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특명을 받았습니다-3
“오 주임.”
이른 아침, 아파트를 나온 이 국장이 경도를 맞았다.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무슨 소린가? 새벽에 와도 상관없네.”
“감사합니다.”
“잠깐 들어갈 텐가?”
“사모님께 실례가 될 것 같아서요.”
“자네를 실례로 생각할 거면 내가 저 사람이랑 헤어져야지. 게다가 저쪽 5-6호 라인에 직원이 둘이나 살고 있다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경도가 이 국장의 청을 받아들였다.
“여보, 우리 오 주임 왔어요.”
거실에 들어서자 이 국장이 아내를 불렀다.
“어머, 오 주임님.”
안면은 있었던 둘이었다. 이 국장의 말을 들었던지 그녀는 반색을 했다.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아유, 무슨 말씀이세요? 오 주임님이라면 24시간 환영이에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온 것이니 차나 한잔 줘요. 식사는 하고 왔다니 마시고 출근하면 딱 맞겠네.”
이 국장이 말하자 사모님이 주방으로 향했다.
“문제가 생겼나?”
이 국장이 찻잔을 들며 물었다.
“빠를수록 좋다고 하셔서요.”
“벌써 정리가 되었나?”
“한 분은 직접 확인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환경국장님이십니다.”
“내가 알아도 되겠나?”
“아무래도 청탁이나 뇌물에 관련이 되신 것 같습니다.”
“청탁이나 뇌물이라?”
“관상으로 말씀드릴까요?”
“아닐세. 어차피 그건 오 주임 전문 아닌가?”
“…….”
“또 한 명은?”
“환경국장님 체크가 끝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나?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네?”
“시청 청사 내 커피점 앞은 어떻습니까?”
“커피점?”
“언제쯤이면 괜찮으시겠습니까?”
“아침에 간부회의 끝나면 10시쯤 될 걸세. 그 이후로는 또 다들 스케줄 있으니…….”
“그럼 그 시간에 제가 커피점 앞에 있겠습니다. 환경국장님 모시고 잠깐만 내려와 주십시오.”
“알겠네.”
“상세보고는 저녁에 와서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나.”
경도가 일어섰다.
“어머, 벌써 가요?”
주방의 사모님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차 잘 마셨습니다.”
“아유, 아침만 아니면 나도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여보.”
이 국장의 눈총이 날아갔다.
“알았어요. 그래도 관상을 워낙 잘 보신다니…….”
사모님은 못내 아쉬운 눈치였다.
“저녁에 다시 올 겁니다. 그때 잠깐 시간 내드리겠습니다.”
“어머, 정말요?”
반색하는 사모님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센터에 도착하니 은빛이 1착으로 나와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 책상과 집기를 닦고 있었다.
“선배님.”
경도가 인사하자 은빛이 화들짝 놀란다.
“뭡니까? 그 모습?”
“뭐? 이상해?”
빨간 장갑을 낀 은빛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뇨. 너무 잘 어울리잖아요?”
“칭찬이야, 욕이야?”
“당연히 칭찬이죠.”
“내가 모처럼 인심 좀 쓰는데 입으로 때우려고?”
“모닝 커피 쏘죠.”
“됐거든. 커피는 팀장님한테 뺏어 먹으면 돼.”
“될까요?”
“안 될 거 뭐 있어?”
“그보다…… 혹시 이 사람 아세요?”
경도가 동영상에서 따낸 사진을 열어 보였다. 어젯밤 태술을 만난 그 사람이었다.
“모르겠는데? 우리 직원이야?”
“저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어, 팀장님 오시네?”
“쉬잇.”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간 은빛이 찡긋 윙크를 날렸다.
“응?”
안으로 들어선 엄 팀장이 정지화면처럼 멈췄다. 그 역시 은빛 때문이었다.
청소 아줌마가 아니라 은빛이 엄 팀장의 책상을 닦고 있지 않은가?
“뭐야? 이 주임?”
“안녕하세요?”
모른 척 열중하던 은빛이 애교로 받아쳤다.
“이야, 이 주임이 닦아주니 책상이 유리알 같네.”
“어머, 그런 말씀은 미화원 아줌마가 들으면 차별이라고 싫어할 텐데…….”
“그래?”
“제가 입 닫을 테니까 커피 쏘세요.”
“커피? 까짓거 쏘지.”
엄 팀장이 제대로 녹는다. 은빛의 장점이다. 저 미소에 친절이 깃들기만 하면 녹지 않을 사람이 드물었다.
“팀장님.”
커피까지 얻어 마시면서 영상을 꺼내놓았다.
“환경과 주무팀장 진상수 같은데?”
“확실합니까?”
“그럼. 이 친구랑 일자리경제과에서 같이 근무한 적도 있는데…… 그런데 왜?”
