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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을 받았습니다-2> (64/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64화

17. 특명을 받았습니다-2

<공무원은 형의 선고 · 징계처분 또는 이 법에 정하는 사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그 의사에 반하여 휴직 · 강임 또는 면직을 당하지 아니한다-국가공무원법 제68조.>

고로 공무원은 철밥통이다. 잘리지 않는다.

땡.

잘못 알려진 팩트다.

공무원도 잘린다.

여기서 잘린다 함은 민간기업의 개념과 조금 다르다.

민간은 해고에 준하지만 공조직에는 반강제의 똥차 밀어내기라는 관행이 법 위에 존재한다. 오래전에 자리 수급용으로 도입된 일이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방선거다. 민선 기관장이 들어오면 물갈이를 한다. 논공행상 때문이다. 특히 기관장이 교체될 때 극심하다.

-명예퇴직하세요.

-공로연수 가세요.

보통 이 두 가지 코스에 따른다.

공로연수 같은 경우는 긍정적인 제도다. 정년퇴직을 6개월에서 1년 정도 남겨둔 공무원에게 사회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약 25년 전에 도입된 이 제도는 연수기간 중에 현업 수당을 제외한 보수 전액을 월급으로 꽂아준다.

문제는 이 제도에 해당하는 퇴직 직전의 공무원들 대다수가 6급-5급-4급이라는 것이다.

상당수의 직원들에게 자녀의 혼사라는 문제가 걸릴 때가 많다.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순간 조직과는 빠이빠이다. 자녀가 결혼한다고 해도 각별한 사람 외에는 오지 않는다.

청첩장도 돌릴 수 없다. 퇴직한 사람 취급을 하다 보니 돌아오는 건 봉투가 아니라 욕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일부 직원들은 공로연수를 회피한다. 현직에 있어야 자녀 결혼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평생 투자한 본전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명예퇴직은 좀 더 강공에 속한다. 이건 거의 강제적 밀어내기라고 볼 수 있다. 어느 경우건 저승사자가 뜨면 당사자는 조직을 떠나야 한다.

5급과 4급들은 그 자신도 그 관습의 직간접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나가줘야 아래에서 줄줄이 승진을 하는 것이다.

시장의 특단의 조치가 그것이었다.

조직일신.

국장 둘을 정리한 후에 곧 다가올 정기인사를 대폭 강화해서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뜻이다. 거기에는 시장의 3선 체제 포석도 깔려 있었다.

“두 명을 골라달라고요?”

사진 앞의 경도 목소리가 흔들렸다. 정말이지 긴장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성매매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시장님이 나를 부르시더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 정리된 리스트를 올려달라고.”

“그런데 왜 국장님 사진도 있는 겁니까?”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나?”

“국장님.”

“나도 국장단일세. 내가 자네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고.”

“……?”

“자네보다 오래 K시에 몸담고 있지만 다른 이들의 속내는 나도 잘 모르네. 초임 때부터 같이 한 경우가 아니라면 경우에 따라 내세우는 얼굴이 다르거든. 공감하나?”

“예…….”

경도가 답했다. 그건 이해가 되었다.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사람들을 경도도 모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오남일 국장 건이겠지. 그런 걸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자네네.”

“하지만 제가 인사팀 직원도 아니고…….”

“인사팀 직원만 인사에 관여하란 법 있나? 자네는 모르겠지만 우리 시 인사에 관여하는 사람은 셀 수도 없이 많네. 동네 이장부터 문화원장에 지역 단체들까지…….”

“…….”

경도의 촉이 제대로 일어섰다.

이제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여러 곳에 줄을 대고 선을 대는지. 결국 인사의 승자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결정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라인인 셈이었다.

“이 일은 자네와 나만 아는 것으로 할 걸세. 절대 보안이니 육 과장에게도 전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부적합한 사람 둘만 골라주게. 다행히 부적합한 사람이 없다면 차선으로서의 부족한 사람을 골라주시고.”

“국장님.”

“자주 벌어지는 일이니 자책감 같은 거 가질 필요 없네. 기왕 쳐낼 일이라면 불필요한 인물을 쳐내야 시정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

“황당하지?”

“예…….”

“그럼 이 말을 새겨두시게. 자네가 내 말을 거절하면 일단 한 사람은 정해져 있네. 용포읍 김상국 읍장님.”

“우리 읍장님요?”

경도 눈빛이 출렁거렸다.

“시장님 의중에서 벗어난 사람일세. 그래서 내가 이 일을 맡았네. 그분이 우리 아홉 중에 최악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구제해야 하지 않겠나?”

“제가 관상으로 고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검증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자네가 지명해 주면 감사실을 동원할 생각일세. 그 역시 은밀하게…….”

