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074화
20. 전격 발족 OK 후원회-3
노성봉.
그 이름은 김윤광과 가까운 곳에 적어두었다.
어느새 관상 전문가가 되어버린 경도였다. 오늘 읽어낸 상괘가 내일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했다.
그렇기에 그런 일들은 핸드폰 속에 메모로 저장해 두었다.
노성봉의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변변찮지만 죽 한 그릇 보답하고 싶습니다.”
노성봉의 간청이었다.
그가 끓인 건 잣죽이었다. 지난번 지원 물품에 딸려온 것이라고 한다.
할머니께 몇 번 해드리고 남은 것을 가지고 솜씨를 발휘해냈다.
“할머니가 정신이 맑을 때 배운 건데 맛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좁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시식을 했다.
“어여들 먹어요.”
새 휠체어 위에서 할머니가 식사를 권했다.
찰칵!
방 기자의 카메라가 먼저 시식을 했다.
잣죽은 기가 막혔다. 어찌나 고소하게 혀에 감기는지 한 그릇 더 먹고 싶을 정도였다.
“죽 전문점 해도 되겠는데요?”
자칭 미식가인 읍장도 만족을 표했다.
조경철과 방 기자, 육 과장도 100% 만족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누추한 데서 맛있게 먹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성봉이 인사를 해왔다.
든든한 배를 안고 두 번째 수혜자의 집으로 향했다.
수어 통역자.
그녀의 직업이었다.
수어는 청각장애인들이 손으로 하는 언어를 말한다.
영어로는 Children of deaf adults를 줄여 코다라고 한다.
수어 동시통역을 하는 프리랜서였다.
코로나 극성기 때 그들도 화면에 자주 나왔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아우, 졸 위험한데?”
“그러게. 마스크 끼고 하지.”
일부 국민들의 우려였다. 그 옆에서 촬영하는 기자들도 마스크를 꼈고 정부 관계자 뒤에 배석한 사람들도 마스크를 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저 사람만 마스크를 안 준 거야?”
……라는 불만도 있었다.
경도도 그랬다.
수어 통역은 손으로 하니 마스크를 끼면 더 안전할 일이었다.
수어 통역이나 한다고 무시해서 마스크를 안 줬구나?.
결론을 말하자면 수어 통역자는 마스크를 끼지 않는다.
수어는 손으로만 하는 언어가 아니었다.
수어는 손짓과 표정에 ‘입 모양’으로 구성된다.
수어 통역자들이 마스크를 끼고 수어 통역을 하는 건 비장애인들이 음소거를 하고 TV를 보는 것과 같다.
영화를 볼 때 소리를 죽이고 자막만 보는 것도 유사하다.
대략 이해는 되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극성기의 코로나는 무서웠다.
확진자나 무증상 감염자가 있으면 감염 우려가 높았다. 그렇기에 수어 동시 통역자들도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 이유로 복지부 장관이 K시 국책연구소에 불시 순시를 왔을 때 수어 통역자를 구할 수 없었다.
K시에는 수어 통역센터가 없었고 가까운 곳의 수어 통역자는 통역을 거절했다.
때마침 그 사람도 감기 기운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흔쾌히 자원봉사를 나온 사람이 바로 백지애였다.
복지부 장관의 회견은 지역 케이블전파를 타고 중계가 될 예정이었다.
그렇다면 K시의 청각장애인들을 위해서도 수어가 필요했다.
회견시간은 30분 정도였다.
장관의 발표에 이어 기자들의 질문이 나왔다. 그 30분을 마스크 없이 버틴 그녀였다.
불행하게도 사흘 후에 고열이 오르며 확진을 받고 말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장관의 수행원 중에 무증상 감염자가 있었다.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사명감만으로 자원했던 그녀였지만 국가의 혜택은 없었다.
대신 확진자 소문이 나면서 계약되었던 통역 일감마저 취소를 당했다. 16일 만에 회복되었지만 계약 기관들은 그녀를 반기지 않은 것이다.
그녀의 애틋함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자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수어 무료강의는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쌓인 빚이 약 1,000만 원…… 경도는 그 빚을 지워주고 싶었다.
모두를 위해 희생한 그녀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머.”
경도 일행을 본 그녀가 소스라쳤다.
기자까지 동행 중이니 놀란 것이다.
“TTC 방 기자입니다.”