“아닙니다. 저번에 시청에서 뵈었는데 먼저 아는 척을 하시기에…….”
“자네가 이제 유명인사 아닌가? 아니지, 그 친구, 이제 보니…….”
“예?”
“그 친구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거든. 자네에게 먼저 추파를 보냈다면 관상 보러 오려는 게 틀림없어. 혹시라도 관상 얘기하거든 단칼에 자르게.”
“당연하죠. 제가 무슨 관상 상담원입니까?”
마무리를 하고 은빛 옆에 앉았다.
“선배님.”
“커피 고맙다고 하려고?”
“네.”
“기대해. 종종 먹여줄게.”
“충성의 뜻으로 오늘 희망복지과 물품수령은 제가 해올게요.”
“진짜?”
“그럼요.”
”잘됐다. 나 안 그래도 현장확인이 두 건이나 있어서 동선을 어떻게 짜나 고민 중이었는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 법이죠.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출장결재를 올리고 일어섰다.
시청 앞에 도착하니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1인 시위자들이다. 용포읍 관련 시위자는 북까지 걸쳐 맸다.
<범법자 K시 공무원들은 똥통에나 빠져 죽어라.>
피켓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해간다. 차를 대고 이 국장에게 문자를 보낸 후에 청사를 향해 걸었다.
시위자의 북소리가 경도를 따라왔다. 희망복지과에서 물품을 수령받아 트렁크에 실었다.
“달고나 라떼 하나요.”
커피 주문을 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성가신 태술은 보이지 않았다.
달달한 맛이 뇌를 쪼는 라떼를 한 모금 넘길 때였다. 이 국장과 배 국장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오가는 공무원들이 모두 인사를 올린다.
‘야, 나두…….’
영어광고가 떠올랐다. 갑자기 서기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 국장이 다가오니 경도도 인사를 했다.
“어, 이 친구?”
배 국장이 먼저 아는 체를 했다. 국과장 회의 때 보았던 까닭이었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가 얼굴을 들이대니 관상 체크인에 들어갔다.
턱이 우선이었다. 살집 때문이었다. 사진상에서 본 턱은 살집이 넉넉했다. 그러나 어쩐지 허망해 보였다.
턱이 풍성하면 좋다. 그러나 그 풍성함이 부은 것처럼 보이면 귀격에서 천격으로 떨어진다.
“…….”
경도의 판단력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의심이 옳았다. 일반인이 보면 풍성한 턱이지만 경도의 관상안에는 허실이 보였다.
살이 있되 힘이 없으니 늘어진 풍선의 느낌이었다. 이런 상은 사업이든 업무든 잘 굴러가지 않는다. 추진 중인 업무에 동맥경화가 오는 것이다.
동맥경화는 하나가 아니었다. 코에서 뻗어내린 법령선이 어두운가 싶더니 지각과 노복에까지 칙칙함이 내려갔다.
그의 관상은 그보다 먼저 운명을 알고 있었다. 이 신호는 이마 상부에 피는 검은빛과 함께 지위를 잃을 때 보이는 상이다.
디테일은 이마에서 관록으로 내려오는 황색 기색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게 입을 침범하고 있으니 최근에 부정기 수입이 생겼다. 그러나 재백궁이 맑지 않다. 간단히 말해 뇌물을 먹은 것이다.
엎친 데 덮치는 게 인생이니 가정사도 최악이었다. 미간이 좋아 보이지만 오른쪽과 왼쪽의 윤기가 달랐다. 왼쪽의 부부궁은 찬란하지만 오른쪽은 기세가 거기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짝짝으로 나타나는 경우라면 한 가지뿐이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올인하고 있지만 남편의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다. 바람이 난 것이다.
정확한 자료가 필요하니 유년운기부위로 옮겨갔다.
57세의 운은 우측 법령에 걸려 있다. 3주 전쯤에 미색 기운이 엿보인다. 그 색은 재복궁인 코로 이어졌다. 상간녀와는 어제도 만났다. 간문에 걸린 기색으로도 알 수 있었다.
-체크인 완료.
두 국장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언제 내 관상도 한번 부탁해.”
배 국장이 뒤에서 소리쳤다.
‘미안하지만……’
계속 걸으며 경도는 생각했다.
-당신의 관상은 이미 보았습니다.
‘엇!’
다른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출입구에서 직원과 부딪치고 말았다.
“아, 거 좀 잘 보고 다니지…….”
문구 박스를 떨어뜨린 직원이 짜증을 냈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던 경도 눈빛이 그대로 멈췄다. 사무용품을 들고 오던 이 사람, 어젯밤에 본 그 사람이었다.
태술에게 수상쩍은 것들을 안겨주던 그…….
