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081화
22. 특진, 해보셨어요?-4
지방공무원법 제39조3은 특별승진에 대한 조항이다.
공무원의 승진에는 여러 조건이 있다.
그걸 규정한 게 제38조 및 제39조의 1항부터 3항까지이다.
그러나 제39조의3에 규정된 하나에 해당하면 그 두 가지를 초월할 수 있다.
1. 청렴하고 투철한 봉사 정신으로 직무에 모든 힘을 다하여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유지하고 깨끗한 공직사회를 구현하는 데에 다른 공무원의 귀감이 되는 사람.
2. 직무수행능력이 탁월하여 행정발전에 큰 공헌을 한 사람.
경도에게 적용된 조항은 이들 두 조항이었으니 K시 촌놈이 SS병원으로 달려가 미국 최고의 의사를 연결해 불치병을 치료한 점, 명혜의 아버지에게 포터를 선물해 생활기반을 마련하게 한 점, 기타 업무실적의 현저한 개선과 성과, 개인 후원회를 통한 효자 손자의 취업과 수어 통역자 지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여기에 기여한 또 하나가 바로 국무총리상이었다.
지난 정부에서는 사실 2계급 특진제도까지 도입되었다.
공무원 조직의 혁신을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그러나 여러 규정이 충돌하자 몇 가지 기준이 마련되었으니 국무총리상 수상 이상의 공무원에 대한 특진규정도 그중의 하나였다.
제39조의3에서 1항과 2항을 충족하면서 수많은 언론보도, 거기에 국무총리상까지 갖춰지니 특별인사위원회에서도 군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오 주임, 축하해.”
첫인사는 민지에게 나왔다.
“언니, 왜 새치기하고 그래? 축하는 내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은빛이 질세라 끼어들었다.
“축하해. 이제 내 사수님이니 내가 잘 보여야겠네?”
은빛이 손을 내밀었다.
“천만에요. 한 번 사수는 영원한 사수죠. 선배님은 내가 공직 떠나는 날까지 내 마음속의 사수입니다.”
“진짜?”
“그럼요.”
대답하는 경도 눈에 습기가 번졌다. 이런 회한은 8급 승진 때 잊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축하한다.”
현 주임도 형식적이나마 인사를 전해왔다.
“부럽다. 특별승진이라니…….”
“하긴 특진할 만하지.”
민원실 직원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흠흠.”
엄 팀장이 다가왔다.
“축하한다.”
엄 팀장이 어깨를 잡아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종종거리더니 막상 인사 뚜껑이 열리니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 어깨너머로 육 과장과 읍장이 보였다.
“축하하네.”
두 사람도 인사발령 파일을 본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답례를 했다. 그 어깨를 육 과장이 토닥여주었다.
“영광이네. 특진 직원을 부하로 둬서.”
“모든 게 과장님 덕분입니다.”
“부녀회장님들이 몰려오시는군. 일단 축하부터 받고…… 이따가 좀 보세. 읍장님도 자네에게 할 말이 있으신 모양이야.”
“알겠습니다.”
육 과장이 돌아서기 무섭게 꽃다발이 안겨졌다.
안선주와 그 일당들이었다.
“축하해요, 오 주임님. 아니, 이제 오 주사보님이신가?”
“서기나 주사보나 다 주임 호칭으로 됩니다.”
경도가 답했다.
“그래도 기분이 있죠. 우리 언제 또 한 번 뭉쳐야겠어요?”
“불러만 주세요.”
“좋아요. 이번에는 선물도 김영란인지 누군지 그 법에 맞춰서 준비하고 관상 부담도 안 드릴 테니까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요.”
안선주와 부녀회장들은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그 뒤로 김재웅 이장이 오고 조경철의 축하 전화가 들어왔다.
K시는 좁다.
지연, 혈연, 학연도 거미줄처럼 얽혀 있으니 실시간 정보가 무색할 정도였다.
여러 직원들의 축하를 받았다. 동기들의 전화도 받았다.
동기 중 꼴찌로 공인된 오경도였다.
권태술과 염정아가 초고속으로 7급을 달 때까지만 해도 관운은 개찌질이로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따라잡고 말았다. 연이은 승진으로 권태술과 염정아의 7급에 어깨를 맞춘 것이다.
-오경도.
대미는 마지웅과 조유란 등의 동기들이었다.
-일단 축하하고…… 나 진짜 이동했다. 팔자에도 없는 감사실 입성이야.
“그래? 축하한다.”
-인사 파일 보고 세 번 기절했다. 한 번은 니 특진이고 또 한 번은 태술이가 너네 읍으로 간 거, 마지막은 내가 감사실로 가게 된 거.
“앞으로 잘 좀 부탁해.”
