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073화
20. 전격 발족 OK 후원회-2
“대표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야 물론 기왕 시작하는 거라면 지역구 국민들의 판단을 받고 싶죠. 하지만 아버님과 백부님께서는 굳이 어려움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잠깐만요.”
경도가 일어섰다. 뒤로 한 걸음을 걸어 1m 간격을 확보했다.
선거철의 계절운을 보는 것이다. 사계절의 운은 직관이 중요하다.
따라서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오히려 상괘 내기가 어려웠다.
“뜻대로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리딩을 끝낸 경도가 자리로 돌아왔다.
“지역구로 가라는 말씀입니까?”
“대표님은 지금 기세가 좋습니다. 최고는 아니지만 쉽게 꺾이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승부를 걸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사님 말씀을 들으니 위로가 되는군요.”
“기왕이면 험지를 요구하십시오.”
“험지까지요?”
김윤광이 긴장했다.
“그만한 관상은 되십니다. 다만 험지 중에서도 서쪽 지역구를 택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시 방각을 보니 서쪽이 길한 방향입니다.”
당시 방각의 기준은 이마다. 이마에 나침판을 놓는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거기서 상대적인 찰색을 읽는다. 그러나 그 판독에는 엄청난 수련이 요구된다.
작은 흠 하나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경도는 여기에 더해 일과 월의 찰색까지 읽어냈다.
십이지와 코를 기준으로 하면 12개월의 일진을 가늠할 수 있었다.
“서쪽 지역구라…….”
“그쪽에서 분투하시면 좋은 결과를 보실 겁니다.”
“박사님 상괘를 받으니 용기가 나는군요. 그동안 이것저것 재느라 머리만 아팠는데…….”
“이제 편하게 전진하십시오.”
“그럼 기왕에 상괘를 주신 마당에 정치인으로서 제게 경구 하나 부탁드립니다. 부모님의 말씀과 더불어 등대로 삼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사회에서 국회의원 선거도 이제 겨우 두 번째인 걸요.”
“겸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선 읍면동의 내공이 있지 않습니까? 그 민의야말로 정치인들의 귀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분들 말씀은 굉장히 험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실은 저도 정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사람의 하나니까요.”
“그러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읍의 정서만을 말씀드린다면…….”
잠시 숨을 고른 경도가 말을 이어갔다.
“정치는 쓰레기죠. 그것도 재활용 불가의.”
“쓰레기?”
“투표 수십 번 해본 어르신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더군요. 정치인들은 쓰레기다. 선거 때 외에는 절대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들이 국민을 내세울 때는 그들 머리와 배에 그들이 필요한 이권이 있을 때뿐이다.”
“신랄하군요.”
“대표님께서 국회로 가시면 부디 그런 평가에 반전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정치입문 상괘를 주신 박사님께 보답하는 거겠죠?”
“저는 고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관상에 충실할 뿐이니까요.”
“아닙니다. 가 이 자리에서 약속드리겠습니다. 당선이 되면 신인이라고 해서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나중에 중진이 되어서는 중진이라고 해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것을 말입니다.”
“말씀만 들어도 시원하군요.”
“그렇다면 제가 복채를 드려야겠습니다.”
“안 됩니다. 아까도 후원금을 내시는 거 같던데?”
“후원금은 후원금이고 복채는 복채죠. 상괘를 그냥 받으면 효력이 반감되는 거 아시잖습니까?”
“그건 복채에 눈먼 점쟁이들이 지어낸 말입니다. 진정한 점괘는 복채를 초월하는 것이니 그냥 가셔도 괜찮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효자 손자를 채용하고 수어 통역자에게 일거리를 주려는 것인데도 말입니까?”
“예?”
“박사님이 후원을 결정한 사람들이라면 직원으로 문제가 없겠죠? 사진 보니 인상들도 좋고…… 효자는 제가 정치에 몸담는 기념으로 채용하고 수어 통역자 역시 유튜브 방송 등에 통역으로 초빙하고 싶습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재무는 안정된 회사인데 안 되겠습니까?”
“대표님?”
“제가 장애인들에 대해 생각이 많습니다. 그러나 입으로 백날 떠들어봤자 무엇하겠습니까? 하다못해 수어라도 배워서 청각장애인들 만날 때 진심 어린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그는 진심이었다. 어릴 때부터 부친을 따라 장애시설에서 봉사를 했고 이학박사 취득 후의 첫 직장의 월급 역시 장애인들을 위해 전액 기부한 사람이었다.
“그런 마음이시라면야…….”
“찬성이시죠?”
“물론입니다. 대표님.”
“후원금 전하시는 날 두 분을 저희 회사로 보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만 이 일은 언론에 공개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마침 공천에 선거가 머지않았으니 기획 채용의 오해를 살 여지가 있습니다. 게다가 박사님 말씀에 공덕 중에서도 남몰래 하는 음덕이 최고라 하셨으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제 청탁인데요, 지인 관상을 한 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지인이라면?”
