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076화
21. 파격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2
“아, 그전에 우리 유빈 누님 말입니다. 캐스팅이 확정되었습니다.”
“탁 대표, 그거 말도 마. 오 박사님이 알고 계시더라니까.”
옆에 있던 유빈이 손을 저었다.
“정말요?”
“난 탁 대표가 말한 줄 알았어.”
“이야, 역시…….”
탁홍걸의 눈에 선망의 빛이 스쳐 갔다.
“별것 아닙니다. 관상 좀 공부한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는 것이죠.”
경도가 답했다.
“실은 그 인사도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제가 독립하기는 했지만 아직 영역이 좁거든요. 하지만 시나리오가 좋고 중국과 대만, 한국에서 동시에 개봉할 예정작이라 흥행의 감이 왔어요. 해서 우리 유빈 누님 캐스팅하기 전부터 한 자리 염탐 중이었는데 당시에는 유력 후궁 자리에서 퇴짜를 먹었지 뭡니까? 캐스팅 내락받으면 그걸 미끼로 누님을 꼬셔볼 생각이었는데…… 그러다 누님하고 연락이 된 후에 최종 캐스팅에 새로 찍은 사진을 넣었더니 유력 후궁이 아니라 주연으로 덜컥 뽑혀버렸습니다. 후문을 들으니 그쪽 투자자들이 처음 물망에 올린 주연배우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다가 유빈 누님을 보고 뿅 갔다고 하더라고요.”
“대표님 복이군요.”
“박사님 덕이죠. 저희 아버님 말씀이 뭐든 때가 있다고 하셨는데 딱 필요할 때 누님의 마음을 돌려주신 겁니다.”
“좋게 생각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해서 아버님께 말씀드렸더니 이런 제의를 하시더군요. 그 정도 영험한 관상가라면 멤버 결성의 조언을 받아도 좋을 거라는.”
“멤버 결성이라고요?”
“맞습니다. 제가 오늘 부탁드릴 일은 멤버 구성입니다. 제가 3인조 걸그룹을 염두에 두고 20여 명 지망생들을 트레이닝 시키고 있었는데 이제 정예 멤버를 추려야 할 시기입니다. 다섯까지는 추렸는데 나머지 둘을 빼는 게 어렵습니다. 박사님이 조언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조언이라면?”
“아이돌 그룹이라는 게 사실 보기와 달리 디테일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서로 다른 멤버들이 모이다 보니 케미가 기본이죠. 그다음이 인성이랄까요? 요즘은 연예계에도 인성 문제가 중시되고 있잖습니까? 하지만 사람의 속마음이라는 건 몇 달씩 교육을 시켜도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멤버들 사이의 미묘함은 멤버가 아니면 알기가 힘들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 일로 따로 요청하실 게 있으면 하십시오.”
“일단은 쌩얼로 부탁드립니다.”
“그건 이미 지시해 두었습니다.”
“귀도 노출되어야 합니다.”
“지시하죠.”
“몸의 노출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어느 정도나?”
“목과 팔, 허벅지 정도면 되겠습니다. 얼굴이 미인이라도 몸이 거칠면 귀격이 아니거든요.”
“그렇군요. 함께 지시하겠습니다.”
탁홍걸은 시원했다. 경도에 대한 신뢰가 높으니 저절로 호감이 살아난다.
나이는 어리지만 마인드가 제대로였다. 내일이 아니라 10년 후를 내다보는 것이다.
복도를 지난 탁홍걸이 작은 문을 열었다. 스튜디오가 훤히 보이는 방이었다.
“유하 씨, 시작해 봐.”
탁홍걸이 스태프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섹시미 넘치는 여자 연습생 다섯 명이 들어섰다.
모두 배꼽티에 핫팬츠 차림이었다. 강렬한 음악에 이어 실전 같은 공연이 시작되었다.
다연.
유선.
혜지.
채서.
곽수잉.
다섯 연습생들의 노래와 안무는 기가 막혔다.
연습생들의 몸매는 거의 CG나 포샵 수준이었다.
이기적인 몸매라는 건 이들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가슴도 크고 엉덩이도 크다. 그에 비해 군살은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걸그룹 공연장 직관 한 번 한 적 없는 경도였으니 연습생들의 무대에 넋을 놓을 지경이었다.
‘이래서 걸그룹 걸그룹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직 탄생도 안 한 그룹이 이 정도니 정상급의 걸그룹들은 그야말로 여신 취급이 타당한 것 같았다.
그들도 낌새를 차린 걸까? 열창은 더욱 고조되고 댄스 또한 격렬해졌다.