-부탁할 건 나다. 나중에 만나면 특진 특강 좀 부탁한다.
“강의료만 많이 준다면 문제없지.”
조크로 전화를 끊으니 조유란의 축하 전화가 이어졌다.
-추카추카, 이렇게 올라가다가 니가 시장님 되는 거 아니야?”
유쾌한 농담을 들으며 통화를 끝냈다.
그 후로 정락현과 나도규, 민현아 등의 전화가 이어졌다.
이번에도 빠진 건 태술이었다. 이해하기로 했다.
그 참담한 심정을 아는 건 경도뿐일 테니까.
축하 인사가 뜸해지자 답례 전화에 나섰다.
0순위는 누가 뭐래도 이 국장이었다.
“국장님.”
-어, 오 주임, 축하해.
“국장님…….”
차분하게 전화했건만 갑자기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선물 두 개.
크게 생각지 않았던 말들이었다. 그런데 그 두 선물이 너무 좋았다.
경도조차 상상 못 한 선물 보따리였던 것이다.
“이런 선물인 줄은 몰랐습니다.”
-약소하지?
“무슨 그런 말씀을…….”
-솔직히 3.0 정부 때 2계급 특진 안이 활성화되었다면 그걸 꺼내 들고 싶었네. 좀 아쉽게 되었어.
“국장님, 저 8급 단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특진 심사할 때도 의원 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더군. 그래서 내가 연탄재라는 시를 읊어주었네.
“국장님.”
-공무원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주민과 국민에게 뜨거워야지. 나랏일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궁극은 결국 주민의 만족도와 인간다움을 누리게 하는 행정적 기반 제공일세. 행정이 너무 방대해 주민 수요를 하나하나 따라가지는 못하는 판에 그 빈자리를 자네가 채웠네. 또 어떤 이는 예산 절감처럼 큰 건이 아니라고 폄훼하던데 복지업무가 돈 벌라는 직종인가?
“…….”
-엊그제 특진을 한 것도 아니고 특진 한 번 하는 게 무슨 대수야? 솔직히 내 마음 같아서는 자네를 과 과장으로 전진 배치시켜서 사업 한번 제대로 시켜보고 싶었네.
‘과장…….’
-자네 특진안을 의결하지 않으면 내가 국장직을 내놓겠다고 했네. 그제야 겨우 그 잘난 반발심들을 내려놓더군. 정말이지 존재감 과시를 위한 태클이 아니고 뭔가?
“저 때문에 곤란해지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 주임, 나는 용포읍으로 갈 때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린 사람이었네. 거기서 자네 덕분에 기사회생을 했어. 요즘 흔한 말로 공무원 2회 차야? 겁날 게 뭐가 있겠나?
“…….”
-관상 겸직 허가도 떨어졌으니 이제 마음껏 용포읍 살려보시게나. 그래야 다음에 시로 들어와 나를 도와줄 것 아닌가?
“국장님…….”
-그런데 권태술인가 하는 친구 말이야.
“예…….”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하기는 했네만 이유가 뭔가? 게다가 조 실장 말이 최근에 금품수수를 자진 신고해서 견책처분도 받았다고 하더군.
“그건 옥의 티일 테고…… 권태술이 나름 우리 시의 유망직원 아닙니까? 담금질이 좀 모자란 것 같아서 미리 액땜 좀 하라는 조언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관상이었군?
“예, 죄송합니다.”
-그럼 다 계획이 있다는 얘기로군?
“제 생각은 육 과장님께 건의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게. 애로가 생기면 연락하고.
“예, 국장님.”
이 국장과의 통화는 이렇게 끝냈다.
다음으로 어머니에게 소식을 알렸다.
-아이고야, 이번에는 7급 주사보?
어머니가 넘어갔다.
-아이고야, 저번에 저쪽 언니 말이 니가 군수가 된다더니 이러다 진짜 군수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어머니의 감격을 뒤로하고 형에게도 전화를 했다.
-지금 장난하냐?
형의 첫 마디는 조크였지만 특진 화면 스샷을 보내주자 이내 태조를 바꾸었다.
-야, 내가 정권 친인척들이 법을 바꿔가며 서너 직급씩 올려 먹는 건 봤지만 너처럼 빽 없는 말단이 특진하는 건 처음 봤다.
“왜 이래? 나 빽 있어.”
-누구?
“엄마, 형, 그리고 관상.”
-관상? 오냐, 아무튼 내 동생 만세다.
경규 다음에는 읍장과 육 과장을 찾아 정식 인사를 올렸다.
“오 주임.”
읍장은 과묵한 표정으로 경도를 끌어안았다.
이번 국장단 정리의 사연을 대략 들은 것 같았다.