“중견기업을 하는 선배신데 코로나로 중국 시장이 붕괴되었잖습니까? 다시 진입해야 할지 숨을 골라야 할지부터 고민이 많은 모양이라 제가 오 박사님 얘기를 흘렸더니 한번 뵙고 싶다고 하더군요.”
“대표님 지인이라면 얼마든지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제가 그쪽에 박사님 연락처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고맙죠. 정말 고맙습니다.”
경도는 몇 번이고 거듭 인사를 전했다.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
관상이 아무리 좋아 봤자 마음씨 바른 것을 쫓아가지 못한다.
관상의 바이블로 불리는 경구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모두의 선한 마음이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경도의 바른 마음과 효자 손자의 그것, 그리고 김윤광의 순수가 모여 작은 기적을 이룬 것이다. 경도의 후원회는 시작과 함께 대박을 치고 있었다.
“취업?”
다음 날 오전, 보고를 받은 읍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도 옆에는 육 과장이 배석하고 있었다.
“그게 정말인가?”
다시 묻는 김창국 읍장이었다. 김윤광의 기업은 나름 인지도가 있었다.
코로나 진단 시약 등으로 미국과 유럽, 중국 시장을 장악한 덕분에 신입사원의 연봉이 3,800만 원 수준에 달하고 있었다.
경제가 바닥을 친 상황에서 그만한 일자리는 쉽지 않았다.
수어 과외 일은 김윤광의 이름을 팔지 않았다.
그건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예.”
“아이코, 이거 우리 오 주임이 복덩이구만. 외곽단체들과 관계 좋지, 민원인들 칭송 듣지, 옛날 같으면 공덕비라도 세워야겠네.”
“요즘이라고 못 세울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육 과장이 거들고 나왔다.
“아닙니다. 제가 잘한 게 아니고 많은 분들이 옆에서 도와주신 덕분이죠. 그래서 그런데 읍장님도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가지, 자네가 원한다면.”
“감사합니다.”
“우리 엄 팀장은?”
“아직 연가 중이십니다.”
“그 양반, 매년 찾아 먹는 생일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이럴 때 우리 오 주임 좀 잘 챙겨주지 않고.”
“저는 괜찮습니다.”
“알았어. 언제 출발인가?”
“30분 후에 주차장으로 내려오십시오.”
인사를 하고 읍장실을 나왔다.
“조 지국장도 오기로 했다고?”
복도에서 육 과장이 물었다.
“예, 그쪽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거 우리 오 주임 특진이라도 시켜야겠어?”
“별말씀을…….”
“아니야. 내가 여러 지표를 살펴보니 많이 개선되고 있더라고. 이게 다 오 주임의 분투 결과지 뭐겠나? 이장단 협력에 부녀회 협력에…….”
“차 준비하겠습니다.”
육 과장의 치하를 뒤로하고 민원실로 내려왔다.
특진?
그런 건 꿈도 꾸지 않았다. 경찰은 몰라도 지방 공무원 사회에서는 특진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다.
경도 역시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현 주임님, 읍장님이 30분 후에 내려오신답니다.”
경도가 현 주임에게 말했다.
“그래?”
그가 답했다. 약간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수어 통역을 하는 백지애는 경도 담당이지만 효자 손자 노성봉은 그의 담당이었다.
코로나 극성기 때 미담 기사로 소개가 되면서 여러 물품과 성금이 답지한 적이 있었다.
성금은 총 250만 원이었고 물품은 담요와 건강식품 등이었다.
현 주임과 함께 그 집에 다녀온 적이 있지만 어쨌든 그의 협력이 필요했다.
그때였다. 현 주임의 천이궁에서 번득임이 스쳐 갔다.
“……?”
“왜?”
현 주임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자, 자료. 연락은 미리 해놨으니까 다녀와.”
그가 노성봉의 자료를 내밀었다.
“주임님은요?”
“나는 긴급지원 출장이 두 건이나 있어.”
현 주임이 관용차 키를 들고 일어섰다. 같이 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뭐래? 시기하는 것도 아니고…….”
은빛이 현 주임 뒤통수에 눈총을 발사했다.
“바쁘셔서 그러잖아요?”
“바쁜 거 좋아하네. 오 주임이 잘 나가니까 배 아픈 거지. 현 주임님이 보기보다 쪼잔하거든.”
“선배님.”
“다녀와. 민원 오면 이 예쁜 선배가 잘 안내해 줄 테니까.”
“선배님뿐이네요.”
은빛에게 감사를 전하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현 주임이 차가 나가고 있었다.
‘전출…….’
현 주임의 천이궁이 떠올랐다.
윤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현 주임은 이번 인사에서 용포읍을 떠난다.
어쩌면 인사담당자에게 언질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럼 민지가 남는 건가? 그도 아니면 민지도 작업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최근 센터 직원들의 본청 출장이 잦아졌다.
경도처럼 끈 떨어진 9급이었다면 모를까 7급 정도만 되어도 나름의 인맥을 갖고 있다.
