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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점占 맛 좀 보실래요? 4 >

“다 내가 박복한 탓이라오.”

낡은 의자에 퀭하게 걸터앉은 할아버지 시선이 과거를 더듬기 시작했다. 어느새 모든 것을 내려놓은 무아무욕의 표정이었다.

경도가 한 번 더 관상을 확인한다.

‘하아.’

한숨만 나온다. 그 사이에 명궁의 빛은 더 저물고 있었다.

‘수일 내로 돌아가신다.’

유년운기부위의 일진에서도 목숨의 끝이 보였다. 

할아버지의 기억이 신혼초로 돌아간다. 아내와는 연애로 만났다. 특이하게도 아내가 할아버지를 헌팅했다.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으니 아내의 괄괄한 성격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적극적인 그 성격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그 시대에는 그런 성격이 환영 받지 못했다. 트러블은 시부모와의 관계에서 먼저 나왔다. 그녀는 집안 일도 자기주도형이었다. 시부모 무시하는 건 다반사요 이웃남자는 물론이고 낯선 남자와도 교제도 거침이 없었다.

“친구야, 친구.”

할아버지가 탓하면 언제나 그렇게 둘러댔다.

“남자가 쪼잔하게시리.”

그 말을 앞세우면 할아버지도 말문이 막혔다. 그때나 지금이나 쪼잔하다거나 쫄보라는 말은 남자를 폄훼하는 단어들이었다.

딸을 낳았다. 그때부터 아내의 자유분방은 더욱 활개를 쳤다. 남자들과 술을 마시는 건 예사였고 집으로 끌어들이기도 다반사였다.

“남의 남자들을 왜 집으로 데려와?”

결국 할아버지가 폭발했다.

“친구잖아, 친구.”

아내의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다. 시대를 앞서가던 아내가 결국 선을 넘고 말았다. 술에 취한 채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하다가 할아버지에게 걸리고 만 것이다. 저쪽 방 안에는 어린 딸도 있었다.

“이 년이 보자보자하니까...”

빗자루를 집어들고 두 남녀를 난타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부리나케 줄행랑을 쳤다. 용서할 수 없지만 이혼도 흔치 않던 시대였다. 이웃의 시선과 딸을 생각해 쓰린 가슴을 달래며 살았다.

아내는 그 버릇을 개주지 못했다. 한 달 쯤 지나자 다시 성격이 나오기 시작했고, 또 다른 남자와 붙어먹다가 할아버지에게 걸렸다. 할아버지가 연탄집게를 집어들었다.

“갈라 서. 너 같은 쫌팽이하고는 못 살아.”

아내는 적반하장이었다. 분이 치밀다 보니 아내를 미친 듯이 후려 팼다. 여자는 그 길로 집을 나갔고 나중에 돌아와 이혼을 요구했다. 할 수 없이 도장을 찍어주었다.

문제는 그때의 분위기였다. 허탈감에 주저앉고 보니 딸의 방문이 열려 있었다. 처음에는 닫혀있던 문이었다. 어느 시점에선가 어린 딸이 폭행 광경을 본 것이다.

그 시점이 또 문제였다. 할아버지 생각에는 처음부터가 아니라 아내가 비명을 지를 때부터였다. 아이 눈에는 아빠가 엄마를 다 벗겨놓고 무자비한 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비쳤을 수도 있었다.

“뭐 봤니?”

할아버지가 물었다.

“......”

눈물이 성긴 어린 딸은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만 저었다.

아내와는 그렇게 끝났다. 딸과도 조금씩 좋아지는 듯 싶었지만 바닥 깊은 곳의 어색함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빠, 나 나가살게.”

상고 졸업 후 취업한 딸이 첫 월급 날 아픈 선언을 했다. 할아버지가 우려하던 날이 온 것이다.

“내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지면 민어 사가지고 올게.”

그녀의 마지막 말에 묘한 여운이 있었다.

‘하필 그 시점에 보았구나.’

할아버지는 그제야 확신했다. 딸은 그렇게 떠나갔다. 이후 한두 번의 연락이 왔지만 그때도 확인만은 할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서는 어쩌면 그 시점에 본 게 다행일 수도 있었다. 만약 처음부터 모든 것을 봤다면? 할아버지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나 혼자 나쁜 놈이 되면 되지.

할아버지의 한숨에 실려나온 의미였다.

“건강하세요.”

돌아오는 길, 할아버지에게 의례적인 인사만 했다. 목숨의 끝날을 읽었건만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민어 잘 먹었어요.”

