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님의 반전-1 >
요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첫 반전 테이프는 방 기자가 끊었다.
빵빵!
기증식을 마칠 무렵이었다. 작별인사를 나눌 때 방송국 차가 경적과 함께 들이닥쳤다.
“조 선배님.”
방 기자의 전격 등장이었다. 이번에는 동료 피디까지 대동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난 또 시골 일이라고 안 오는 줄 알았지?”
“빈정 상했습니까? 코로나 방역유공 의료진들 취재하느라 늦었습니다.”
“진짜야?”
“그럼요.”
“좋아. 그럼 인정. 코로나 때 고생한 사람들은 대우 좀 받아야지.”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명혜 보도한 기자인데요, 이런 미담 빼놓을 수 없어서 아침 방송 프로그램 피디를 모셔왔습니다. 번거롭겠지만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
방 기자가 외쳤다. 그림이 한 번 그려졌다. 이미 해본 일이라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반전은 그 취재의 말미였다. 다리에 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누군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명혜가 달려갔기 때문이었다.
“엄마.”
<엄마>
그 한 마디가 모두의 시선을 흔들었다.
“우리 집사람입니다. 시장 갔다오는 모양이네요.”
안계홍이 쑥스럽게 웃었다. 명혜 손을 잡고 온 명혜 엄마는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가출한 죄 때문이었다. 그녀의 간문은 나쁘지 않았다. 남자가 있어서 나간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죄책감 때문이었다. 가출 후 절에 가서 속죄를 했다. 그러나 그녀가 할 일은 기도가 아니라 아이를 돌보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로부터 나흘 후에 수술 방송을 보게 되었으니 용기를 내어 안계홍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방송 나가고 얼마 후에 전화가 왔더라고요. 자다가 받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안계홍이 그녀 옆에 서니 잘 어울려 보였다.
“역시 우리는 뭉쳐야 하나봐. 당신이 돌아오니까 행운이 계속 이어지잖아?”
“이이는...”
“고맙습니다. 이 차로 돈 열심히 벌어서 여러분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안계홍이 고개를 숙였다. 그 아내도 따라했다. 명혜도 빠지지 않았다.
“이거야 원, 돈 몇 푼 쓰고 엄청난 인사를 받게 되네요. 관상박사님.”
김 교수는 마냥 흐뭇한 표정이었다.
“너무 고맙습니다.”
경도가 화답했다.
“내가 할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 말했던 후원회 건, 잊지말고 연락주세요. 거기 안 끼워주면 두 분 얼굴 다시는 안 볼 겁니다.”
“예.”
“아, 그리고 우리 아들 말입니다. 원래는 같이 오려고 했는데 관상박사님 덕분에 오지 못했습니다.”
“저 때문에요?”
“그때 내려준 점괘 말입니다. 왼쪽으로 가라는?”
“예...”
“기막히게 적중했습니다. 여당의 영입을 받기로 결정한 직후에 야당의 그분에게 문제가 생겼지 뭡니까? 국회 내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해 돌출 발언을 하는 바람에 논란이 되다보니 최고의원 자리에서 내려온 모양입니다. 만약 그쪽 줄을 잡았더라면 공중에 뜰 뻔 했습니다.”
“다행이네요.”
“아들이 언제 밥 한 끼 모시겠다고 하더군요. 기억해 두었다가 연락이 오면 꼭 받아주십시오.”
“제가 영광이죠.”
“그럼 이 사람은 이만 갑니다.”
김 교수는 엄 팀장과 읍장에게 인사를 챙긴 후에 떠나갔다.
“세상에, 저 분이 그 김병로 교수일 줄이야...”
교수가 떠나자 읍장이 몸서리를 쳤다.
“그렇게 유명하십니까?”
엄 팀장이 물었다.
“유명하다마다요. 민변 멤버들 중에서도 최고로 강직하고 정의로운 분이지요. 남들 다 좇는 정치권 무임승차도 마다하셨는 걸요. 지금도 청와대에서 자문 전화를 종종 받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설명은 조경철의 입에서 나왔다.
“그런 분이 우리 오 주임에게 저리 깍듯이?”
“그러니까 엄 팀장님은 복 받은 겁니다.”
“엄 팀장만 그럽니까? 나도 복 받은 것 같군요. 살면서 방송에까지 나오게 되었으니...”
읍장도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저기... 몇 시 뉴스에?”
그 사이에도 엄 팀장은 방 기자를 향해 팩트 체크 들어가신다.
“모레 아침 ‘아름다운 순간들’ 코너입니다.”
“읍장님, 모레 아침이랍니다.”
“수고 많았네. 솔직히 자네가 이렇게까지 대단한 일을 해낼 줄은 몰랐어.”
읍장이 치하가 따뜻했다.
쪽.
마무리는 귀요미 명혜의 뽀뽀였다. 안계홍의 지시였다. 명혜는 낯도 가리지 않고 그 말을 따랐다. 차에 오르기 전, 다시 뭉친 가족의 관상을 확인했다. 부부의 부부궁에 밝은 윤기가 아롱거렸다. 위기는 지나갔다. 백미는 명혜의 관상이었다.
