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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화꽃에도 레벨이 있어요-1 > (53/245)

< 도화꽃에도 레벨이 있어요-1 >

금요일 아침은 조유란의 전화로 시작했다.

“오경도, 나.”

“어, 누님. 웬일이세요?”

“다 알면서 묻는 거?”

“뭘요?”

“나 지금 병원이야.”

“아, 건강 체크 받으셨어요?”

카톡문자를 생각해냈다. 승진 파티를 하던 날 그런 문자를 보냈었다. 일이 바빠 잊고 있던 차에 전화가 온 것이다.

“너 신들렸냐?”

“다짜고짜 무슨 신요?”

“나 대장암 걸릴 뻔 했잖아? 그때 대장내시경 안 받았으면 꼼짝마였대. 의사가 말하길 몇 달만 늦게 왔어도 용종이 자칫 초기 암으로 진행될 정도였다는 거야.”

“그럼 희소식이네?”

“야, 오경도...”

“용종은 떼어버렸죠?”

“물론이지.”

“그럼 이제 푹 쉬면서 몸 좀 챙기세요. 대장내시경 그거 굉장히 빡세다고 하던데...”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진짜...”

“지금 우는 거 아니죠?”

“절대 아님. 그런데 이거 진짜 내 관상보고 안 거야?”

“안 믿겨져요?”

“당연하지. 관상이 무슨 MRI냐?”

“그럼 그냥 재수라고 생각하세요.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알았어. 나중에 밥 한 번 쏠게.”

“그 말은 녹음되었습니다.”

조크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다행이었다. 사실 문자를 보내놓고 경도도 잊고 있었다. 게다가 성인이니 멱살 캐리해서 데려갈 수도 없었다. 좋은 전화를 받으니 아침부터 즐거워졌다. 그 즐거움이 복제를 했다. 김 교수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2시간 후쯤 찾아오고 싶다는 전갈이었다. 기꺼이 기다리겠다고 했다.

포터를 사오는 걸까?

아니면 기증 스케줄을 잡으려는 걸까?

급한 마음에 안계홍의 전화번호가 아른거렸다. 명혜는 이미 퇴원을 했다. 그렇잖아도 후원금 전달을 위해 방문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명혜와 아빠의 환한 얼굴을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하지만 센터는 여전히 종잡기 어려운 곳이다. 민원인 누구 하나 빈정이 상하거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바로 전쟁터가 된다. 오늘의 전쟁유발 당첨자는 은빛이었다.

쾅.

상담실에서 들려온 충격음이 시작이었다. 돌아보기 무섭게 고함이 터져나왔다.

“뭐? 거짓말? 야, 이 년아. 주기 싫으면 그만이지 남의 남편 죽은 걸 왜 거짓말이라는 거야?”

긴급지원금을 신청하러 온 민원인의 버럭질이었다. 어찌나 큰 지 구석의 민원실장 귀에까지 들어갔다.

“아줌마!”

은빛의 목소리가 반격한다.

“그리고 뭐? 술집 여자? 술집은 직장 아니야 ? 내가 보기엔 니 년이야 말로 나가요처럼 보인다 이년아. 지금 그 복장이 공무원 복장이야?”

“이 아줌마가 정말, 왜 남의 복장은 들먹이고 그래요?”

“그러는 너는? 죽은 남편 죽었다고 하는데 뭐가 문제야?”

“한두 번이 아니니까 그렇죠?”

은빛이 받아친다. 은빛은 민원인을 차별하는 성향이 있었다. 좀 있어 보이면 친절하지만 노숙자 스타일이거나 1% 정도 부족하다 싶으면 까칠하게 굴기도 했다. 방금 들어간 민원인은 허름해 보였다. 은빛이 고분고분할 리 없었다.

그러나 민원인과의 다툼은 무조건, 닥치고 공무원에게 100% 불리했다.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민지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현 주임은 시청에 들어가고 없었다.

“팀장님.”

경도는 엄 팀장에게 SOS를 보냈다. 엄 팀장 인상이 구겨지는 게 보였다.

“여자들이잖아? 배 주임이 가봐.”

은근슬쩍 성(性)으로 갈라치기를 한다.

“그래도 팀장님만 하겠어요?”

경도가 받아주지 않았다.

‘빌어먹을 관상.’

엄 팀장은 한숨과 함께 일어섰다. 상담실 앞으로 가더니 문 앞에서 귀를 기울인다.

