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079화
22. 특진, 해보셨어요?-2
“이놈.”
천 거사의 불호령이 거실을 울렸다.
“왜 그러십니까?”
경도가 물었다.
“정체가 무엇이냐? 네 얼굴에서 잡귀들의 만상이 들끓는구나?”
“잡귀가 아니라 신묘한 만상 아닙니까?”
“뭐라고?”
“상을 봤으면 상괘를 주시지요.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수고를 하셨으니 복채는 제가 드리겠습니다.”
경도가 20만 원 봉투를 꺼내놓았다.
“상괘?”
“제 관운은 어떻습니까? 저도 용포읍에서 관록을 먹는 말단 공무원입니다만.”
“용포읍이라고?”
경도 말을 들은 천 거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네가 혹시 그 관상을 본다는?”
“맞을 겁니다. 센터에서 관상 공부를 하는 건 저밖에 없으니까요.”
“……?”
“상괘를 부탁드립니다.”
경도가 다시 말했다.
그 시선은 이미 천 거사의 눈덩이에 맞춰져 있었다.
그의 오관이 미친 듯이 경련하고 있었다. 경련은 손으로 내려갔다.
다른 사람과 달리 그의 눈 역할을 한다는 손이었다.
“네 누구에게서 관상을 배웠느냐?”
“상괘를 달라는데 어째서 관상 히스토리를 묻는 것입니까?”
“네 상에서 잡귀들의 귀물이 느껴지기에 하는 말이다.”
‘귀물?’
경도 눈가에 긴장이 스쳐 갔다.
이 사람, 진심인 것으로 보였다.
표현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싸목 할아버지의 기운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귀물이 무슨 뜻입니까? 그걸 먼저 말해주십시오.”
“네 등신불을 아느냐?”
“산 채로 열반에 드는 것 아닙니까?”
“상법에도 그와 비슷한 전수가 있다. 자신이 이룬 상법을 다른 이에게 전수해 줄 때 목숨으로 전수하는 것.”
“……?”
“네 아버지 이름이 무엇이냐?”
“남의 선친 이름은 왜 묻는 것입니까?”
“관상하던 사람이더냐?”
“아닙니다.”
“그럼 네 설마 황 씨 성을 가진 사람의 제자더냐?”
황-순-감.
싸목 할아버지의 성이 황 씨였다.
“당신……?”
“황순감?”
“……?”
“맙소사, 정녕 그러하구나?”
천 거사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의 이마는 어느새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당신이 황순감 어르신을 아십니까?”
“그자가 열반을 했구나?”
“…….”
“됐다. 당장 물러가거라.”
입술을 문 천 거사가 문을 가리켰다.
“제가 듣기로 당신은 저를 보고 싶어 하셨다던데요?”
“그런 일 없으니 당장 나가라지 않느냐?”
그가 복채를 밀어놓았다.
“복채도 받지 않으시겠다?”
“네 돈은 필요 없다.
“그렇다면 더욱 빚을 갚고 가야겠군요.”
“빚?”
“거사께서 제 관상을 봐주셨지 않습니까? 이제부터는 제가 거사님의 관상을 보겠습니다.”
“닥쳐라. 어서 나가기나 해.”
“거사님은 한국 사람이 아니죠?”
경도의 제1 상괘가 날아갔다.
“……?”
기세를 부리던 천 거사의 입이 반쯤 벌어진 채 정지되었다.
“그 눈도 완전히 안 보이는 건 아니고요. 최소한 한쪽은…….”
“무, 무슨 말이냐?”
“당신의 상은 한국인의 상과 다릅니다. 그러니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이고 당신의 오른쪽 눈에는 간장-심장-폐-위장-비장의 기세가 흐리나마 드러나 있습니다. 시각장애로 눈이 멀었다면 오장의 기세가 비칠 리 없지요.”
“……!”
“더 진행해도 될까요?”
“…….”
“방금 전의 보살과는 부부관계입니다. 재혼이군요. 자식은 둘 있었지만 모두 유명을 달리했고요.”
“…….”
“봉황목에 눈이 길고 어깨가 곧은 데다 코가 우뚝하니 그나마 관상가로 이름을 날리는군요. 하지만 눈의 어미에 점이 박혔으니 이혼상인데 부부가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사모님께 질병이 있을 테지요.”
“이놈.”
천 거사가 관상 책을 집어던졌다. 그걸 받아 내려놓은 경도가 차분하게 마무리에 들어갔다.
“광대뼈.”
경도의 시선이 천 거사를 겨누었다.
“당신 생의 큰 무늬는 광대뼈로 시작해서 광대뼈로 끝나는군요.”
“…….”
