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격 발족 OK 후원회-1> (72/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72화

20. 전격 발족 OK 후원회-1

-용포읍으로 와라.

태술은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경도는 농담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마치 판결을 내리는 판사처럼 엄숙하면서도 진지했다.

“그동안 직원들 등 처먹은 거 두 배로 기부하고, 뇌물 먹은 인간들은 다 징계위로 회부하고, 너도 양심껏 셀프 징계 처먹고 셀프 좌천. 그럼 내가 이 파일 비밀 보장하고 지워준다.”

“야, 오경도.”

“왜? 알짜 부서에서 놀다 보니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는 공무원으로 안 보이냐?”

“그건 아니지만…….”

“아니면 뭐?”

“나 감사실 직원이잖냐? 감사실 직원들은 읍면동으로 안 나가.”

“내가 오게 해줄게.”

“오경도…….”

“책임지고 오게 해준다고.”

“그것도 내 관상에 써 있냐?”

“당연하지.”

“내 관상에?”

“아니면 개박살이야. 네 이마의 천중에서 내려온 붉은 기색이 관록까지 물들였거든. 이런 경우에는 위에서 내려온 횡액을 맞게 되어 있는데 내가 묘수를 준거다. 운 좋은 줄 알아라.”

경도가 웃었다.

섬뜩해진 태술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아, 살짝 회의감이 드는 모양인데 만약 네가 용포읍으로 안 오면 그때도 내가 네 파일 없애준다. 그건 내 관상이 틀렸다는 뜻이니까.”

“…….”

“간다.”

태술의 천이궁을 확인한 경도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경도의 차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도 태술은 멍한 시선을 놓지 못했다.

첫째는 경도의 관상 위엄 때문이었다. 뇌물 먹은 타이밍을 맞추는 게 귀신 같았다.

그건 사실이었다. 태술은 이제 자신만의 비리 적발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소소한 비리를 적발하면 봐주는 대신 다른 사람의 정보를 받았다. 소실대탐 전법으로 나간 것이다.

그 결과 봉투가 들어왔다. 공무원이 공무원에게 봉투를 찌른 것이다.

피적발자의 약점이 있으니 먹어도 되는 돈이었다. 한두 번 하다 보니 이골이 났다.

피적발자는 자기 인맥이 되었고 봉투까지 챙기니 일거양득이었다.

두 번째는 용포읍 근무였다. 경도는 관상을 앞세워 장담을 했다.

그러나 태술은 현재 감사실에서 뜨는 직원이었다. 최고의 실적으로 고속승진까지 한 마당이었다.

감사실 직원들은 대개 자치행정과나 도시계획과, 기획예산담당관실 등으로 옮겨 다닌다.

한 번 진골이 되면 하자가 없는 한 5급까지는 진골로 살았다.

그런데 복마전의 용포읍이라니? 경도가 동영상을 깐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태술이 원한다 해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세 번째가 마음에 걸렸다. 그건 지금 감사실에서 벌이고 있는 은밀한 감사였다.

그 감사는 조기룡 팀장이 독단으로 수행 중이다. 그에 관련된 모든 것이 보안이었다.

게다가 그는 감사실에서 유일하게 태술과 거리를 둔 사람이었다. 혹시라도 태술에 관한 첩보가 그 귀에 들어갔다면……?

“…….”

태술의 촉각이 곤두섰다. 그라면 태술도 손 쓰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용포읍?

황당하다.

그러나 경도는 장담하고 있었다. 귀신 같은 관상을 앞세운 장담이다.

이렇게 되니 마구 비웃어준 미국 의사 수술 건이 실감 났다.

관상?

이놈이 이제 하다 하다 별짓을 다 하는구나 싶었던 태술…….

‘젠장.’

복잡한 마음에 술잔만 비어갔다.

“국장님.”

가는 길에 경도는 이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으로 오시게나. 우리 집사람도 자네가 보고 싶다고 하니.

“알겠습니다.”

방문을 허락받았다. 내친김에 칼을 뽑을 생각이었다.

인사 때문이었다.

인사는 정해진 날이 없다. 내일이라도 시장 지시가 떨어지면 시행해버린다.

그것만은 경도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권태술…….’

의기양양하게 사라진 태술의 얼굴이 떠올랐다.

읍면동을 우습게 아는 행태에 쐐기를 박을 기회였다.

친인척 빽 믿고 알짜부서의 온실에서 자란 인간에게 진짜 현장교육을 시키려는 것이다.

그걸 생각한 건 동영상의 한계도 있었다.

<작은 술병상자와 봉투>

경도의 관상과 결합하면 완벽한 증거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입을 맞춰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공무원 사회는 문제가 외부로 나가는 걸 싫어하는 생리가 있었다. 그러니 차라리 셀프 징계에 이어 셀프 좌천이 최선이었다.

엄 팀장 역시 태술에게 이를 가는 차였으니 그에게는 용포읍 행만 한 처벌이 없었다.

동시에 그 잘난 프라이드에도 빅엿을 먹이는 일이었다.

