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명을 받았습니다-1> (63/245)

관상만렙 공무원님 063화

17. 특명을 받았습니다-1

“고맙네.”

교외의 찻집 테라스에서 홍 의원이 경도 손을 잡았다. 시간을 내달라고 간청하니 별수 없이 달려온 경도였다.

“천운입니다.”

같이 온 엄 팀장의 아부는 휴일도 없었다.

“방송 보고 아찔했네. 자네 말 안 듣고 저길 갔더라면…….”

홍 의원이 몸서리를 쳤다.

직접 성매매에 나서지 않았더라도 연대책임이라는 게 있다. 국민감정이 민감한 성매매 시도였으니 시장공천은 물 건너갈 판이었다.

그러나 그도 나름 시장을 노리는 사람이다. 단순히 치하나 하려고 경도를 부른 건 아니었다.

“의전팀장하고 통화를 했는데 아무래도 기자들이 몰려올 것 같다고 하더군.”

홍 의원은 애가 탔다.

그렇겠죠.

차를 마시는 경도는 담담했다. 한편으로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남들 다 가는 외유요 썩어나는 예산이니 가져다 쓰는 것까지는 말릴 수 없었다.

하지만 왜 하필 그런 추태란 말인가? 정 주체할 수 없으면 화장실에서 야동이라도 보면 될 것 아닌가?

하긴 돈과 시간을 남는 의원님들이었다. 없는 건 여자뿐이었으니 그걸 채우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어떤가? 우리 관상박사님, 기왕 나를 살려줬으니 묘수가 없겠는가?”

홍 의원의 속셈이 나왔다.

“오 주임.”

엄 팀장이 추임새를 넣는다.

“의원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시치미 뚝 떼고 의향을 물었다. 어차피 경도 일은 아니었다.

“의전팀장은 이번에 참가하지 않은 정익태 의원하고 나하고 나서서 국민사과문을 발표하면 우리 얼굴도 나고 사태도 좀 가라앉지 않겠냐고 하던데…….”

“그거 괜찮겠군요.”

엄 팀장이 장단을 맞춘다.

“어떤가?”

“성매매 건인데요?”

경도가 사안을 상기시켰다. 시의원도 주제에 정치인이라고 못되어먹기는 중앙의 국회의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석고대죄는커녕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만 하는 것이다.

“사과문으로는 좀 약하지?”

“당사자 의원님들은 사표 내는 겁니까?”

“그건 내가 할 말이 아니네. 그들은 여전히 취중에 나이트클럽인 줄 알고 술 한잔 더 하러 갔다는 입장이야.”

“성매매 여성들을 불렀다는 기사도 있던데요?”

“그게 나이트클럽 같은 데 가면 으레 여자가 있지 않나?”

“죄송합니다. 제가 저녁에 체크해야 할 독거노인이 있어서요.”

경도가 일어섰다. 온 국민이 분노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의원들의 의식은 이 지경이었다. 그나마 괜찮은 사람으로 알았던 홍 의원이었다. 그의 반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으니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보게. 오 주임.”

홍 의원이 경도를 불러세웠다.

“상괘가 있기는 한 건가?”

“의원님의 기대와 다르니 말씀 못 드립니다.”

“내가 실수를 했군?”

“…….”

“앉으시게.”

“…….”

“이 사람, 의원님이 앉으시라잖아?”

엄 팀장이 경도 팔을 당겼다. 못 이기는 척 다시 앉았다.

홍 의원에 대한 승부수였다. 오늘 그의 그릇을 확인하고 싶었다. 한 잔의 소주나 담을 그릇이라면 다시 상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말해주시게. 어차피 오 주임 덕분에 여기서 대책이라도 상의하는 것 아닌가? 나도 유럽에 갔다면 이 또한 사치에 불과하겠지. 사임을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몰렸을 테니까.”

“이 사태를 조기에 진화하시려면 그 각오가 필요하십니다.”

경도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다. 의원과 말단 공무원의 대화가 아니라 관상 의뢰자로 대하는 것이니 상괘를 중히 알라는 의지의 발현이기도 했다.

“사임하란 말인가?”

“의원님이 아니라 그 추태 의원님들 말입니다.”

“…….”

“의원님은 거기 끼지 않아 비난은 면하고 계시지만 관상 상괘는 불안정합니다. 명궁과 인당의 찰색이 세 가지로 오락가락하시니 도매금으로 넘어가 곤란에 이를 수도 있고 그분들과 선을 긋고 차별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네에게 묻는 것 아닌가?”

