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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점占 맛 좀 보실래요? 2 > (59/245)

< 맛점占 맛 좀 보실래요? 2 >

아름다운 순간들 방송 시간이 되었다. 여러 차례가 지나가자 명혜의 기저귀가 나왔다. 5년 간 쓴 기저귀의 숫자를 합치니 약 5천장이었다. 하루 세 번 갈아주는 까닭이었다.

수술장면과 퇴원장면 등도 나온다. 이어 기저귀가 천사로 변하더니 마법의 지팡이로 오러를 뿌리자 새 포터가 되었다. 천사의 얼굴은 김 교수였다. 경도와 읍장, 엄 팀장 등의 천사가 가세해 포터를 명혜의 마당에 내려놓았다. 

안계홍이 명혜를 옆자리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매준다. 포터가 달린다. 명혜는 날아갈 듯 좋아한다. 마지막 포커스는 시원한 냇가가 보이는 배경으로 포터를 대고 찍은 사진이었다. 안계홍과 명혜, 김 교수가 중심을 이루고 읍장과 엄 팀장, 경도가 곁가지로 섰다.

찰칵!

아름다운 순간들은 그 화면을 끝으로 넘어갔다.

“고맙습니다.”

명혜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번진다.

“너무 고맙습니다. 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서 나중에 우리 명혜처럼 아픈 아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안계홍의 다짐이 메아리에 보태진다.

~i miss the taste...

경도의 전화기가 울렸다. 시골 사는 어머니였다.

“아들, 어디?”

“출근 중이에요.”

스피커 통화를 시작했다.

“방금 방송 봤다. 우리 아들 너무 자랑스러운데?”

“쳇, 언제는 보기싫어 죽겠다더니.”

“그거야 어릴 때 말이지. 엄마는 사실 늘 너 좋아했어.”

“흐음, 입술에 침이나 좀 바르시죠.”

“얘 좀 봐. 내가 증인 바꿔줄게.”

“증인?”

뭐라 물을 사이도 없이 높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경도냐? 나 거시기 쩌그 순정이 할머니다. 순정이 알재?”

“아, 예... 안녕하세요?”

“나도 있다. 탱자나무 집 아줌마.”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든다.

“거 참, 시끄러워. 시방 내가 말하고 있잖아?”

“......”

“암튼지간에 경도가 출세했네. 공무원되더니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예, 감사합니다.”

“시방 사귀는 색시 있어?”

돌발 질문이 나왔다.

“예?”

“없으면 우리 순정이 어쪄? 말난 김에 사돈 삼아볼까?”

“아이고, 이 양반이 어디까지 질러가시는 거야? 전화 이리 내요.”

왁자지껄한 웃음바다 뒤에 어머니가 컴백을 했다.

“동네 할머니들 다 모인 거예요?”

경도가 물었다.

“그래. 내가 너 방송에 나온다고 했더니 다들 몰려오셨지 뭐냐?”

“쑥스럽게...”

“쑥스럽긴? 엄마는 좋기만 한데. 아침은?”

“먹었지.”

“아무튼 우리 아들 최고다.”

“알았어요. 나 지금 운전 중이거든.”

“그래, 그래. 그럼 다음에 통화하자. 우리 아드을.”

간드러지는 어머니 목소리가 끝났다. 괜한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의 아침에 행복을 선물한 기분이었다.

“어, 오 주임.”

센터에 들어서니 민원실 분위기도 고조되어 있었다. 범인은 엄 팀장이었다. 일찌감치 출근해 다른 직원들을 잡아다 함께 방송을 본 모양이었다.

“방금 시장님께서도 전화하셨어.”

엄 팀장은 미친 듯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래요?”

“잘했다고 칭찬하시더라고.”

“팀장님이 연락하셨군요?”

“해야지. 이런 건 시장님도 아셔야해. 그래서 내가 비서에게 연락을 했지. 잘 했지?”

“예...”

“여러분, 기분입니다. 오늘 우리 민원실 모닝 커피는 제가 쏩니다.”

엄 팀장이 한 턱의 종소리를 울리자 여직원들이 환호를 울렸다. 그 환호와 함께 경도 책상의 전화기가 울렸다.

“감사합니다. 용포읍 맞복팀 오경도입니다.”

“날세.”

복명이 끝나기도 전에 이창교 국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국장님, 안녕하세요?”

“방송에 나오더군. 이제 유명인사야?”

“국장님도 보셨습니까?”

“엄 팀장이 자랑을 하더군. 자네 일이라면 안 챙겨볼 수 없지.”

‘엄 팀장...’

“김병로 교수는 또 어떻게 알았나? 관상?”

