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만렙 공무원님 062화
16. 맛점占 맛 좀 보실래요?-5
“엄마.”
그 주의 토요일, 경도는 형 경규와 함께 지방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아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아들었다. 고속도로 입구에서부터 세 번의 시도 만에 성공한 경도였다.
“어디세요?”
-어디긴? 밭에서 풀 뽑고 있었지?
“그럼 고개 들어보세요. 돌다리 위에 누구 차가 있는지.”
-다리 위? 옴마야.
어머니의 비명이 나왔다.
-저 차가 네 차잖아?
“당연하죠? 저 손 흔드는 거 보이세요?”
-운전은 경규냐?
“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경도가 전화를 끊었다.
“아이고, 우리 모친, 그새 뛰어나오고 계신다.”
경규가 혀를 찾다. 어머니는 두 팔을 흔들며 달리고 있었다.
“아, 진짜…… 그러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차에서 내린 경도가 눈치를 주었다.
“넘어지는 게 대수냐? 우리 아들들이 왔는데…….”
어머니는 두 아들의 손을 번갈아 잡았다.
“거기 누구여? 경도, 경규?”
저만치서 이웃집 할머니가 소리쳤다.
“네, 안녕하세요?”
경도가 인사를 했다.
“뭣이여? 경도가 온 거여?”
다른 아주머니와 할머니들도 합세한다. 젊은이 구경하기 힘든 곳이니 밭일을 멈추고 하나둘 모여든다.
익숙한 풍경이다. 경도가 바나나를 꺼내주었다. 노인들은 대개 바나나를 좋아한다.
“아유, 남자가 주니까 더 맛나네.”
할머니들이 너스레를 떤다.
“거 남의 아들에게 침 흘리지 말고 후딱 일들 하세요. 점심은 내가 낼 테니.”
어머니가 할머니들을 내쳤다.
“웬일이냐? 연락도 없이?”
어머니는 숨 돌릴 사이도 없다.
“그러게요. 얘가 승진하더니 아주 형을 쫄따구로 안다니까요. 아침에 전화 걸더니 엄마한테 가자지 뭐예요?”
경규가 볼멘소리를 냈다.
“미안해. 다음 주에 올까 했는데 우리 차석님이 일직 좀 바꿔달라잖아.”
“아유, 그럼 바꿔줘야지. 앉아라, 앉아.”
어머니가 마루를 권했다.
“배고프지?”
“아뇨. 휴게소에서 간식 좀 먹었어요.”
“뭔 소리여? 그 나이에는 차돌을 먹어도 금세 내려갈 땐데…… 점심 뭐 해줄까?”
“닭갈비 불고기?”
경도가 미리 준비해 온 닭 2마리를 내놓았다. 닭갈비 불고기는 어머니의 주특기다. 서울의 맛집들조차 따라오지 못할 솜씨였다.
“알았다. 엄마가 후딱 준비할게. 앉아서들 쉬고 있어.”
어깨를 두드려 준 어머니가 이리 뛰고 저리 뛰기 시작했다.
“아, 우리 엄마…… 저 성질머리 아직도 안 죽었네?”
경도가 웃었다.
“그런 말 마라. 말씀은 안 하셔도 너 오기를 학수고대하셨다. 저번에도 전화해서 그러시더라. 너 언제 시간 날 것 같냐고.”
“형은 서운했겠네?”
“짜식, 나는 사장님 아니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간 낼 수 있잖아?”
“쳇, 1인 출판사가 사장은 무슨…….”
“어쭈, 이제 너까지 갈구냐?”
“조크야. 그나저나 책은 잘 준비되고 있지?”
“야, 그런데 그거 스케줄 좀 바꾸면 안 되냐? 너 이미 승진했잖아?”
“안 돼. 누구 8급으로 쫑치는 거 보고 싶어? 7급도 있고 6급도 있잖아?”
“오냐, 7급만 빨리 못 올라가 봐라.”
형이 벼르는 동안 닭갈비 불고기가 익어갔다. 풍후한 기름 타는 냄새가 위장을 뒤집는다.
“아이고, 냄새를 피워대니 나는 못 참겠다.”
이웃집 할머니가 1착으로 들어섰다. 다른 분들도 몇 명 꼬리를 물었다. 다들 빈손이 아니다. 누구는 상추를 가져오고 누구는 오이를 가져온다.