마당 끝까지 따라나온 할아버지가 손을 들어보였다. 그 얼굴에는 이미 인간의 진기가 바닥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보였다. 할아버지 이마의 변지에서 일어나 눈썹과 눈꼬리 쪽으로 싹의 틔워가는 그리움의 기색, 기다림의 기색. 그것만은 목숨이 다하는 동안에도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기구한 팔자로 갈라지게 된 아버지와 딸.

그런 딸을 평생 기다리며 사는 아버지.

“합!”

경도 설명을 들은 은빛이 몸서리를 쳤다.

“진짜야?”

“그렇네요.”

경도 목소리는 낮았다.

“그럼 어떡해?”

“그 따님 전번 아시죠?”

“어디 있을 거야.”

“나한테 좀 주세요. 연락이라도 해볼게요.”

“어떡해...”

은빛은 어쩔 줄을 몰랐다. 마음 속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나름 거금(?)을 투자한 은빛이었다. 경도의 말은 그녀에게도 충격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경도와 은빛은 돌아오는 내내 말을 하지 않았다.

<맞춤형복지팀>

개별 상황에 맞춰 교육이나 의료, 주거, 직업 훈련, 노후 생활 따위의 복지를 지원하는 일이다. 그러나 기본적이다. 혈연관계나 목숨에는 전혀, 절대 개입할 수 없는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센터로 돌아와 엄 팀장에게 복명을 했다.

“어, 오 주임.”

엄 팀장이 경도를 잡아끌었다.

“방금 홍 의원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래요?”

“오후에 유럽순례단 출발했잖나? 홍 의원님께서 자네 관상을 전격 수용해 유럽 장도에서 빠지셨다네.”

“......?”

“그거 진짜 제대로 본 관상이지?”

“팀장님.”

“홍 의원님이 안 가셨으니까 하는 말이야.”

“두고 보면 알겠지요.”

간단하게 답하고 돌아섰다.

‘홍 의원이 유럽행에서 빠지셨다?’

경도 입가에 미소가 스쳐갔다. 홍 의원에게는 기사회생이 될 일이었다.

“퇴근 안 해?”

저녁 시간이 되지 현 주임이 행정망에서 로그아웃을 하고 일어섰다. 민지도 의자에 걸었던 옷을 챙겼다.

“먼저들 가세요.”

경도가 답했다.

“우리 이 주임은?”

현 주임이 은빛을 돌아보았다.

“저도 마무리할 게 좀 있어요.”

“으음, 둘이 무슨 역적모의?”

“그러려고요. 하극상 조심하세요.”

현 주임의 조크에 은빛이 조크로 맞섰다. 엄 팀장에 육 과장까지 퇴근하자 은빛이 전화번호를 내밀었다. 할아버지 딸의 번호였다.

“후우.”

상담실로 들어와 심호흡부터했다. 은빛은 숨을 죽인 채 주목하고 있었다.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지만 받지 않았다. 재발신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제대로 받았는데?”

“잠깐만요.”

경도가 밖으로 나왔다. 급할 때는 전화가 잘 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버스나 택시도 잘 오지 않는다. 

체리 커피로 가서 커피 두 잔을 시켰다.

“잘 되 가냐?”

스케치를 덮는 인희에게 물었다.

“힘들어 죽겠어요.”

인희가 얼굴을 붉혔다.

“우리 과장님 명언 하나 들려줄까?”

“새로 오신 분요?”

“응.”

“뭔데요?”

“내가 서류결재 올렸다가 네 번이나 뺀찌 맞았거든.”

“우와, 열 받았겠다.”

“그때는 그랬지.”

“......?”

“우리 과장님이 그러시더라? 처음에 떠오른 건 닥치고 버려라.”

“왜요?”

“그건 너무 평범하다? 뭐 그런 거겠지.”

“으음... 찔리네.”

“두번 째 떠오른 것도 버려라.”

“두번 째도요?”

“세번 째 떠오른 건 쓸만하다. 하지만 거기서 한 번 더 가서 네 번째라면 경쟁력이 있다. 가능하면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장점을 믹스하라.”

“와아, 말 되는 데요?”

“잘 되면 저작료는 우리 과장님에게?”

“싫어요. 옵빠에게 줄 거예요.”

“그럼 우리 과장님이 나 저작권 표절로 소송걸 지도 모르는데?”

“그건 옵빠가 알아서 통제하시고요 오늘 시간 외?”

“글쎄 잔무가 남아서 안 간 건 맞는데 시간외까지는 모르겠어. 커피 땡큐.”

커피를 들고 센터로 돌아왔다. 은빛에게 한 잔을 주었다. 몇 모금을 빨다가 다시 재발신을 눌렀다. 어라? 이번에는 단칼에 연결이 되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김선화 씨?”