어린 아이도 관상을 볼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남자는 16세가 되면, 여자 역시 초경을 치루는 나이 정도 되어야 상이 완성된다. 하지만 명혜 이마에는 화사한 꽃분홍이 떠있다. 부모궁으로 불리는 일월각이었으니 진달래꽃을 붙인 것만 같았다.
쪽.
그 일월각에 뽀뽀로 화답했다. 그 미색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경도의 축복이었다.
<신형 포터 기증>
방송에 나기도 전에 센터를 후끈 달구었다. 중계자는 엄 팀장이었다.
“이야.”
현 주임과 배 주임도 감탄사를 토했다. 시큰둥한 반응은 은빛 뿐이다.
“포터 신형에 풀옵션이면 대체 얼마야?”
민원팀도 관심을 숨기지 못했다. 센터를 통해 들어온 기증품치고는 가히 역대급이었다. 사진은 엄 팀장이 카톡과 문자로 방방곡곡에 뿌렸다.
“저녁 뉴스하고 모래 아침 방송 꼭 보라고.”
그래도 지인은 많았으니 온갖 부서에서 전화가 들어왔다. 심지어는 홍 의원에게도 치하를 받는 엄 팀장이었다. 덕분에 커피를 얻어마셨다. 널널해진 엄 팀장이 민원실 전체에 쏜 것이다.
“마셔요.”
은빛 몫은 경도가 챙겨주었다.
“......”
은빛은 여전히 냉랭하다. 그러고 보니 외출 후에 표정이 더 굳었다.
“괜찮아요?”
“안 괜찮으면?”
“아프면 병원에 가야죠.”
“잠깐 나 좀 봐.”
은빛이 일어섰다. 그녀를 따라 화단 쪽으로 나갔다.
“요즘 잘 나가네?”
그녀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즐겁게 해보려고요.”
“관상 말이야.”
“네?”
“진짜 뭐든지 알 수 있어?”
“뭐, 뭐든지는 아니죠. 관상으로 볼 수 있는 것만.”
“지금까지의 일들 돌아보면 뭐든지잖아?”
“오, 관심 있었네?”
“......”
“봐드려요?”
“화장 지워야한다고?”
“관상정보의 반이 얼굴색에서 얻는 거거든요.”
“그럼 퇴근 후에 체리커피에서 만나.”
은빛이 돌아섰다. 그녀답게 부탁도 시니컬했다.
“유휴.”
경도가 주먹으로 허공을 후려쳤다. 마침내 은빛이 미끼를 물었다. 팀 케미를 끌어올릴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드르륵.
주문 진동기가 울렸다. 경도가 일어나 카운터로 걸었다.
“심각해요?”
커피를 내주던 인희가 나지막이 물었다.
“하나도.”
“이 주임님은 심각해 보이는 데요?”
“쉿, 공모전 잘 되어가지?”
“뭐 그럭저럭요.”
“대상 당선. 알았지?”
기를 넣어주고 자리로 돌아왔다.
“시작할까요?”
경도가 은빛에게 물었다.
“아, 씨... 왜 하필 쌩얼이야?”
얼굴 둘 곳을 모르던 은빛이 미적미적 고개를 들었다. 강남 금수저에 도도의 여왕도 쌩얼은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그게 화장을 하면...?”
긴장을 풀어주려던 경도의 시선이 차분하게 멈췄다. 이은빛의 얼굴이다. BMW를 굴리고 다니던 폼생폼사의 여자. 하루라도 홈쇼핑을 하지 않으면 손가락에 곰팡이가 슨다는 그 여자...
<위선>
쉬운 말로 짝퉁이다. 경도 입에 맺힌 핵심 상괘는 그것이었다. 은빛은 금수저의 딸이 아니었다. 이마를 가리던 머리카락이 사라지니 한 눈에 보였다. 이 여자는 무조건 경도와 같은 부류였다. 그럭저럭 밥 굶지 않는 부모에게 태어난...
경도 뇌리에 은빛의 기존 이미지들이 스쳐갔다. 명품 향수에 명품 가방, 그리고 명품 신발들... 오죽하면 연수원 같은 데서도 신발을 머리맡에 두고 잤던 그녀였었다.
그러나 관상은 그 반대의 길을 말해주고 있었다. 관상이 옳다면 그녀의 행위는 모두가위선이자 기만이었다.
“......”
내색하지 않았다. 은빛의 정체를 밝히려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만난 곤란으로부터 짐을 덜어주어 지지를 받으려던 목적을 경도는 잊지 않았다.
“애인 있으시네요.”
조용한 미소로 다른 상괘를 숨겼다.
“진짜 그런 게 보여?”
은빛이 호감을 보인다.
“그럼요. 애인이 있으면 눈가의 간문이 달라져요. 부부궁이라는 곳인데 핑크빛이 돈다고나 할까?”
“핑크빛? 어디?”
그녀가 손거울을 들이댄다. 그녀 눈에 보일 리 없다.
“관상 트레이닝을 받아야 보이죠.”
“핑크빛이라며?”
“그거 꽁으로 보이는 거 아닙니다.”
