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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귀격을 만났습니다-4 > (52/245)

< ‘인생’ 귀격을 만났습니다-4 >

그렇다면 배꼽은 왜 중요시 된 걸까?

관상에서는 배꼽에 조상들의 얼이 담겨 있고 후대의 모습까지 새겨져 있다고 본다. 따라서 왕궁에서는 왕비를 간택할 때 배꼽 체크를 빠뜨리지 않았다.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배꼽을 위해 특별한 처방까지 동원할 정도였다.

당연히 배꼽에도 천격과 귀격이 있다.

천격은 갈고리 모양과 삐뚤어진 배꼽을 꼽는다. 톡 튀어나온 것과 배꼽 아래의 터럭도 천격이다. 배꼽이 얕고 작으면 가난을 달고 산다.

귀격 배꼽은 둥글고 넓은 형태로 상체로 향하는 형태다. 배꼽이 깊숙하면 복이 따른다. 특히 위의 귀격 10청에 적시한 바처럼 구슬이 들어갈 깊이면 영웅이나 위인을 낳을 수 있었다.

‘아.’

배꼽상을 본 경도의 눈이 흠칫 흔들렸다. 노 여사의 배꼽 주변에 진달래빛이 돌았다. 귀색이다. 나아가 구슬 하나 쯤은 간단히 숨겨버릴 듯 깊으니 김 대표의 명운에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될 증거였다.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배꼽상 리딩을 끝낸 경도가 예를 표했다.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노 여사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한 마디로 대길합니다.”

“그렇게 좋아요?”

“예.”

“어머, 난 속이 너무 파여서 목욕탕에서도 가리고 다녔는데.”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관상법 중에 10청이라고 귀격을 가리는 법이 있습니다. 그중 한두 개만 포함되어도 좋은데 무려 절반 이상을 가진 아드님을 낳으셨습니다. 내놓고 자랑을 해도 모자랄 귀격 배꼽입니다.”

“정말요?”

“그럼요.”

“아유, 다행이네. 난 또 내 배꼽에 문제가 있나 해서 애간장 녹을 뻔했는데...”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경도가 마무리를 했다.

나갔던 조경철과 큰 아버지가 돌아왔다. 모두의 시선이 경도에게 쏠렸다. 잠시 김 대표를 바라보던 경도가 잔잔하게, 그러나 강철의 무게감으로 상괘를 펼치기 시작했다.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두 가지?”

김 교수가 시선을 들었다.

“하나는 평범한 정치인이 되는 것이죠. 그러나 평범한 길을 가시려면 입문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대표님은 귀가 크면서 윤기가 나는 데다 위로 곧게 뻗어 있어 1-2선 하다가 그만둘 상이 아닙니다. 위로 뻗친 귀는 재기 충만한 데다 나름 대범함도 갖추고 있지요. 나아가 콧방울이 발달했으니 중년의 운세도 강합니다. 모친의 배꼽상 또한 그 기반이 되는 것이니 기존의 낡은 계파에 속하는 것보다 독립할 상이며 고난을 만나도 헤쳐갈 것이니 설령 실패한다 해도 주변의 지지로 다시 재기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제가 반한 상이 하나 있는데...”

‘반해?’

경도의 말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천기에 버금가는 상괘를 내는 관상천재 오경도였다. 그런 경도가 무엇 때문에 김윤광에게 반한 것일까? 잠시 뜸을 들이던 경도가 결론에 다가섰다.

“입꼬리입니다.”

“제 입 꼬리요?”

김윤광이 자신의 입을 쓰다듬었다.

“입 꼬리가 살며시 올라가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냉철하게 판단하고 성취하는 상이니 무리를 이끄는 리더에 제격입니다. 그러니 정치, 하셔야합니다.”

경도의 방점은 마지막에 묵직하게 실렸다.

-정치 하셔야합니다.

그 말을 하는 데 이상하게도 목이 메어왔다. 저 마른 봉황은 어디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까? 두고두고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정치할 상이다?”

김윤광이 물었다.

“예.”

경도가 잘라말했다.

“이거 제 고민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니 복채 좀 내놓아야겠습니다. 저도 주워들은 말이 있는데 공짜 점사는 효력이 없다고들 하더군요.”

기분이 좋아진 김윤광이 지갑을 열었다. 이 순간을 기다리던 경도가 선수를 쳐버렸다.

“그러시다면 세 분...”

“말씀하세요.”

김 교수가 대표로 답했다.

“기왕에 세 분이 복채를 내실 거라면 뜻 깊은 투자 한 번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투자라고요?”

김 교수가 묻자 경도가 사진을 꺼내놓았다. 안계홍의 똥차 포터였다.

“실은 방송에서 보신 그 꼬마의 아버지입니다. 간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데 삶의 의지가 강해 트럭행상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트럭이 낡아 하루에도 몇 번씩 도로 위에서 퍼진다고 합니다.”