막장을 퍼오는 분도 있고 두릅 장아찌에 가죽나물 장아찌, 더덕장아찌도 펼쳐진다. 그것들을 함께 펼쳐놓으니 수라상이 되었다.
“한잔 받으세요.”
막걸리는 형의 준비였다. 마을 입구에서 산 것이었다.
하지만…….
“아녀, 우덜은 경도한테 받을 거여. 승진했다면서?”
할머니들이 경규를 외면했다.
“아, 진짜…… 공무원 아닌 사람 서러워 살겠나?”
경규의 한탄을 들으며 경도가 잔을 채웠다.
옆집 할머니의 눈은 아직도 맑았다. 그러나 생활은 가장 어렵다. 눈이 청수한데 왜 복을 누리지 못하는 걸까?
경도가 보니 맑은 눈을 무력화시키는 옥에 티가 있었다.
눈썹이다. 두 눈썹이 눈을 뭉개려는 듯 내려온 것이다. 평생 성공을 기약할 수 없는 상이었다.
앵두 입술로 미로를 날렸다던 아주머니도 그렇다. 잘 익은 복숭앗빛이 맴돌아 뭇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지만 이빨이 너무 잘았다.
이 역시 되는 일 없는 관상의 하나였다. 다른 분들은 다 건너뛰었다. 대개 홀로 남아 평안하게 일상을 즐기는 분들이다. 굳이 관상 들이댈 일이 없었다.
마무리는 어머니가 되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형 때문이었다. 경도가 읽었던 것을 어머니에게서 확인하고 싶었다.
다행히 어머니의 눈밑 와잠에 윤기가 돌았다. 이제 보니 이마의 변지도 제법 풍요롭고 턱도 낮은 편이 아니었다. 말년에 성공하는 아들이 있다는 뜻이니 경도가 읽어낸 형의 관상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여기서 경도가 놓친 게 하나 있었다. 그 와잠과 변지, 턱이 형만 뜻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당장은 형의 성공을 기원하던 차였기에 다른 해석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서 돌발적인 어머니의 주문이 나왔다.
“언니, 뭐 해?”
옆에 앉은 강 할머니에게 눈짓을 한다. 그러자 강 할머니가 속곳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낡은 돋보기였다.
“어디 보자…….”
그걸 경도 얼굴에 들이댄다.
그제야 알았다. 강 할머니는 이 마을 관상가였다. 아버지에게 주워들은 풍월로 손금이며 관상을 읊어대는 것이다.
“엄마…….”
경도가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가만히 좀 있어봐. 색시가 언제 생기나 보려는 거니까.”
강 할머니가 경도를 잡아당긴다.
“소어출해에 의기양양하고 청조전신에 환자득배라…….”
강 할머니가 주문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경도는 바로 이해가 된다.
좁은 물에 살던 물고기가 바다로 나가니 의기가 양양하고, 길조가 좋은 소식을 전하니 결혼할 운이라는 뜻이었다.
“아따, 문자 쓰지 말고 쉬운 말로 좀 해봐.”
할머니들이 단체로 성화를 부린다.
“가만히들 좀 있어. 지금 천기를 읽고 있잖아? 부정 타게시리.”
강 할머니가 쏘아붙였다. 부정이라는 말 앞에 시끌벅적하던 입들이 일제히 닫혔다.
“입수불익이오 입화불상이니 용생두각에 연후등천이라…….”
그 말에는 경도도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용이 승천한다는 말이니 너무 질러가신 것이다.
“아이고, 좋네, 좋아. 그러게 내가 큰 아이는 학문을 시키고 둘째는 공무원 시험 보라고 했었지?”
강 할머니가 무릎을 친다.
“뭐가 그렇게 좋아? 혼자만 유식한 척 말고 자세히 좀 말해봐.”
할머니 하나가 다가앉았다.
“내가 말하면 알아듣기나 해?”
“나도 눈이 있고 머리가 있는데 왜 몰라?”
“그럼 잘들 봐. 관밥 관상은 뭐니 뭐니 해도 이마의 중앙이야. 여기가 장군골이라는 곳인데 이게 잘 생기면 도지사, 장관은 떼놓은 당상이지. 게다가 여기 복덕궁이 시원하잖아? 못해도 군수 한 자리는 하겠어.”