“하나로일보 조 기자입니다.”
방 기자와 조경철은 명함부터 건넸다.
“제가 방송에 나오는 건가요?”
그녀가 긴장한다.
“그러셔야죠. 알고 보니 코로나의 영웅이셨더군요.”
“영웅은요…… 당치도 않습니다.”
얼굴을 붉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
이번에는 경도가 놀랐다. 그녀의 관상 때문이었다. 애당초 경도가 입수한 사진은 포샵이 심했다.
그렇기에 인성이 좋을 거라는 정도만 짐작하던 터였다. 그런데…….
‘중정…….’
경도의 시선은 그녀의 이마 한가운데 꽂혀 떨어지지 않았다.
중정이 도톰하게 솟아 있었다. 나아가 목소리도 나쁘지 않다.
눈빛 또한 형형하니 관직으로 나갈 상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수어 동시통역자였다.
‘지자체나 정부기관의 캐스팅을 받으려는 건가?’
생각에 잠길 때 그녀가 안을 가리켰다.
“어머, 내 정신…… 일단 들어오세요.”
그녀가 커피를 내왔다.
코딱지만 한 주방이지만 정갈하게 정리가 되었다.
커피를 내리는 뒷모습도 수려했다.
아무리 보아도 관록을 먹을 사람이다.
그러나 수어 동시통역자면 낮은 직급, 그런 직급이 경도를 긴장시킬 리 없었다.
“실은 우리 K시에서 뜻 있는 분들이 숨은 의인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OK후원회라고 하는데 백지애 님이 두 번째 수혜자로 결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작으나마…….”
경도 말이 끝나자 읍장이 후원금 봉투를 꺼내놓았다.
“어머.”
액수를 본 백지애가 화들짝 놀랐다.
“이렇게 많이 주는 거예요? 코로나 걸렸을 때도 생활보조금밖에 못 받았는데…….”
“그 보상으로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걸 제가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당연히 되죠. 더 많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사실 읍 센터에서 연락이 왔길래 라면이나 한 박스 갖다 주면서 생색내려다 보다 했는데…… 제가 다 부끄럽네요.”
“부끄러운 건 저희들입니다. 시에서라도 보상을 해드렸어야 하는 건데…… 오늘 이렇게나마 지원을 하게 되니 그나마 면목이 섭니다. 그리고 우리 오 주임이 다른 선물이 있다고 하던데…….”
치하를 끝낸 읍장이 경도를 돌아보았다.
“괜찮으시다면 수어 알바를 좀 소개해 드리려고요.”
“어머, 정말요?”
경도 제의에 그녀가 반색을 한다.
경제 불황이 깊어지다 보니 일거리만 한 선물이 없었다.
“김윤광 대표님이라고 우리 후원회 멤버이시면서 바이오 회사를 운영하시는데, 수어에 관심이 많답니다. 비용은 공개토론회 수준에 맞춰서 주시겠다며 부탁을 하던데 괜찮겠습니까?”
“괜찮다마다요. 이 지원금을 주신 분이라면 그냥이라도 해드릴게요.”
“그건 그분을 만나서 협의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설득할 자신이 없거든요.”
경도가 김윤광의 명함을 넘겨주었다.
“와아…….”
그녀는 감격해 어쩔 줄을 몰랐다.
“그나저나 수화는 어떻게 배우신 겁니까? 나는 수어 통역자라길래 혹시 청각장애인이신가 했습니다.”
방 기자의 질문이 나왔다.
“옛날에는 청각장애인의 가족들이 주로 수어 통역을 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비장애인이 수어를 배우는 케이스가 많아졌어요.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된 후로 전국에 200개 정도의 수어 통역센터가 생겼거든요. 지자체에 공무원으로 채용된 경우도 있는 걸요.”
“그런 곳에는 들어가기가 어렵습니까?”
“쉽지는 않죠.”
“비장애인으로서 수어를 배우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미국으로 간 제 절친이 청각장애였어요. 그 친구에게 수화를 배우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직업까지 오게 되었어요.”
“이번 일로 실망도 좀 하셨겠군요?”
“통역장에서 코로나 걸린 거요?”
“예.”
“전혀요.”
“공공업무에 자원봉사를 하다가 코로나에 걸렸고, 게다가 심하게 앓으면서 건강, 금전적인 손해가 많았는데도 괜찮다고요?”