마침내 경도의 관상도 그녀들의 열기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꽃이 보인다. 여기도 꽃 저기도 꽃이다. 게다가 만개 직전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드센 팔자로 불리는 도화가 지천으로 핀 것이다.
이제 연예인들은 도화가 필수였다. 그것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건 여의도라는 땅과도 연관이 되었다.
여의도에는 산이 없다. 물만 지천이다. 예로부터 산은 도를 닦으러 가는 곳이고 물은 물놀이를 하러 가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끼를 불태워 돈과 명예를 쌓아가는 연예인들의 무대로 딱이었다.
일단 전체를 보았다. 자연스러운 첫인상은 본격 관상에서도 중요한 덕목이었다.
뜯어볼 때 나오는 귀격도 있지만 대다수의 귀격은 보는 순간 시선을 잡아끄는 법이었다.
‘후아.’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노래 실력을 보고 뽑은 건지 관상을 보고 뽑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마와 관골이 좋았다.
첫 귀격의 당첨은 채서였다.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눈이 예술이었다.
봉황의 눈과 물소의 눈이 섞였다. 한 가지만 해도 매력적일 판에 두 가지를 섞어놓으니 흡입력이 남달랐다.
속된 말로 추파 한 번 던지면 남자들이 쓰러질 마스크였다.
눈이 최고인 것은 설명의 필요가 없다. 사람을 볼 때 눈이 먼저 보이니 관상에서도 눈에다 절반 이상의 점수를 주고 있었다.
다음이 유선이었다. 그녀의 눈은 고양이 눈의 묘안이었으니 매력발산의 도화상이다.
애교가 철철 넘쳐 보이니 남심을 녹이는 건 기본이었다.
나머지 셋의 눈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들의 비극은 채서와 유선의 존재였다.
제아무리 귀격의 관상이라고 해도 더욱 귀격인 상 앞에서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눈썹이었다. 눈이 저 홀로 좋아도 소용없다. 예를 들어 유선의 묘안에 팔자 눈썹이라면 어떨까?
눈썹도 단연 채서였다. 그녀의 눈썹에서 기러기 두 마리가 날아가는 것이다.
기러기가 날갯짓을 하는 눈썹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연예인으로 최고의 눈썹이 아닐 수 없었다.
“…….”
거기서 경도의 시선이 파르르 경련했다. 기러기 안에 무엇인가 있었다.
격렬한 율동 때문에 잘못 보았나 싶어 다시 확인했다. 점이었다. 보일 듯 말 듯하지만 경도의 관상안을 속일 수 없었다.
기러기 눈썹 속에 박힌 작은 검은 점. 금상첨화였다.
그러나 유선의 눈썹도 만만치 않다.
묘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청수미를 갖춘 것이다.
덕분에 섹시미에 더해 선량한 애교녀의 이미지를 갖췄다. 남자들 흔들기에는 제격이었다.
다연의 원앙안에 더한 일자미, 혜지의 작안과 와잠미도 시선을 끌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코를 지나 입술로 갔다. 입술 역시 채서와 유선의 다툼이었다.
얼핏 보기에 둘은 거의 같은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도톰하고 윤택한 모양이다.
여기서도 채서가 판정승을 거두었다.
그녀의 입술 라인은 조각한 듯 선명했다.
그러나 유선은 입 끝과 라인이 명확하지 않으니 매사 싫증을 잘 내는 데다 친구들에게 냉담할 성향이었다.
입술만 놓고 보자면 곽수잉이 1승이었다. 그녀의 윗입술 선은 넘사벽 수준이었다.
이런 입술을 가진 사람은 좋은 가문 출신이다.
금수저로도 모자라 미래의 행운까지도 누릴 수 있다.
더불어 치아도 최상이었다. 그녀의 치아는 시원하게 큰 상앗빛이었다.
부수적으로 점도 차례차례 확인했다.
특이한 것은 없었으니 대부분 점 하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얼굴이었다.
채서의 눈썹 속의 점은 이미 확인했으니 넘어갔고 곽수잉의 것만 체크를 했다.
그녀는 눈썹 중앙의 바로 아랫부분에 점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좁쌀알만 하지만 약간 도드라진다. 이건 복점이었으니 사교성이 좋다는 증거였다.
연예인 직업이라면 나쁠 게 없었다.
마무리는 그녀들이 퇴장할 때 주시한 걸음걸이였다.
셋은 오른발을 먼저 떼지만 채서와 곽수잉은 왼발을 먼저 떼었다.
특히 유선은 뱀처럼 걷는 사보(蛇步)의 주인공이었다.
사보를 걷는 사람은 남을 위로할 때도 자신의 이익을 따지는 경우가 많았으니 좋은 보법이 아니었다.
