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069화
18. 당신, 고민 해결해 드려요?-3
달그락.
그녀는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이제 보니 한 모금도 넘기지 않은 잔이었다.
그 잔에 파문이 인다. 조카의 눈물이 떨어진 것이다.
출렁.
찻잔 속의 물과 함께 경도 심장에도 잔물결이 일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여자의 청초함 때문인지도 몰랐다. 사람의 동정과 연민을 사정없이 자극하는 것이다.
별수 없이 경도도 차만 비워냈다. 나중에는 빈 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아들을 낳아야 해요.”
조카가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왜죠?”
……라고 묻지 않았다. 경도는 그저 가벼운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부잣집 아저씨의 아들을 낳아주기로 했어요.”
톡.
이번에는 그녀의 눈물이 여러 방울 흘러내렸다.
씨받이, 요즘 말로 하면 대리모였다.
그제야 그녀의 참담함의 원인을 엿보게 되는 경도였다. 그런 이유였기에 간문에 반응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마는, 있는 모양이었다.
다시 관상이다. 산소를 호흡하듯 저절로 관상안이 작렬한다.
씨받이나 후처의 관상도 따로 있을까? 당연히 있다. 모든 생의 빅 데이터로 불리는 관상에 뒤틀린 삶의 궤적이라 해서 기록되지 않을 리 없었다.
상법에는 쌍꺼풀이 눈머리 쪽에서 떨어져 있거나 이마가 많이 튀어나오면 첩실의 상으로 본다. 하지만 이 여자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흔적이었다.
빛나는 22살. 명궁 위의 유년운기부위에 먹구름이 끼었을 뿐.
쏘아볼수록 감춰진 순백이 배어 나온다. 후처나 씨받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남자를 대운으로 끌고 갈 흙 속의 진주라는 게 옳았다.
“아저씨 말대로 엄마가 아파요. 얼마 전까지 파출부를 다녔는데 그 이사장님이 부자예요. 그런데 자식이 없어요. 사모님이 자궁이 망가져서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여자의 말이 가물가물 이어졌다.
“저하고도 몇 번 보았는데 나쁜 분은 아니에요. 아들을 낳아주면 3억을 주겠다고 했어요.”
톡.
다시 눈물이 떨어질 줄 알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녀가 감정을 추스른 것이다. 나약해 보이지만 결단력도 있었다.
“아들이 아니면…… 지우고 한 번 더 시도하자고 그래요. 그래서 엄마가 아는 분에게 연결해서 부탁을 한 거예요. 내가 아들을 낳을 수 있는지.”
“대리모라면 아들딸 선택이 가능하지 않나요?”
“대리모지만 인공수정법이 아니에요. 이사장님이 신분노출을 꺼리거든요.”
“…….”
경도 시선이 다시 출렁거렸다. 그렇다면 합방이다. 그렇다면 임신의 성공에서부터 아들딸의 점지까지 필요할 수 있었다.
“…….”
“…….”
다시 침묵이 흐른다.
“본인 생각은요?”
경도가 침묵을 밀어냈다.
“내 생각은 필요 없어요.”
“나는 필요해요.”
“……?”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이 완벽하게 보였다.
이제는 디테일이다. 왼쪽 이마의 오른편 구역에 붉고 기운이 퍼져 있다. 그 오른쪽 이마에는 점 하나가 중심을 잡고 있다. 첫 상괘대로 순수한 여자였다.
미릉골에서 코로 내려오는 어두운 기색은 아까 이미 파악했다. 오른쪽 보골의 월각 자리에 청색기운이 진하니 어머니의 병환도 맞았다.
일각은 대충 보고 넘어갔다. 아버지가 죽은 지는 10년도 넘은 것 같았다.
짙은 눈썹이 돋보이는 아안이다. 눈동자까지 크고 검으니 성품이 좋다.
아안은 눈두덩이 생동하는 눈이다. 눈꺼풀에 여러 겹의 주름이 있는 게 특징이다. 흑백이 분명하고 맑으니 심성이 착하고 총명하다.
이런 사람은 연구직이나 전문직으로 성공한다. 얼굴형 자체도 목형이라 성공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해력이 빠르고 집중력이 좋다. 학자로서 딱이었다.
