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격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1> (75/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75화

21. 파격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1

<말단 공무원이 이끄는 아름다운 후원회>

TTC에 방송이 나가고 하나로일보와 K시 저널 등에 OK후원회의 미담이 실렸다.

무엇보다 유튜브에 올린 조경철의 동영상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경도의 관상을 살짝 곁들인 주민 돌보기였다.

영상에는 엄 팀장과 민지, 은빛 등의 장면도 담았다.

그건 경도의 청탁(?)이었다.

팀은 같이 간다. 경도 혼자 가면 시기의 화살을 맞을 뿐이다.

공직사회는 혼자 튀는 걸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있었다.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영상을 본 은빛이 얼굴을 붉혔다. 그 부끄러움이 은빛의 심성을 조금 더 아름답게 물들였다.

“쳇, 은빛만 예쁘게 찍어줬네?”

민지의 볼멘소리 역시 자신의 무안함을 가리려는 딴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기인사의 하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기관 후보는 용포읍과 상관이 없었다.

육 과장은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생활과장 역시 서기관 그릇은 아니었다.

사무관 후보는 달랐다.

행정팀장이 5배수 후보군에 들어갔다는 풍문이 돌았다.

사실 그도 엄 팀장 못지않은 운동가였다.

노조 활동을 했던 까닭에 인맥이 많았다.

최근 동분서주하더니 선을 대러 다닌 모양이었다.

“오 주임, 차 한잔 어때?”

잠시 민원의 발길이 끊기자 그가 경도를 잡아끌었다.

“관상 죽이잖아? 나 관운 자문 좀 해줘.”

회의실 안에서 본론을 꺼내놓았다. 안 봐도 승진 건이었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에이, 관상 대가가 왜 이래? 내가 지역경제과장 후보 배수에 들어갈 거 같거든. 사무관 달 관운이 되나?”

그는 급 친절 모드였다.

행정팀장은 센터의 4인자다. 읍의 살림은 전부 그의 손을 통한다.

같은 행정직이지만 그는 결코 경도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행정적으로 충돌되는 일에는 개무시를 때린 적도 많았었다.

공직자로 꿀 빨려 살려면 한 방이 필요했다.

빽이든 돈이든, 실력이든, 이도 저도 안 되면 말빨이거나 아부라도 잘해야 했다.

그동안 경도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한 한 방이 생겼다.

관상이 그것이었다. 공직사회에서 관운을 읽을 줄 안다는 것. 그건 다른 어떤 주특기보다도 유효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전문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보니 관상이 아무 때나 보이는 게 아니라서…….”

경도가 발을 뺐다.

승진이나 전출입에 대한 건 어느 정도 선을 둘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인사 때마다 닦달을 당할 판이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좀 봐줘. 내가 이번에 3수인데 이번에도 물 먹으면 어려워.”

그가 재촉한다. 눈앞의 필요에 의해 자세를 낮춘다고 관상이 변하는 건 아니다.

그의 미소는 위선이었다. 찬밥 기관인 용포읍에서 그는 직원들 볶아먹기로 유명했다.

막말도 유명했고 신입 여직원들에게는 성추행에 버금가는 농담조차 일상이었다.

“관록궁이 훤한 걸 보니 영전하시기는 하겠네요.”

“그래?”

그가 반색을 한다. 하지만 경도의 상괘는 대충이었다.

대충 봐도 칙칙한 그의 관록이 그의 운명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대로 본 건 천이궁 하나였다. 그것만은 윤기가 돌았다.

용포읍을 떠나는 건 확실했다. 다만 승진으로 떠나는 게 아니라는 것뿐.

“고마워.”

행정팀장이 악수를 청해왔다.

회의실을 나오자 이아연 주임이 쭈뼛거리는 게 보였다.

그녀도 7급 고참 행정직이었다. 올해로 7급 10년 차가 되고 있으니 이번에 승진하지 못하면 자동승진으로 밀릴 가능성이 99%다.

