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점占 맛 좀 보실래요? 3 >
“우와, 내 인스타 오늘 제대로 뜨네?”
운전대를 잡은 은빛이 환호를 했다.
“사진 올렸어요?”
조수석의 경도가 물었다.
“당연하지? 인기 스타하고 찍은 건데?”
은빛의 입 끝이 귀로 올라간다. 경도 덕분에 이유빈과 셀카를 찍은 것이다. 현 주임은 물론이고 다른 여직원들까지 단체로 몰려왔다. 오죽하면 읍장도 그녀와 셀카를 찍은 마당이었다.
폐인인 이유빈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지만 스타로서의 이유빈은 달랐다. 톱스타는 아니지만 그 정도면 K시의 읍면동에서는 통하고도 남았다.
“이제 보니 우리 오 주임이 마당발이네? 기자에 유명 변호사에 스타까지... 게다가 시청에는 이 국장님까지 버티고 계시니 저 좀 잘 봐주세요.”
은빛이 너스레를 떨었다.
“운전이나 하시죠. 간만에 대우해 주니 기분은 좋지만 어째 좀 불안한 데요?”
“아오? 이거 왜 이러실까? 내가 비록 사기꾼 놈의 차였지만 BMW까지 몰아봤던 레이서야.”
“예, 알아모시겠습니다.”
경도가 허리를 조아리니 은빛이 출발을 했다.
“그거 알아?”
한참을 달리던 은빛이 화두를 꺼냈다.
“뭐요?”
“커밍아웃하니까 속이 대박 시원한 거. 그 인간 쩔쩔매던 거 생각하면 십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리는 거 같다니까.”
“이 선배도 대단해요.”
“오 주임의 신빨 관상 때문 아니겠어?”
“그걸 인정하는 것도 자기 복이에요. 개중에는 관상은 미신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거든요.”
“누가 그래? 나한테 데려와. 내가 그냥 콱.”
은빛이 멱살 잡는 시늉을 했다.
“아무튼 고마워.”
“인사는 그만해도 되요. 나도 이 선배가 잘 되어서 기분 좋은 데요 뭐.”
“아침에도 생각해 봤는데... 만약 오 주임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오늘도 떡칠 화장에 개짜증에 불안에 초조에... 아, 극혐.”
“할아버지 선물 샀어요?”
경도가 뒷좌석을 돌아보았다.
“일단 마스크부터 갚을 거고 할아버지 드릴 과일하고 이것저것... 전에 현장확인 한 번 가봤었는데 맨날 맨밥에 김치, 간장이더라고.”
“딸은요?”
“오전에 전화해 봤는데 완강해.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젊을 때 큰 실수를 했나봐.”
“실수라면?”
“폭행인 것 같아. 어머니와의 이혼도 아버지의 폭행이 원인이었던 것 같아. 자세한 말은 안 하는데 그게 딸의 마음에 멍울이 되었고 결국 아버지와 한 집에 살 수 없어 집을 나갔대. 아버지에게 말은 안했지만 아직도 용서할 수 없다네.”
“쩝.”
“꿀꿀하지? 그러니까 여자한테 잘 해.”
“할 말 없네요. 이 선배 등처먹은 인간도, 그 할아버지도 남자니까요.”
“오, 역시 쿨한데?”
대화하는 사이에 할아버지의 집에 다다랐다. 할아버지는 작은 텃밭에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햇살을 등진 얼굴이 고달파보였다.
“할아버지.”
관상을 좀 볼까 싶었는데 은빛이 시야를 가려버렸다.
“저 아시겠어요?”
“읍사무소 댁댁이?”
할아버지가 주춤 일어섰다.
“댁댁이요?”
“미안해요. 하도 댁댁거리니 우리끼리 부르는 이름이에요.”
“심하다. 나도 나름 친절한데.”
은빛이 심통난 표정을 짓는다. 할아버지는 미안해 어쩔 줄을 몰랐다.
“이거 받으세요.”
은빛은 마스크부터 안겨주었다.
“마스크?”
“죄송해요. 그 마스크 따님에게 주지 못했어요. 우리도 그 분이 어디 사는지 알 길이 없거든요.”
“그랬어요?”
할아버지 얼굴에 깊은 그늘이 진다.
“솔직히 말하면 할아버지 것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줬어요. 그걸 다시 갚는 거예요. 그분들의 감사와 함께요.”
“그래...?”
할아버지의 맥이 점점 더 풀려간다. 그래도 기대를 했던 눈치였다.
“대신 제가 다른 선물 좀 가져왔는데...”
“선물?”
“이리 오세요. 밭일은 좀 쉬었다 하시고요.”
은빛이 할아버지를 집으로 끌었다.
“짜잔, 이거 아시죠.”
은빛이 포장을 열자 반건조 민어가 위엄을 드러냈다. 은빛으로서는 거금 5만원을 쏜 대물이었다.
“민어네?”
