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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진, 해보셨어요?-3> (80/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80화

22. 특진, 해보셨어요?-3

여의도는 인기와 명예의 땅이다.

그 상징은 정치인과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대표한다.

산이 없기 때문이다. 물만 있기 때문이다.

산은 도의 도량이오, 물은 유희의 장소였으니 여의도에서 성공하려면 주목성이 필요했다.

연예인에게는 도화가 그것이고 정치인에게는 신뢰와 리더십이 그것이었다.

그 둘은 곧 덕망이자 인품이었다.

그러나 여의도의 바탕은 물이다.

물은 형태가 없다. 그렇기에 선거 때마다 물의 성격은 변했다.

봄이면 청수가 되고 홍수 때는 황하가 되며 한겨울에는 차디찬 얼음으로 변화무쌍한 형태로 흘러간다.

이는 곧 이슈를 뜻했다.

민주화가 도도할 때는 그것이 기준이 되었고 경제가 곤두박질칠 때는 경제, 부패와 비리가 만연할 때는 청렴이 여의도 입성의 키가 되었다.

그 거대한 기준들 다음이 정치적 대세였다.

지역세가 그렇고 당 간판이 그랬다.

아직도 많은 선거구에서는 인물보다 당이 우선이었으니 기존의 정치세력들은 이 문제를 비판하면서도 정치 전략의 우선으로 꼽아온 까닭이었다.

김경동 시장 역시 그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사실 지난 두 번의 선거전에서 대세의 도움을 보았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당 간판의 득을 본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고려하더라도 역시 관운을 빼놓을 수 없다.

차선을 뽑는 선거라고 해도 주민 선택의 영광에는 관운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런 관록을 얻으려면 일단 준두와 양 관골이 밝아야 한다.

인당이 넓어야 한다. 준두에 황색 윤기를 머금은 상이면 더 좋다.

천창과 지고의 조화가 아름답고 년상에 황금빛 윤기가 돌면 지위는 더욱 높아진다.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문제없다.

심지어는 저 파란 집의 5년 임대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금뱃지를 달겠나?

시장의 질문은 이미 짐작하던 바였다.

경도의 관상에 관심이 있다면 언젠가는 나올 질문이었다.

다만 질문의 격이 하나 높아졌다. 경도가 생각하던 시장의 질문은…….

-3선 할 수 있겠나?

…였었다.

“가능하실 것 같습니다.”

잠시 시장을 바라본 경도가 상괘를 내놓았다. 주저도 망설임도 없었다.

“오호, 그래?”

시장의 입가 구각이 귀를 향해 올라간다.

칭찬을 싫어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러나 이런 상괘에는 반드시 천기 해석의 해설이 붙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격조가 떨어지는 것이다. 

장 앞이지만 경도는 그걸 잊지 않았다.

“시장님은 반전의 상을 가지셨습니다. 보통 고위직의 관상은 높은 이마와 넓은 인당에 귀가 단정하고 눈썹이 수려합니다만 시장님의 이마는 낮은 편이지요.”

경도의 목소리는 잔잔하게 시작해 힘이 더해가고 있었다.

시장의 지위까지 고려해 주는 설명이었으니 시장은 어느새 얌전한 아이처럼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일월각이 열려 있고 이마 측면의 보각이 대들보처럼 보필하니 둥근 형태의 얼굴과 함께 오행을 조화를 이루어 관운 대길을 가져온 상입니다. 현재 준두와 관골의 빛이 밝으니 기세가 죽지 않는 한 꿈을 이루실 것으로 봅니다.”

“그럼 조심할 건 뭔가? 그런 건 없나?”

“관상으로서의 약점은…….”

경도가 잠시 조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이 또한 관상의 격을 높이는 동시에 시장에 대한 배려였다.

“괜찮네. 이 국장도 없으니 말해보게.”

시장이 경도를 안심시켰다.

눈치 빠른 이 국장은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를 비켜주고 없었다.

“친족들…… 특히 형제분들을 조심하시면 무탈할 것으로 봅니다.”

“형제?”

“예.”

“그게 얼굴에 나오는가?”

“시장님의 상에서 딱 한 가지의 약점이 바로 눈썹입니다. 눈썹들이 흩어진 기색이 있고 풍성하지 않으니 형제의 우애에 힘쓰지 않으시면 형제가 낯선 사람과 같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얼굴의 오행 조화가 허무해질 수 있습니다.”