“......”

“쓸만 한 트럭을 한 대 도와주시면 여섯 사람을 구하게 될 겁니다.”

굳이 새 차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품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안 사면 몰라도 사주게 되면, 중고를 고를 사람들은 아니었다.

“여섯?”

“셋은 세분 형제부자시고 나머지 셋은 수술 받은 소녀의 가족입니다.”

“가만, 그 소녀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제가 그 아버지의 관상을 보았는데 조만간 가출한 엄마가 돌아올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차가 굴러가는 한 세 분의 공덕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거 우리 관상박사님, 해석 한 번 마음에 드는구나. 나는 찬성일세.”

김윤광의 큰아버지가 먼저 마음을 열었다.

“그럼 기왕 쌓는 공덕 새 차로 뽑아줍시다.”

김 교수의 말이야 말로 경도가 바라던 그것이었다.

“그럼 풀옵션으로 가야죠. 빈틈없이 말입니다.”

김윤광은 한술 더 뜨고 나왔다.

조경철의 기습 제의가 들어온 게 그때였다.

“세 분께서 우리 오 주임님에게 반한 거 같으신데 기왕 이렇게 된 거 관상박사 후원회 한 번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젊은이들 하는 팬클럽식으로 십시일반 기금 마련해서 뜻 깊은 곳에 쓰도록 말입니다.”

기자답게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잔뜩 고양된 그들이었으니 기꺼이 딜을 받아주었다.

<오경도 후원회, 간단히 OK후원회>

경도 인생에 큰 획을 긋는 가닥은 이렇게 잡히게 되었다.

“자, 이제 본 게임이 끝난 거 같으니 나도 곁다리 좀 끼어봅시다.”

그때까지 장단만 맞추던 큰 아버지 김황로 사장이 운을 떼고 나왔다.

“수고스럽지만 이 관상은 어떻습니까?”

김황로가 사진 한 장을 꺼내놓았다.

“새로 뜨는 사업가인데 솔깃한 제안을 해왔습니다. 피곤하실 테니 동업을 할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만 알려주면 고맙겠습니다.”

“언제 사진입니까?”

“내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찍은 겁니다.”

“이 분이라면 상세하게 알아보신 후에 추진하는 게 좋겠습니다.”

사진을 보기 무섭게 경도의 상괘가 나갔다.

“그만한 시간이 없습니다. 굉장히 좋은 조건이라 경쟁업체 등에서도 침을 흘리고 있는 차라...”

“여기... 자세히 보시면 검은 느낌이 나지요?”

경도가 눈썹 끝의 복당을 짚었다.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만.”

“관상에서 이 자리에 검은 기색이 드리워지면 파산의 징조입니다.”

“파산이라고요?”

“파산의 정도가 가벼우면 이만한 색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정도 기색이면 수개월 지속된 것이니 수고스럽더라도 세세한 확인 후에 계약하시길 권합니다.”

“알겠습니다.”

김황로가 사진을 거두었다.

**

“으아, 으하.”

돌아가는 길, 조경철은 감탄사를 그치지 않았다.

“또 왜요?”

경도가 슬쩍 되물었다.

“우리 오 주임 관상 말입니다. 들을 때마다 심장이 벌떡이지 뭡니까? 내가 호박신녀와 천 거사도 취재해 본 적이 있지만 이건 뭐 범접불가의 촌철살인 같습니다.”

“호박신녀, 천 거사요?”

“아, 우리 관상박사님은 아직 모르시나요?”

“지나가는 말로 듣기는 했습니다만.”

“호박신녀는 무당이고 천 거사는 시각장애인 관상가인데 나름 전국통들입니다.”

“시각장애 관상가라고요?”

경도가 촉각을 세웠다. 관상의 핵심은 얼굴의 기색, 즉 찰색에 있었다. 그런데 시각장애? 그런데도 관상이 가능하단 말인가?

“신기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줄을 잇는 겁니다. 제가 취재 가봤더니 손으로 사람 얼굴을 만져가며 상을 보더군요.”

“굉장한 데요?”

“시각장애라는 걸 감안하면 굉장하지만 오 주임님에게는 안 될 겁니다. 김 교수님처럼 해박하신 분도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실력이니까요.”

“그건 그 분들이 마음을 열고 들어주신 덕분입니다.”

“천만에요, 거기다 조금 전에 말한 그 배꼽상... 나도 아까 내 배꼽을 확인했다니까요.”

“어떻던가요?”

“아이고, 내가 뭘 압니까? 들어간 건 배꼽이오, 나온 것은 똥배 뿐이던데...”

“그나저나 이제 말씀 놓으세요. 형님도 한참 형님 뻘인데...”