자동승진의 경우에는 무보직이 많았으니 승진에 관심이 없을 리가 없었다.

성향을 보면 업무는 꼼꼼하지만 내성적이다. 덕분에 매번 승진과는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지난번까지의 관운이었다.

경도 눈에 승진의 신호가 들어온 것이다.

인당과 역마가 밝아지고 명문이 빛나니 햇살이 뜬다는 신호였다.

“오 주임, 나는 어때?”

얼굴을 붉히며 겨우 한 마디를 묻는다.

까마득한 후배지만 함부로 대하지 않는 선배다.

이아연은 그런 사람이었다. 주저하는 그녀를 향해 엄지를 힘차게 세워주었다.

[낙점입니다.]

엄지에 실린 뜻이었다. 경도의 미소가 환했으니 그녀가 알아듣기를 바랐다.

관상은 이렇다. 상괘를 받는 사람이 아름다우면 내주는 경도도 행복했다.

“오 주임.”

이번에는 8급 선배였다. 그녀는 이 복마전에서의 탈출을 원한다.

돌아보니 2층 사무실도 삼삼오오 예측과 예상으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

바야흐로 본격 인사철. 모두의 마음은 그곳으로 가 있다.

-I miss~

계단을 내려갈 때 이유빈의 전화가 들어왔다.

-박사님, 내일 약속 아시죠? 대표님이 저보고 박사님 모셔오라는 특명을 내렸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구슬처럼 굴러간다.

“알겠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집에 계세요. 제가 모시러 가요. 그럼 내일 뵈어요.

유빈의 전화가 끝났다. 세상을 버리겠다고 체념하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생기였다.

그렇게 민원실로 내려왔을 때, 은빛이 쪼르르 다가왔다.

“오 주임, 손님 왔어.”

“손님요?”

“누구야? 여친? 여사친?”

은빛이 눈을 흘긴다.

“무슨 소리예요?”

“어허, 나도 그런 관상 정도는 보거든? 굉장한 미인에 굉장히 영계던데?”

“장난 그만 하세요. 수급이나 긴급지원 신청하러 왔겠죠.”

“미안하지만 그런 분위기 아니었거든. 어머, 저기 온다.”

은빛이 입구를 가리켰다.

거기 낯익은 얼굴이 들어서고 있었다.

정말 미인이었다. 장미나 모란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백합이나 목련처럼 순수한 미녀였다.

그녀, 대리모 일로 관상을 부탁하던 두나였다.

“안녕하세요?”

경도 앞으로 다가온 그녀가 차분히 고개를 숙였다.

그 순백의 자태가 민원실 직원들의 시선을 끌었다.

“또 연예인이야?”

그런 수군거림도 나왔다.

“…….”

경도도 말을 잃었다.

그녀의 수려함 때문이었다. 불순물 제로에 가까운 순백 미녀 두나.

이유빈 같은 화사함은 없지만 그래서 더 치명적인 아름다움이었다.

툭.

짓궂은 은빛이 경도 옆구리를 찔렀다.

잠시 방황하던 넋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경도가 놀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그녀의 등장이었고 둘째는 그녀의 청아한 자태였다.

마지막은 재복궁이었다. 동시에, 경도는 알았다. 그녀가 찾아온 이유를.

“드세요.”

체리 커피 안에서 그녀가 커피를 건네주었다.

커피도 그녀가 계산을 했다. 그녀 어깨 뒤에서 인희가 곁눈질을 해댄다.

인희 역시 두나의 청순함에 경계(?)심이 발동한 것 같았다.

“일이 잘되었군요?”

경도가 웃었다.

“덕분에요.”

“외국으로 가시네요? 방각을 보니 미국 쪽인데요?”

“네.”

그녀도 웃는다.