“하긴 우리 형님이 정치에 좀 부정적이긴 하시네.”

시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튼 귀신 같군. 그래, 뭐 다른 건 볼 게 없는가? 구설수라든지 시정의 송사라든지…….”

“외람되게 다른 것 하나를 더 말씀드린다면…….”

“말해보시게.”

“재복궁을 보니 큰 재산 하나가 거래로 나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눈 밑 누당이 누런색이고 턱 옆 지고의 색이 흐리니 오래 기다리셔도 이익을 얻기가 힘듭니다. 제 상괘가 맞다면 이른 시기에 처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고, 진짜 귀신이네. 서울에 가지고 있던 아파트를 내놨는데 이게 오히려 가격이 내려가고 있거든.”

“…….”

“자네 승가리 천 거사 아나?”

“이름은 들었습니다.”

“난 우리 직원이라 대충 관상 좀 보나 했더니 제대로군. 천 거사만 한 분위기는 나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아.”

“부족한 실력을 좋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시장의 목소리가 커지는 사이에 이 국장이 들어왔다.

“좋은 상괘라도 내드렸나?”

이 국장이 모른 척 물어왔다.

“그냥 이것저것 관상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경도가 답했다.

“언론에서 오 주임 관상 이야기가 소개되길래 대체 어느 정도인가 궁금했는데 돗자리 깔아도 될 수준이야. 좋게 보면 이것도 전통문화의 하나니 내가 시장의 자격으로 관상 겸업을 허가하겠네. 다만 물의는 빚지 않도록 조심하게나.”

마침내 시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경도가 일어나 답례를 했다.

“이제 그만 복귀하게나.”

이 국장이 눈짓을 해왔다.

‘후우.’

복도로 나와 숨을 골랐다.

사실 시장의 관상은 표면적인 것만 보았다.

좋은 것은 최대한 살려주고 나쁜 것은 최대한 감춰 말한 게 그것이었다.

그 또한 시장의 관상에서 읽어낸 것이었다.

그의 눈썹은 눈보다 길었으니 얼핏 보면 수려해 보이지만 머리카락 숱이 적은 데다 눈썹이 흩어진 편이었다.

즉 흉금을 터놓을 수 있는 상이 아니니 깊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고맙습니다. 국장님]

이 국장에게 문자를 남기고 차에 올랐다.

시장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마음이 가벼웠다.

경도에게는 기막힌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용포읍으로 돌아오니 주차장 구석에 현 주임이 보였다. 그는 행정팀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오 주임. 이거 가지고 들어가라.”

그가 경도를 불렀다. 화단 위에 음료수 한 통이 보였다.

“새마을금고에서 하나 보내주셨네? 가져가서 마셔.”

그가 음료수를 가리켰다. 그걸 들고 돌아서는데 아뜩한 느낌이 스쳐 갔다.

‘아뿔싸.’

경도가 걸음을 멈췄다.

현 주임의 이마 월각에 뜬 그림자 때문이었다.

“왜?”

현 주임이 물었다.

“아, 아닙니다.”

대충 얼버무리고 돌아섰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 중이니 전하기 곤란한 말이었다.

“현 주임님.”

얼마 후, 현 주임이 자리로 돌아오자 살며시 운을 떼었다.

“뭐?”

“혹시 어머님 말입니다.”

“우리 모친?”

“요즘은 건강 어떠세요?”

“괜찮은데 왜?”

“죄송하지만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말에…… 어머니께 내려가 보시면…….”

“나 이번 일요일 국가고시 감독관 차출이야. 다음 주는 산불대기고.”

“토요일에 다녀오시면 되잖습니까?”

“왜? 또 관상에 안 좋게 나왔어?”

“가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거 말고 내 관상이나 좀 봐라. 6급 승진, 그런 거 좀 전하면 좀 좋냐?”

현 주임의 시선이 화면으로 돌아갔다.

그는 여전히 관상에 대해 무시하는 쪽이었다. 어쩔까 싶을 때 민원실장의 목소리가 센터를 흔들어버렸다.

“인사 떴네, 떴어.”

화면을 검색한 그가 인사이동 파일을 열어놓았다.

“떴어요?”

옆의 직원들이 벌떼처럼 반응을 했다.

그리고 일제히 마우스 광클릭에 돌입했다.

