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열일 한 번 해보려고요-1> (82/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82화

23. 열일 한 번 해보려고요-1

“특진, 지방행정주사보 오경도.”

시청 대강당에 경도 이름이 울려 퍼졌다. 경도가 단상으로 걸었다. 시장이 임명장을 건네주었다. 공손히 받아 들고 인사를 했다.

짝짝.

창가에 도열한 국장들과 과장 몇 명의 박수가 나왔다. 대강당에는 승진 임용자들이 있었다. 9급에서 8급으로 온 사람도 있고 두 명의 국장 승진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의 대상자는 경도였다.

찰칵찰칵.

조경철과 도내 일간지의 기자들, 시청 유튜브 방송 담당 직원들의 촬영 포커스도 주로 경도였다.

특진.

단어상으로야 새로울 것도 없는 것. 그러나 K시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나온 특진자이기 때문이었다.

‘축하해.’

조경철이 슬쩍 눈짓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경도도 눈짓으로 화답을 했다.

“축하하네.”

임명장 교부가 끝나자 감사실장 조기룡이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과장님도 축하드립니다.”

인사를 하고 복도로 나왔다. 손에는 새하얀 임명장이 들렸다.

이제 7급이다. 8급과의 느낌이 한참 달랐다. 뿌듯함에 더해 책임감 같은 게 느껴졌다.

이 직급이면 부서에 따라 총괄 서무가 될 수 있었다. 팀장 아래의 차석이 되는 것이다.

7급 행정주사보.

이번에는 기가 막히게 빨랐다. 권태술의 과속조차 추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뭘 해야 할까? 8급이 되었을 때처럼 목표가 필요했다.

-용포읍의 복마전 탈출.

지상 최대의 목표는 그것이었다. 이제는 최고 말단도 아니다. 읍 센터에서도 어느 정도 기반을 다졌다. 그렇다면 팀을 넘어 읍 전체의 이미지를 재고하는 전진이 필요했다.

그런 생각으로 차에 오를 때였다.

“K시 공무원들은 똥통에 처박혀라.”

“K시 시장은 자폭하라.”

잠잠하던 확성기가 열일을 하기 시작했다. 1인 시위자들의 휴식이 끝난 모양이었다.

“……!”

그중 한 사람에게 경도의 포커스가 맞춰졌다. 용포읍에서 발생한 행정 불만으로 길고 긴 투쟁(?)의 길을 걸어가는 1인 시위자…….

‘이번에는…….’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시장도, 부시장도 해결하지 못하는 민원사항이다. 용포읍의 복마전에 한 축이 되고 있는 저 민원인…….

‘첫 미션이다.’

경도 마음속에 결심 하나가 들어왔다. 결심이 서자 이 국장실로 발길을 돌렸다.

“오 주임.”

경도가 들어서니 이 국장이 반색을 했다.

“어디 갔었나? 악수라도 하려고 찾아봤더니 안 보이길래 센터로 갔나 했었네.”

“국장님이 바쁘신 것 같아서 주차장까지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바쁘지. 하지만 자네 만날 시간은 문제없네.”

“특진 감사드립니다.”

“명심하게. 그건 특혜가 아니라 자네 실력이야. 동시에 특진자로서 앞으로 우리 시의 모범이 되어달라는 올가미이기도 하고.”

“그럼 제가 올가미를 제대로 쓴 거로군요?”

“그런가?”

“국장님.”

“왜?”

“저분 아십니까?”

창으로 걸어간 경도가 밖의 1인 시위자를 가리켰다.

“토방시장 상인 어혁배 씨?”

“예.”

“벌써 오래 저러고 있지? 그런데 왜?”

“저 민원인분, 용포읍 관내 문제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볼 수 있네만.”

“혹시 우리 센터 행정과장님으로 계실 때 해결 방안을 찾아보셨는지요?”