“그때 댁댁거려서 죄송하고요, 제가 친딸은 아니지만 임시 딸 노릇 한 번 하려고요. 막걸리도 한 통 받아왔으니까 우리 관상박사가 민어 구울 동안 과일 깎아드릴 게요.”
은빛이 경도에게 민어를 떠맡겼다.
“내, 내가요?”
경도가 사색이 되었다.
‘빨리.’
그녀의 눈빛이 경도를 압박했다. 상황에 압도된 경도가 민어를 집어들고 비척비척 주방으로 향했다.
“아유,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할아버지가 손을 저었다.
“할아버지, 술은요 안주가 좋아야 해요. 우리 오 주임이 민어는 셰프급으로 구우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은빛은 바쁘다. 경도를 재촉하는 한 편으로 과일을 깎아낸다. 그 칼질은 다시 봐도 제법이었다.
‘아우.’
얼떨결에 주방에 들어선 경도는 검색부터 했다.
<민어구이>
몇 개 올라온 요리법을 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집에는 도시가스가 없었다. 대신 부탄가스다. 버너에 기름때가 꼬질거리는 건 물론이오, 바퀴벌레까지 어슬렁거린다. 휴지로 밀어버리자 이 놈은 날아차기 반격까지 시도했다.
‘미치겠네.’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지만 은빛의 눈치가 날아왔다. 별 수 없이 민어요리에 나섰다. 프라이팬은 더 가관이다. 코팅은 다 벗겨져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도 구분이 어렵다. 황폐한 주방에서 쓸만한 건 칼이었다. 모양은 볼품없지만 잘 갈아놓았다. 민어를 토막내 팬 위에서 구웠다.
진땀 속에 구이를 끝내니 은빛은 할아버지에게 술잔을 권하고 있었다.
“안주 나왔어?”
그녀가 접시를 받아들었다.
“와우. 진짜 셰프급이네?”
노릇하게 구워진 민어를 보고 환호하던 은빛. 그러나 뒷면을 보더니 바로 인상을 구겼다. 불길조절에 실패해 한 면을 태운 것이다.
“괜찮아요. 이만하면 늙은이 먹기에 황송하지.”
할아버지가 경도를 위로했다.
“우리 요리사도 여기 앉아요.”
할아버지가 경도 손을 잡았다. 그 자리에 앉아 막걸리 사발이 건너왔다.
“근무 중이라서요.”
경도가 사양했지만...
“한 모금만 해요.”
다시 강권하니 잔을 받아들었다.
“자, 늙은이 위로해주러 와서 고마워요.”
쓸쓸한 표정의 할아버지가 건배를 권해왔다. 은빛이 옆구리를 찌르니 잔을 마주쳤다. 할아버지가 눈길을 거두지 않자 한 모금을 넘겼다. 그제야 할아버지의 관상을 보게 되었다.
나이 80에 무슨 관상이냐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인간의 상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저 먼 옛날의 강태공이 그랬으니 그는 흰눈처럼 눈부신 귀를 가진 덕에 나이 80에 주문왕을 만나 출세가도를 달렸다.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짧으니 이마가 먼저 보였다. 이마 주름은 보통 3개가 기준이다. 주름이 하나면 ‘화개’라 하고 둘이면 ‘언월’이라한다. 세 개면 ‘복서’가 된다. 주름이 너무 많은 건 좋은 상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주름은 강렬하게 하나였다. 잔주름이 있지만 그건 개의치 않았다.
-주름이 하나면 화개.
고독하다.
게다가 짧다.
평생 고생할 상이다.
아내가 먼저 죽었으니 부부궁 간문을 체크한다. 움푹 꺼져있다. 간문이 꺼지면 더불어 체크할 곳이 있으니 콧방울과 구멍이다. 예상대로 콧방울 약하고 콧구멍이 허전했다.
‘혼자 살았어야 좋았을 사람...’
첫 상괘가 나왔다. 간문이 꺼지고 콧구멍이 허전한 사람은 아내를 얻은 후에 불행이 시작된다. 재물이 새고 가정이 깨지는 것이다. 간문의 어미에 할아버지의 인생여정이 또렷이 예고되어 있었다. 어미에 주름이 여럿 잡혔고 유두가 하향 지향이니 곤궁한 상이 한둘이 아니었다.
‘남유십극(男有十剋)...’
그 비기들이 경도 머리를 스쳐간다.
1) 수염이 제비꼬리처럼 둘로 나뉘면 좋지 않다.
2) 수염이 곱슬거리지 않고 직선이면 좋지 않다.
3) 수염이 턱의 한 가운데만 자라면 좋지 않다.
4) 수염은 많은데 머리숱이 없으면 좋지 않다.
5) 눈밑 와잠이 낮고 그늘지면 좋지 않다.
6) 와잠이 좀벌레처럼 아래로 처지면 좋지 않다.
7) 눈썹이 역8자 형태로 높이 솟으면 좋지 않다.
8) 눈 밑에 가는 털이 나면 좋지 않다.
9) 얼굴에 쭈글쭈글한 주름이 많으면 좋지 않다.
