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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고민 해결해 드려요?-1> (67/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67화

18. 당신, 고민 해결해 드려요?-1

쓰나미가 밀려왔다. 물결의 시작은 현필재 소장의 사망소식이었다. 다행히도 밀월여행 같은 것은 아니었다.

수년 전, 한 사무관이 같은 과 여직원과 밀월여행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인해 밝혀진 적이 있었다. K시가 쑥대밭이 되었다. 그 파국은 면한 것이다.

현 소장은 지병이 있었다. 악성 피부병을 20여 년 달고 살았다. 그렇기에 복지국장을 내놓고 상하수도사업소장을 자청한 그였다.

이번 연가는 온천이었다. 피부병에 좋다는 곳에서 쉬려던 계획이었다. 그러다 드라이브를 나간 길에 졸음운전을 하던 덤프와 충돌하면서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장례가 끝나고 나흘 후, 저승사자가 떴다. 배문환 국장이 전격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표면상의 이유는 후배들을 위한 용퇴였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런 인품이 아니었다.

결국 그의 비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환경사업체들과의 결탁이었다. 골프 클럽에서 만난 사업가들과의 친분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들은 계획적이었으니 처음에는 내기 골프에서 져주는 것을 시작으로 가족들의 편의까지 봐주면서 이권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배 국장이 선을 긋기에는 너무 늦었으니 그들이 대주는 용돈의 맛에 젖은 것이다.

주머니에 꽁돈이 들어오니 할 짓은 도박과 여자뿐이었다. 도박은 내기 골프로 즐기고 여자에게 빠졌다. 가까운 인근 F시의 비즈니스클럽의 여자종업원에게 홀려 버린 것이다.

이 국장의 밀명을 받은 조 팀장은 그날부터 배 국장을 미행하며 감시를 했다. 사업가들과 빈번하게 만났고 그때마다 품위유지비에, 양주 등의 선물들로 트렁크가 채워졌다.

당연히 배 국장의 상간녀 원룸도 파악되었고 그녀의 사진까지도 입수가 되었다.

“……!”

감사실 조 팀장이 자료를 내밀었을 때 배 국장은 뒷덜미를 잡고 넘어갔다. 그는 고혈압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조 팀장은 진퇴 여부를 배 국장에게 맡겼다. 배 국장은 그 의미를 알았다.

퇴직금을 보장받을 테냐? 아니면 수사를 받을 테냐?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선택할 길은 하나뿐이었다.

“누구야?”

선택 직전에 배 국장이 물었다. 그도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었다.

국과장을 쳐내기 곤란할 때 이런 방법을 쓴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자신이 타깃이 된 것만을 몰랐을 뿐이었다.

“요즘 우리 시 분위기가 안 좋지 않습니까? 시장님과 부시장님 밀명으로 국과장단 전체를 대상으로 은밀하게 조사하던 중이었습니다.”

조 팀장의 답은 냉철했다.

“사표 내지.”

그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한영록 주무과장님 말입니다.”

“한 과장?”

“제가 통보를 할까요? 아니면…….”

조 팀장이 사진을 뒤지니 아래쪽에서 그의 사진이 나왔다. 역시 내기 골프를 치는 장면에 고급 술집에서 향응을 받고 여종업원을 끼고 나오는 그림이었다.

“나만으로 부족하단 말인가?”

“경찰이 개입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껏 몸담았던 조직인데 뒤집히는 건 원치 않겠죠?”

조 팀장의 압박이 강도를 높였다.

“내 심복이니 내 손으로 처리하라?”

“…….”

“그렇게 하지.”

“고맙습니다.”

형식적인 인사를 한 조 팀장이 일어섰다. 이 국장에게 떨어진 특명이, 경도의 손을 거쳐 조 팀장의 선에서 마무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배 국장이 밀려나니 그의 수발이던 과장도 사표를 내게 되었다. 그 역시 내기 골프에 연관이 되었고 수차례 향응을 받은 까닭이었다.

정년을 맞는 사무관이 둘 더 있었으니 국장 두 자리에 사무관 다섯 자리가 비게 되었다. 마침내 정기인사의 사이즈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4급 서기관 두 자리.

-5급 사무관 다섯 자리.

이 정도면 최근 인사 중에서는 유례없이 큰 규모였다. 5급 밑으로 6급 승진도 다섯이니 K시의 공무원들이 술렁일 것은 자명했다.

이튿날 아침, 경도 핸드폰이 울렸다. 베란다에서 관상 공부를 하던 경도가 전화를 받았다.

“이 국장님?”

-식사 중인가?

“아닙니다. 말씀하십시오.”

-배 국장 사표가 나왔네. 자네 말대로더군.