“아따, 요즘 군수는 선거로 뽑는 건데 그럼 경도가 군수로 나와야겠네?”
“까짓거 못 나갈 게 뭐 있어? 나가면 당선이야.”
강 할머니가 매조지를 해버린다.
“진짜 제가 군수 관상입니까?”
경도가 모른 척 물었다. 강 할머니의 관상이 아주 뻥만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더 알고 싶으면 복채 내.”
강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아따, 이 언니가 지금…… 거기 공짜로 먹고 있는 고기하고 밥은 뭐야? 그럴 거면 돈 내고 먹어.”
어머니가 나섰지만 경도가 빨랐다. 할머니 손에 만 원짜리를 쥐여준 것이다.
“아따, 이게 얼마 만에 보는 복채냐?”
강 할머니는 돈에 침을 뱉더니 자기 이마에다 붙여버렸다.
“어디 보자, 사자구에 호비, 사자구와 금이를 가졌으니 공무원으로 대성은 정해졌네, 정해졌어. 다시 봐도 최소한 군수, 도지사야.”
강 할머니의 돋보기가 눈과 코, 입과 귀를 읽고 갔다.
“우리 형은요?”
“경규?”
할머니의 돋보기가 방향을 바꾼다.
“공부해. 하다 보면 봄날이 와.”
강 할머니는 의기양양이다.
그제야 알았다. 할머니의 관상은 들은 풍월을 읊어대는 것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이제 제가 좀 봐드릴까요?”
경도가 돋보기를 받아들었다.
“니가 관상을 알아?”
“우리 할머니…… 인중 좌우의 식록이 풍후하니 매사에 만족을 아심이라. 더불어 얼굴 뒤쪽이 돌출하니 효자 아들에, 목덜미가 대들보처럼 굵으니 잔병치레도 거의 없네. 다만 아쉬운 건 말할 때 눈썹이 움직이니 손윗사람과 마음이 맞지 않을 뿐이로구나.”
“엡.”
할머니가 입을 막았다. 놀라는 통에 틀니가 나올 뻔했다.
돋보기는 다시 돌려주었다. 기가 죽은 강 할머니는 다시 관상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자 형과 함께 집안 수리에 나섰다. 어머니의 손길이 꼼꼼하지만 방치된 것도 많았다.
“아유, 그런 거 할 생각 말고 색시들이나 데려와. 좀.”
결국 어머니의 비수가 날아든다.
“형, 어머니 말 안 들려?”
경도는 형을 방패로 삼았다.
“야, 요즘은 형 동생 안 가리거든. 그러니까 여직원들 많은 데서 근무하는 네가 먼저 좀 가라.”
“형도 젊은 여자 작가들 많이 알잖아?”
“그 친구들은 나 같은 자영업자 안 좋아한다. 너처럼 안정적인 공무원 남자 좋아하지. 말 난 김에 소개팅시켜 줄까?”
“됐거든.”
아웅다웅하는 사이에 날이 저문다.
시골집에서의 시간은 총알처럼 흘러갔다.
“다음에는 색시, 알지?”
일요일 오후, 차가 출발할 때 어머니가 소리쳤다.
“걱정 마세요. 잘나가는 우리 경도가 데려올 거예요.”
“형한테 하신 말씀이거든.”
익숙하게 명령을 떠밀며 어머니와 멀어졌다.
“건강하고, 밥 잘 챙겨 먹고 다녀.”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는 수년째 변함이 없었다.
찬물로 샤워를 했다. 정신이 맑아졌다. 테이블로 와서 관상책을 펼쳤다.
이번에는 마의상법과 유장상법이었다. 관상책은 인간의 얼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이자 빅 데이터다. 오랜 수련과 경험을 통해 도출된 상법들이 책 위에 펼쳐진다.
이런 진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련이 있었을까? 그렇게 보면 관상도 인간문화재가 나와야 했다.
어머니의 염원 때문이었을까? 태아에 관한 것을 들춰보게 되었다. 관상은 태아의 일까지 포함한다.
초음파 따위가 없어도 남아 여아 구분도 된다. 순산과 난산, 사산에 더불어 출산기일까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손길이 여자로 이어진다.
결혼은 해야 하는 걸까?
해야 하면 어떤 여자를 만나야 하는 걸까?
재미 삼아 체크할 때 엄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쉬는 날 상사의 전화는 반갑지 않다. 그러나 공무원은 민간기업과 달리 비상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오 주임, 날세. 쉬는 날 미안.