“광대뼈가 귀까지 연결되었으니 최고는 아니더라도 한 분야의 마스터가 될 수 있지요. 그래서 관상의 도를 이뤘습니까? 그러나 그 대가는 좀 컸군요. 높은 광대뼈만큼이나 강한 시기심과 가정의 파산…….”
“그만.”
소리치는 천 거사의 치가 떨렸다.
“남은 상괘는 그리 아름답지 않으니 접어두죠. 대신 황순감 어르신과는 어떤 관계인지나 말해주면 고맙겠습니다.”
“네 정녕 그자에게 관상을 배웠더냐?”
“그렇습니다.”
“정녕 죽었더냐?”
“예.”
“허어. 그 인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더니 그림자를 남겨놓았구나.”
“……?”
“알았으니 돌아가거라.”
“거사님.”
“네 말대로 내 처가 병환이 있다. 모레 재수술을 해야 하는데 회복에 1주일은 걸릴 것이니 그걸 마치고 와서 연락하마. 연락처를 두고 가거라.”
천 거사가 메모와 볼펜을 밀어주었다.
경도가 핸드폰 번호를 넘겼다.
생각할수록 기이하다. 진한 궁금증을 남겨두고 거실을 나왔다.
<천 거사>
그는 분명 싸목 할아버지와 관계가 있었다. 그제야 싸목 할아버지의 마지막 산화가 떠올랐다.
-아마도 누군가 이 늙은이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혹 만나게 되거든 관상의 현묘함을 잘 일깨워주거라.
-오래전에 꼭 한 번 상도(相圖)를 그렸던 적이 있거든.
‘천 거사…….’
경도 판단이 맞다면 천 거사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경도 앞에서 그려준 화로 위의 그림들.
그걸 천 거사 앞에서 그렸던 걸까? 그렇다면 그가 싸목 할아버지의 관상을 받을 수도 있었던 걸까?
아니지.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에 의하면 죽기 직전에야 봉인이 풀렸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대체 둘은 무슨 관계란 말인가?
“…….”
돌아오는 내내 경도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엄 팀장은 감히 말을 붙이지 못했다. 그는 밖으로 새어 나오는 천 거사의 불호령을 들었었다.
관상.
천 거사의 관상 수준 또한 굉장히 높았다.
경도가 한 말과 비슷한 상괘로 엄 팀장을 좌절시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관상가들도 그들 나름의 서열이 있는 건가?
온갖 잡생각이 드니 경도의 눈치만 볼 뿐이었다.
“오 주임…….”
센터 주차장에서야 엄 팀장의 입이 열렸다.
“왜요?”
“천 거사가 뭐라던가? 고함이 밖에까지 새어 나오던데?”
“별일 아닙니다.”
“미안하네. 내가 자네는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관상 보는 자네라야 판단을 할까 싶어서…….”
“괜찮습니다. 팀장님 덕분에 잘 간 것 같습니다.”
“잘 갔다고?”
“그분, 언젠가 한번은 뵙고 싶었거든요.”
“그럼 다행이네만…….”
엄 팀장의 한숨은 길고 또 길었다. 그걸 보니 안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팀장님.”
“왜?”
“그렇게 승진하고 싶으세요?”
“자넨 아직 말단이라 잘 모르네. 사무관의 로망…… 자네도 6급이 되면 알 걸세.”
“죽었다 깨어나도 이번 인사에는 안 됩니다. 하지만 다음번 인사에는 도와드리겠습니다.”
“정말인가?”
흐렸던 엄 팀장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대신 이번 인사이동 끝나면 우리 팀을 위해 헌신해 주십시오.”
“헌신?”
“읍면동 최고의 팀으로 거듭나게 말입니다.”
“그러면 관운이 트일까? 아까 그 인간 말로는 아예 날 샌 거 같던데?”
“관상은 변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팀장님이 잿밥에만 관심 갖지 마시고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임하시면 변하게 될 겁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정말이지?”
“그럼요.”
“그렇다면야 내가 한번 제대로 일 해보겠네. 첫 발령받던 신규의 심정으로.”
“고맙습니다.”
“대신 자네도 우리 팀에 있는 거지?”
“그럼요.”
“좋아. 어차피 그 길밖에 없다면 한번 해보자고.”
엄 팀장이 상기되었다.
“그럼 들어가세요. 저는 시청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시청?”
“희망복지과에 전달할 자료가 있어서요.”
이 국장과의 약속이라고 말할 수 없어 대충 둘러댔다.
“알았네. 그럼 다녀오시게.”
엄 팀장이 손을 들어 보였다.
시청으로 가는 동안에도 천 거사의 얼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궁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열흘은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시장은 자폭하라.”
시청 앞의 1인 시위는 여전했다.
오늘도 3명의 1인 시위자들이 각기 다른 민원으로 목청을 돋운다.
