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명을 받았습니다-4> (66/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66화

17. 특명을 받았습니다-4

“사망?”

“예.”

“죽는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오 주임.”

“죄송합니다.”

“허어.”

“…….”

이 국장이 현필재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믿기 어렵다는 눈치다. 부정부패도 아니고 사망진단을 내려 버린 것이다.

“현 국장이 죽는다?”

“내일 저녁까지 기다려 보시면 되겠습니다.”

“시간까지?”

“사진으로 본 것이라 몇 시간 정도는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배문환 국장만 체크하면 될 일이군?”

“예.”

“아무래도 내가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군.”

이 국장이 경도를 위로했다. 사망 이야기가 나오니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관상에는 천격과 귀격이 있으니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정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자네 수고는 잊지 않겠네.”

“그런데 혹시…….”

경도가 화제를 돌렸다.

“할 말이 있으면 편하게 하시게.”

“배 국장님 비리확인 말입니다. 감사실에 맡긴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네만.”

“노파심에 묻는 건데 설마 권태술 주임은 아니겠지요?”

“아, 자네 동기? 왜? 그 친구에게 맡기는 게 좋겠나?”

“아닙니다. 혹시나 해서요.”

“조기룡 팀장이라고 8급 때 내가 2년 반 데리고 있던 친구가 있네. 그 친구에게 맡길 거네만. 말 나온 김에 자네가 관상 한번 봐주게. 이제 보니 마무리에서 일을 망칠 수도 있겠군.”

이 국장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턱관절 쪽 살집이 풍부하니 정직한 사람이다. 게다가 윗사람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다.

이 국장의 사람 보는 눈은 알아줘야 할 것 같았다. 육 과장에 이어 일 제대로 할 사람이었다.

“맡기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보게나. 자칫 자네 목을 칠 수도 있어.”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경도의 상괘는 흔쾌했다.

“고맙네, 수고했어.”

이 국장이 격려에 피로가 풀렸다. 그렇게 일어서려는데 저만치서 쭈뼛거리는 사모님이 보였다.

할 말이 있는데 차마 나서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침의 일이 생각나 사모님을 모셨다.

“괜찮겠어요? 두 분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사모님은 이 국장 눈치를 보았다.

“괜찮습니다.”

경도가 웃으니 이 국장도 눈총을 주던 시선을 거두었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내 동생 부부가 사고로 죽는 바람에 그 딸을 우리가 키워서 결혼을 시켰어요. 그런데 최근에 부부 사이가…….”

“사진이 있나요?”

“사진이 아니고 직접…….”

“그럼 모셔오세요.”

경도가 말했다. 사모님은 가벼운 걸음으로 안방으로 달렸다.

“안녕하세요?”

잠시 후에 젊은 여자가 나왔다. 유년운기부위를 보니 서른여섯이었다.

“거 너무 오래 붙잡고 있지 말아요.”

이 국장은 주의를 환기시키고 서재로 들어갔다.

“미안해요.”

사모님이 또 한 번 얼굴을 붉힌다. 염치를 아는 사람들이니 경도는 불편하지 않았다. 이런 분들을 그냥 두고 가면 오히려 마음이 찝찝해질 것 같았다.

“말씀드려. 이분이 어려 보이지만 관상의 대가셔.”

사모님이 조카를 재촉했다.

“그게…….”

조카는 얼굴을 붉힌다. 그녀에게는 오히려 경도가 젊은 것이 부담인 것 같았다.

“이혼하세요.”

그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경도의 상괘가 먼저 나가 버렸다.

“예?”

조카가 고개를 들었다.

“부부궁에 이혼물이 들었습니다. 남편 사진 있으면 줘보세요.”

“여기…….”

조카가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이 사람은 이미 다른 여자와 동거 중이에요.”

오래 살필 것도 없었다. 부부궁 간문의 기색이 턱의 지각까지 물들였으니 동거가 분명했다.

그 증거는 명문에도 있었다. 불그레한 기색이 완연하니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이다.

“남편이 이혼 요구하죠?”

“네…….”

“남편이고 아내고 둘 다 부부궁에 푸른 물이 들었어요. 이러면 영락없이 이혼인데 남편은 부부궁이 잘 발달한 데다 그 기색이 광대뼈까지 내려옵니다. 이 사람은 최소한 여자를 세 번은 갈아치워야 될 사람이에요. 당신이 두 번째네요.”

“네? 두 번째요?”

옆에 있던 사모님이 경기를 했다.