말이나 못 하면?
“어쩐 일이세요?”
본심을 감추고 전화를 받았다.
-아까 내가 카톡 보내놨는데 안 봤나?
“잠깐만요.”
잠시 말을 멈추고 확인을 했다. 사진이 들어와 있었다. 유럽으로 나간 의원들 모습이었다.
-의회 석 팀장이 보내준 거야. 현지 분위기 너무 좋다는데?
“그런데요?”
-홍 의원님 말이야…….
“……?”
-사진 보니 문득 걱정이 되어서 말이야? 가만 생각하니 별문제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것 때문에 전화하신 겁니까?”
-아, 아닐세. 겸사겸사…….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통화를 끊었다.
‘분위기가 좋다?’
사진을 다시 열었다. 의원님들, 신난 표정이다. 공무원들에게는 여러 형태의 외국탐방이 있었다.
의원은 물론이고 하위직들 역시 그 제도의 수혜를 받는다. 지자체에 따라 다르지만 일 년 365일 상시 시스템이 돌아간다.
여럿이 묶어서 보내기도 하고 거꾸로 여럿이 그럴듯한 이유를 붙어 신청하면 지원을 해준다.
수차례 말했지만 공무원들은 서류 생산의 귀재들이다. 유럽에 나가야 하는 이유 따위는 눈 감고도 만들어낸다.
증거는 관련기관에 들르거나 사진을 찍어오면 그만이다. 물론 개중에는 생산적인 외국탐방도 있다.
하지만 극소수에 달하니 해외탐방은 업무보다는 사기진작용일 뿐이었다.
이분들이 해피하게 일정을 마치고 오게 되면?
홍 의원 볼 낯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들이 돌아올 날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경도가 찍은 두 의원의 상은 여전히 좋지 않았고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간사였다.
엄 팀장의 조바심이 신호였을까?
유럽의 사고 소식은 이틀 후에 날아왔다.
“아이고, 이런.”
비가 오는 아침, 업무준비를 하던 차에 민원실장의 탄식이 들려왔다. 인터넷 뉴스를 본 모양이었다.
“이봐. 다들 인터넷 좀 보라고. 난리가 났어.”
민원실장이 좌우를 향해 소리쳤다.
“뭔데요?”
팔랑귀 엄 팀장이 반응하지 않을 리 없다.
“유럽 간 우리 의원단 있잖습니까? 두 명이 성매매 시도하다가 걸렸답니다.”
“……!”
엄 팀장을 위시해 모든 직원들이 뒤집어졌다. 경도 역시 그랬다.
재빨리 유튜브 검색을 했다. 뉴스 영상이 있었다.
자극적인 자막과 함께 뉴스가 나왔다. 모자이크 처리된 의원들 얼굴도 나왔다.
-성매매가 아닙니다. 그냥 옆자리에만 앉혔던 겁니다.
-여기가 그런 곳인 줄도 몰랐어요. 그냥 나이트클럽으로 알고 잠깐…….
그러나 가이드의 증언이 그들의 변명에 족쇄를 채워 버렸다.
-요즘은 이런 곳에 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두 분이 화를 내시길래 하는 수 없이…… 원래는 단체로 가셨다가 몇 분은 입구에서 돌아갔습니다.
빼박이다.
기자의 멘트가 이어진다.
“가이드가 만류하자 의원들은 따귀까지 때렸다고 합니다. 이에 분개한 가이드의 지인이 제보를 해온 것입니다. 의원들의 일탈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K시 의회의 외유는 직무와의 연관성도 거의 없을뿐더러 일정 또한 호화판으로 구성되어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한편 이번 외유에 동행하지 않은 의원은 두 명으로 확인되었고 물의를 일으킨 의원 외유단은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하기로…….”
-저런 것들을 의원이라고…… 세금 아깝다.
-한국에 오지 말고 그 유흥가에서 살아라.
-양아치들 개판 치는 지방의회부터 없애라.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댓글 홍수로 이어졌다.
“오 주임.”
엄 팀장의 벌어진 입이 닫히지 않았다. 순간 경도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홍 의원이었다.
“여보세요.”
“오 주임.”
그의 숨이 넘어간다. 그러나 경도는 느긋했다. 이보다 더 느긋하기도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