“고맙네, 그리고 다시 한번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자네에게는 7급도 부족한 거 같군. 업무에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이야기하게나. 힘없는 읍장이지만 있는 동안은 최대한 밀어주겠네.”
육 과장도 지지를 선언해 주었다. 경도가 부탁한 건 단 하나였다.
“권태술을 맞복팀으로?”
“예.”
“괜찮겠나? 감사실 출신이라 민원업무가 서툴러 민원인들하고 트러블이나 만들 수도 있는데…….”
“제 동기니까 제가 잘 돕겠습니다.”
“알겠네.”
육 과장의 수락이 떨어졌다.
태술은 행정총괄과 발령이었으니 배치는 육 과장의 권한이었다.
‘권태술…….’
민원실에 앉아 수급자들과 씨름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경도가 그리던 그림이었다.
이날의 백미는 퇴근 직전에 일어났다.
“어머!”
민원상담을 하던 은빛이 경도를 건드렸다. 경도가 고개를 들었다.
‘아.’
그대로 압도되었다. 민원실에 들어선 한 가족이 있었다.
안계홍 부부와 그 딸 명혜였다.
“선생님.”
명혜가 다가와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승진을 축하합니다.”
배꼽 인사와 함께 뽀뽀까지 부상으로 딸려준다.
“명혜야…….”
아이를 안아 들자 안계홍 부부가 꾸벅 인사를 해왔다.
“축하드립니다.”
안계홍이 말했다.
“이런 건 또 어떻게 알고……?”
“조 지국장님이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전부터 부탁을 해놨거든요. 오 주임님 좋은 일 생기면 꼭 알려주시라고…….”
“…….”
“제가 따로 들릴 일도 있었고…….”
안계홍이 작은 선물과 함께 꼬깃꼬깃한 봉투를 꺼내놓았다.
“이건 뭐죠?”
“마음에 들지 모르지만…… 포터 첫날 수입으로 산 지갑이에요. 전에 보니까 오 주임님 지갑이 낡은 것 같길래…… 그리고 봉투는 저희 첫 주 수입이에요. 주임님 후원회가 있다길래 전해주고 싶었는데…….”
“그것도 알고 계셨어요?”
“그런데…… 저희 같은 게 가면 주임님께 누가 될까 봐…….”
안계홍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게 경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말도 안 돼요. 명혜 아버님이 왜요? 최고로 멋진 손님이 되었을 텐데요.”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안계홍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돌아온 아내가 손수건을 내미니 명혜가 받아 눈물을 닦아주었다.
“지갑은 고맙게 받을게요. 하지만 봉투는 안 주셔도 돼요. 그날 후원회는 잘 끝났고요, 이 돈은 가족을 위해 쓰세요.”
지갑은 받고 봉투는 돌려주었다. 명품도 아니었고 김영란법 같은 거 적용시킬 분위기도 아니었다.
“아닙니다. 저희도 주임님께 뭐든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달 벌이를 다 넣고 싶었는데 그건 너무 무리하는 거 같아서요. 그러니 꼭 받아주세요.”
“받아주세요.”
이제는 명혜까지 나서서 거든다.
“…….”
“주임님.”
“알겠습니다. 그럼 이건 아버님 이름으로 후원회에 넘겨서 값지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봉투 속에 든 돈은 687,400원이었다.
모두 때 묻은 지폐와 동전이었으니 안계홍 부부의 진액이 고스란히 녹아든 흔적이었다.
“명혜는 잠깐.”
아이 손을 끌고 책상으로 갔다. 거기 보관해 두었던 식용 색종이와 사탕을 안겨주었다.
“엄마, 선생님이 사탕 주셨어.”
아이가 달려가 엄마에게 자랑을 한다.
“인사드려야지.”
“고맙습니다. 선생님.”
명혜가 또 한 번 배꼽 인사를 했다.
“명혜야, 여기도 사탕.”
이번에는 은빛이 사탕을 꺼내주었다.
민원인에게 받은 것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명혜는 고개를 저으며 거부해 버렸다.
“어머, 얘가 사람 차별하네?”
은빛이 울상을 짓자…….
“죄송합니다. 엄마가 사탕 먹으면 이빨 썩는다고 많이 먹지 말랬어요.”
명혜가 앙증맞은 변명을 내놓았다.
“얘, 그게 말이 돼? 우리 오 주임 건 받아놓고.”
“이 선생님 건 괜찮아요, 이빨 안 썩어요.”
“뭐야? 그것도 사탕인데?”
“아빠가 이 선생님 것은 사탕이 아니고 사랑이랬어요.”
“……!”
은빛이 입을 다문다. 완벽한 1패였다.
“우앙, 진짜…… 서럽다, 서러워.”
은빛은 패잔병의 모습으로 책상에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