“얘, 그건 아니잖아?”

“…….”

조카에게 묻지만 대답하지 않는다. 조카는 한숨을 쉰 후에야 모깃소리만 하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미안해요, 숙모님. 실은 나 만날 때도 다른 여자와 동거 중이었어요.”

“뭐야?”

“그 여자한테는 코를 꿴 거라고 이제부터 평생 나만 바라보고 살 거라기에 믿었었는데…….”

조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아유, 이 미련탱이야. 그럼 그때 말을 했어야지.”

사모님이 조카 등을 쳐보지만 속절없는 질책일 뿐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니까요.”

경도가 위로를 주지만…….

“돌아보면 그렇긴 하지만…….”

그녀에게는 미련 같은 게 남은 모양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여난이나 여색 같은 건 쉽게 바뀌지 않아요. 그리고 남편분의 여자는 근래에 생긴 것도 아닙니다.”

“그럼?”

“결혼한 지 4년 차죠?”

“예.”

“결혼하고 6개월 후쯤부터 만난 여자 같습니다.”

“아니, 그럼 신혼 때부터 바람을 피웠단 말이야?”

사모님의 핏대가 극한까지 올라갔다. 조카는 다시 침묵이다.

골똘한 것으로 보아 짚이는 곳이 있는 눈치다.

“어우.”

계산이 맞아떨어지니 자기 가슴을 두드리는 조카였다.

“이혼을 주저하는 건 아기 때문이죠?”

“아기요?”

상괘가 나가기 무섭게 사모님이 또 한 번 경악했다.

이번에는 조카도 그랬다. 그녀가 임신을 안 것을 고작 나흘 전이었다.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사실까지 읽어낸 경도였다.

“세상에…….”

조카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숙모가 강권하길래 거절하기 어려워 잡혀 온 몸이었다. 그런데 이건 족집게가 아니라 아예 현미경이었다.

“너 임신이야?”

사모님이 캐묻는다. 조카는 고개를 떨군 채 울음만 삼켰다.

“몇 달이야?”

“생리가 나올 때가 지나도 안 나오길래 검사를 받았더니…… 3주차래요.”

“안 되겠다. 아이부터 당장 지우자.”

사모님이 더 흥분하고 나섰다. 여자들로 하렘을 이루려는 조카사위였다.

생각만 해도 혈압이 오른다. 그런 인간의 씨앗이라고 하니 치가 떨리는 것이다.

하지만 경도의 상괘는 또 한 번 사모님을 경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이는 낳으셔야 합니다.”

“예?”

사모님이 경도를 돌아보았다. 조카도 그랬다.

그녀 역시 유산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혼 상괘까지 던진 경도가 모순된 길을 제시한 것이다.

“아기를 낳으라고요?”

반응은 사모님이 더 격렬했다. 그러잖아도 애틋한 조카였다. 이제 이혼까지 할 마당인데 출산이라니?

“흥분하지 마시고 들어주세요. 이유가 있습니다.”

경도가 운을 떼자 사모님이 한숨을 죽였다.

“제가 임신을 안 것은 부부궁의 찰색 때문입니다. 오른쪽에 윤기가 맺혔으니 여자아이를 낳을 겁니다.”

“……?”

조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임신 초기이기에 병원에서도 모르는 성별이었다.

그럼에도 경도가 허튼소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나온 상괘의 위력 덕분이었다.

“관상에는 삼양삼음이라는 게 있습니다. 눈의 상하좌우와 귀, 머리카락에 윤기가 나면 귀한 아이라는 뜻이지요. 그 아이는 조카분에게 남편이 줄 행복의 열 배 이상의 기쁨을 줄 겁니다.”

“…….”

“다행히 조카분의 코가 바르고 관골이 높습니다. 이는 중년에 성공하는 상이니 고난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남편은 어차피 조카분의 사람이 아니었으니 조카분의 사람으로 온 아기는 거두는 게 순리입니다.”

“…….”

“제 상괘는 끝났습니다.”

경도가 일어섰다. 이런 분위기는 알아서 피해주는 게 상책이었다.

조카는 움직이지도 못한다. 경도의 상괘에 넋이 나간 것이다.

“이거 죄송해서…….”

사모님이 따라 나오며 고개를 숙였다.

“면목 없네.”

이 국장도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몇 푼 안 돼요. 성의로 알고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사 마셔요.”

사모님이 봉투를 밀어 넣었다. 거절을 했지만 워낙 완곡하니 받아들고 말았다.