“다행이군요.”

-시장님이 뻑 가시더군. 현 소장과 배 국장을 찍어줬으니 말이야.

“…….”

-우리 조 팀장도 혀를 내둘렀네. 대체 누구의 제보인데 그렇게 정확하냐고?

“…….”

-고맙네.

“아닙니다.”

-오늘부터 시가 좀 시끄러울 걸세. 이제부터 정기인사의 그림이 그려질 테니 한동안 달 말들이 많을 테지. 운동도 집중될 테고.

“…….”

-자네는 자네 할 일만 하고 있게. 약속한 선물은 내가 책임질 테니.

“시정에 바쁘실 텐데 선물 약속 같은 건 잊으셔도 괜찮습니다.”

-우리 조카 신세까지 졌는데 나보고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란 말인가?

“그 복채는 따로 받았습니다.”

-돈 몇십만 원으로 운명의 예지를 살 수야 없지.

“…….”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게.

딸깍.

이 국장의 전화가 끊겼다.

“유후!”

주먹으로 허공을 후려쳤다.

또다시 적중이다. 로또 번호의 마지막이 맞는 기분이었다.

이 죽여주는 기분을 누가 알까? 아니다. 알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싸목 할아버지가 뿌려진 서쪽 바다를 향해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거참.”

최근 들어 엄 팀장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오늘도 수십 번은 그랬다.

현 소장이 사망하고 배 국장이 사표를 낸 후로 그의 일과는 인사정보를 취합하는 것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핸드폰을 붙잡고 살았고 오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하긴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현 주임조차 인맥을 동원해 인사이동 동향을 점검했고 민원실장과 주임도 다르지 않았다.

복마전의 용포읍이다. 이번 기회에 기필코 센터를 떠나야겠다는 일념으로 라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과원들은 과장을 찾아가고 읍장을 찾아가 독대를 했다.

-다른 부서로 가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그들의 일념은 한결 같았다.

그 오후에 육 과장이 경도를 불러냈다. 센터 뒤편의 화단이었다.

“다들 뒤숭숭한데 시청 들어갈 생각 없나?”

“없습니다.”

경도가 잘라 말했다.

“알았네. 이 국장님에게 들었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육 과장이 경도 어깨를 쳐주고 돌아섰다. 이후로는 다시 묻지 않았다.

그러나 시에서는 이렇다 할 찌라시가 돌지 않았다. 오히려 시장은 6급 이상의 간부회의 때 젯밥에 신경 쓰지 말고 업무기강 확립에 최선을 다하라는 엄포를 놓았다. 인사는 시정이 안정된 후에 하겠다는 공언이었다.

뚜우뚜우.

화요일 오후, 은빛 앞의 전화기가 울렸다.

“오 주임, 전화.”

은빛이 전화를 경도에게 돌렸다.

“감사합니다. 용포읍…….”

-오 주임님, 나예요 부녀회장 안선주.

안선주의 말이 경도의 관등성명을 막았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오늘 약속 알죠?

“그럼요.”

-아유, 난 또 요즘 일이 많아서 혹시 잊어버렸을까 봐…….

“저녁에 뵙겠습니다.”

안선주를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 한 통이지만 완전 반전이다. 전 같으면 경도가 먼저 전화를 해야 한다.

“회장님 오늘 저녁 회의 아시죠?”

“아유, 또 회의야?”

“죄송합니다. 참석 부탁드립니다.”

“알았어요. 이따 봐서 안 바쁘면…….”

그때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하게 변했으니 경도가 갑으로 대우받고 있었다.

센터의 직원들도 그 눈치를 챘다.

따라서 자연 경도의 입지가 올라갔다. 센터의 업무는 그 어느 누구도 이장단과 부녀회를 제치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가서 잘 좀 구워삶아.”

퇴근 무렵, 엄 팀장이 경도에게 말했다. 가벼운 인사를 하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녀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은 계곡이 가까운 해물파전 전문점이었다.

“오 주임님.”

경도가 문을 열자 안선주가 자지러졌다. 아직 코로나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식당들이다.

눈치를 보니 안선주 일행이 실내를 통째로 빌린 모양이었다. 손님은 테라스에 두 팀뿐이었다.

“뭐 해요? 우리 관상박사님 오셨는데 박수.”

안선주가 바람을 잡는다.

“환영합니다, 오 주임님.”

“여기 자리 비었어요.”

“아따, 나도 젊은 피 옆에 좀 앉아보자고요. 여기, 여기…….”

부녀회장들은 걸쭉한 입담으로 경도 쟁탈전을 벌였다.