“검토는 했었네. 하지만 전통시장 재개발 계획 과정과 백지화가 되는 과정에서 입은 손해라 딱히 손을 댈 수가 없었네.”

“만나는 보셨나요?”

“아닐세. 그 업무는 우리 읍 센터 소관도 아니었고 자네가 알다시피 내가 좀 소극적일 때라서…….”

“지금은 다르시지요?”

경도가 이 국장을 돌아보았다.

“자네 설마?”

눈치를 차린 이 국장이 시선을 들었다.

“제가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오 주임.”

“죄송하지만 국장님이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물론 저희 읍장님께도 SOS를 치겠습니다. 저분, 저렇게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자네 마음은 알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네. 저 사람 주장은 재개발계획안이 나왔다가 백지화되고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는 바람에 큰 손해를 봤다는 건데, 계획 집행과정도 아니고 단순히 계획안에 대한 책임까지 시가 질 수는 없네.”

“어쨌든 우리 시의 민원 아닙니까? 해결이 되면 서로가 좋을 일이고요.”

“무슨 묘안이라도 있나?”

“오늘부터 찾아보려고요.”

경도가 웃었다.

“알았네.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마시게.”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온 경도가 어혁배 쪽으로 걸었다. 그가 목청을 고르는 사이를 틈타 생수 한 병을 건넸다.

“……?”

어혁배가 어이없다는 듯 경도를 바라보았다.

“저 용포읍에 근무하는 오경도라고 합니다.”

인사부터 했다.

“용포읍?”

“예.”

“김경동이가 보낸 게 아니고?”

“예.”

“꺼져.”

어혁배가 물병을 쳐버렸다.

정식 첫 대면은 좀 살벌했다. 그렇다고 욕만 먹고 물러난 건 아니었다. 눈도장 찍기와 함께 탐색이 목적이었으니 어혁배의 관상을 좌라락 읽어내린 것이다.

“……!”

경도의 미간이 출렁 흔들렸다. 그의 가정은 풍파가 심했다.

우선 어머니와 아내, 아이들을 잃었다. 눈덩이에 찍힌 점을 보니 상속받은 재산도 지키지 못했다. 그건 눈 어미에 서린 청색 때문이었다. 타인의 술책으로 사업에 실패했으니 이 1인 시위의 원인이 그것이었다. 그때 얼굴의 기색이 제대로 흩어졌다.

기색이 흩어지면 재물을 담는 물그릇에 금이 간 것과 같다. 저절로 흘러나가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소송 찰색도 있었다. 송사는 적색 기운으로 나타난다. 이마가 어두우면 패소가 정해진 것이고 삼정이 밝으면 희망이 있다. 다행히 턱뼈 근처의 지고에 서광이 남았다. 소송에는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관상으로는 자식이 둘, 아니, 셋이었다. 하지만 자식 운도 없는 사람이었으니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현재 혈혈단신이다. 속사정은 잘 모르지만 독만 남을 만한 상황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도와드릴 게 없나 싶어서요.”

리딩을 끝낸 경도가 겸손하게 응대했다.

“너 몇 급이야?”

“8…… 아니, 이제 7급입니다만.”

“7급 따위가 뭘 알아? 적어도 국장은 되어야지.”

그의 고함이 높아진다.

“그래도 위로가 될까 싶어서요. 소송에 가정사에 너무 힘드시죠? 이럴 때는 자제분들이라도 살아 있으면 힘이 될 텐데…….”

“뭐야?”

“어머니 유산을 못 지킨 것은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건 어 사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눈덩이 전택궁에 점이 있으면 그러는 수가 많거든요.”

경도가 자기 눈덩이를 짚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일단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오랜 앙금으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었으니 쉽게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센터로 돌아와 읍장방에 들렀다. 이 국장에게 한 각오를 똑같이 전했다.

“어혁배 사장 민원을 처리해 보겠다?”

“예, 시청 이 국장님도 신경을 써보시겠다고 했습니다.”