이 사람의 관상은 자동으로 인식되었다. 배 국장의 것과 카피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마의 천양에서 관록으로, 그 황색 물결이 코와 입으로……’
부수입이다. 배 국장처럼 재백궁이 맑지 않으니 부정적인 부수입…… 공무원에게 부정적인 부수입이 뭐가 있을까?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권태술……’
어젯밤 그 장면이 이해되었다. 경도의 짐작은 이 직원의 관상으로 확인이 되었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청렴 공직을 위해 감사직을 만들었다. 그들에게 칼을 쥐여주었다. 그러나 그 칼은 선택적으로 휘둘러진다.
우리가 남이가?
공조직도 예외는 아니다. 정의의 척도인 양 개폼을 잡던 태술도 마찬가지였다.
제 마음에 안 드는 놈은 하다못해 근태로라도 때려잡고 마음에 드는 놈들은 오가는 정성(?)으로 봐주고 있는 것이다.
입맛이 썼지만 한편으로는 흡족하기도 했다. K시의 미래인 양 잘난 척하던 태술의 아킬레스건을 잡은 것이다.
센터로 돌아오니 긴급 업무가 떨어져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복지부는 던져주면 그만이었고 도청도 공문 한 장 보내면 끝이었다.
복지업무의 비애다. 최전선에 있지만 눈을 가린 꼴이다. 자고 나면 돌발 업무가 떨어진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말 한마디면 끝이었다.
-초등학생 양육비 월 10만 원씩 4개월 지원.
-중위소득 이하에게 30-50만 원 지급.
-위기지원금 지급.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모바일상품권이나 선불카드로 주란다.
말은 간단하다.
그러나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모바일에 앱을 깔지 못한다. 깔아줘도 사용 못 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그렇다면 선불카드다. 대상자를 선정해서 전부 연락을 때려야 한다. 이장, 부녀회, 경로당 등에 협조공문을 보내야 한다.
용포읍처럼 인구가 많은 읍면동 직원들은 바로 전시상태 돌입이다. 그렇다고 누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업무분장상의 업무는, 죽어도 혼자 힘으로 해내야 했으니 시스템에 같은 아이디로 들어가면 하나는 튕겨나기 덕분이었다.
엄 팀장은 박카스 두 병을 놓고 슬그머니 사라졌다.
“대상자만 뽑아놔. 연락은 우리가 도와줄게.”
민지와 은빛은 조금 미적거리다 퇴근을 했다. 새로 하달된 대상자 선정에만 5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나마 코로나 사태 때 자료를 따로 추려놓았기에 망정이었다.
“더 있을 거예요?”
오늘의 재택근무자 어윤숙이 물었다. 그새 아홉 시가 넘은 것이다.
“아닙니다. 다 했습니다.”
대답을 마치고 부리나케 책상정리를 했다. 서랍이며 서고는 제대로 잠가야 한다. 혹시라도 권태술 같은 인간이 시간 점검에 나오면 걸릴 수가 있었다.
부릉.
‘엇?’
시동을 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수석에 놓인 행정봉투를 본 것이다.
‘이 국장님.’
그제야 저녁 약속이 떠올랐다. 황급히 전화부터 걸었다.
-괜찮네. 아직 자정도 아니고…….
이 국장은 역정을 내지 않았다. 숨을 고르고 이 국장의 아파트로 향했다.
“어서 와요.”
경도를 맞아준 건 사모님이었다. 그러나 바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죄송합니다.”
이 국장에게 사과부터 전했다.
“자네가 일없이 늦을까? 개의치 말고 앉으시게.”
“사진은 돌려드립니다.”
행정봉투부터 건네주었다.
“…….”
봉투를 받아든 이 국장은 말이 없다. 일의 중대성을 알고 있으니 재촉하지 않는 것이다.
“배문환 국장님 자료입니다.”
따로 봉투 하나를 건넸다. 배 국장 조사에 대한 참고자료였다.
“으음.”
자료를 읽어본 이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바라던 자료였던 것이다.
“한 명뿐인가?”
검토를 마친 이 국장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체크는 한 명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두 명이라고 했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는 흠이 없는 것인가?”
“그렇기도 합니다만 이분은 체크가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경도가 다른 사진을 짚어주었다.
“체크가 필요 없다는 건 무슨 뜻인가?”
이 국장이 집어보니 상하수도사업소장 현필재였다.
“제가 알아보니 그제부터 5일 연가 중이시더군요.”
“그래서 미룬 건가?”
“그게 아니고…… 그분은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
“관상이 예사롭지 않아 최근 사진으로 재확인을 했습니다. 시정홍보 사진 중에 일주일 전의 것이 있더군요. 외람되지만 코와 입 근처가 한밤처럼 어둡습니다. 그 어둠이 인당과 변지까지 침범했으니 수일 내에 노상에서 객사하실 것으로…….”
“……!”
경도의 천기누설은 이 국장을 경악 속으로 몰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