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쾌한 상괘 맛 좀 보세요-1 >
퇴근 직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 전화 받을 수 있어?”
근무시간에 결려오는 어머니의 전화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시작한다.
“그럼요. 왜요?”
“높은 분들 눈치 보이는 거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전화를 받으며 복도로 나왔다.
“우리 아들 승진했다길래 이것 저것 좀 싸서 택배 보냈어. 오늘 들어갔을 거야.”
“안 그래도 된다니까. 엄마 힘들게...”
“엄마는 하나도 안 힘들어. 형네도 보냈으니까 걱정말고 잘 챙겨먹어.”
“고마워요.”
“고맙긴... 피곤해도 밥 굶지 말고.”
“참, 엄마, 나 방송에 나올 것 같은데?”
“으응? 방송?”
“응, 내일 아침에 시간되면 한 번 봐봐.”
“봐야지. 몇 시냐?”
“8시 아름다운 순간들. 아마 간단하게 나올 거야.”
“간단한 게 문제냐? 알았으니까 걱정마라.”
어머니가 전화를 끊었다. 또 뭘 보내신 걸까? 언젠가는 파김치와 오이소박이, 갓김치 등을 보냈었다. 첫날 한 번 먹고 깜빡 잊었다. 나중에 열어보니 전부 식초김치가 되어 있었다.
어찌나 시어버렸는지 코를 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미안하니 뭘 보내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일단 보냈다 하면 그 양이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그게 뭐가 많아? 그리고 조금 만들면 맛이 없어.”
그때마다 나오는 어머니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경도는 혼밥 먹는 남자다. 바쁘면 반찬 한 가지만 꺼내놓고 먹고 더 바쁘면 햇반만 몇 숟가락 뜨기도 한다. 어머니가 알 리 없는 일상의 비밀들이었다.
“오 주임.”
2층에서 내려오던 엄 팀장이 경도를 불렀다.
“홍 의원님에게 가야지?”
“예...”
“시간 되면 나오라고.”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고 책상으로 향했다. 사통망의 소식을 체크하고 로그아웃을 했다. 사통망은 사회복지에 관한 소식과 공지 등이 올라오는 곳이었다.
“오 주임.”
퇴근준비를 할 때 민지가 다가왔다.
“왜요?”
“아까 은빛 말이야, 둘이 무슨 얘기했어?”
“아, 그거요? 별 거 아닌데...”
경도가 뒤통수를 긁었다.
“별 거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은빛이 걔 옷하며 쌩얼하며... 빨리 이실직고 안 해?”
“실은 관상 좀 봐줬어요.”
“관상?”
“지나친 노출, 비싼 옷, 진한 화장... 이 주임님에게 안 좋다고요.”
“진짜?”
“예.”
“그랬더니 은빛이 바로 알아들어?”
“겁도 좀 줬죠. 말 안 들으면 초강력 액운이 생길 거라고.”
“그래도 그렇지...”
“배 주임님, 제 관상 실력 아시잖아요? 영감 제대로 받으면 족집게라는 거.”
“그건 인정.”
“주임님은 기어이 지갑 여셨네요?”
경도가 재복궁인 코를 보며 말했다. 돈이 빠져나간 기색이 엿보인 것이다.
“어쩌겠어? 안 빌려주면 마음이 안 편해서 잠도 안 오는데. 대신 이번에는 차용증에 공증까지 받았어. 오빠 책임감 좀 심어주려고.”
“그건 잘 하셨네요.”
“아무튼 그래서 은빛이 마음이 변했다?”
“두고 보세요. 내일부터 확 변신할 테니까.”
“글쎄... 내일 아침이 궁금해지긴 한다. 천하의 은빛이 관상박사의 말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작심 한 나절로 끝날 것인가?”
“잘 될 거예요. 그럼 먼저 들어갑니다.”
인사를 하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창밖에서 재촉하는 엄 팀장 때문이었다. 이 분의 마음은 벌써 홍 의원과의 약속장소에 가 있는 모양이었다.
“오시나 보네?”
작은 방의 테이블 앞에서 엄 팀장이 촉각을 세웠다. 문 밖의 발소리 때문이었다.
“어이쿠, 내가 늦었군요.”
홍 의원이 등장했다.
“어서 오십시오.”
엄 팀장이 일어나 홍 의원을 맞았다. 경도도 그 뒤를 이었다.
“우리 관상박사님, 요즘 아주 핫해?”
홍 의원의 덕담이 나왔다.
“의원님도 기저귀 천사 나오는 방송 보셨습니까?”