“자네 마음은 알겠네만 그게 되겠나?”

“민원 해결이라는 게 모든 것의 원상복구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제가 방안을 찾아보면 도와주시겠습니까?”

“관상으로?”

“가능하면 그것도 동원해 보겠습니다.”

“하긴 그게 묘수가 될지도 모르겠군. 그 민원은 우리 용포읍 관련이기도 하니 해결 낌새만 보이면 나서주겠네. 그 양반이 시위를 포기하든 우리가 해법을 제시하든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일이지. 저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결국 우리 시가 덤터기를 쓸 거거든.”

“감사합니다.”

각오를 전하고 민원실로 내려왔다. 조경철이 떠올랐다. 그는 시청을 제집처럼 출입한다. 어혁배의 1인 시위에 대해서도 기사를 썼다고 들었었다.

“메일로 쏴줄게.”

그는 흔쾌히 협조했다. 기사 전문과 기타 취재 내용이 이메일로 들어왔다.

“……!”

내용은 경도가 파악한 관상과 유사했다. 20여 년 전, 특별한 사정으로 서울에서 K시로 이사 온 어혁배와 어머니.

외곽에서 종업원 넷을 데리고 소내장 국밥집을 했었다. 어머니 솜씨가 좋아 짭짤하게 정착했다. 여기저기 신도로가 건설되던 때 용포읍내 전통시장 구역 재개발 소문이 돌았다. 어머니 장사를 돕던 어혁배는 솔깃했다. 현재의 국밥집 터는 새 도로가 나는 바람에 손님이 줄었다. 앞으로는 더 할 것으로 판단했다.

<전통시장이 재개발 되면 국밥집이 대박날 상권>

지인의 부추김이 결정적이었다. 어머니를 설득해 점포를 매입했다. 재개발 호재로 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은행 융자까지 받았다.

“새 가게로 갈 때 저 가마솥은 꼭 가져가자. 네 아버지가 전라도를 다 뒤져서 사 온 가보야.”

어머니는 희망에 불탔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점포 매입 직후부터 떠돌던 재개발 백지화 소식이 나온 것이다.

울화병이 도진 어머니에게 날벼락이 떨었다. 신장암 진단이 떨어졌다. 워낙 발견이 늦어 반년 만에 어머니가 사망하고 말았다.

시에 항의하자 자기들은 검토 중이었지 결정된 게 아니라고 했다. 시로서도 애로가 있었다. 상인회 측이 단결되지 않았다. 그들은 두세 패로 갈렸다. 원주민 상인들과 투기목적으로 들어온 매입자들, 거기에 인근 토호들까지 나서 자신들의 토지수용을 포함한 활성화 방안을 요구한 것이다.

재선에 성공한 김 시장은 백지화를 선언했다. 재래시장 재개발을 주도한 게 경쟁 당의 후보와 시의원들이라는 것도 한몫을 했다.

대신 580미터 직선거리에 대형마트 허가가 났다. 500미터가 금지구역이었으니 상인들과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그러나 시로서는 합법적인 요건이었으니 신청을 반려할 수 없었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시위에 나섰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하나둘 지치면서 손을 들어버렸다. 재래시장의 상권 폭발은커녕 문 닫는 가게가 속출했다.

점포는 똥값이 되었다. 결국 은행으로 넘어갔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가게도 절대 위기였다. 종업원들이 말썽을 부리니 맛까지 떨어진 것이다. 소송은 그때 당했다. 위기 타개를 위해 신메뉴로 개발한 왕새우해장국이 문제였다.

새우에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가 소고기해장국을 먹다 쓰러졌다. 부모는 해장국에서 새우 냄새가 났다고 책임을 물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에게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소송까지 소문이 나니 손님은 더 줄었다. 재래시장 점포 매입으로 자금이 꼬인 덕분에 몇 달 더 버티지 못했다. 가게가 날아갔다. 어머니가 물려준 가마솥이 고철로 나가는 날 어혁배의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시청 공무원 개자식들.’