원래도 말이 많을 중년 나이의 할줌마들이다. 부녀회장을 맡을 정도면 외향적인 성격이 많았으니 얌전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참석자는 모두 12명이었다. 과장도 아니고 국장도 아닌 말단 공무원의 승진을 이렇게 챙겨주니 고마울 뿐이었다.

“너무 고맙습니다.”

정중히 인사부터 했다.

“고마우면 관상 좀 봐줘요. 우리 왕회장님 말씀이 관상박사시라던데?”

승천리 부녀회장 장미순이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나왔다.

“자기들, 그런 얘기 안 하기로 했잖아?”

부녀회장이 권위를 부려보지만…….

“그래도 궁금하잖아?”

장미순은 꺼낸 말을 담지 않았다.

결국 추첨으로 한 사람 봐주기로 결정했다. 경도도 각오하던 바였다.

“자기들, 내가 엊그제 하나로일보 지국장님 만났는데 우리 오 주임 관상 후원회 만들 예정이래. 오늘 상괘에 반하면 다들 가입하는 거 알지?”

고맙게도 안선주가 밑밥을 깔아주었다.

“알았어. 호박신녀보다 나으면 내가 정기 후원한다.”

“나도.”

부녀회장들이 기치를 높였다. 이렇게 되면 경도에게도 동기부여가 될 수밖에 없었다.

“5번.”

안선주가 가져온 주머니 속에서 경도가 종이 한 장을 뽑았다. 그러자 장미순이 좋아서 펄쩍 뛰었다.

“뭐야? 이거, 주최 측의 농간 아니야?”

선정에서 떨어진 부녀회장들이 볼멘소리를 내지만 분위기는 더 무르익어갔다.

“혹시 사진으로도 관상이 가능한가요?”

장미순이 물었다.

“예, 최근 것이면 더 좋죠.”

“내가 궁금한 건 이 인간 관상이에요. 엊그제 찍은 거니까 좀 봐주세요.”

장미순이 사진을 꺼내놓았다. 척 봐도 상인이었다.

“장사하는 분이시군요? 뭘 봐드릴까요?”

“어머, 귀신. 이 인간 우리 가게 앞에다 가게 차린 인간인데?”

단 한 마디로 장미순의 기선이 제압되었다.

“진짜야? 어머 웬일이니?”

부녀회장들이 가까이 몰려들었다.

“우리 가게가 좀 되는 편이었는데 이 인간이 온 후로 파리 날리기 시작했어요. 우리 가게가 보통 터가 아니거든요. 거지가 얼어 죽은 거지명당이라 왕포급으로 쏠쏠했어요.”

장미순의 입에서 풍수 용어들이 나왔다. 다들 못 알아듣지만 경도는 알았다.

관상은 풍수와 통한다. 사주와도 통한다.

“거지명당이면 바위명당하고 같이 양대 명당으로 통하는 곳이군요. 주역의 길흉회인, 관상의 귀격 빈격 천격 흉격처럼 풍수는 삼왕의 땅으로 왕지 왕포 왕재를 논하니 안 봐도 명당이겠군요.”

“아유, 이 분이 관상만 잘 보는 게 아니시네?”

장미순이 무릎을 치며 말을 이었다.

“그런 우리 가게가 이 가게가 들어온 후로 내리막이에요. 그 명당이 잘못될 리는 없으니 내 생각에는 이 주인의 관상이 나보다 세서 눌리는 거 아닌가 싶던 차에 우리 왕회장님이 관상 자랑을 하길래 한번 찾아뵐까 생각하던 참이랍니다.”

“이분이 좋은 상인 건 맞습니다. 코뿌리가 낮고 끝이 둥그니 금전운이 있고 둥근 눈의 꼬리가 잘려나간 듯하니 예지력도 있습니다. 게다가 얼굴까지 둥그니 손님과 거래처에서 신용이 두터운 상입니다.”

“아이고, 딱이네, 딱이야. 안 그래도 내가 여기저기 좀 알아봤더니 이 인간 신용이 그렇게 좋더라고.”

장미순의 탄식이 쏟아졌다.

“우리 장 회장이 관상에서 밀리는 거야?”

부녀회장들이 중얼거렸다.

“아닙니다. 회장님은 미간이 좁은 데다 복코인 사자코를 가졌고 금갑 또한 탄력이 있으니 사업가로 빠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귀격 귀에 윤기가 흐르니 상승운이라 관상에서는 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혹시 종업원 쓰고 있습니까?”

“3명 있어요.”

“사진 있나요?”

“있어요. 지난주에 파이팅하라고 회식시켜 주면서 찍은…….”

장미순이 화면 속의 파일을 열었다.

“원인은 여기 있었군요.”

경도가 사진 속의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장미순과 부녀회장들이 이목이 쏠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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