“야, 이 년아. 코로나 여파가 다 회복되지 않아서 사장이 좀 쉬었다 나오라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우리가 너네 공무원처럼 먹고 놀아도 월급 나오는 줄 알아? 다른 사람 얘기 들어보니까 이런 경우에 긴급지원 된다던데 왜 그렇게 까칠하냐고? 니 돈 주냐? 니 돈 줘?”

“얼마 전에도 같은 사유로 지원했으니까 그러죠. 그리고 무슨 남편이 2년에 세 명이나 죽냐고요? 게다가 이번 분은 혼인신고도 안 되어 있잖아요?”

“사실혼이라고 말했잖아? 여기 교회에서 찍은 결혼사진도 가져왔고.”

“이게 무슨 교회예요? 아줌마 온천지예요? 그리고 이 사람이 아줌마 남편인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뭐야? 온천지? 이 년이 비교를 해도 어디 그런 사이비 종교에...”

퍽!

또 한 번 소음이 들렸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엿듣던 엄 팀장을 경도가 슬쩍 밀어넣었다.

“어어.”

얼떨결에 들어선 엄 팀장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상담실 안은 엉망이었다.

“당신은 뭐야?”

여자가 악을 쓰며 삿대질을 날렸다.

“맞복팀장입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아우.”

은빛이 확인서를 팽개치고 일어섰다.

“저, 저 년 봐. 야, 야, 이 년아. 너 거기 못 서? 너 내가 그냥 둘지 알아?”

“아주머니, 일단 진정부터...”

엄 팀장이 여자를 막았다. 그 사이에 은빛이 밖으로 나왔다.

“괜찮아요?”

문 앞의 경도가 물었다.

“몰라. 뭐 저 딴 게 다 있나 몰라. 지금 장난해? 2년 동안 세 번이나 남편 팔아가며 긴급 지원해달라니... 재주도 좋아.”

“그래도 민원인과 싸우면 어떡해요?”

“민원인 같은 소리하네. 저 여자 술집여자야. 술집여자.”

“뭐? 술집여자? 그래 이년아, 나 술집주방에서 일한다. 그러는 너는? 내가 보니까 너야말로 진퉁 나가요야.”

“뭐라고요?”

광분하는 은빛을 민지가 잡았다. 은빛은 술집여자라는 말을 들으면 광분을 한다. 하긴 뉘라서 기분이 좋을까만은 은빛은 몇 번의 전과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화장이 진하고 노출본능이 있었다.

안에서는 엄 팀장이 여자에게 끙끙거리고 밖에서는 민지가 은빛에게 진땀... 한 마디로 가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이 건 내가 맡을까요?”

경도가 나섰다.

“아, 몰라. 알아서 해.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저 여자 긴급 지원 못해. 한 푼도 못 줘.”

은빛은 치를 떨며 돌아섰다.

“괜찮겠어?”

민지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어쩌겠어요? 저 분이 시장실이라도 쳐들어가면...”

“우리만 깨지지.”

“민원보세요. 누구 오셨네요.”

민지를 자리로 밀고 상담실로 향했다. 우석의 시선이 경도를 따라온다. 괜찮아, 몸짓으로 안심 시키고 상담실 문을 열었다.

“당신들 내가 그냥 둘지 알아? 이 센터 다 날려버릴 거야?”

여자는 길길이 날 뛰고 있었다. 그 앞의 엄 팀장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여자의 감정은 이미 선을 넘어가 있었다.

“뭐야?”

경도를 본 여자가 발악을 했다. 그야말로 폭발직전이었다. 뭘부터 해야하나 싶을 때 바닥에 떨어진 사진이 보였다. 그것부터 고이 챙겼다. 그런 다음 작은 상자 위에 모셔두고 큰 절을 올렸다.

“......?”

여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느닷없는 장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도는 숙연하게 한 번 더 절하고 일어나 반절까지 마쳤다.

“지금 뭐하는 거냐고?”

여자가 경도를 밀치며 핏발을 세웠다.

“고인 영정이라면서요? 저희 여직원이 무례를 끼친 거 같아서 제가 절을 올렸습니다.”

“......?”

“모레가 49재네요? 고인 되신지?”

경도의 한 마디가 격앙된 여자를 무장해제 시키고 말았다. 경도 말대로 남편이 죽은 지 49일차였던 것이다.

“......?”

“관상을 보니 위가 안 좋았네요. 위암이셨나요?”

두 번째 상괘는 공감을 공략해 들어갔다. 사망원인을 짚어준 것이다.

“그걸... 어떻게?”

여자의 당혹감이 극한에 이른다. 짧은 시간에 그녀의 분노는 간 곳 없었다.

“그러고 보니...”

경도 목소리가 애달파진다. 이건 반은 연극이고 반은 진심이었다.