“차 더 드릴까요?”
탁홍걸의 관상 재촉은 차 권유로 나왔다.
“괜찮습니다.”
“유하 씨, 나는 차 좀 한 잔 더.”
탁홍걸은 목이 타는 모양이었다.
여직원이 차를 가져오자 쉬지도 않고 넘겨버렸다.
“상괘를 어떻게 드릴까요?”
“상괘가 나왔습니까?”
“예. 그러니 대표님의 구상이 필요합니다.”
“제 구상이라면?”
“머리에 그리는 기획이 있을 것 같아서요. 예를 들면 메인을 따로 내세울 건지 아니면 셋이 하나로 갈 것인지.”
“다섯이 다 괜찮지만 보이스의 감성 차이는 존재합니다. 걸그룹이라는 게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가창력이나 음색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마음에 둔 사람이 있군요?”
“예.”
“함께 짚어볼까요?”
경도가 다섯 연습생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가리켰다.
“좋죠.”
둘의 손은 단숨에 움직였다. 둘 다 유선을 찍었다.
“박사님.”
탁홍걸의 표정이 밝아졌다.
“대표님은 리더를 짚은 거겠죠?”
“그럼 박사님은?”
“저는 반대로 짚었습니다.”
“……?”
“둘을 골라달라고 하셨으니 그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이 사람입니다.”
경도의 손은 이제 혜지의 얼굴 위에 있었다.
“유선이가 가장 낙제점을 받은 모양이군요.”
“그 친구는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더욱 매력적인 사람이 있으니 밀리게 되었습니다.”
“그게 누구죠?”
“이 사람입니다.”
경도가 채서를 짚었다.
탁홍걸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다소 의외인 모양이었다.
“유선이라는 연습생은 남심을 직관으로 저격하는 미모입니다. 도화의 묘안에 애교가 넘쳐 보이니 팬들에게 어필하기는 제격이죠. 그러나 그녀는 입술 라인이 불투명하니 속마음이 차갑고 쉽게 질리는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에 비하면 채서는 첫인상의 파워는 유선에게 밀립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끌리는 관상이죠. 여기……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눈썹 속에 점이 있습니다. 사랑점에 애정점이라고 할까요? 사람들의 사랑을 빨아당기는 점이니 한 번 히트를 치기만 하면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줄 겁니다.”
“아.”
“덤으로 보법도 왼발을 먼저 쓰더군요. 그런 사람들은 사려심이 깊으니 멤버들 간의 충돌도 완충이 되리라 봅니다.”
“허.”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경도는 나머지 세 여자를 짚어가며 말을 이었다.
“이 멤버들의 구성입니다. 대표님의 다섯 연습생은 목형, 화형, 토형, 금형의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채서와 다연이 목형인데 유선은 금형입니다. 오행에 금극목이라고 금형은 목형을 극하게 되니 유선을 리더로 세우려면 채서와 다연을 제외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남은 멤버들이 토형과 화형이니 좋은 배합은 아닙니다.”
“…….”
“하지만 유선을 제외하고 혜지를 빼면 목형의 채서와 다연, 그리고 화형의 곽수잉이 팀을 이루게 됩니다. 목형 인물이 미미한 화형을 만나게 되면 유명세가 폭발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데 곽수잉이 붙임성이 좋은 관상이라 리더인 채서를 더 돋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말한 구성대로 연습한 것을, 다른 구성과 비교해 보신다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유선과 곽수잉의 조합은 아니라는 겁니까?”
“화극금이라 같은 구성이라도 유선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한 번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죠. 저는 대표님 부탁대로 관상을 봐드린 것이지 팀 구성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유하 씨, 이리…….”
탁홍걸이 스태프를 불렀다. 곧바로 새 공연이 시작되었다.
<곽수잉+유선+혜지>
<곽수잉+채서+다연>
두 그룹으로 나눈 공연은 여전히 불꽃을 튀겼다.
첫 그룹의 노래가 끝나고 두 번째 그룹의 노래가 이어질 때였다.
탁홍걸의 몸이 앞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잘 보이지 않던 차이를 결국 발견한 것이다.
“박사님.”
의자에서 일어선 탁홍걸이 경도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일천하다 보니 굳이 확인을 해야만 알아들었습니다. 한 말씀에 받아들이지 못한 점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또 한 번 인사를 하는 탁홍걸이었다.
“대표님. 이러지 않으셔도…….”
“죄송하지만, 박사님.”
“말씀하십시오.”
경도가 답하자 탁홍걸의 파격 제의가 들어왔다.
“공무원 사표 내시고 저와 함께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연봉 1억에 이사 대우로 맞춰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