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078화
22. 특진, 해보셨어요?-1
“아, 이놈의 인사는 대체 언제 공개하는 거야?”
복도로 나오자 행정직 선배들이 잡담을 나누는 게 보였다.
“그러게 말이야. 깔라면 빨리 까지.”
“이번에는 시청으로 가야 할 텐데…….”
“힘 좀 썼어?”
“여기저기 찔러는 봤는데 잘 모르겠어.”
“나도 읍장님에게 부탁은 했는데…… 먹힐까?”
“시청 계실 때 말이지. 우리 읍장님 이번에 잘린다는 말도 있더라고.”
“그래?”
“시청에서 밀려난 지 꽤 됐잖아? 게다가 시장님에게도 찍힌 편이고. 읍장님 빽으로는 어려워.”
“어, 오 주임.”
애를 태우던 두 사람이 경도를 돌아보았다.
“우리 어때? 이번에 이동할 거 같아?”
둘 중 한 선배가 물었다.
“혈색 좋네요. 좋은 데 가시면 저 좀 잘 봐주세요.”
간단히 응대하고 계단을 내려왔다.
승진에 목을 매는 사람들에게는 애가 타는 시간이었다.
여기저기 손을 쓰고 다니지만 확답은 나오지 않는다.
공무원의 승진에는 몇 가지 테마가 있다.
첫째는 당연히 시장의 ‘입맛’이다.
시장은 K시의 대통령과 같다. 대통령은 자기 입맛대로 정부조직 관리를 갈아치운다.
정무직과 임명직이 많으니 간단하다.
그러나 지방공무원들은 대개 직업공무원들이다.
임기직도 아니고 정무직도 아니니 인사에 제한이 있다. 그래도 시장은 인사를 돌린다.
4년간 시정을 꾸려가려면 자신의 의중을 따를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청 소속 공무원들은 굉장히 다양하다.
행정직을 필두로 건축직, 토목직, 세무직, 공업직, 농업직, 보건직, 환경직, 임업직, 간호직, 의료기술직, 사회복지직…… 그 직종을 다 알기도 어려울 정도다.
시장은 이 직종을 다 끌어안고 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직종 간의 알력도 고려의 대상이었다.
크게는 행정직과 기술직으로 직원들을 구분한다.
문제는 소수 직렬 기술직들이 많다는 점이다. 같은 기술직이라도 그들의 정서는 달랐다.
지자체의 팀장 이상 자리에는 각 직렬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된다.
예컨대 간부 한 자리에 올 수 있는 직렬을 조례로써 정하는 것인데 조직을 정비할 때마다 자기들 직종을 넣기 위해 피 튀기는 로비가 뒤따랐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기술직을 우대하는 인사를 해야 한다.
이게 바로 ‘직종 안배’ 인사였다. 이때는 행정직이 피를 본다.
그렇게 되면 다음번에는 행정직을 전진 포진시켜 달래준다.
다시 기술직이 불만을 갖는다. 이걸 최소화하면서, 각자가 원하는 자리까지 고려하자면 꼬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자리로 돌아오니 엄 팀장은 시청 라인에 체크를 하고 있었다.
경도의 귀띔은 없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긴 인사란, 뚜껑이 열리는 순간까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러는 발표 직전에 기사회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다.
“에이, 인사를 하려면 빨리하지 말이야.”
엄 팀장도 스트레스가 높아진다. 승진 배수에 들지 못한 것이다.
“우리 팀장님 똥줄 타네.”
자리에 앉자 은빛이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오 주임이 보기에 어때?”
“노 코멘트.”
은빛의 말을 잘라버렸다.
애를 태운다고 없는 승진운이 생길 것은 아니었다. 그때 경도 책상의 전화가 울렸다.
“감사합니다. 용포읍 오경도입니다.”
-날세.
복명이 끝나자 이 국장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 국장님.”
“오후에 시간 좀 되려나?”
“오후에요?”
경도가 되묻자 이 국장의 말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괜찮으면 5시쯤에 조용히 좀 들려주시게.”
통화를 끊고 출장에 나섰다. 요양병원의 독거노인을 방문해야 할 차례였다.
밖으로 나오니 엄 팀장이 보였다. 혼자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쉰다.
“팀장님.”
안 된 마음에 다가섰다.
“출장 가나?”
“같이 가시죠? 바람도 쐴 겸?”
“바람?”
“름다 요양원 아시죠? 가는 길이 드라이브 코스처럼 괜찮습니다.”
경도가 엄 팀장 등을 밀었다.
심란할 때는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얼마를 달리다 마트 앞에 차를 세웠다.
“왜?”
엄 팀장이 물었다.
“할아버지가 토마토주스 좋아하시거든요.”
“…….”
마트로 들어가 주스 세 병을 샀다.
사는 김에 요양보호사들 음료수도 한 박스 집어 들었다.