“아유, 송재찬 과장님이 국장으로 올라갔네?”

“박응서 과장님도 승진하셨어.”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엄 팀장 역시 광클릭으로 확인하느라 바빴다.

한 줄 한 줄 읽어낼 때마다 그 눈에는 아쉬움과 허망함이 스쳐 갔다. 과장 자리는 무려 다섯.

동기나 후배들이 보란 듯이 약진했으니 억장이 내려앉지 않을 수 없었다.

‘으윽.’

그의 표정은 무너지고 또 무너져갔다.

“어머, 조기룡 팀장님이 감사담당관 승진이셔.”

민원팀 여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국장의 밀명을 수행하던 조기룡 팀장. 마침내 K시 감사실을 차지한 것이다.

“우리 곽판수 팀장님은 사무관 미역국 먹었네.”

“이아연 주임은 6급 승진했어요. 보직도 받았네요.”

민원실 직원들의 생중계가 계속 이어졌다.

이아연은 복도에서 얼굴을 붉히던 그 직원이었다. 경도의 예지대로 결국 승진 대열에 올랐다.

“어머, 오 주임.”

이번에는 은빛이 자지러지는 소리로 경도를 불렀다.

“이 사람 말이야, 권태술…… 이 인간 오 주임 동기 아니야? 저번에 우리 조지던 그 개재수 감사실 직원?”

“그런데요?”

경도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이 인간이 우리 용포읍 발령이야.”

“어? 진짜?”

현 주임도 반응에 합세했다.

감사실 직원의 용포읍 발령은 역사적인 일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이거 실화야? 이 인간이 우리 센터로 오는 거?”

은빛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보니 우리 센터가 인기 좀 끄는 모양인데요? 감사실 직원이 다 지원하는 걸 보면?”

경도가 너스레를 떨었다.

“혹시 오 주임이?”

은빛의 촉이 경도를 겨누었다.

“내가 뭘요?”

“저번에 이 인간이랑 부녀회장단이랑 대판 붙었었잖아?”

“그때 우리 센터 분위기에 반했나 보죠.”

“그게 말이야 방구야?”

“내가 전화해서 물어볼까요? 혹시 은빛 선배에게 반한 건 아니냐고?”

“죽을래?”

은빛이 주먹을 겨눈다.

“세상일 모르잖아요.”

“됐고, 설마 이 인간, 우리 팀으로 오는 건 아니겠지?”

“모르죠. 선배님 옆에 앉을지도.”

“아까부터 말을 해도…….”

은빛이 발끈할 때 민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주임님 이름도 있는데요? 보건소 지역보건과 발령.”

“아, 자식들…… 겨우 빼주면서 좀 좋은 데로 보내주지 하필이면 보건소야?”

현 주임의 얼굴색이 굳는 게 보였다.

보건소 역시 용포읍 못지않은 한직에 속했다. 적어도 행정직들에게는 그랬다.

그리고…… 7급에 이어 8급 이동까지 체크한 민지와 은빛의 목으로 쓴 물이 넘어가는 게 보였다.

탈출 실패다.

맞복팀에서 나가는 직원은 현동욱 주임 한 사람이었다.

“어머.”

주민등록을 담당하던 여직원이 소스라친 건 그때였다.

“오 주임.”

놀란 그녀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왜요?”

“마지막 장…… 파일 마지막 장…….”

“마지막 장? 뭐가 또 있어요?”

은빛의 손이 마우스를 잡았다.

“어머.”

곧이어 은빛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머머.”

민지도 그랬다.

마지막 장은 특진자 명단이었다. K시에서는 10년 이래 특진이라는 게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9급 전 출입자까지 확인하고 손을 놓았던 직원들, 그들의 손이 일제히 마지막 화면을 열어놓았다.

“……!”

경도의 시선도 그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제목 : 특별 인사위원회 특진 심사

해당자 : 1명

성명 : 오경도

직급 : 지방행정서기

심사내용 : 특진심사

결과 : 지방행정서기 오경도, 지방공무원법 제39조의3항 1과 2에 의거한 우수공무원의 특별승진 규정에 의한 특별승진대상자로 특별인사위원회의 심의 결과 지방행정주사보 특진에 임함.

특진 오경도.

지방행정주사보에 임함

용포읍 행정복지센터 행정총괄과 근무를 명함.

경도 눈에 꽂힌 일련의 단어들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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