“대신 청각장애인들의 코로나 방지와 정보 전달에 기여했잖아요?”
“……?”
“그날, 장관님의 연설은 우리 농인들이 궁금해하는 일들이었어요. 치료제와 백신에 대한 발표가 있었거든요. 요즘은 인터넷에 가짜 뉴스가 많다 보니 그렇게 살아 있는 정보가 필요한데 수어 통역자가 없으면 그냥 진행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달려간 거예요.”
“사명감이 대단하시네요.”
“그건 아니고요, 농인 친구들이 많거든요. 어려울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것. 수어 통역자로서 기본이잖아요.”
“나참, 우리 오 주임님, 수혜자를 골라도 어떻게 이렇게 반듯하신 분들만…… 아, 진짜…….”
짝짝!
취재하던 방 기자가 박수를 치고 말았다.
백지애의 인성에 반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반함은 경도에 비하면 약과였다.
방 기자와 조경철이 질문을 하는 사이에도 경도는 백지애의 관상을 꿰뚫고 있었다.
차분하게 얼굴 기색부터 살폈다.
해사한 기운이 있지만 화사하다. 얼굴에도 탄력이 느껴진다. 눈빛 역시 희번덕거리지 않으니 편했다.
다시 중정이다. 기막힌 중정에 어리는 윤기는 여전했다.
다시 봐도 하급 공무원의 관록은 아니었다.
별수 없이 예정에도 없던 유년운기부위까지 관상안을 들이대게 되었다.
‘5년 후…….’
넓게 잡아도 4년에서 6년 후다.
그때 이 여자의 관록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물론 옵션이 있기는 했다.
이마의 수려한 윤기가 아직은 미달이다.
그러나 그 윤기가 더해지기만 하면 이 여자는 관록궁의 가능성을 제대로 발현할 수 있었다.
다른 상도 나쁘지 않았다. 명궁이 맑으니 코로나의 후유증은 사라졌고 와잠에 주름으로 보아 가난하지만 음덕을 쌓는 사람이다.
간문은 거울처럼 맑고 바른 인중에 입술이 도톰하니 지혜롭고 충직한 상이었다.
“혹시 공무원 공부 같은 걸 준비하고 계시나요?”
결국 경도의 질문이 나가고 말았다.
“공부라면 국제수어를 배우고 있는 데요?”
그녀가 경도를 돌아본다.
그 순간 경도 시선이 그녀의 혀를 탐색했다.
혀에 자줏빛이 어린다.
혀의 자줏빛 역시 관운의 상징이었다.
“그걸 하면…… 혹시 유엔본부나 산하기관에서 일할 수도 있나요?”
“유엔 산하의 장애인 권리위원회에 진출할 수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은 있어요.”
“그렇군요.”
경도가 질문을 접었다.
백지애의 관상에 역마살은 없었다.
유엔 진출은 없다는 얘기였다.
‘이것 참…….’
궁금하지만 몇 년 후를 눈앞으로 당겨올 재주는 없었다.
아직은 중정의 기세가 조금 미달이니 혹시 변할 수도 있는 관상…….
“보람이라면 음식 대타 주문이에요. 우리 농인 친구들도 외식 좋아하거든요. 치킨에 매운 짬뽕, 냉면도 좋아하고요. 혼자 사는 친구들은 말을 못 하니, 주문 앱이 없는 가게에는 주문을 못 해요. 그럴 때면 저한테 문자로 부탁을 해와요. 대신 주문해 주고 나서 맛나게 먹었다고 인사를 받을 때면 너무 행복하죠.”
그녀가 반듯하게 웃는다.
팟파밧.
방안의 촬영이다 보니 조경철의 카메라의 플래시가 바빴다.
그때마다 그녀의 이마 중정이 더욱 빛을 발했다.
수어 동시통역자인 백지애.
어떤 관록을 누릴 것이기에 저토록 끌리는 중정을 가졌을까?
<노성봉과 백지애, 그리고 김윤광>
좋은 사람들끼리의 연결이 빚어낸 그림은 거의 명화 수준이었다.
첫 수혜자로서 손색이 없는 것이다.
김윤광의 덤이 경도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으니 노성봉과 백지애를 생각하면 김윤광이 아름답게 겹쳐졌다.
수년 후에 김윤광은 그 겹침의 답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이날 경도의 시선은, 그녀의 중정에 취해 내내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