“오 주임님.”

문을 열자 사모님이 반색을 했다. 하지만 경도는 긴장 모드로 들어갔다.

이 국장에게 손님이 있었으니, 바로 감사팀장 조기룡이었다.

“나중에 소개하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군. 여기 오 주임이 이번 고위직 비리 소스 준 사람이고 조 팀장은 그 마무리를 한 사람.”

이 국장이 두 사람을 소개했다.

조기룡 팀장. 사진 말고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경도가 소파에 앉았다.

“소스가 기막히더군.”

조기룡이 웃었다. 경도는 꾸벅 인사로 답을 대신했다.

“자네들 덕분에 내가 짐을 덜었네. 시장님도 만족스러운 눈치시고…… 그런데 우리 오 주임은 어쩐 일로?”

“그게…….”

경도가 조기룡을 의식하자 조 팀장이 눈치를 알아차렸다.

“저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실은 감사실 직원 일입니다.”

경도가 조기룡을 말렸다. 그가 믿을만하다는 건 이미 관상으로 파악한 까닭이었다.

“우리 직원?”

“권태술이라고 아시죠?”

“알지. 자네는 어떤 사인가?”

“동기입니다. 아마 저희 용포읍으로 오겠다는 말을 꺼낼 겁니다. 인사팀에 말씀하셔서 저희 맞춤형 복지팀으로 발령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권태술이 용포읍으로?”

조기룡이 되물었다.

“그럴 리가? 그 친구는 우리 시 감사전문 인력으로 크려는 포부던데?”

“감사실 내부 감사는 끝났나?”

이 국장이 조기룡을 바라보았다.

“팀장급과 고참 7급들은 얼추 끝났습니다. 곧 나머지 직원들 실사에 착수할 겁니다만.”

조기룡이 답했다. 태술의 문제는 아직 개봉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네가 요청하는 것이니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이 국장이 경도에게 시선을 돌렸다.

“예.”

“그럼 그 자리를 자네가 맡아주겠나?”

이 국장의 딜이 나왔다. 경도로서도 뜻밖이었다.

“국장님.”

“앞으로 감사실은 우리 조 팀장 중심으로 운영될 걸세. 그렇지 않아도 조 팀장이 인재가 필요하다기에 자네 생각을 하던 차였네.”

“제 생각은 이미 말씀드린 것으로 압니다. 양해해 주셨지 않습니까?”

“아직도 그 결심 그대로다?”

“예.”

“그럼 대타라도 지명해 보게.”

“그러시다면 마지웅을 추천합니다. 그라면 공명정대한 감사직을 수행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지웅이면 우리 국 조직팀?”

“예.”

“허헛, 아무래도 내가 손해 보는 느낌인데?”

“죄송합니다.”

“알겠네. 자네가 말한 일은 내가 인사팀장과 함께 의논해 보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사람, 이 밤에 찾아와서 한다는 게 고작 동기 챙기는 일인가? 다음에는 자네부터 챙기게.”

“죄송합니다.”

“후원회는 잘 진척되고 있나?”

“내일 첫 모임을 가질 예정입니다.”

“기대하고 있겠네.”

“예, 그럼…….”

경도가 일어섰다.

“저도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조기룡도 함께 일어섰다.

‘권태술…….’

그의 일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용포읍으로 올까, 안 올까?

그걸 확인하려면 슬쩍 찾아가 천이궁을 보면 될 일이다.

이동이 확정되면 이마의 천이궁에 윤기가 비칠 일이다. 확인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 일은 관상보다 이 국장을 믿었다.

드륵.

중국집 내실 문을 열었다.

“……!”

경도가 걸음을 멈췄다.

중국집 내실 벽에 걸린 소박한 플래카드가 보였다.

짝짝짝!

박수도 쏟아졌다.

“지국장님?”

경도가 조경철을 바라보았다.

시간 때문이었다. 조경철이 알려준 시간은 7시 30분이었다.

현재 시각은 7시 5분, 25분이나 일찍 왔건만 내실 안에는 손님들이 가득 차 있었다.

“우리 관상박사님 입장하십니다. 박수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조경철이 분위기를 주도하자 박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참석자들의 면면이 보였다.

김병로 교수와 그의 아들 김윤광, 그의 형 김황로 사장…… 최현배 사장과 조승만 여행사 대표…… 홍상선 의원과 그의 지인에 이창교 국장, 육 과장…… 김재웅과 이장 두 명, 거기에 안선주와 장미순 외에 십여 명의 부녀회장들…… 오로의 문 여사와 방순호 기자, 심지어는 이유빈과 그녀의 지인들까지 와 있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마무리 참석자가 있었으니 은빛과 민지의 추가였다.

“우리도 와도 되지? 오 주임 팬이야.”

민지가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당연하죠.”

경도가 반색을 한다. 공무원이라고 해서 후원회에 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빠진 사람은 엄 팀장과 현 주임이었다. 엄 팀장은 생일 여행 간다며 며칠 연가를 갔고 현 주임은 여전히 관상에 관심이 없었다.