“봤지요. 우리 집사람이랑 한동안 먹먹했습니다. 시의원 면목이 없더군요.”
홍 의원이 자리를 잡았다. 엄 팀장과 경도는 그 앞자리에 앉았다.
“그것도 관상이었답니다. 미국 최고의 의사를 설득한 거 말입니다.”
“우리 오 주임 관상이야 내가 유경험자 아닙니까?”
“아드님은 어떻습니까?”
경도도 분위기에 합세했다.
“잘 크고 있네. 그 놈 볼 때마다 오 주임에게 감사하고 있어.”
“다행이군요.”
“그렇잖아도 방송보더니 우리 집사람이 오 주임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더군. 그래서 내가 그랬네. 그러고 싶으면 나한테 좀 잘 하라고.”
“사모님 내조야 정평이 난 거 아닙니까?”
엄 팀장이의 아부가 발동을 걸었다.
“어허, 오 주임이야 미혼이니 그렇지만 팀장님은 알만한 분이 그러시네. 우리 나이에 그 이들이 아내입니까? 여왕님이시지. 날마다 눈치보고 살아요.”
“의원님도 그렇습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어쩌겠습니까? 눈칫밥이라도 얻어먹으려면 비위 맞추며 살아야지.”
“아, 의원님 같은 분이 이러니 저 같은 촌부들은...”
“이 사람 별 거 없습니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저는 엄 팀장님이 부럽습니다. 거긴 정규직이고 우린 기간제잖아요.”
“아이고,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틀린 말입니까? 지금이야 시의원이라도 한 자리하고 있으니 두 분이 만나주는 거지 낙선해보세요. 아마 만나주지도 않을 걸요?”
“오 주임, 관상으로 그런 것도 되나? 공처가 확인?”
할 말이 곤궁해진 엄 팀장이 경도를 끌어들였다. 그냥 있는 것도 편하지 않아 분위기 좀 맞춰주었다.
“가능하죠.”
“그럼 의원님 말이 맞는지 검증 좀 해주시게. 내가 보기엔 상남자 같으신데 공처가시라니...”
“검증은 당치 않고 기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상법에 보면 과거 송의 태조는 왼쪽 눈이 작고 오른쪽 눈이 큰 짝짝이였는데 아내인 황후만 보면 경기를 했다고 합니다.”
“눈?”
엄 팀장이 벽면의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나아가 수염의 방향 또한 왼쪽으로 올라가는 편이면 또한 아내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수염도?”
“마지막으로 눈꺼풀에 검은 점이 여럿이면 공처가라고 합니다만...”
정답을 내준 경도가 조용히 웃었다. 확인은 각자의 몫으로 두고 굳이 정리하지 않았다. 서로 무안할 상괘는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어디 우리 엄 팀장님 얼굴 한 번 봅시다. 눈도 정상이고 점도 없고 수염도 그렇고... 상남자는 여기 있었네.”
홍 의원도 나름 정치가다. 엄 팀장을 추켜세움으로써 공처가 화제를 끝내버렸다.
“상남자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나저나 곧 유럽 선진문화체험 가시죠?”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일정이 나왔습니까?”
“아까 임시회 말미에 의회사무국장이 알려주더군요. 12박 14일로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돌아볼 것 같습니다.”
“아, 제가 의회에 근무하면 수행할 수 있었는데...”
“거기가 이번에 코로나로 초토화가 되었지 않습니까? 서로의 피해극복 사례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더군요.”
“그럼요. 속 모르는 사람들은 공무원이나 의원님들이 외국에 나가면 외유라고 비난 일색인데 우물안 개구리 면하려면 나가야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 팀장님도 얼굴이 훤하신데 뭐 좋은 일 있어요?”
“어이쿠야, 의원님도 관상 배우셨습니까?”
“관상박사님 앞에서... 이런 건 관상이 아니라 눈치 아닙니까?”
홍 의원이 웃었다.
“실은 그 기저귀 천사 후속편으로 최신형 포터 기증식이 있었습니다. TTC 방송에서 취재해갔는데 내일 아침 방송에 나온답니다. 의원님도 시간 있으면 잠깐 챙겨보시죠.”
“그래요? TTC?”
“예. 우리 오 주임 주선으로...”
“정말이신가?”
홍 의원의 확인이 경도에게 들어왔다.
“명혜 아버지 차가 너무 낡아서 생계를 잇기가 어렵기에 뜻 있는 분들에게 부탁을 드렸는데 그게 성사가 되었습니다.”
“중고도 아니고 최신형?”
“예.”