10) 유두가 아래로 향하면 좋지 않다.
열 가지 조건 중에 하나라도 포함되면 자식이 있더라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노년의 곤궁을 면하기 어렵다. 대략 보면 인상은 나쁘지 않은 할아버지. 그러나 지각이 꺼지고 두피까지 메말랐으니 남유십극에 몇 가지를 더하는 꼴이었다.
그럼 할아버지의 자식은 어떨까? 그건 눈밑의 와잠과 가슴팍의 형세로 읽을 수 있었다. 와잠에는 점 하나가 박혀 있었다. 아들은 없고 외동딸 하나다.
그 딸이 잘 되면 와잠에 윤기가 흐른다. 유두도 처지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두 부위는 그렇지 않았으니 딸 역시 고생스러운 인생을 사는 게 분명했다. 함께 보는 이마의 천창과 법령 옆의 지고는 참고할 필요도 없었다.
천창은 하늘이 주는 운기를 담은 곳이다. 이마의 측면이자 눈썹 끝의 위쪽 부위가 해당된다. 두둑하고 넓적하면서 평평하게 생기면 귀상이다. 여기에 귀의 윤곽까지 단정하다면 딸은 재복을 누리고 있기 마련이었다.
은빛이 할아버지의 빈 잔을 채워주는 사이에 디테일로 돌입했다. 할아버지는 폭력적이었을까? 상괘로는 아니었다. 법령이 둥근 편이니 기본 이상의 인덕은 갖추고 있었다.
그럼 딸이 한 말은 거짓?
경도의 관상안이 속도를 더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취하면 곤란하다. 경도의 마음을 모르는 은빛은 자꾸만 술을 부어주고 있었다.
다시 부부궁이다.
가까운 명궁이다.
늙은 피부라 찰색을 읽어내기 쉽지 않았다. 더구나 텃밭까지 가꾸고 있으니 햇빛에 탄 자국들이 방해가 되었다. 마음 속에서 싸목 할아버지의 쌀알을 불러냈다. 어쩌면 이럴 때를 위해 준비된 것인지도 몰랐다. 오행에 맞춰 쌀알의 줄을 세웠다.
황-적-청-흑-백.
긴 세월에 묻혀가던 찰색이 겨우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른쪽 부부궁에 푸른 기색이 감지된다. 이건 여자가 남자에게 이혼을 요구했다는 뜻이었다.
‘역시 폭행인가?’
고개를 갸웃하던 경도 머리에 사진 하나가 스쳐갔다. 주방으로 갈 때 벽에 걸린 사진을 보았던 것이다.
“잠깐만요.”
물을 가지러 가는 척 액자를 확인했다. 거기서 해답이 나왔다. 여자의 눈두덩이었다. 눈두덩이 두툼한 것이다.
눈두덩은 두툼하면 좋다. 얇거나 꺼지면 인생이 고단하다. 그러나 여자의 관상에서는 조금 달랐으니 여자의 눈두덩이 두툼하면 음탕한 데다 남편 외의 남자 사귀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즉 불륜이었다. 살까지 희고 부드러운 편이다. 그렇다면 평생 음란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은빛에게 문자를 보냈다.
[5분만 자리 좀 비켜주세요.]
“화장실 좀 다녀올 게요.”
은빛은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
“어르신, 방에 사모님 사진이 있네요?”
모른 척 대화를 이어갔다.
“사모님은 무슨...”
할아버지의 말투에 한숨이 담긴다.
쫄쫄.
막걸리부터 채워주었다.
“따님에게는 말 안 하셨죠?”
“뭘 말이오?”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사모님 사연요. 사모님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고 그래서 이혼을 요구하길래 손찌검을 하게 되었다는...”
“당신...”
와당탕.
놀란 할아버지가 막걸리 잔을 놓쳐버렸다. 경도가 걸레를 집어 흥건한 막걸리를 닦았다. 이 적중이 모두 다 상괘인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처지까지 짜깁기한 게 기막히게 적중한 것이다.
“우리 딸이 그 얘기를 하던가요? 애가 충격 받을까봐 말한 적이 없는데?”
“아닙니다. 실은 제가 관상공부를 좀 했습니다. 방금 방 안의 사진을 보니 사모님께서 왕성하신 데다 다른 남자 만나는 것도 예사로울 상에 시부모님도 어려워하지 않을 상이라...”
“......”
“결국 어르신께 이혼을 요구하셨겠지요.”
“아이고, 하느님.”
상괘를 듣던 할아버지가 스르르 넘어갔다. 귀신 같은 상괘에 맥이 풀린 것이다. 순간, 경도 눈에 불벼락이 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찰색이 나왔다. 명궁이 흐려지더니 눈빛도 흐려진 것이다. 더불어 코와 귀가 시들더니 콧방울에 먹구름이 들어왔다.
‘맙소사.’
경도가 경련했다. 경도조차 막을 수 없는 긴급 액운이었다.
< 맛점占 맛 좀 보실래요? 3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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