“슬프게도 여사님은 사산도 두 번이나 겪으셨네요.”

“업.”

여자 입에서 실비명이 터졌다.

“둘 다 딸이었고...”

“어업.”

여자가 휘청 흔들렸다. 벽을 짚고 선 그녀는 이빨까지 부딪쳐가며 떨었다. 자신의 삶을 귀신처럼 짚어내고 있으니 오싹할 뿐이었다.

“당신... 대체...”

“팀장님, 이분은 제가 접수해드릴 게요.”

경도가 엄 팀장의 양해를 구했다. 

“어? 어... 그래, 그래. 잘 좀 이해시켜 드려.”

경도의 위엄에 넋을 놓고 있던 엄 팀장, 겨우 정신줄을 챙겨 상담실을 나갔다.

“당신 대체 뭐야...”

여자는 아직 떨고 있다.

“일단 앉아보시겠어요.”

경도가 정중히 의자를 권했다.

“당신...”

“남자 복이 없으시죠? 좀 마음 주고 애정할만 하면 남자가 죽어버리고... 그렇게 야박하고 애달픈 인연이 다섯 번...”

“점점...”

“눈과 귀, 그리고 눈 밑의 점... 그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이 고단하세요.”

“당신... 관상가야?”

“첫 남자는 열여섯에 만나셨네요. 한 3년 사귀다 헤어지신 거 같고... 그러다 42살에 정식 첫 결혼, 1년 조금 살던 중에 남편이 사망하셨어요. 두 번째 남자는 몇 달 안 되고... 세 번째 남자도 1년 남짓... 왜 그런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

“일단 앉아보시죠.”

경도가 다시 의자를 권했다. 얼어붙었던 여자가 비틀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제는 눈빛까지도 흔들리고 있었다.

“관상에 대해 좀 아세요?”

맞은 편에 자리한 경도가 턱을 괴며 물었다.

“그냥 주워들은 정도...”

여자는 순순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도의 관상에 홀린 것이다.

“죄송하지만 색기 있다는 말은 좀 들으셨죠?”

“조금...”

“보세요.”

경도가 흰 종이를 꺼내더니 얼굴 형태를 그렸다.

“여기가 부부궁이에요. 처첩궁이라고도 하는데 이 정도는 아시죠?”

볼펜으로 눈 옆의 공간을 가리켰다. 혀로 입술을 핥은 여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사님은 여기가 좀 함몰된 상이에요. 이렇게 되면 부부연이 약해요.”

“......”

“그리고 이 눈...”

이번에는 눈알을 짚었다.

“이렇게 튀어나온 상은 배우자와 이별하는 운명이랍니다.”

“......”

“또 하나는 점인데... 혼자만 아는 부위에 점이 있을 거예요. 그 또한 부부연에 악재가 되지요.”

“......”

“제 말 맞나요?”

“그럼 내 관상 때문에?”

“눈썹 때문이세요.”

경도의 상괘가 갈래를 치고 나갔다.

“눈썹?”

“거울 있으면 보세요.”

경도가 말하자 여자가 가방을 열었다. 하지만 손이 떨고 있으니 비비크림을 한 번에 잡지 못했다.

“천천히 하셔도 되요.”

경도가 그녀를 진정 시켰다. 겨우 비비크림을 꺼낸 여자가 뚜껑을 열어 작은 거울에 눈썹을 비췄다.

“두 눈썹이 눈을 점점 압박해오고 있지요? 죄송하지만...”

경도가 잠시 상괘를 멈춘다. 애가 타는 여자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후우.”

한숨을 쉰 경도가 진지하게 상괘를 이었다.

“요절의 암시입니다.”

“요절이라면 죽음?”

“......”

“말해보세요.”

“예.”

“어머나.”

경도의 답에 여자가 화들짝 놀랐다.

“액운을 피할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그게 뭐죠?”

여자가 경도 쪽으로 의자를 당겨 앉았다.

“당분간 절에 들어가서 사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오십을 채우기 어렵습니다. 거기서 평생 사셔도 좋고 그러다 눈썹의 기세가 죽으면 하산하셔도 됩니다.”

“어머나, 그 말, 나 초등학생 때 우리 옆집 왕 할머니가 해준 말인데... 내 눈에 도화가 피었으니 일찌감치 절에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도화.

그 말에 경도가 내심 흠칫거렸다. 누군지 제대로 보았다. 지금 경도가 감추고 있는 나머지 천기가 거기에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관상을 모르는 사람도 아는 단어가 도화다. 경도는 그걸 풀어줄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 도화꽃에도 레벨이 있어요-1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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