“솔직히 두 의원님에 대한 답은 의원님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임?”

“…….”

“그럼 내 포지션은?”

“준두와 금갑에 검은 재가 끼었습니다. 이럴 때는 불난 금고를 버리는 게 나은 편이니 남은 임기 동안의 의정비 일체를 반납하시면 어떨까요?”

“의정비 일체를 말인가?”

“예.”

“우리 의회 모두?”

“그게 최선이겠죠.”

“…….”

“코로나 극성기에 그런 말이 있었죠? 소극대응보다는 과잉대응이 낫다고. 지금 사태는 의원님 개인에게는 코로나 발원 이상의 상황입니다. 이만 상괘를 마칩니다.”

경도의 매조지는 냉혹했다. 가볍게 예를 갖추고 일어났다. 이번에는 홍 의원도 경도를 잡지 못했다.

‘두 의원은 사임하고 남은 의원들은 사죄의 뜻으로 의정비 일체 반납 사죄라?’

혼자 남은 홍 의원은 머리에 들어오는 가는 빛을 느꼈다. 조금 더 곱씹다 보니 무릎을 치게 된다. 알고 보니 기막힌 묘수였다.

‘역시……’

홍 의원은 비로소 첫 술잔을 비워냈다. 막힌 가슴이 뚫리고 있었다.

공항은 시끌벅적했다. 기자들의 포진 때문이었다. 적어도 20여 명은 되어 보였다.

“저기 나온다.”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던 기자가 소리쳤다. 저만치 K시의 유럽사절단 의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은 완전무장이었다. 모자에 선글라스, 심지어는 코로나 극성기 때 필수품이던 마스크까지 갖췄지만 기자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MBS입니다. 성매매 의원님은 어디 계십니까?”

“KBN이에요. 국민들에게 하실 말씀 있습니까?”

질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의장 이하 수행원들은 얼굴을 피하기 바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바로 홍 의원과 정익태 의원이었다.

“기자님들, 이러지 마시고 저쪽으로 가시죠.”

홍 의원이 나섰다.

“당신 누굽니까?”

뒤쪽의 기자가 물었다.

“저도 K시 의원입니다. 중대발표가 있습니다.”

“중대발표? 성매매 의원들이 사임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

홍 의원이 말이 먹혔다. 대개는 어물쩍 넘어가는 게 ‘의원’ 타이틀 붙은 인간들의 생리다. 그러나 전격 사임발언이 나오니 기자들의 예봉이 누그러졌다.

공항 한구석에 즉석 회견장이 조성되었다. 의회에서 나온 직원 셋이 대충 자리를 잡았다. 홍 의원과 정익태가 앞에 서자 외유 의원들이 패잔병처럼 그 뒤에 섰다.

“마스크 벗으세요. 마스크에 대한 모욕입니다.”

“모자도 벗고 선글라스도 벗어요.”

기자들에 이어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벗으시죠.”

홍 의원이 의장 이하 의원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주저주저 얼굴 가림막을 철거했다.

“먼저 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홍 의원이 허리를 접었다. 뒤의 의원들도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우리 K시 의원단은 이번 사태에 대해 뼈를 깎는 반성의 자세를 가질 것이며 국민 여러분에게 대죄하는 의미로 성매매에 연루된 의원 둘이 전격 사퇴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아울러 저희들 역시 대죄의 의미로 남은 임기 동안 의정비 일체를 불우한 지역 주민들에게 기부할 것이며 각자 봉사기관에서 100시간씩 속죄의 봉사를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봉사활동 100시간에 의정비 일체를 반납한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울러 남은 임기 동안 일체의 해외연수나 국내연수 또한 중단할 것이며 오직 시민을 위한 의정활동만으로 용서를 구해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죄를 드립니다.”

홍 의원의 말과 함께 의원들이 허리를 접었다.

봉사활동 100시간에 의정비 반환, 거기에 더해진 국내외 연수 중단.

초강경 메시지가 살짝 먹혔다. 무엇보다 성매매를 시도한 의원들의 사임발표가 나왔으므로 기자들의 공세도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성매매 시도 의원들은 다음 비행기 편으로 들어오기로 한 까닭도 컸다.

<의정비 일체를 기부하고 100시간 속죄의 봉사활동을……>

용포읍 센터의 텔레비전에도 이 발언이 나오고 있었다. 민원실장을 비롯해 직원들의 시선이 화면에 쏠리고 있었다.