“허어, 진짜 애국자는 여기 있었군. 시 의원으로서 진짜 볼 낯이 없네.”
“다들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김 시장은 뭐하나 몰라? 이런 직원은 팍팍 승진을 시켜야지.”
“얼마 전에 승진했지 않습니까?”
“막차로 8급 달았다면서? 내가 보기엔 당장 7급, 6급을 줘도 아깝지 않아요.”
“다음에 의원님이 시장님 되시면 그때는 제대로 좀 챙겨주십시오.”
엄 팀장이 슬쩍 떡밥을 깔았다.
“되기만 하면 해주지. 특진이라는 게 왜 있는 겁니까? 이런 직원들 사기 올려주라고 있는 거지.”
“그렇죠? 역시 의원님 마인드는 다르십니다.”
“계속 그렇게만 하시게. 내가 언제 김 시장 보면 담판 한 번 지어볼 테니까.”
홍 의원이 기염을 토한다. 그 기색이 경도의 관상안에 들어왔다. 광대뼈 부위의 음즐궁이었다.
-그 사람 좋은 사람 같아.
-그 인간 나쁜 인간이야.
사람들은 누구나 상대를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이 인상이다. 그 인상을 빅 데이터로 녹여낸 게 관상이다. 다만 그 과거에는 빅 데이터라는 용어가 없었을 뿐이다.
인간의 마음을 파악하는 관상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눈이오, 또 하나는 음즐궁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니 눈이 맑고 수려하면 마음이 선하다. 같은 이유로 음즐궁이 평안하고 풍후하면 선한 사람이다.
음즐궁은 눈밑 와잠에서 광대 쪽에 가깝다. 양심에 털난 인간은 이 음즐궁에 검푸른 힘줄이 엿보인다. 이 곳이 깊게 패이거나 꺼지면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제후들 중에는 음즐궁을 기준으로 인재를 구하기도 했다. 음즐궁 위의 와잠에 주름이 지면 초대박이다. 자손만대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홍 의원의 음즐궁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시 의원 상당수가 그랬다. 진정한 마음으로 시에 봉사하는 사람이 드문 것이다. 그러나 홍 의원은, 심한 편이 아니니 적을 질 사람은 아니었다.
“오 주임, 뭐하시나? 의원님 장도 운 좀 봐드리지 않고.”
엄 팀장이 경도를 재촉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홍 의원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길은 경도의 관상 밖에 없다는 걸.
“그런 것도 관상으로 볼 수 있나?”
홍 의원이 물었다.
“예.”
“그럼 다른 거 말고 이번 여행이 길한가 아닌가만 좀 봐주시게. 코로나 사태 후로 처음 가는 것이다 보니 조금 부담도 된다네.”
홍 의원이 얼굴을 들었다. 이때만은 모든 사람이 평안한 표정을 짓는다. 관상은 객지의 일도 살펴볼 수 있다. 그 신호는 이마의 양 모서리 변지에 나타난다. 변지를 꿰뚫는 경도의 관상안이 빛나기 시작했다.
잠시 눈꼬리를 더듬어 숨겨진 청색 기운을 찾아낸다. 여기서 이마 모서리로 번지는 기세의 변화를 읽는 것이다. 변지로 올라가던 청색 기운에 파장이 보인다. 파장의 한 가운데가 털썩 끊겨 있다. 경도의 표정이 무겁게 변했다.
“죄송하지만 임시회 끝나면서 사진 찍지 않으셨습니까?”
상괘를 주기 전에 질문부터 던졌다.
“찍었네만.”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러시게.”
홍 의원이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사진파일을 열고 의원들 얼굴을 찾았다. 하나하나 눈꼬리 쪽을 확대해본다. 그러다 두 명의 의원에게서 경도 미간이 격하게 구겨졌다.
“이번 해외탐방...”
홍 의원에게 시선을 맞춘 경도, 차분하게 남은 상괘를 펼쳐주었다.
“취소하십시오.”
“취소?”
돌연한 상괘에 홍 의원이 소스라쳤다.
“무슨 이유로?”
“만약 안 된다면 홍 의원님만이라도 빠지시는 게 좋겠습니다.”
“오 주임.”
“그래도 가신다면 시장후보 공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재미 삼아 물어온 일에 극단의 처방을 내놓은 경도였다. 그러나 홍 의원은 경도의 영험함을 알고 있다. 긁어부스럼이 된 상괘 앞에서 그의 표정은 복잡미묘해질 수 밖에 없었다.
< 상쾌한 상괘 맛 좀 보세요-1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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