“어떠세요?”
계곡을 끼고 달리며 경도가 물었다.
“좋네. 음이온도 시원하고.”
창으로 바람이 상큼하게 들어왔다.
한참을 달려 요양원 앞에 도착했다.
할아버지는 누워 있었다.
경도를 보더니 상체를 일으킨다. 주스를 따서 마시게 해드렸다.
“집에 보내줘.”
할아버지가 울상을 지었다.
“집에 가도 아무도 없잖아요?”
“그래도 거기가 좋아.”
할아버지가 경도 손을 잡는다.
독거노인들 문제는 심각했다. 혼자 살다가 다리만 삐어도 생계가 곤란해진다.
치매에 걸리면 말할 것도 없었다.
“원장님이 주는 약 잘 드세요. 건강해지면 집으로 갈 수 있어요.”
할아버지를 안심시키고 밖으로 나왔다.
엄 팀장은 요양원의 작은 정원에 있었다.
“기분 전환 좀 되셨어요?”
돌아가는 길에 경도가 물었다.
“나 참, 그놈의 사무관이 뭔지…….”
엄 팀장 목소리에는 미련이 애잔했다. 어쩌면 인사의 뚜껑이 열리는 날까지 접지 못할 짝사랑이었다.
“어.”
삼거리로 나올 때였다. 저만치 멈추는 차량을 보던 엄 팀장이 차창을 내렸다.
“차 잠깐 세워보게.”
엄 팀장의 요청이 나왔다.
“곽일수.”
차가 멈추자 엄 팀장이 소리쳤다.
“어, 엄 팀장.”
차에서 내린 사람이 돌아보았다. 그는 의회 사무국에서 의전팀을 맡고 있는 곽 팀장이었다.
“여긴 웬일로?”
엄 팀장이 물었다.
“실은…….”
주변을 살펴본 곽 팀장이 뒷말을 속삭였다.
“관상?”
“쉿.”
곽 팀장이 엄 팀장을 조심시켰다.
그제야 알았다.
승가리 삼거리였다. 저만치 천 거사의 ‘천상관상철학관’ 간판이 보였다.
‘천 거사?’
경도의 촉각이 살며시 반응했다. 여러 번 이름을 들으면서 궁금증이 쌓인 사람이었다.
언제 한번 봐야겠다 싶으면서도 딱히 건수가 없다 보니 미뤄두었던 사람…….
“관상이라면 우리 오 주임이 일가견이 있는데?”
엄 팀장이 경도를 가리켰다.
“사람, 직원이 관상 좀 보기로 전문가만 하겠어? 알고 보니 천 거사 단골이 많더라고. 내가 모시던 국장님도 여기서 승진 점괘를 받았다고 하고.”
“그래?”
“엄 팀장도 같이 보지? 자네도 역전의 방법이 있을지 누가 알아?”
곽 팀장이 부추기자 엄 팀장이 경도를 돌아보았다. 경도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어때? 혼자 들어가려니 찜찜하던 참이었는데.”
“그럴까?”
대답을 한 엄 팀장이 경도 팔뚝을 잡아챘다.
그런 다음 경도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재미로 볼 테니까 제대로 보는지 좀 봐줘.’
엄 팀장은 경도 팔을 놓지 않았다.
꼼짝없이 두 사람과 동행하게 되는 경도였다.
천 거사의 관상철학관은 그냥 가정집이었다.
거실에는 만법방위도와 방각혈소, 타신오장과 유년운기부위도가 가득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유년운기부위도가 싸목도감과 아주 달랐다.
싸목도감의 유년운기부위는 얼굴을 상중하로 나눠 나이별 운세를 보는데 이 도감은 이마부터 턱까지 일자로 나이별 운이 새겨진 것이다.
‘미즈노 남보쿠.’
경도는 천 거사의 뿌리를 알았다. 그의 관상 기원은 일본이었다.
드륵.
방 문소리와 함께 천 거사가 등장했다.
보조하는 보살이 옆에 있고 천 거사는 지팡이를 짚었다.
그가 거실 가운데 벽 앞에 놓인 방석 위에 자리를 잡았다.
회색의 승복에 가지런히 빗어 넘겨 묶은 꽁지머리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시각장애인 관상가 천기득.
말로만 듣던 그와 조우하는 경도였다.
“세 사람이군?”
자세를 잡은 그가 고개를 들었다.
눈은 떴지만 지향이 약하다. 소문대로라면 저 눈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경도는 알았다. 그의 눈에 담긴 비밀…….
“두 사람이 관상을 볼 거고, 한 사람은 일행입니다. 거사님.”
보살의 설명이 들어왔다.
“그럼 먼저 예약한 사람이 가까이 오시오.”
천 거사가 손짓하니 곽 팀장이 다가앉았다.
“어디 봅시다.”
물수건으로 손을 닦은 천 거사가 두 손을 들었다.