“어디세요?”

“여기 용포읍 행정복지센터입니다.”

“전화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여자의 목소리가 각을 세웠다.

“잠, 잠깐만요. 잠깐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실은 할아버지가 위독하십니다.”

“......”

위독이라는 말이 먹혔다. 통화가 잠시 유지되었다.

“그래서요?”

잠시 후에 그녀의 반응이 나왔다. 지독히도 건조한 음성이었다. 음성만 봐서는 그녀는 할아버지가 당장 죽었다고 해도 올 사람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아무 말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녹음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녹음이라고요?”

“부탁합니다.”

“···들려주세요.”

딸의 허락이 떨어졌다.

‘녹음?’

은빛이 다가왔다. 그녀는 경도의 녹음을 몰랐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명궁에서 읽어낸 죽음의 기색. 녹음을 한 건 그때였었다.

쉿.

은빛에게 주의를 요청했다.

톡.

경도가 녹음파일을 눌렀다.

=내가 박복한 탓이라오.

할아버지의 녹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내에 대한 고백이 이어진다. 그 아내의 탈선과 불륜, 그리고 그 막장 태도에 분노해 연탄집게를 집어든 사연들...

고백은 딸과 할아버지의 관계까지 이어진다. 죽는 날까지 딸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

<나 혼자 나쁜 놈 되면 되지.>

마지막 말이 나왔다. 다시 들어도 회한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은빛은 그 기구함에 취해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러나 통화는 거기서 끊겼다. 딸이 전화를 끊은 것이다.

“......”

경도가 파일을 닫았다.

“매정하네?”

은빛이 콧등을 훔치며 말했다.

“울었어요?”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

“안 올 거 같죠?”

“100%.”

“할 수 없죠 뭐. 인연 끊고 사는 딸까지 어쩔 권한은 우리도 없으니까.”

“아우, 그냥 가서 얼굴만 한 번 보면 되지. 어쩔 수 없는 폭행이었구만.”

은빛의 혈압이 올라가지만 그것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어쩌지?”

“할 수 없죠 뭐. 아무래도 오래 못 사실 것 같기는 하고... 내일부터 내가 하루 한 번씩 체크해볼 게요.”

“같이 가. 내 담당이잖아? 게다가 오 주임은 전과도 있고.”

“전과요?”

“전에 컨테이너 수급자 할아버지. 사망자 옆에 같이 쓰러지는 바람에 짤릴 뻔 했잖아?”

“그렇군요.”

경도가 웃었다. 그것까지 생각해주니 새삼 은빛이 고마워졌다.

다음 날 오전, 경도가 은빛과 함께 할아버지 집에 들렀다. 수급물품을 나눠주는 척 안부를 체크한 것이다. 명당의 사색(死色)은 가시지 않았다. 딸을 기다리는 변지의 기색 역시...

“있잖아.”

돌아오는 길에 은빛이 입을 열었다.

“왜요?”

“나도 오 주임 관상은 믿지만 이번만은 빗나갔으면 좋겠어.”

“나도 그렇네요.”

그렇게 돌아간 다음 날이었다. 다시 할아버지 체크를 나가기위해 후원물품 중에서 수건과 쓰레기봉투를 챙겼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마당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경도와 은빛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 읍사무소 직원님들?”

닭을 손질하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순간 경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미간을 조여가던 사색이 사라진 게 아닌가?

“어르신...”

놀라 어쩔 줄을 모를 때 그 이유가 밝혀졌다. 안에서 중년의 여자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것이다.

“할아버지.”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달려왔다.

“아이구, 우리 종호.”

할아버지가 손자를 안아들었다.

“오 주임.”

은빛이 경도 옆구리를 찔렀다. 경도보다 은빛의 직감이 먼저 빛을 발했다. 바로 할아버지의 딸이었다. 경도는 보았다. 할아버지의 명궁을 물들였던 사색이 사라진 걸. 그리고 보았다. 변지에서 눈꼬리로 흐르던 필생의 그리움도 흐려지고 있는 걸.

할아버지가 평생 기다리던 딸이 찾아온 것이다.

“아오. 개짜릿.”

돌아오는 길에 은빛이 환희의 몸부림을 쳤다. 경도도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딸이 할아버지를 부양하러온 것은 아니었다. 곧 돌아갈 테니 외롭고 곤궁한 상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필생의 소원을 풀었다. 그거면 남은 여생 홀로 걸어갈 에너지로 충분했다.

< 맛점占 맛 좀 보실래요? 4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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