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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귀격을 만났습니다-3 > (51/245)

< ‘인생’ 귀격을 만났습니다-3 >

10청(淸) 관상은 무엇일까?

경도 뇌리에 번개처럼 줄을 세웠다.

제1청-작은 것 같지만 점점 커지는 목소리.

제2청-섬세하고 부드러운 몸의 털.

제3청-백옥 같은 치아.

제4청-긴 손가락에 윤택한 손바닥.

제5청-희거나 붉지만 윤택한 귀.

제6청-윤기나는 머리카락에 검은 눈썹.

제7청-귀의 앞쪽 명문을 가지런히 지나는 머리카락.

제8청...

여기서 경도의 눈이 한 번 더 반짝거렸다. 8청은 10청 중에서도 특별했다. 지나치게 야위었더라도 뼈가 드러나 보이지 않으며 혈색이 윤택하면 8청이다. 이 한방만으로도 극귀의 상에 속하니 특별할 수 밖에 없었다.

제9청 역시 마른 체형의 상이다. 그러나 그 유두가 단단하면 귀상으로 친다. 10청의 마지막은 배꼽이었다. 배꼽이 깊은 사람 역시 10청에 꼽으니 여자 배꼽에 구슬이 들어갈 깊이면 영웅이나 위인을 낳는 것이다.

이들 10청 중에 한두 가지만 있어도 귀격이다. 그러나 김윤광은 당장 확인할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서도 다섯 청을 지니고 있었다.

“오 주임님.”

경도가 넋을 놓으니 조경철이 슬쩍 건드려주었다.

“아, 죄송합니다.”

경도가 정신을 가다듬었다.

“왜요? 이번에는 우리 아들에게 변고가 있는 겁니까?”

김 교수가 눈치를 차렸다.

“아닙니다.”

정중히 해명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럼에도 김윤광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별장의 문 여사 이후에 만난 또 하나의 극귀상이다. 관상 보는 즐거움이었으니 이 사람의 미래가 궁금할 뿐이었다. 

그런데 사실 김윤광은 굉장한 유명인사에 속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 때 1타로 진단시약을 만든 바이오전문회사의 젊은 CEO였다. 한국 최초로 FDA의 인증도 따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코로나 전성기 때 벌어들인 이윤의 30%를 직원들과 가난한 확진자들에게 기부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김 대표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천기 좀 누설해 보시지요.”

김 교수의 간청이 들어왔다.

“문제가 아니라 관상이 청수해 제가 반한 것입니다.”

경도가 답했다.

“우리 김 대표 관상이 그렇게 좋습니까?”

“언젠가는 큰일을 하실 것 같습니다.”

“호오, 동생을 잃은 슬픔을 아들로 보상 받게 되는 군요.”

“장례는 잘 치루셨습니까?”

“그래요. 그렇잖아도 이 사람 때문에 황망했을 텐데 조문도 다녀가시고 부의금까지 넣으셨더군요.”

“약소해서 죄송합니다.”

“천만에요. 동생이 가는 길에 가장 값진 노잣돈이 되었을 겁니다. 이 사람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뜨겁습니다.”

“......”

“솔직히 처음에는 좀 성가셨습니다. 우리 조 기자님 앞이라 화를 낼 수도 없고... 젊은 친구가 이 무슨 망발인가 싶어서...”

“죄송합니다.”

“죄송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이 나이까지 살고서도 진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함에 죄송할 따름입니다.”

“진인까지는...”

“진인 맞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한 번 더 반성했으니까요. 이 나라의 말단 공무원이 저렇게까지 뛰는데 이 사람은 무엇을 했나 싶고요.”

“명망 높으신 분이 무슨 말씀을...”

“제가 우리 형님에게 말씀드렸더니 같이 한 번 뵙자고 하더군요. 해서 우리 둘의 복채부터 먼저 준비를 했습니다.”

김 교수가 봉투를 꺼내놓았다.

“둘이 500씩 천만 원입니다.”

거금이다. 그러나 경도는 성큼 받지 않았다. 관상으로 보아 이들은 재력이 좋았다. 안계홍의 차를 바꿔줄 정도도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경도의 안광이 김 교수의 관상을 꿰뚫는다. 동생의 비보 외에는 다른 액운이 없었다. 경도가 배팅에 돌입했다.

“신통력은 지난번에 보았으니 관상 봐달라는 말씀은 아니 드리겠습니다. 저번에 조 기자님이 귀뜸하기를 후원금 이야기를 하던데 하필이면 그날 초상이 나는 바람에 여러 가지 실례가 되었습니다.”

김 교수가 거듭 봉투를 내밀었다.

“교수님.”

경도가 운을 떼고 나왔다.

“말씀하세요.”

“이 돈은 이렇게 받을 수 없습니다.”

“적어서 그러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렇게 받아가면 제가 너무 무례하니 관상이라도 보신 후에 주시면 받겠습니다.”

“실력은 지난번에 이미 보여주시지 않았습니까?”

“관상도 강물과 같아 그날의 상괘는 이미 흘러가 버렸습니다.”

“흐음, 강직하신 분이로군요.”

“귀한 재물을 넙죽 받아가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관상박사께서 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외람되지만 저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제가 교수님을 또 찾아뵐 수 있을 테니까요.”

“좋습니다. 우리야 뭐 나쁠 거 없지요. 그럼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빼고 젊은 김 대표 관상이나 좀 봐주시지요.”