그런 다음 곽 팀장의 머리를 잡았다.
“힘 빼고 편하게 계시오.”
두 손으로 머리를 더듬어 두상을 파악한다.
그런 다음 머리카락을 체크하고 이마로 향한다.
이마의 폭과 미간, 눈썹과 눈 사이는 손가락으로 기준을 잡는다.
“나랏밥 먹는 분이시군.”
첫 상괘가 나왔다.
“예, 맞습니다.”
탁 팀장 표정이 밝아졌다. 단숨에 직업을 맞춰버리니 기대감이 커진 것이다.
“K시 공무원이시오?”
“예…….”
“그럼 승진이나 인사이동 때문에 오셨겠군?”
“그렇습니다.”
“어디 보자…….”
천 거사의 손길이 그의 이마에서 천이궁과 명궁, 관골 등을 쓰다듬는다.
그러다 작은 주름에서 손이 멈췄다.
“아뿔싸, 승진이 아니라 파직을 걱정하셔야 할 처지입니다.”
“예?”
천 거사의 상괘에 곽 팀장 눈빛이 튀었다.
“여기 맺힌 잔주름이 아직 부드러우니 승진보다 화가 없기를 바라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럼 좌천입니까?”
“잠깐만 기다리시죠.”
천 거사의 손이 다시 천이궁에 머문다.
이번에는 더듬는 게 아니라 정지되었다.
다음으로 콧방울로 옮겨간다. 그런 다음 인중을 따라 턱의 노복궁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더듬었다.
‘역시 일본식…….’
경도 미간이 꿈틀 흔들렸다.
일본 관상의 전설로 불리는 미즈노 남보쿠가 쓰는 유년운기부위 판별법인 것이다.
“주변보다 온기가 차니 관직에 춘풍 불 날은 조금 멀었고…… 그나마 콧방울이 실하니 도와주는 의인이 있어요. 이번에 참고 기다리면 다음번에는 봄바람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천 거사의 손이 곽 팀장 얼굴에서 떨어졌다.
“거사님…….”
“다음.”
천 거사의 호명이 곽 팀장의 미련을 잘라버렸다.
곽 팀장은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엄 팀장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천 거사의 시작은 다르지 않았다.
“이 분도 나랏밥을 먹는 분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저도 K시 공무원입니다.”
“천운이군요.”
“예?”
천 거사가 운을 떼자 엄 팀장이 반색을 했다.
하지만 다음 말에 그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코를 더듬고 내려온 손은 인중과 턱 사이, 즉 엄 팀장의 나이를 뜻하는 곳에 멈춰 있었다.
“공무원이 아니면 목구멍 보전도 하기 힘들었겠습니다. 승진이고 뭐고 다른 생각 말고 공무에 충실하시지요.”
천 거사가 물러나 앉았다.
“끝난 겁니까?”
“더 하다가는 검봉비 콧날에 내 손을 벨 것 같습니다. 설령 거기서 무사하더라도 사막 같은 이마와 가뭄이 든 눈덩이 수렁에, 하관 또한 깎아지른 절벽을 이뤘으니 추락하면 다시 운신하기 어렵습니다.”
“…….”
“다행히 의인이 가까이에 있어요. 윗사람 잘 보필하고 아래 직원들 잘해 주시면 역시 다음 승진에 볕이 들 수 있겠습니다.”
“내 얼굴이 그렇게 못 나가는 관상이란 말입니까?”
엄 팀장의 성깔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상이야 만인만상이니 중요치 않습니다. 잘 난 것은 키우고 모자란 것은 심성으로 보완하면 불운의 반은 막을 수 있으니까요.”
“그럼 이 친구 직업도 좀 봐주시오. 관상 복채는 내가 치르리다.”
오기가 발동한 엄 팀장, 느닷없이 경도를 끌어다 앉혀놓았다.
“관상쟁이야 사람 만나는 복으로 사는 것이니 사양하지 않으리다.”
천 거사가 경도를 더듬었다. 하지만 그 손이 경도 머리에 닿는 순간…….
“억.”
고압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경련하더니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거사님.”
입구 쪽에 앉아 있던 보살이 달려왔다.
“……?”
놀라기는 경도도 마찬가지였다. 천 거사의 손이 닿을 때 뼈를 치는 전류를 느낀 것이다.
“당신……?”
목소리가 떨린다. 겨우 숨을 고른 그가 천둥 같은 언어를 쏟아놓았다.
“은진 보살, 여기 이 사람만 두고 모두 나가계시도록 하게.”
“예?”
“모두 데리고 나가라 하지 않았나?”
보살이 되묻자 천 거사의 목소리가 벽력 소리를 냈다.
탁.
문소리와 함께 거실에는 경도와 천 거사만 남았다.
“이노옴…….”
천 거사의 목소리가 칼날처럼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