참담과 좌절로 어둡던 그늘은 거짓말처럼 가시고 없었다. 그야말로 이슬 속에서 걸어 나온 청초한 표정이었다.

“일월각을 보니 어머니 병환도 잘 치료가 된 모양이고…….”

“어제 퇴원을 하셨어요. 수술도 잘 되었고요.”

“그쪽 금전 문제는 별일 없었죠?”

“선생님 말대로 그다음 날 계약하면서 날짜를 정했고 돈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다음 날인가 이사장님이 쓰러지면서 뇌출혈이 왔고 몇 시간 후에 사망을 했다더군요. 엄마에게 전화가 왔는데 사실 고민을 했어요. 돈은 돌려드리는 게 맞잖아요. 그런데 사모님이 그래요. 아저씨가 저승 가면서 좋은 일한 셈 친다고 제 장학금과 엄마 퇴직금 명목으로 쓰라고 하더라고요.”

“…….”

“지금은 제 사정이 급해서 그냥 받았지만 나중에 꼭 갚을 거예요.”

“그러세요. 그럴 수 있을 겁니다.”

“선생님 신세도요.”

“제 신세랄 건 없습니다.”

“아뇨, 제 인생의 은인이세요. 그래서 찾아왔어요. 엄마도 그러라고 하셨고요.”

“저도 궁금하기는 했습니다.”

“이거…… 제 작은 선물이에요.”

두나가 뭔가를 꺼내놓았다.

“뭐죠?”

“관상을 보시니 돋보기를 하나 샀어요. 문방구나 쇼핑몰 것들은 너무 평범해서 압구정과 청담동의 엔틱 시장을 다 뒤졌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어요.”

“돋보기?”

“우리 엄마 말이 옛날에 나이 드신 관상가들은 돋보기를 많이 썼다고 하시더라고요. 잔금이나 얼굴색 같은 거 자세히 보느라고…….”

포장을 여니 골동품 같은 돋보기가 나왔다.

손잡이에는 용 문양이 조각되고 테두리는 청동이다.

흔한 돋보기가 아니었으니 그녀의 정성을 알 것 같았다.

“이야, 이걸로 보면 관상 대박 날 거 같은데요?”

“이미 대박이시잖아요?”

그녀가 웃는다.

그때마다 화사한 봄기운이 경도의 가슴을 울컥울컥 흔들어댔다.

“와줘서 고맙습니다.”

인사로 괜한 설렘을 감췄다.

“저도요, 제 인생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나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런 다음 반듯하게 퇴장이다.

입구에서 경도를 돌아본 두나가 아스라이 멀어졌다.

“오빠, 여친?”

인희가 쫓아와 은빛의 톤으로 물어왔다.

“그렇다, 왜?”

괜히 변죽을 울리는 경도.

“레알?”

“신경 끄고 웹툰이나 그려라, 마감 날 얼마 안 남았지?”

“진짜 여친이냐고요?”

문을 나서는 경도 뒤통수에 인희의 재촉이 따라왔다.

그날 저녁, 형 경규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새 책의 최종 원고였다.

경규는 이따금 경도를 부려먹었다.

물론 쥐꼬리 교정비를 주기는 했다.

이번 원고는 좀 흥미로웠다. 코로나가 지구를 휩쓸던 2020년 초봄, 세계 각국에서 살던 사람들의 각기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코로나 극복기였다.

한국을 중심으로 우한,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나아가 그 당시에는 단 한 명의 확진자도 나오지 않은 라오스와 미얀마의 이야기도 있었다.

흥미를 더하는 건 그들의 나이와 직업이었다.

여덟 살 소년부터 90세 노인까지, 직업도 의사에서 여행자, 자원봉사자까지 다양했다.

서로 다른 시각이 재미있었다. 베스트셀러의 법칙은 모르지만 다음 편이 궁금해진다. 최소한 반품 사태는 면할 원고였다.

[오, 우리 형 이제 감 잡았는데?]