“자, 오늘의 주인공, 우리 관상박사님이 한 말씀 하시죠.”

조경철이 경도 등을 밀었다.

“이렇게들 와주시니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경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직도 말단 하위직에 불과한 경도였다.

그럼에도 뜨거운 지지를 받고 보니 콧날이 시큰해졌다.

짝짝!

김병로가 박수로 힘을 보탰다. 모든 이들의 박수가 물결처럼 이어졌다.

“고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나 미신으로 치부하는 관상입니다. 그걸 이렇게 믿고 지지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감정을 추스른 경도가 말을 이어갔다.

“후원회를 결성하게 된 건 여기 조경철 기자님의 조언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공무원 신분이다 보니 복채와 대립되는 위치라, 그렇다면 복채를 어려운 분들에게 공덕과 음덕의 마음으로 돌려주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도와주시니 저도 사명과 긍지를 가지고 자신의 운명을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관상으로 운명의 불을 밝혀드리며 진력해 나가겠습니다.”

“…….”

“후원회 결성과 더불어 여러분과 함께 뜻을 기리는 의미로 엄선한 두 분에게 음덕을 돌려드릴 생각입니다.”

경도가 사진을 뽑아 들었다.

“한 분은 수어 동시통역자십니다. 코로나 극성기 때 복지부 장관께서 우리 시의 국책기관 순시를 왔을 때 농인을 위해 마스크도 없이 수어를 무료 통역하다 코로나에 걸려 겨우 회생하신 분이죠. 당시 프리랜서라 자영업자에 속하니 긴급지원도 어려웠고 기증 물품 등으로 도움을 드렸지만 그 고마움을 다 기릴 수 없었습니다.”

짝짝.

박수가 경도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다음은 역시 코로나 때 효자 손자로 알려진 현담리의 주민입니다. 할머니가 코로나로 진단되자 격리병동에 들어가 목숨을 걸고 할머니를 돌보았죠. 당시 할머니는 중증 치매였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코로나를 떨치고 퇴원했지만 효자 손자가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으면서 실업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후 저희 센터에서 여러 방면으로 연결해 지원을 하고 있지만 충분할 리 없으니 후원금으로 지원해 아름다운 뜻을 기려보려고 합니다.”

짝짝.

“앞으로 후원회 살림은 여기 조 기자님께서 담당해 주실 겁니다. 적임자라 생각해 제가 부탁을 드렸으니 여러분이 박수로 힘을 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짝짝.

다시 박수가 나왔다.

고문에는 김병로와 용포읍장이 추대되었다. 조경철이 일어나 내빈들에게 인사를 했다. 조경철이 나와 후원회에 대해 간략한 보고를 했다.

기념촬영에 이어 식사가 시작되었으니 이 집의 주메뉴인 청양고추 짬뽕이었다.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관상박사님.”

후식이 나왔을 때 이유빈이 경도를 납치했다.

“탁 대표, 얘들아, 인사해. 내가 말씀드린 관상의 신 오경도 주임님.”

유빈이 경도를 소개시켰다.

“안녕하세요?”

대표와 지인들의 인사가 옥구슬처럼 굴러갔다.

“탁 대표, 그렇게 보고 싶어 하시던 관상의 대가가 이분이셔.”

유빈이 젊은 대표를 밀었다. 전에 유빈의 집에서 보았던 사진 속의 로드매니저 탁홍걸이었다.

“안녕하세요? 유빈 누나를 보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운명을 따라갔을 뿐입니다.”

경도의 답은 겸허했다.

“죄송한데 언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관상을 귀신처럼 보신다 하니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어려운 걸음 하셨으니 말씀만 하십시오.”

“여기 제 명함입니다. 괜찮으시면 이번 토요일 어떻습니까? 그때 제가 스케줄이 좀 비거든요.”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모시고 갈게요.”

유빈이 경도 팔짱을 끼었다. 그걸 본 은빛이 손나팔로 ‘파이팅’ 하며 놀렸다.

참담과 비운이 사라진 유빈의 표정은 생기와 끼가 넘치고 있었다.

“그럼 꼭 부탁드립니다.”

탁 대표는 몇 번이고 당부를 남겼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날 그가 넣은 후원금은 무려 1천만 원이었다.

은빛과 민지, 육 과장 등을 불러 유빈네 연예인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은빛은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오 박사님. 상의할 일이 좀 있습니다.”

내빈들이 하나둘 떠나자 김윤광이 다가왔다.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경도 역시 안계홍의 포터 선물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하기에 시간을 내게 되었다.

두근.

커피점에서 그를 마주 보기 무섭게 가슴이 뛰었다. 귀격의 관상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았다.

“신세 지는 김에 박사님 신안 신세를 한 번 더 지려고요.”

“말씀하십시오.”

“국회의원 출마 말입니다. 당에서 지역구와 비례를 저울질하는 모양인데 어디가 좋겠습니까?”

김윤광의 요점이 나왔다. 속삭이는 듯하면서도 청아하게 높아지는 음성이 듣는 경도를 녹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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