“조심해서 가시게.”

이 국장은 주차장까지 따라 나왔다. 시동을 걸고 출발할 때였다.

조카가 달려 나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그녀도 경도의 상괘를 수용한 것이다.

경도 역시 예를 갖춰주고 아파트를 나왔다. 봉투를 보았다. 3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에게 용돈으로 보내야겠다. 동네 할머니들에게 한턱이나 내시라고……’

복채라는 말에 어울릴 것 같았다. 그 복은 점을 뜻하는 복(卜)이지만 그렇게 하면 복을 뜻하는 복(福)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경도는 조카가 뜻을 받아들인 것으로 만족했다. 번외였지만 사람 목숨 하나 살린 셈이었다.

‘이러다가 자칫 지구를 구하겠네?’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은 미친 듯이 바빴다. 이장단에 연락을 하고 부녀회장들에게고 연락을 했다. 수당 하나만 신설되어도 센터는 전쟁통으로 변한다.

당장 문의 전화부터 빗발쳤다. 전화는 주로 50대 이상에서 많이 사용한다. 젊은 민원들이 게시판이나 앱,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세월은 변했지만 기성세대들 중에는 여전히 대면적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많았다.

“오 주임님.”

점심시간이 가까울 무렵 부녀회장 안선주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인사에 직함은 빼먹지 않았다. 작은 것이지만 그들은 그걸 좋아했다.

“아유, 승진하더니 너무 보기 힘들어. 저번에도 왔더니 없고…….”

“죄송합니다. 꽃은 고마웠습니다.”

“그거야 뭐 전화로 인사받았으니까 됐고…… 긴급 수당을 또 준다고?”

“그렇다네요.”

“우리는 또 열외지?”

“죄송합니다.”

“정부에 건의 좀 해요. 맨날 수입으로 사람 편 가르지 말라고. 언 놈은 평생 세금만 내고 혜택은 열외고.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알겠습니다. 제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려보겠습니다.”

“진짜?”

“네.”

“됐어요. 그러다 오 주임 잘리면 나만 손해지.”

“아무튼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기억하죠? 저번에 그 문 여사님?”

“반전 관상을 가지신 분 말이죠?”

“이거 그 집 가정부가 보낸 건데 받으세요.”

안선주가 내민 건 생강청이었다.

“이렇게 귀한 걸 왜?”

“그때 오 주임님이 관상 봐줬잖아요? 그 여자가 공덕 쌓기에 재미를 들였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다지 뭐예요? 이번에 아들이 5수 끝에 지방공사 공채에 합격을 했대요.”

“아이코, 그럼 제가 축하를 해야죠.”

“진짜 어쩌면 그렇게 용하대요?”

“제가 아니고 공덕 덕분입니다.”

“거기 문 여사님이 근자에 곧 방문하실 모양이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말 나온 김에 날이나 잡아주세요. 내가 승진턱 내드린다고 했던 거 기억하시죠?”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럼 이번 일 대충 협조해도 되는 거예요?”

“아닙니다. 날 잡겠습니다.”

“다음 화요일 어때요?”

“시간 비워두겠습니다.”

“그런데…… 손님 한두 명 따로 초대해도 되겠어요?”

부녀회장이 은밀하게 물었다. 보나 마나 관상이다. 어차피 인맥관리를 해야 할 사람이니 수락해 주었다.

“그럼 다음 화요일에 뵈어요.”

안선주는 가벼운 걸음으로 센터를 나갔다.

분주한 업무는 오후로 이어졌다. 점심시간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전화로도 모자라 직접 달려온 어르신들 때문이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건 생각 외로 힘들다. 그나마 은빛이 지원을 해줘서 숨은 쉴 만했다.

그렇게 깊어가던 오후에 엄 팀장 핸드폰이 울렸다.

“뭐야?”

전화를 받던 엄 팀장 목청이 튀어 올랐다. 소리가 너무 크니 민원실 전 직원이 돌아볼 정도였다.

“그게 정말이야? 정말이냐고?”

몇 번을 되묻던 엄 팀장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팀장님.”

민지가 엄 팀장에게 다가섰다. 식은땀에 젖은 엄 팀장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현필재 상하수도사업소장님이 연가 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데?”

“예?”

민지가 놀라는 게 신호였다.

따르릉.

삐리리링.

민원실장의 전화가 울리고 주무 주임의 전화가 울렸다. 현 소장의 사고 소식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경도의 관상은 또다시 적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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