원망의 화살이 시청으로 돌아갔다. 1인 시위의 시작이었다. 시청의 무책임한 재개발 추진과 백지화가 어머니의 죽음과 몰락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부녀회장과 이장단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나 지인이 있나 체크하는 것이다. 장미순이 지역 상인회 모임을 통한 교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혁배의 거처를 모른다고 했다. 집안이 풍비박산 나자 차박(車泊)을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히스토리가 나왔으니 재개발 건에 대해 공부를 했다. 그 또한 조경철의 도움을 받았다. 기자의 눈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발단은 김경동 시장과 붙었던 이기창 후보의 공약이었다. 그가 같은 당 소속의 시의원들과 합심해 공약으로 내세웠다. 시장선거에서는 김경동에게 패했지만 시의원 숫자는 과반을 넘었다.

의회가 김경동 시장을 압박하니 사업 타당성 조사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경제 불황으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후 김 시장이 재선되고 의회의 역학 구도가 바뀌자 시장이 백지화를 선언했다. 지역발전의 대안을 대형마트로 돌린 것이다.

어혁배는 지방에서 일어난 정쟁 회오리의 희생자인 셈이었다. 그러나 시의 직접 책임은 아니었으니 누구도 그를 위로하지 않은 것이다.

이튿날은 비가 내렸다. 정부의 추가지원금 신청 일정이라 경도는 꼼짝도 못 했다.

점심시간까지 일을 하고서야 퇴근 직전에 겨우 업무 마감을 할 수 있었다. 이제 케미가 싹튼 마지웅에게 전화해 어혁배 상황을 체크했다. 그는 이 빗속에도 1인 시위를 했다.

다음 날, 출장을 단 경도가 시청에 갔을 때 어혁배는 자리에 없었다. 금요일인 그다음 날도 그랬다.

‘포기하신 건가?’

그 후의 월요일이었다. 한 번 더 체크하기 위해 출근 전에 시청부터 들렀다. 실비가 내리는 그 자리에 어혁배가 보이지 않았다.

‘진짜 포기하신 모양이군.’

그렇게 돌아설 때였다. 어혁배의 낡은 차량이 외곽에 멈추는 게 보였다. 포기라는 기대가 물 건너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반가운 마음에 경도가 다가갔다. 어혁배는 무뚝뚝하게 경도를 지나갔다. 순간, 전에 없던 상 하나가 경도 눈을 스쳐 갔다. 정수리에 맺힌 작고 붉은 융기였다.

‘설마?’

놀란 경도의 시선이 어혁배의 관상을 빠르게 더듬었다. 코의 준두가 붉어졌다. 지난번과 다른 흉액이었다.

경도의 호흡이 빨라진다. 떨리는 마음으로 인중과 명궁을 체크에 들어갔다.

‘맙소사.’

명궁도 붉었다. 머리카락이 서면서 인중 한가운데에 들어앉은 저 맹렬한 한기…….

‘윽.’

마음의 창이라는 눈에서 재확인을 하던 경도 머리에 불벼락이 스쳐 갔다. 저건 살기였다. 눈자위에 푸른 기색이 가득하니 간에서 우러난 살성…….

떨리는 시선이 정수리로 옮겨 간다.

‘아아…….’

경도의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정수리에 맺힌 것 역시 살성이 맞았다. 그러나 살성만으로 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입, 준두, 인당, 귀…….’

차례로 짚어보니 허망한 기색이 들었다. 이건 그의 죽음을 뜻하는 신호였다. 자살까지 마음먹은 것이다.

살인 후의 자살…….

그의 관상에 새겨진 운명이었다.

그렇기에 우산도 우비도 없다. 피켓도 없었다. 극단을 마음먹은 그의 눈은 시장의 주차 자리에 꽂혀서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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