이마의 점에 더해 왼쪽 입술에도 점이 새겨졌으니 남편에게 대운을 안겨줄 상이다. 당장은 초라하지만 신붓감으로 그만이었다.
3억을 말하니 재복궁을 살펴본다.
황금빛이 아른거린다. 가까운 시일 안에 돈 창고가 차게 된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와잠이 불편하다. 검푸른 기색이 맺혀 있으니 나중에는 몰라도 당장은 출산할 수 없었다.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인가요?”
“…….”
“상괘를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대답해 주세요.”
“네.”
“아픈 어머니를 위해서?”
“효녀는 아니에요. 하지만 엄마를 위해 뭔가를 할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도 돈이 좀 필요하기도 하고요.”
조각상 같은 무표정이다. 이제는 목소리도 담담해졌다. 초월적 자아도 엿보이는 여자였다.
-여자 좀 데려와 봐라.
느닷없이 어머니의 음성이 메아리쳤다. 만약, 경도가 그 어머니 앞에 여자를 데려간다면 이런 여자이고 싶었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상괘를 손에 들고 잠시 망설이던 경도, 결국 던져주고 말았다.
“내-년-에 아들을 낳을 수 없어요.”
내년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강하게 찍었다.
“안 된다고요?”
“네.”
“확실한가요?”
“네. 당신의 관상으로는.”
“그렇군요.”
한숨을 내쉰 조카가 맥없이 일어섰다. 꾸벅 고개를 숙인다.
“잠깐만요.”
“……?”
“당신이 아기를 낳아주려는 건 돈 때문이죠?”
“…….”
몸을 돌리던 조카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너무 뻔한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그 돈은 받을 수도 있습니다.”
경도가 설명을 붙였다. 앞뒤가 모순되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여자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죠? 그분의 옵션은 아들을 낳아달라는 거예요.”
“알아요. 하지만 당신의 목적은 돈이지 아들이 아니잖아요?”
“그분을 속이기라도 하라는 건가요?”
“관상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 아저씨가 좋은 분이긴 하지만 돈을 그냥 줄 사람은 아니에요. 나도 속이는 짓 같은 건 원하지 않고요.”
“알아요. 당신의 심성은 착하니까요.”
“……?”
“내 말은 이렇습니다. 당신의 관상상, 근자에 재물이 생길 것 같습니다. 다른 곳에서 들어올 데가 없다면 그분이 답을 쥐고 있을 겁니다. 설마 로또가 맞을 리 없잖아요?”
“그런 건 사지도 않아요.”
“압니다. 그 돈은 역시 남녀 관계에서 오는 재물입니다.”
“무슨 뜻인지 쉽게 설명해 주세요.”
“그분의 관상이 필요합니다. 거기 답이 있을 겁니다.”
“저보고 모셔오라는 건가요?”
“사진이면 됩니다.”
“사진?”
“네.”
“사진은 엄마에게 있어요. 얼마 전에 그분 부부와 만났을 때 찍었다며 보여줬거든요.”
“그것 좀 부탁해요.”
“아저씨…….”
그녀가 주저한다. 착한 마음 때문이다. 하긴 이 여자가 먼저 무슨 수를 내달라고 한다면 그대로 외면했을 경도였다.
“그분에게 사기를 치자는 게 아닙니다. 당신 상에는 내년 출산이 없어요. 그런데 남자에게 들어오는 재물은 보입니다. 어차피 어렵게 나를 찾아온 거 아닌가요? 끝은 보고 가야죠.”
“…….”
“말단이지만 공무원입니다. 사기 같은 건 치지 않아요.”
경도가 공무원증을 꺼내놓았다.
그제야 조카가 핸드폰을 꺼냈다.
“엄마, 난데…….”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잠시 후에 사진 두 장이 들어왔다.
그녀의 어머니와 저쪽 부부가 찍은 사진이었다.
“…….”
경도가 침을 넘겼다. 그녀 재복궁에 비친 재물의 근원이 거기 있었다. 남자의 눈과 명궁이 답을 주었다. 남자는 거북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악한 인간이 아니다. 복주머니를 뜻하는 성낭비 코를 가졌으니 재복이 풍성하다. 그러나 그 운이 끝나고 있었다. 코와 귀가 시들고 콧방울에 구름이 드리웠다.
