀가 위로 뻗었으니 작은 가게에서 혼자 하는 일을 하셔야 성공하게 됩니다.”

“이봐.”

“다행히 입을 다무는 형입니다. 정신력과 체력이 강하시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자식을 둘 상인데 자식을 잃었으니 양자를 들이세요. 노년이 되면 반드시 그 양자의 덕을 입습니다. 다만 이마가 좁거나 요철이 있는 사람, 눈이 돌출되거나 눈썹이 굵고 산란한 사람, 코가 날카로운 사람은 피하셔야 합니다.”

“……?”

“물론 그전에 선행 조건이 있습니다.”

경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혁배의 경계심이 무뎌진 틈이었다.

“지금 품고 있는 살의를 버리셔야 합니다. 살인 후에 죽어버리겠다는 생각도요.”

“……!”

경도의 천기누설은 끝내 어혁배를 흔들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 경악이 스쳐 간 것이다. 그야말로 귀신도 모를 결심이었다. 그걸 경도가 읽어낸 것이다.

“너…….”

“용포읍 지방행정주사보 오경도입니다.”

예를 갖췄다.

“…….”

“지금까지 고단하셨지 않습니까? 그 고단한 삶을 이렇게 마치시렵니까? 이 고난 뒤에 뜰 햇살이 사장님 등 뒤에 와 있는데 욱하는 마음으로 끝내시면…….”

“…….”

“귀 아래 찍힌 점에다 입술이 가지런하고 두꺼운 걸 보니 효자시잖아요. 이렇게 가시면 어머니 얼굴 어떻게 보실 겁니까?”

“…….”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2회 차 인생을 출발하십시오.”

“2회 차?”

“그간의 불운을 내려놓고 동이나 서쪽에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정말…… 보이나? 내가 살인의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거?”

“정확히 말하면 엊그제부터 품은 마음입니다.”

“……?”

어혁배의 눈빛이 한 번 더 무너졌다. 완벽한 팩트 저격이었다.

꿈 때문이었다. 그 꿈에 죽은 아이들과 어머니를 만났다. 복숭아꽃이 흐드러진 마당에서 행복하게 놀았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허망했다. 더는 희망도 없는 삶이었다.

처음 시위를 시작할 때, 담당 부서 팀장이 형식적인 사과에 이어 시위중지 종용을 했었다.

그때는 사실 시장이 와서 사과라도 해주면 시위를 접을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 볼 낯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후로는 팀장조차 오지 않았다.

원망이 시장에게 향했다. 그동안 개무시를 때린 시장을 죽이고 자살할 생각이었다. 그게 정확히 그제였다. 그 준비를 마치고 거사에 나선 어혁배였다.

“사장님.”

“……?”

“오래 고생하셨습니다. 그 시간에 대한 위로가 필요하실 테니 제가 조치를 해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조치?”

“예. 조금만…….”

돌아선 경도가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이 국장의 차가 정문 앞으로 다가와 멈췄다.

이 국장이 차에서 나왔다. 옷깃을 바로 하고 어혁배 앞으로 다가와 예의를 갖췄다.

그 뒤를 이어 김창국 읍장의 차도 도착했다. 그 역시 넥타이를 바로 하고 어혁배 앞으로 다가왔다.

“이쪽은 우리 시 자치행정국장을 맡고 계신 분이고 그 옆은 용포읍 읍장님이십니다.”

경도 설명이 나가자 두 서기관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오랜 시간 심려를 드려 죄송합니다. 사장님 사건은 시 행정의 귀감으로 삼아 앞으로 유사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각별한 행정에 애쓰겠습니다.”

“용포읍장으로서 읍민의 상심에 대해 같이 고민하지 못한 점 마음 깊이 사과를 드립니다.”

두 서기관의 진심 사과가 이어졌다.

“…….”

어혁배는 움직이지 않았다. 흔들리는 건 그의 손뿐이었다.

사과하는 사람이 시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국장이 둘이니 자신에 대한 예우로 나쁘지 않았다. 긴 세월의 1인 시위에 대해 약간의 위로가 되는 것이다.

잔뜩 올라갔던 경도의 긴장도 조금 내려왔다. 어혁배의 명궁에 붙었던 불길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눈자위에 서린 한기도 엷어진다. 입과 준두, 인당과 귀에서 이글거리던 기색도 한풀 꺾이니 자살이 비껴간 것으로 보였다.

“이제 제게 주시죠?”

그제야 경도가 나섰다.

“……?”

“이제 필요 없는 그 물건들 말입니다.”

경도가 손을 내밀었다. 갈비뼈가 무너질 듯 깊은숨을 밀어낸 그가 품에서 두 가지를 꺼내놓았다. 하나는 헝겊으로 돌돌 말아놓은 회칼이었고 또 하나는 농약이었다.

“고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끝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어엉.”

경도가 위로하자 어혁배가 무너졌다. 살인의 기세를 꺾고 통곡을 터뜨린 것이다.

이 국장이 다가섰다. 김 읍장도 그랬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두 서기관이 위로하니 어혁배가 그들 품에서 오래 흐느꼈다. 경도는 울지 않았다. 눈시울이 젖은 건 아직도 그치지 않은 실비 때문이었다.

그가 진정되자 이 국장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누구와 통화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 사장님.”

통화가 끝나자 이 국장이 어혁배를 불렀다.

“예.”

“우리 시장님께서도 사과를 하시겠답니다.”

“예?”

어혁배의 시선이 멋대로 튀었다.

“받아주시겠습니까?”

“시장이…….”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던 시장. 그 시장이 사과를 하겠다니…….

듣고 있던 경도도 흐뭇했다. 시장의 사과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역시 이 국장이었으니 마지막 앙금을 없애주려는 배려였다. 분위기를 제대로 타고 가는 것이다.

“일단 제 방으로 가시죠.”

이 국장이 시청을 가리켰다. 어혁배는 군말 없이 이 국장을 따랐다.

그로부터 30분 후, 경도와 이 국장, 김 읍장에 어혁배까지 모두 시장실에 자리를 함께했다. 시장이 출근을 한 것이다. 시장의 출근은 이 국장이 막아놓고 있었다. 경도의 연락 덕분이었다.

“앞으로 시정에 더욱 신경을 쓰겠습니다.”

시장 역시 어혁배를 제대로 품어주었다. 시장의 위로가 나오자 또 한 번 눈물을 머금는 어혁배였다. 어혁배의 관상은 이제 평안해 보였다. 살광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K시의 고질 민원(?)이 해결되는 순간이자 경도의 7급 첫 개가였다.

“어 사장님.”

밖으로 나오자 경도가 어혁배를 불렀다.

“예?”

“복채는 내셔야죠.”

경도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어혁배는 기꺼이 지갑을 털어주었다. 그 안에 든 돈은 딱 4만 원이었다.

“제 말 잘 기억하시고요. 개업하시면 전화하세요. 이 돈은 그때 축하 화분을 사다 드리겠습니다.”

경도가 4만 원을 흔들 때였다. 어혁배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뭐라고요?”

전화를 받던 어혁배의 얼굴에 햇살이 들어온다. 그 순간 삼정과 함께 턱뼈 옆 지고의 빛도 밝아졌다.

‘소송 해결이다.’

찰색을 읽어낸 경도의 표정이 먼저 밝아졌다.

확인이라도 시키려는 듯 어혁배가 감격에 못 이겨 소리를 질렀다.

“새우 알레르기 소송 건 사람이 소송을 취하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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