“그러시군요.”

“대신 자네에게 특별한 인센티브를 줄 생각이네.”

“성과상여금 말씀입니까?”

“이만한 일에 그 정도로 보상이 되겠나?”

“그럼?”

“자네 얼마 전에 국무총리상을 받았지?”

“예.”

“그리고 이번에 기사회생한 홍상선 의원에게 슬쩍 떠봤더니 자네에 대한 평이 좋더군.”

“…….”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법적 검토를 맞췄네만 거기에 나하고 시장님 의중까지 맞으면 선물 하나 정도는 챙겨줄 수 있네.”

“법적 검토라면?”

“자네 관상 후원회를 조직 중이라던데 맞나?”

“예.”

“그걸로 용포읍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생각이고?”

“예…….”

“가능성은 어떤가?”

“독지가 몇 분의 허락을 받아두었습니다. 머잖아 정식 발족을 할 생각입니다.”

“그럼 서두르게. 그 후원회가 첫 후원자를 돕는 순간 내 선물이 자네에게 안겨질 걸세.”

“국장님.”

“나 못 믿나?”

“아닙니다. 사실 선물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제 관상이 국장님께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야지. 어차피 자네가 나를 살린 거 아닌가? 살리려면 제대로 살려야지.”

“그 말씀은 지나치십니다. 국장님의 원래 자리를 찾은 것뿐입니다.”

“며칠 주면 되겠나? 빠를수록 좋네만.”

“중요한 일이니 사진 외에 실물을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걸 도와주셔야 합니다.”

“언제든 요청만 하시게.”

“알겠습니다.”

“그럼 가세. 큰 숙제를 안겨줬으니 집에라도 일찍 보내야겠지?”

이 국장이 일어섰다.

“들어가십시오.”

주차장에서 이 국장을 먼저 보냈다.

‘후우.’

큰 숨을 쉬며 이 국장을 상기한다. 술 한잔할 만도 하건만 입에도 대지 않았다. 게다가 자를 사람 사진에 자신의 것도 담아왔다.

경도 입장에서 보면 이 국장은 칼자루를 쥔 사람이었다. 그동안 눌려 살았던 걸 생각하면 장두환 국장을 위시해 응징의 화풀이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정당한 길을 택해 자신까지 도마에 올려놓았다.

형식적이라고 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국장님들만 아홉……’

시동을 걸기 전에 행정봉투를 보았다. 빠진 건 보건소장뿐이다. K시 보건소장은 의사면허가 있어야 하니 열외로 한 것 같았다.

고작 사진 아홉 장이건만 천근만근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9급에서 8급으로 올라올 사람을 고르라고 해도 떨릴 경도였다. 그런데 무려 국장들의 생사여탈이라니?

막 시동을 걸려 할 때였다. 작은 도로 건너편의 월남쌀국수 전문점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나왔다.

‘권태술?’

경도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옆에는 중년 남자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태술의 차가 보인다. 남자가 차를 연다. 트렁크에서 뭔가를 꺼냈다. 양주나 와인상자처럼 보였다.

‘뭐야?’

이번에는 관상이 아니라 촉수였다. 핸드폰을 들고 있던 참이니 동영상을 눌렀다.

태술이 잠시 거절하지만 남자는 막무가내로 상자를 안긴다. 결국 태술이 그걸 받아든다. 이번에는 흰 봉투가 태술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남자가 태술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멀어진다.

태술이 상자를 바라본다. 봉투도 꺼내본다. 안에 든 것은 돈으로 50만 원쯤 되어 보였다.

태술의 차도 오래지 않아 경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흐음.’

동영상을 다시 본다.

남자는 아무리 봐도 공무원 삘이다. 기간제나 무기계약직이라면 몰라도 일반직이라면 태술보다는 직급이 높을 나이였다.

그런 사람이 이런 외진 곳에 와서 고급술에 봉투를 안길 이유라면 뭐가 있을까? 불손하게도 태술의 업무와 연관 지어볼 수밖에 없었다.

‘뜻밖의 득템인걸?’

경도도 시동을 걸었다. 아홉 국장들의 관상은 아무래도 집에서 보는 게 옳았다.

샤워를 끝내고 싸목도감과 관상서적으로 워밍업을 했다.

관상이론은 방대하다. 관상에서 첫손에 꼽는 눈빛만 해도 그랬다. 눈빛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살아 있는 눈빛은 또 무엇인가? 그 눈빛이 조금만 세면 살기가 돌고 조금 약하면 맹탕이 되니 뛰어난 직관이 필요한 것이다.