안으로 들어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핸드폰을 꺼내 들 때였다.
저쪽 꽃나무 담장 아래에 태술이 보였다.
혼자였다.
하늘을 보며 시름에 잠겨 있다. 모른 척 청사로 향할 때 누군가가 경도를 불렀다.
돌아보니 마지웅이었다.
“출장 왔냐?”
그가 물었다. 훤하게 드러난 그 이마의 천이궁이 기름칠을 한 것처럼 반짝거렸다.
“응, 바빠?”
“맨날 그렇지 뭐. 참, 이번 인사이동 규모가 좀 크던데 이번에는 시청 들어오냐?”
“나?”
“응.”
“미안하지만 용포읍 킵이라니까.”
“무슨 소리야? 요즘 일 잘한다는 소문이 솔솔 들려오던데?”
“내 걱정 말고 너나 좋은 데로 옮겨가면 나 좀 잘 봐줘라.”
“나 옮길 관상이냐?”
“그래.”
“나 설마 읍면동?”
“그런 상이면 내가 아부하겠냐? 좋은 데로 갈 거 같다.”
“진짜지?”
“나중에 보자.”
어깨를 으쓱하는 마지웅을 두고 핸드폰을 걸었다.
“마침 나도 특별인사위원회 회의가 끝났으니 올라오시게.”
이 국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관상 겸업 허가라고 하셨습니까?”
국장실 안에서 경도가 되물었다.
“싫은가?”
“그런 건 아니지만 가능할까요? 전문 강의도 아니고…….”
경도가 답했다.
경도도 겸직에 대해 알아본 바였다.
외부 강의 같은 것은 사전 허가를 얻으면 허용이 되었다.
다만 담당 직무 수행에 지장이 없어야만 했다.
“강의가 아니니 더 좋지 않은가? 자네가 따로 개업할 것도 아니고 업무시간 이후에 해도 되는 일이니까.”
“물론 시장님이 허가해 주시면 시빗거리도 차단되고 좋습니다만.”
“내 말이 그 말일세. 천기에 버금가는 관상을 봐주다 보면 더러 복채를 받게 되지 않는가? 공무원 사회가 다소 편협하다 보니 누군가 문제를 삼는 사람이 생길 걸세. 배가 아파서 말이야.”
“…….”
“시장님께 미리 언질은 해두었네. 그리 마땅찮은 표정은 아니시더군.”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선물을 줄 거라고.”
“그게 이거였군요?”
“이게 다는 아니지만 일단 가보세.”
이 국장이 먼저 일어섰다.
“들어가세요.”
시장실의 여비서가 문을 가리켰다. 이 국장이 앞서고 경도가 뒤를 이었다.
“오경도?”
시장은 검토하던 자료를 든 채 소파로 옮겨왔다.
이 국장과 경도도 뒤를 이어 소파에 앉았다.
“요즘 우리 오경도가 핫하더군?”
시장이 덕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가 보던 자료는 경도에 관한 것들이었다.
기저귀 천사의 보도내용과 포터 선물 내용, 나아가 OK 후원회의 활동 내역으로 노성봉과 백지애에게 후원금을 전달한 기사 등이었다.
“김윤광 씨면 이번에 우리 중앙당에서 특별히 공을 들여 스카우트한 분이라고 하던데 그분이 경영하는 회사에 취업까지?”
시장이 기사를 보며 물었다.
“예…….”
“그분하고 친한가?”
“연락 정도 하는 사이입니다.”
“그분하고도 관상으로 만났나?”
“그분 부친과 인연이 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김병로 변호사님 말인가?”
“제 후원회 고문을 맡고 계십니다.”
“어이쿠, 나도 그 후원회에 가입해야겠군.”
“…….”
“이제 보니 오경도가 나보다 낫군. 다음번에 언제 그분들 만날 기회가 생기면 나도 좀 소개해 주시게.”
“예…….”
“이 국장 말로는 자네가 관상으로 뜻깊은 일을 많이 하니까 외부 관상 활동을 허가해 주자고 하던데 말이야.”
“…….”
“대체 자네 관상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여기 보도로 보면 기가 막힌 것 같은데 나는 아직 경험을 못 해서 말이야.”
“그저 공부를 조금 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 관상 맛 좀 보여주게나. 체험을 해봐야 자네 광고를 하고 다닐 거 아닌가?”
“시장님 앞이라 떨리지만 궁금한 게 있으면 한 번 봐 드리겠습니다.”
경도가 답했다. 관상 겸업 허가에 대한 대가라면 기꺼이 치를 용의가 있었다.
“그럼 말이야, 내가 금배지를 한 번 달겠나 못 달겠나?”
시장이 질문이 나왔다. 3선 성공보다도 저만치 질러가는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