두 번째 사진에서 명쾌하게 확인이 되었다. 명궁에 먹구름이 낀 것이다. 북망으로 갈 날이 박두했다는 암시였다.
“계약이 나흘 후죠?”
경도가 물었다. 그녀의 유년운기부위에 기록된 최근 운명은 아까 읽어둔 참이었다.
“제가 얘기했나요?”
그녀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 정도는 관상으로 알 수 있어요. 이 계약 내일 당장 치르세요.”
“아저씨…….”
“그 돈으로 어머니 치료한 후에 해외로 공부하러 갈 생각인가요?”
“어머.”
여자가 놀랐다. 정곡을 찔린 것이다.
“해외로 가는 게 맞습니다. 당신은 좁은 물에서 놀면 안 돼요. 천리마가 광야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 말은 엄마에게도 한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하세요. 내일 당장, 그리고 임신가능기간이 언제죠?”
“일주일 정도 남았어요.”
“디데이는 그날로 잡아주세요. 그러기만 하면 됩니다.”
“아저씨.”
“아버지 제사가 보름 전쯤이었죠?”
“…….”
“아버지가 주시는 선물로 생각하고 계약을 하세요. 돈은 계약할 때 다 받으시고요.”
“돈은 문제없어요. 마음의 결정만 하면 언제든 주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럼 됐습니다. 내일, 잊지 마세요.”
“…….”
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 안에 숨은 순수함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그 마음…….
그녀를 두고 일어섰다.
“두나야.”
경도가 나오자 이모가 안으로 걸었다. 그녀의 이름은 두나인 모양이었다.
그녀가 다가와 봉투를 내밀었다.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는다. 받지 않으면 밤이라도 샐 태세였다.
그래서 받았다.
그녀가 경도에게 꾸벅 허리를 조아렸다. 흰 매연을 뿜어대는 낡은 차와 함께 그녀가 멀어졌다. 하늘로 올라가는 매연의 꼬리에 그녀의 얼굴이 피어올랐다.
두나.
처음 본 여자였다. 그럼에도 강력한 울림이 심연 속에 남았다. 김윤광과 함께 뼈에 새겨지는 관상이었다.
경도가 내준 상괘는 남자의 운명에 기댄 것이었다. 튼튼한 성낭비에 금이 갔다.
그의 부귀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그로 인해 명궁에 구름이 끼고 귀까지 시들었다. 최근에 찍은 사진이었다. 그렇다면 남자의 목숨은 길어야 나흘 정도 남았다.
부인의 관상도 한몫을 했다. 그녀 역시 모질지 않았으니 남편이 이런 식으로 내준 돈을 회수할 사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니 누군가 부추길 사람도 없었다.
두나는 내일 계약을 할 것으로 보였다. 헤어지기 전에 바라본 그녀의 재복궁에 황금빛 윤기가 진해졌기 때문이다.
넋을 놓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I miss~]
“박사님.”
안선주였다.
-어떻게 일은 잘 끝났어요?
“예, 잘 들어가셨나요?”
-아유, 나는 오는 길에 아까 멤버들에게 붙잡혀서 노래방까지 다녀왔어요.
“재미있으셨겠네요?”
-재미는요, 멤버들에게 다구리 당했잖아요? 오 주임님 안 모시고 왔다고.
“예…….”
-그런데…… 제가 물어볼 말은 아니지만 그 사람들 어때요? 궁금해서 친구에게 물어봤는데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고 그래요. 엄마가 아파서 그렇지 딸도 착하고 똑똑하다고 하고…….
“별거 없었습니다. 뭐하면 성공할까 뭐 그런 거죠.”
-아유, 상괘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 애가 지 엄마 걱정해서 해쓱한 거 보니까 내 마음이 다 안 좋더라고요.
“잘될 겁니다. 초년고생이지만 이후 운은 좋은 아가씨였어요.”
-정말요? 다행이다.
“그럼 쉬세요.”
-그래요. 오 주임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전화를 끊고 차에 올랐다.
봉투는 지극 정성이었다. 5만 원권 네 장을 금빛 한지로 곱게 감싸놓았다. 그 각은 슬프도록 반듯했다.
한지에서 맑은 향이 배어 나왔다. 향이 경도 머리를 쪼았다. 두나의 일은 김윤광의 관상처럼, 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사에는 예약도 없이 마가 낀다.
경도의 다음 날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