말하고 나니 살짝 찔렸다. 기연이 있었다지만 싸목 할아버지가 거의 거저준 거였다. 아니다. 그러고 보니 대가를 치르기는 했다. 병원에 실려가고 짤릴 뻔도 했던 것이다.
“또 뭐를 알 수 있어?”
“잠깐만요.”
일부러 뜸을 들여가며 뜯어보았다. 신비감의 가미였다.
“돈이 줄줄 새요.”
“돈?”
“콧대... 콧날의 중심부를 기준으로 그 좌우에 칙칙한 황색이 떴어요. 이게 콧방울까지 흘러가고 있으니 계좌 비밀번호가 뚫린 거나 다름없죠.”
“미안하지만 나 지금 투자 중이거든.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걸 거야.”
“은행이 아니고 남자에게요?”
“어머, 그것도 보여?”
“사이는 썩 좋은 편이 아니네요?”
“그거야 뭐 오래 사귀다 보면...”
은빛은 경도의 상괘를 피해갔다.
“......”
“기분 나빠?”
“그렇지는 않은데... 좀 안 좋은 게 있어서요.”
“말해봐. 나 속 넓은 여자야. 알잖아?”
“진짜 말합니다?”
“그래.”
“눈썹 사이에 난 뾰루지 같은 거 있잖아요? 그거 근래에 난 거죠?”
“아, 씨... 이래서 쌩얼 안 보여주려던 건데...”
은빛이 손으로 이마를 가렸다.
“그게 좀 심각한 거예요.”
“뭐가? 그냥 피부 트러블인데.”
“거기가 인당이라고 하는 데 깨끗할수록 운이 좋은 곳이거든요. 그게 색깔까지 어두운 붉은 색이라...”
“아, 씨, 그럼 뾰루지가 빨갛지 하얀 것도 있어?”
“있죠. 관상에서는 얼굴의 기색이 다섯 가지로 나오거든요.”
“이제 보니 썰도 잘 푸네?”
“저 진지해요.”
“재미없다. 그만 하고 술이나 한 병 까자.”
은빛은 일방 선언을 하고 일어섰다.
“뭐해?”
문으로 걸어가면서 돌아본다. 대책 없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직장 동료들과 술 마시는 적이 거의 없었다. 상황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제의였다.
“한 잔 따라봐.”
구석진 테이블에서 은빛이 술잔을 내밀었다. 군말없이 따라주었다. 나이 먹은 사람만 꼰대질 하는 거 아니다. 젊은 사수들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세상은 어느새 내로남불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원 모어.”
바로 들이키더니 또 잔을 내민다. 그 또한 채워주었다.
“아이, 씨... 오 국장님은 왜 그런 사고를 쳐가지고...”
은빛이 아쉬움을 토로한다. 오 국장이 정경주 사건의 범인이 아니었다면 은빛은 시청으로 이동했을까? 그건 아니었다. 은빛의 천이궁에는 전출입이나 이사의 기색이 없었다.
사실 은빛도 환영 받는 8급은 아니었다. 일선에서 8급 공무원은 실무형이어야 한다. 9급 신규를 지나 업무에 살짝 눈을 뜬 사람이다. 무게감이 있는 7급을 보좌해 팀의 실질에 기여한다.
은빛은 그런 쪽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리회전과 강단은 나쁘지 않지만 자기 편의를 위해서만 움직였다. 민원에게 그렇듯 상사들에게도 그랬다. 득이 된다 싶으면 애교작렬이고 아니다 싶으면 은근히 무시하기 일쑤였다.
K시는 좁다. 10년 이상 근무하면 문제아들 리스트 정도는 꿰고 산다. 걸핏하면 민원인과 트러블을 일으키는 은빛이었으니 일 좀 제대로 하는 과장이라면 거두고 싶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괜히 공무원 시험 봤지. 나도 연예계 쪽으로 빠졌어야 하는 건데...”
은빛의 목소리가 꼬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계 경위가 떠올랐다.
술 마시다 쓰러져 버리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직원에 짧은 치마를 입었으니 들쳐업기도 마땅치 않을 판이었다.
“무리하는 거 아닙니까?”
이제 자작까지 하는 그녀의 손을 경도가 막았다.
“놔둬. 민원인한테 술집여자라는 소리나 듣는 신세인데 좀 마시면 어떻겠어?”
또 한 잔이 원샷으로 비워진다.
“아, 씨... 난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냐?”
은빛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데 그냥 자괴감이 아니었다. 그녀의 손에 물방울이 떨어진 것이다. 이은빛, 도도함을 네임드로 달고 사는 그녀가 울고 있었다.
아하.
한숨이 나왔다. 결국 맛탱이가 가버린 모양이었다.
“잠깐만요. 계산하고 올 게요.”
경도가 일어설 때였다. 그녀의 손이 경도의 옷깃을 잡아챘다.
“아까 한 말... 다 맞아. 그 인간이 점점 이상해지는 거, 돈이 줄줄 새는 거...”
이은빛의 취중진담이 나왔다.
고맙게도 여기서 무너져준 것이다.
< 공주님의 반전-1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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