“예...”

“그렇게 저명한 분까지 연결하다니 대단해. 오후에 피자라도 몇 판 쏴야겠군.”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 데요?”

“나는 자네한테 투자 좀 하면 안 되나?”

“아, 아닙니다.”

“그렇게만 하게. 언제나 자네 주목하고 있으니.”

“감사합니다.”

인사와 함께 통화를 끝냈다. 그때였다.

“오 주임.”

민지가 경도 옆구리를 건드렸다. 고개를 드니 은빛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인사를 한다. 민원실장을 향해서, 민원주임을 향해서, 그리고 다른 팀원들에게도... 그것만으로 끝나도 황당할 판에 엄 팀장 앞으로 가서 정중히, 그리고 상냥하게, ‘안녕하세요? 팀장님’ 하고 미소를 날린다. 편안한 미소의 얼굴은 노메이크업, 즉 쌩얼이었다. 

그러고 보니 옷도 어제처럼 캐주얼이다. 베이지 면바지에 오렌지 면티를 입고 그 위에 감청색 가디건을 걸쳤다. 가방 역시 명품이 아니라 작은 크로스백이었으니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굳모닝?”

경도와 현 주임 앞으로 오더니 찡긋 윙크까지 날리고 탈의실로 향한다.

“오경도, 나 지금 제 정신이냐?”

현 주임이 너스레를 떨었다.

철썩.

대답대신 등짝을 갈겨주었다.

“야, 오경도.”

“아프군요? 아프면 제정신이잖아요?”

“해가 서쪽에서 뜬 거야? 럭셔리 된장녀 이은빛이 청순소박녀로 변신을 하다니...”

“그래서, 뭐 불만있어요? 주임님?”

은빛은 어느새 현 주임 뒤에 와 있었다.

“오경도, 너 혹시?”

“오경도라뇨? 오 주임, 선배대접 받으려면 후배부터 대우해야 하는 거 몰라요?”

은빛이 경도 편을 들었다.

“점점?”

“커피나 드세요. 드시고 후배에게 예쁜 말, 아셨죠?”

인희가 배달해온 커피를 받아든 은빛이 그중 하나를 현 주임 손에 쥐어주었다.

“앗, 뜨거.”

은빛에게 넋을 놓던 현 주임이 커피를 토해냈다. 뜨거운 커피를 생각없이 빨아 당긴 모양이었다.

“하여간, 남자들은...”

은빛이 티슈를 몇 장 뽑아주었다. 전에 없는 서비스였으니 이 또한 현 주임의 넋을 빼는데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젠장, 이거 왠지 나만 왕따되는 느낌인데?”

현 주임이 혼자 투덜거렸다.

“나 어때?”

자리에 앉은 은빛이 경도에게 물었다.

“마침 제대로 평가해줄 분이 오시는 데요?”

경도가 입구를 가리켰다. 전임 이장 송충규가 들어서고 있었다. 70 중반의 이 어르신은 다분히 유교적이다. 그렇기에 여직원들의 복장에 시비를 거는 일이 잦았다. 특히 은빛의 복장에 그랬다.

-술집 여자야?

-아예 벗고 다니지?

-낯 뜨거워서 원... 망졸세, 망조야.

은빛만 보면 열을 올리던 차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은빛을 보더니 눈만 멀뚱거린다.

“안녕하세요?”

그런 그에게 은빛이 먼저 기습 인사를 했다.

“......?”

“뭐가 잘못 됐어요?”

“그게 아니고... 자네가 그 여자 맞아?”

“네, 제가 이은빛인데요?”

은빛이 공무원증을 꺼내보였다.

“그런데 옷이...”

“복장이 야한가요?”

“아, 아니...”

“오늘은 어떤 일로 오셨어요?”

“그게... 우리 마을 다문화 애들이 엄마가 중국 가서 한달 째 안 오는 바람에 밥을 먹는둥 마는둥...”

“제가 접수할까요? 아니면 다른 직원 불러드릴까요?”

은빛이 전임 이장에게 물었다. 매번 은빛이 요사스럽다며 다른 직원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하지 뭐.”

이장이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아싸.’

은빛이 경도를 돌아보기에 윙크로 응원을 해주었다. 그녀도 화답을 한다. 사무실 분위기가 점점 더 밝아졌다.

점심은 육 과장이 쐈다. 특제삼계탕이었다. 코로나 때는 파리를 날리던 집이 기사회생을 했다. 관공서 근처의 식당들 회생에는 공무원들 기여도 컸다.

“점심은 가급적 나가서 드세요.”