“어허, 이게 지금 나이로 순서 갈라치기할 일입니까? 오 주임님은 천기의 메신저신데.”

“지국장님.”

“알았어요. 알았어. 그런데... 배꼽 얘기 나오니까 궁금해서 그러는데...”

“말씀하세요.”

“풍문으로 듣자니 거시기 관상도 있다면서?”

지국장의 시선이 경도의 사타구니를 힐금거렸다.

“있죠.”

“오 주임이 그것도 볼 줄 아시나?”

“물론이죠.”

“본 적도 있어?”

“지금 무슨 말씀 하시려는 거예요?”

“미, 미안... 그런 거 봐달라는 여자도 있나 해서.”

“엉뚱한 호기심은 그만 접으시고 혹시라도 후원회가 제대로 되면 그 관리는 지국장님이 좀 맡아주세요.”

“내가 말입니까?”

“지국장님.”

“내가?”

“아이디어 제공자시잖아요? 그러니 끝까지 책임을 지셔야죠. 게다가 제가 돈을 맡아서 관리하면 구설수 안 나겠습니까?”

“나, 나를 뭘로 믿고?”

“관상 체크 끝났거든요.”

경도가 잘라말했다.

“하긴 그 귀신 같은 관상안 앞에서 돈 빼돌리면 바로 알아차릴 테지?”

“그럼요.”

“좋아. 그러자고. 어차피 이 놈의 K시에서 못 벗어날 거라면 나도 뭔가 뜻 있는 일 하나 벌이면 좋지.”

“고맙습니다.”

“그런데 김 교수님 아들 말이야, 관상이 그렇게 좋아?”

“좋네요.”

“설마 대통령감?”

조경철의 센스가 시원하게 질러갔다. 기자답게 촉 하나는 일품이었다.

“그건 아직 모릅니다. 관상은 변하는 것이니 극단의 예가 천사와 악마가 동일인이었다는 일화에도 있습니다. 역대급 화가가 천사의 모델로 그린 사람이 나중에 악마 얼굴이 필요해서 찾고 보니 동일인이었다는 에피소드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봉황상이라고 해도 목살이 가느니 조금 더 지켜보아야합니다. 어쨌든 김 대표님이 관운 하나는 일품으로 보였습니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

“쭈욱.”

“흐음, 그럼 그 양반에게 잘 보이면 나도 한 자리 할 수 있는 건가?”

“가능할 겁니다.”

“진짜?”

건성으로 물어보던 조경철, 경도가 태연하게 답하니 경기를 하고 말았다. 그걸 확인 시켜주려는 듯 경도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말로만 듣던 극귀상인 모양이네? 어쩐지 사모님 배꼽까지 봐야겠다고 할 때 알아봤어.”

“좋은 관상을 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경도가 한 번 더 고마움을 표했다. 눈이 정화된 기분이었으니 진심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경도는 샤워부터 했다. 그런 다음 싸목도감과 관상책들을 펼쳤다.  

봉황.

흔히 봉황은 대권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조경철의 반응도 크게 나온 것이다.

대권은 무엇일까.

시에서는 시장이 대권이고 지역에서는 국회의원이 대권이다. 대한민국에서야 물론 청와대의 주인이 대권으로 꼽힌다. 역사적으로 대권상을 알아본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여공은 유방에게서 용의 상을 읽어내고 딸 여후를 시집보내 영화를 누렸다. 명나라의 곽 씨도 주원장에게 그랬고 고려의 혜징 역시 이성계의 긴 귀를 보고 대권의 싹을 보았다.

싸목도감의 마무리 부분을 펼치니 대권상에 대한 그림이 나왔다.

그러나 대권상도 변한다. 모 대통령은 길상인 사자코 사비에 상중하정의 황금비를 지닌 관상이었다. 결국 대권을 잡았다. 그러나 하정에 피습을 당해 흉이 짐으로써 운이 빨리 접혔다. 하정에 문제가 생기면 부하복이 야박한 데다 말년이 고단해지는 것이다.

싸목도감을 덮었다.

김 대표라는 봉황에 끌리긴 했지만 대권은 경도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궁금한 건 오히려 천 거사라는 관상가였다.

-시각장애인입니다.

조경철의 말이 뇌리를 치고 간다. 조선말기의 전설적인 관상가 백운학 때문이었다. 그는 한 쪽 눈으로 관상을 봐야 정확하다며 담뱃불로 자신의 눈을 지졌다. 그는 고종의 대권을 예견했고 적중되었다. 한 눈으로 관상의 전설이 된 백운학...

그렇다면 두 눈이 다 없는 천 거사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 두 눈으로 관상을 보는 경도였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한 번 찾아가봐야겠다.’

그가 산다는 승가리의 하늘을 보며 잠을 청했다.

< ‘인생’ 귀격을 만났습니다-4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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