인사 때만 되면 이 다리 건너고 저 다리를 건너서 부탁을 넣는다.
집이 먼 사람은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고, 상사와 트러블이 있는 직원은 다른 부서로 가기를 원한다.
누구나 떠나고 싶어 하는 용포읍이다.
언질을 받았다면 후원이고 나발이고 다 귀찮을 수 있었다.
센터를 돌아본다. 건물 외관은 그럴듯하다.
그런데 왜 삭막한 직장이 되었을까? 다음번, 혹은 그 다음번 인사 때에는 누구든 오고 싶어 하는 곳.
그런 용포읍이 되기를 바라며 시동을 걸었다.
“지원은 어떻게 하기로 했나?”
뒷좌석에서 읍장이 물었다.
“생활지원금으로 500만 원에 특별한 선물이 있습니다. 지원금 전달은 읍장님이 수고를 좀 해주십시오.”
경도가 봉투를 읍장에게 건넸다.
“특별한 선물은 뭔가?”
“보건소 쪽에 연락해서 자문을 받았더니 꼭 필요한 게 세 가지더군요. 하나는 틀니인데 이건 할머니 정신이 온전치 못해서 사용이 어렵다는 결론이 났고 또 하나는 보청기인데 그것 역시 중증 치매 상태에서 적응하기는 어렵다더군요. 마지막 하나가 괜찮은 것 같아서 보건소 팀장님이 소개한 의료기상사에서 디스카운트 좀 받는 조건으로 구매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신경을 많이 썼군.”
“지원 물품이라는 게 늘 생필품 아니면 일방적인 것들 아닙니까? 기왕이면 니즈에 부합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화하는 사이에 노성봉의 집이 가까워졌다.
읍 중심가를 벗어난 외곽이었다.
도로변이라지만 초라한 옛날 주택이다.
그 앞에 노성봉과 할머니가 나와 있었다.
할머니는 낡은 휠체어에 앉아 있다.
“할머니, 읍사무소에서 오신 분들이세요.”
노성봉이 할머니 귀에 대고 속삭이자 할머니가 몇 개 남지 않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안녕하세요?”
경도가 인사하자 또 손자를 바라본다. 이제 보니 손자는 할머니의 통역이기도 했다.
손자가 설명을 하니 할머니가 꾸벅 인사를 한다.
“가끔 치매가 심해질 때가 있는데 오늘은 상태가 좋으십니다. 아마 선생님들 오시는 걸 아시는 모양이에요.”
노성봉이 착하게 웃었다.
할머니를 보니 효자 손자가 당연했다.
얼굴이 정면보다 뒤쪽으로 누었으니 효도를 받을 상이었다.
가난하지만 효자 손자가 있다. 억만금이 부러울 것 없는 노후였다.
보건소 간호사의 말로는 다행히 착한 치매라고 했다.
치매 자체가 심각한 것이긴 하지만 소위 벽에 똥칠을 하거나 배회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단지 상상 속의 친구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상을 보는 사이에 조경철이 도착했다. 방 기자도 동행이다.
“내가 강제로 소집했어. 이런 미담도 안 내주는 방송은 문 닫아야지.”
너스레를 떨더니 방 기자 등을 밀었다. 두 기자가 서두르자 경도가 살짝 막아섰다.
“선물이 도착하지 않았거든요.”
“선물?”
조경철과 방 기자가 고개를 들 때 차량이 등장했다. 그 차에 실린 것은 무선 전동휠체어였다.
“와아.”
노성봉이 넋을 놓았다. 그가 그토록 사고 싶었던 무선 전동휠체어였다.
이게 있으면 무선으로 할머니 휠체어를 운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간단한 일을 하면서 돌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선생님.”
그가 경도를 돌아보았다.
“시험 운전 안 하세요?”
경도가 그의 등을 밀었다.
그는 사실 경도와 동갑이었다. 선생님이라는 말도 좀 부담스러웠다.
“할머니, 기분 어때?”
리모콘을 조절하며 노성봉이 물었다.
할머니가 돌아본다. 그 미소가 어찌나 아이 같은지 경도 콧등이 시큰할 정도였다.
그 소박함은 노성봉의 관상으로 옮겨가 있었다.
‘왼쪽 이마의 점, 인중 코밑수염이 실하고 귀 아래의 턱뼈가 풍후하다?’
귀격 관상은 아니다. 재복이 있거나 관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장점이 있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작은 일에 만족할 줄 아는 데다 윗사람을 잘 수행할 상이었다.
김윤광의 얼굴이 떠올랐다.
특별한 인연은 이따금 중력처럼 서로를 당긴다.
경도가 김윤광에게 그랬듯, 김윤광의 운명이 노성봉을 당긴 것이다.
‘어쩌면 두 사람…….’
줄인 말은 더 생각하지 않았다.
찰칵찰칵.
방 기자와 조경철의 카메라는 할머니의 미소를 쫓느라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