시장의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IMF 때는 직원들을 구내식당으로 몰아넣었던 정부였다. 이럴 때 보면 자괴감이 커진다. 녹봉을 받는답시고 밥 먹는 것까지도 윗선에서 정하는 대로 가야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붐비는 식당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육 과장은 묵묵히 식사를 했다. 그는 특별히 권위적이지 않지만 매사의 공사는 분명하게 가렸다. 이 국장의 향기가 나는 것이다.

“엄 팀장님.”

식사가 끝나갈 때 쯤 과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예, 과장님.”

“곧 성과상여금 시즌이죠?”

첨예한 단어가 나오자 현 주임과 민지, 은빛 등이 반응을 보였다.

공무원의 성과상여금은 뜨거운 감자다. 오죽하면 공무원들 간에도 없앴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법이라는 건 만들기는 쉬워도 없애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이 시즌만 되면 직원들 간의 반목이 싹틀 정도였다.

여기도 게임처럼 등급이 나온다. 로망의 S등급도 있다. S등급은 상위 텐 프로 직원들이 가져간다. 액수도 많아서 7급 정도 되면 지급기준액의 170%에 달한다. 그 아래의 A등급은 125%, B등급은 85%를 받고 마지막 C등급은... 0원이 된다.

기준급 170% 대 0%.

누누이 말했지만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업무량은 오십보백보다. 그런데 누구는 170%의 거액을 가져가고 누구는 0%의 비애를 삼킨다. 그렇기에 이 시즌이 오면 직원들 간의 시기가 싹 트고 온갖 반목에 자괴심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의신청이라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거의, ‘말로만’이었다.

“여러분 모두가 잘 알겠지만 대개는 돌아가며 나눠먹기로 결정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제 원칙은 무조건 업무량에 업무의 난이도, 업무의 퀄리티, 업무의 자발성, 공무원의 인식제고입니다. 이런 요소들을 참고해서 결정할 테니 미리 이해를 바랍니다.”

육 과장의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성과상여금.’

경도에게는 안드로메다 공무원들의 일이었다. 지금까지 최고 성적은 B등급 한 번이었다. 그것도 당시 과장이 동정표로 던져준 혜택(?)이었다. 매번 C등급으로 0원의 성과상여금을 받아왔기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슬슬 준비해야지?”

오후가 되자 은빛이 경도에게 사인을 보냈다.

“둘이 같이 나가?”

현 주임이 또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왜요? 나는 오 주임이랑 같이 나가면 안 돼요?”

은빛이 대놓고 들이댄다.

“아니, 그게 아니라...”

현 주임은 미녀에게 약하다. 당장 꼬리를 내렸다. 그때 피자배달원 둘이 피자를 한아름씩 안고 들어왔다.

“오경도 님이 누구세요?”

앞의 배달원이 물었다.

“난데요.”

경도가 손을 들었다. 피자는 무려 20판이었다.

“누가 보낸 거야?”

엄 팀장이 다가왔다.

“아침에 이 국장님이 간식거리 얘기하시더니 보내셨나? 이거 보낸 사람이 누구죠?”

경도가 배달원을 바라보았다.

“밖에 계세요. 지금 들어오실 걸요?”

배달원이 입구를 가리켰다. 그와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이 들어섰다.

“어머, 이유빈이야.”

저만치의 민원팀 여직원이 먼저 자지러졌다.

‘이유빈?’

그제야 알았다. 막강 오러를 뿜으며 다가오는 여자. 방송에서 보던 여신 자태의 이유빈이었다. 얼마 사이에 볼살이 오른 그녀가 완전체 미녀의 자태로 경도 앞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안녕하세요, 관상박사님.”

그녀가 인사를 해왔다. 액운은 몰라보게 걷혔으니 마침내 대운을 코앞에 둔 그녀가 어머니와 함께 감사인사를 온 것이다.

“저 그때 말한 로드 매니저랑 계약을 했어요. 관상박사님 말씀대로 그 매니저, 아버지가 강남 빌딩부자더라고요. 계약금도 빵빵하게 받았어요. 복채는 나중에 제대로 챙겨드릴 거고요, 오늘은 예고편이에요.”

그녀가 직접 피자 한판에 더해 기탁금을 내놓았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써주세요.”

1천만 원이었다.

민원실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어 왔다. 최고는 아니지만 스타 반열의 이유빈이었다. 그런 그녀가 경도에게 깍듯하니 경도를 다시 보는 것이다.

읍장과 과장이 내려와 기탁식 사진을 찍었다. 보도자료도 내야한다.

경도 기분?

다 알면서 왜 물으세요? ㅋㅋ

< 맛점占 맛 좀 보실래요? 2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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