자연채광에 가까운 등을 켜고 쌀알의 줄을 세웠다. 쌀알은 어느새 늘어났다. 할아버지의 쌀알에 때가 묻으니 새것을 구한 것이다.

미세한 투명도로 시선을 고르고서 아홉 사진을 펼쳐놓았다. 이 국장의 바람대로 그의 사진도 열외 시키지 않았다.

아홉 국장들의 직급은 지방행정서기관이다. 공무원의 계급은 9급 서기보를 시작으로 1급 관리관으로 이어진다. 그 위로는 차관보에 차관, 장관, 부총리, 총리, 대통령의 순이다.

9급이나 8급의 입장에서는 서기관도 태산준령이다. K시에서도 1천2백여 공무원 중에서 아홉 명만 살아남는 것이니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임용되어 또 120 대 1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서기관이 될 수 있었다.

<자치행정국장 이창교> <복지교육국장 박순길> <경제문화국장 장두환> <녹색환경국장 배문환> <안전교통국장 최기동> <도시주택국장 나경미> <용포읍장 김상국> <농업센터장 마승탁> <상하수도사업소장 현필재>

아홉 사진을 펼쳐놓으니 복덕궁들이 눈부셨다. 복덕궁은 양 눈썹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위로 펼쳐지는 이마다. 관료나 정치인은 누가 뭐래도 복덕궁이 좋아야 했다.

개중에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도에서 내려온 사람도 있고 7급 주사보로 시작한 사람도 있었다. 출발이야 어쨌든 그들의 관상에는 나름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사진을 보니 뒤에 프로필이 붙어 있다. 임용연도와 각 직급 승진연월일, 기타 주요 보직 등이었다. 이 국장다운 센스였다.

아쉬운 건 여자가 한 사람이다. 현재 기세를 올리는 여자들의 사회진출과 합격률로 봐서는 세 명 정도는 포진했어야 옳았다.

그래서 홍일점 나경미부터 보게 되었다.

“……!”

제대로 보니 실망이었다. 얼굴의 조화가 좋고 살집이 풍후하니 좋아 보이지만 내용물이 없는 관상이었다.

이 사람의 주특기는 윗사람들과의 관계였다. 직무능력이 아니라 정치로써 국장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정직한 편이다. 능력을 기준으로 하자면 경도의 칼날을 맞을 수 있겠지만 주지하다시피 공무원의 기준은 능력이 아니었다.

뒤쪽으로 제쳐두고 탐색을 계속했다. 다만 사생활은 배제했다. 참고하기로 한 건 불륜뿐이었다.

두 번째로 이창교 국장을 열외 시켰다. 찻집에서 이미 점검을 끝낸 후였다. 중차대한 임무를 맡기니 체크할 수밖에 없었다.

복지국장은 인중이 예술이었다. 기품이 있고 야무지다.

이런 사람은 복운이 따른다. 그 인중이 윗입술을 부드럽게 밀어내려 치아까지 가려주니 더 바랄 게 없었다. 턱이 도톰하고 넓어 뛰어난 참모를 둔 복까지 있다. 부하 부릴 줄 아는 데다 어려운 직원들을 감싸는 포용력까지 겸비한 것이다.

다음은 경제국장 장두환이었다. 이 사람의 관상은 오남일 국장 건으로 본 적이 있었다.

가오에 죽고 사는 사람이지만 그게 잘릴 이유는 아니다. 부부궁은 여전히 좋지 않다.

그러나 인중의 검은색은 조금 가셨다. 치료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도 경도의 칼날에서 멀어졌다.

“오.”

교통국장의 사진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찰색은 붉은 기색이고 이마가 훤했다. 풍성한 눈썹에 뾰족귀, 입은 둥글고 단단했으니 불도저상이다. 이 기세로 조실부모로 어려워진 초년운과 중년운을 극복했다.

프로필에서도 확인이 되었다. 6급까지는 승진이 그저 그랬다. 그러다 5급에서 반전을 이루었고 4급 승진 때 결국 동기들을 추월해 버렸다.

바로 현 시장 김상진 때였다. 그의 백미는 미릉골이었다. 처마를 이룬 듯한 기세가 관운에 서광을 내린 것이다.

확인 삼아 김 시장의 사진을 뽑았다.

‘역시.’

경도가 무릎을 친다. 두 사람은 서로 극하는 상이 아니라 상생하는 상이었다.

이어서 집어 든 건 상하수도사업소장 현필재였다. 담담하게 관상안을 들이대던 경도가 돌연 사진을 떨구고 말았다.

코에 깃든 칙칙한 찰색에, 하정과 변지를 물들인 흑빛. 게다가 인당까지 침범당한 이 사람…….

‘맙소사.’

경도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관상만렙 공무원님 06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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