“개망신이네, 개망신이야.”

“아이고, 내가 저럴 줄 알았지.”

“그래도 홍상선 의원이 책임감 있네? 자기는 안 갔으니 슬쩍 빠져도 될 텐데 앞줄에서 돌을 맞고 있잖아?”

“저 양반이 그런 강단은 좀 있지?”

“그래도 홍 의원이 나서주니까 저 정도로 넘어가지 아니면 우리 K시 홀딱 뒤집힐 겁니다. 다른 의원들은 다 당사자인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두둔자는 엄 팀장이었다. 일리가 있으므로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경도의 손은 자판 위에 있었다. 유튜브를 시작으로 네이버까지 검색어를 넣었다.

<지방의원 네덜란드 성매매 시도>

관련기사들이 미친 듯이 올라왔다. 인터넷 신문까지 합치면 20여 개나 되었다.

<끝없는 지적과 논란에도 박멸되지 않는 저놈의 외유 나들이. 돈이 썩으면 날 좀 다오.>

<세금기생충들, 기생충영화 지하방에다 평생 처박아라.>

<거기서 성병이나 걸려 뒈져 버리삼.>

<떡검은 뭐 하냐? 이런 놈들 털어라. 씨븅>

<좁은 땅덩어리에서 뭔 놈의 지방자치, 없애는 게 정답.>

<나랏돈으로 성매매까지 되는구나. 저러니 다들 지방의원이라도 하려고 난리부르스.>

<연수? 탐방? 지-랄한다. 척 봐도 묻지 마 매춘관광!!>

폭풍 비난 댓글 속에 그래도 호의적인 글들이 보였다.

<안 간 의원도 독박 쓰는구나.>

<그래도 다 걸레는 아니구낭?>

기사는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이번에는 의원들의 요양원 목욕봉사와 기저귀 세탁봉사 현장이었다.

일부는 돌봄가정의 목욕봉사에 참여했다. 봉사 중에서도 비교적 험한 것들이었다. 이 보도가 나가면서부터 비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광풍이 가라앉던 날의 오후, 경도에게 전화 한 통이 들어왔다.

이창교 국장이었다.

-미안하지만 저녁에 시간이 좀 되겠나?

“어, 오늘 제가 재택입니다만.”

-바꿀 수 있겠나?

“그러죠, 그런데 무슨 일로?”

-긴히 자네 의견이 필요한 일이 있으니 조용히 나오시게나.

이 국장의 전화가 끊겼다.

“오 주임.”

다른 통화를 하던 엄 팀장이 경도를 불렀다.

“저녁에 말이야 홍 의원님 위문 갈 건데 같이 가지?”

“저 재택입니다.”

“바꾸면 되지. 내가 알아봐 줄게.”

“아닙니다. 팀장님 혼자 다녀오십시오.”

경도가 돌아섰다.

‘무슨 일이지?’

입력작업을 하면서도 이 국장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뉘앙스로 보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재택은 은빛과 바꿨다. 전 같으면 콧방귀를 뀌었겠지만 군말 없이 바꿔주었다.

약속장소는 계곡에 가까운 전통찻집이었다. 이 계곡에는 이런 찻집을 비롯해 가든 형식의 음식점이 많았다.

차를 세우고 보니 국장 차가 보였다. 경도보다도 먼저 도착한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구석의 방에서 인사부터 했다.

식사가 나왔다. 화두는 주로 시의원 성매매 건이었다. 시청과 의회에도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 배와 수정과가 나왔다.

‘마음이 답답하셔서 부르신 건가?’

그렇게 생각할 때 이 국장이 행정봉투를 꺼내놓았다.

“오 주임.”

그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표정은 어느새 고뇌와 숙연함으로 물들었다. 이제야 본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게…… 자네에게 안겨줄 짐은 아니네만…… 자네만 한 자문을 줄 사람도 없을 것 같아서 말일세.”

이 국장이 봉투를 열었다. 안에서 나온 건 사진이었다. 모두 아홉 장…….

‘웃.’

경도의 눈동자가 출렁거렸다. 아홉 장 안에는 이 국장과 읍장의 것도 있었으니 K시 서기관들의 사진이 거의 망라되어 있었다.

“시장님이 어수선한 국면전환을 위해 특단의 구상을 하고 계신데 그 특명을 내가 받았네.”

특명.

특별한 단어가 경도의 귀를 차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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