응원 문자를 보냈다.

[까불지 말고 오탈자나 잘 찾아라.]

[오타 한 자에 만 원씩 꽂아준다.]

[오타 안 나오면?]

[야, 그럼 좋은 거지.]

[형만 좋지.]

[알았다. 안 나와도 기본 알바비는 쏜다.]

[선입금요망]

[아, 짜식이 진짜…… 알았으니까 제대로 봐라. 원고 쓸 사람들 섭외하느라 죽을 똥을 싼 거니까.]

형 일이니까 신경 좀 썼다.

다 보고 나서 두나가 준 돋보기를 대보았다.

원고 관상을 보는 것이다.

‘대박인데.’

경도가 웃었다. 책 관상? 그건 사람처럼 볼 수 없다. 하지만 기분이 그랬다.

주말 아침은 신경 좀 쓰게 되었다.

유빈이 오는 까닭이었다. 이제는 반듯한 연예인으로 거듭난 유빈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센터 출근할 때처럼 입을 수 없었다.

넥타이는 육 과장님이 선물한 것으로 매었다. 폼 좀 났다.

“박사님.”

그녀는 약속보다 10분이나 일찍 왔다.

“어, 잠깐만요.”

그 얼굴을 본 경도가 두 말도 없이 마트 쪽으로 뛰었다.

“축하합니다.”

잠시 후 그녀 품에 흑장미 다발을 안겼다.

“어머, 우리 대표님 전화 왔었어요?”

“아뇨. 얼굴에 딱 쓰여 있잖아요? 좋-은-일.”

“와아, 진짜 귀신…….”

“뭐죠? 캐스팅? 광고?”

“캐스팅요. 명나라 황실 후궁대전인데 고려에서 끌려와 명나라 황실을 장악하고 고려를 돕는 역이에요. 제가 여자 주연이에요.”

“잘됐네요.”

“에이, 그래도 좀 시시해요.”

“뭐가요?”

“제가 자랑 빡세게 하려고 했는데 먼저 알아버리시니…….”

“그럼 자랑하세요. 모른 척 들어줄게요.”

“아이, 정말…… 몰라요.”

투정 어린 애교와 함께 차가 출발했다.

탁홍걸의 기획사는 청담동에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붉은 모란 그림이 시선을 압도했다.

모란이라면 재운을 불러오는 풍수학 요체 중의 하나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그는 그림 하나도 재운을 갖춘 준비가 되어 있었다.

“탁 대표.”

유빈이 대표실 문을 열었다.

한때는 그녀의 로드 매니저였으니 막역하게 지내는 모양이었다.

“오셨습니까?”

헤드셋을 끼고 노래를 감상하던 그가 경도를 맞았다.

경도도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후원회가 열린 중국집에서는 크게 돋보이지 않던 탁홍걸.

그러나 기획사 안에서 만나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먼 길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날 거액을 희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거액이라뇨? 우리 유빈 누님 같은 복덩이를 보내주셨는데…… 사실 매니지먼트 방식으로 계산하면 제가 박사님께 빚을 진 겁니다.”

“무슨 말씀을…….”

“일단 이것부터 받으시죠.”

탁홍걸이 봉투를 꺼내놓았다. 복채였다.

“저와 상의하실 게 관상인가요?”

“예.”

“그럼 오늘은 복채 필요 없습니다. 지난번 후원금으로도 충분합니다.”

“아닙니다. 오늘은 제가 정말 중요한 비즈니스라서요. 죄송하지만 오늘만은 제 말대로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 부친께서 풍수광이신데 큰 성공을 하려면 투자를 아끼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해서 이 사무실 인테리어할 때도 오셔서 인부들 12명과 청소 아줌마에게 인당 100만 원씩을 현금으로 꽂아주고 가셨습니다.”

탁홍걸이 정중한 예의를 갖춘다.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정말 중요한 비즈니스…….

경도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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