“알겠습니다.”

경도의 대답은 기꺼웠다. 그렇잖아도 그 쪽으로 마음이 쏠려있던 까닭이었다.

마침내 돗자리가 깔렸다.

그런데...

경도의 침묵이 길었다. 다른 때 같으면 구구절절이 운명을 읽어낼 경도, 오늘은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후우.”

첫 한숨이 나오고...

“우후.”

두 번째도 한숨이 나왔다.

“오 주임님.”

결국 조경철이 주의를 환기시키고 나섰다.

“잠깐만요.”

경도가 손을 들었다. 이토록 김윤광의 관상에 취한 것이다. 꿩도 아니고 공작도 아니다. 마르긴 했지만 봉황의 기상이다. 이 상이 어디로 날 것인가? 무엇이 될 것인가? 그걸 좇자니 오금까지 저려왔다. 보고 또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관상이었다.

“정말 귀격입니다.”

저도 모르게 무릎을 치고 마는 경도였다.

“제 관상이 괜찮습니까?”

김윤광이 물었다.

‘키햐.’

목소리에  또 취한다. 낮은 여울물인가 싶으면 폭포소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경도는 비로소 자신을 바로 세웠다. 가지런히 시선을 들고 어깨도 바르게 했다. 감탄은 끝났다. 김윤광의 속에 봉황의 기상이 들어있으되 현재의 관상을 풀어줘야 할 때였다.

“혹시 궁금하신 게 있습니까?”

경도가 화두를 던졌다.

“딱히... 그냥 보이는 대로 말해주시죠.”

“간단한 것부터 말씀드리자면 오늘 물건을 분실하셨군요.”

“엇, 그게 얼굴에 나옵니까?”

맛배기 관상으로 김윤광의 기선을 제압했다. 분실은 콧날 옆 부위인 도관에 나와 있었다. 그 찰색이 칙칙하니 도난이든 분실이든 잃어버린 게 있을 일이었다.

“머잖아 정치든 나랏일이든 하시게 될 것 같고요.”

“......”

여기서 김윤광과 가족들의 시선이 정지되었다. 경도의 상괘가 정곡을 제대로 찌른 것이다.

“마음에 두 길이 났습니다. 왼쪽으로 가십시오.”

경도가 김윤광을 겨누었다. 봉황이 깃든 상이라지만 경도는 기죽지 않았다.

“무슨 뜻입니까?”

김윤광이 물었다. 그 질문에는 김 교수 부부와 그 형님의 호기심도 담겨 있었다.

“이마의 왼쪽 오른쪽 주골에 윤기가 화사한 것으로 보아 대표님은 두 주인을 모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를 결정할 때입니다. 왼쪽은 먼저 인연을 맺은 사람이오, 오른쪽은 나중에 인연을 맺은 사람이니 대표님 얼굴의 윤기가 조금 바래고 있는 이때에 하나를 포기해야 바른 기세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

경도 말에 김윤광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김 대표.”

김 교수가 아들을 불렀다.

“이것 참...”

아들이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두 주인이라니?”

큰아버지가 김윤광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아직 마음을 못 정해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여야에서 동시에 영입 제의가 왔습니다.”

“여야에서?”

“그렇잖아도 가부간 결정을 해야 할 시기인데 이렇게 짚어내주니...”

“허어, 귀신이로다.”

큰아버지의 시선에 경탄이 스쳐갔다. 경도의 상괘가 찰떡처럼 들어맞은 것이다.

김윤광의 두 주인은 여당과 야당의 정당이었다. 원래도 전도유망하던 바이오전문가였다. 그러다 코로나 진단시약개발 후로 양당의 스카우트 표적이 되고 있었다. 재야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는 김 교수의 후광에 더해 반듯한 이미지의 아들이었으니 참신한 정치신인을 갈구하는 양당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주인이라 함은 김윤광이 몸 담고 있던 재단의 이사장들이었다. 김윤광은 두 개의 재단에 적을 두고 있었다. 첫째, 난민후원재단의 이사장은 여당의 원내총무를 역임한 사람이었고 두 번째, 과학연구재단의 이사장은 야당의 고문 출신이었다. 둘은 다투듯 김윤광에게 영입제의를 해왔다. 

“우리 당으로 와주시오.”

간곡한 권유였다.

그 일로 고민하던 김윤광이었다. 그걸 핀셋처럼 집어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위로 볼 때 여당은 김윤광의 왼쪽이고 야당은 오른쪽에 당사가 있었던 것이다.

짝짝.

김윤광에게서 박수가 나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과학자의 한 사람이었지만 귀신 같은 상괘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길이 제 운명입니까?”

김윤광이 물었다.

“대표님은 음양에 있어 양에 속합니다. 그러니 왼쪽이 길한 방향입니다.”

“왼쪽이라...”

“왼쪽이면 여당 당사가 있는 곳이 아니냐?”

김 교수가 눈치를 차렸다.

“그렇습니다.”

“하긴 나도 네 성향에 비추어 봐서 네가 정치를 하게 된다면 그쪽 사람들과 함께 민의를 살리는 개혁으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입으로만 외치는 진보나 개혁에도 참 변화가 필요할 때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관상박사님.”

김 교수가 경도를 바라보며 질문을 내놓았다.

“우문일지 모르겠지만 워낙 신기 넘치는 상괘를 주고 계시니... 우리 김 대표, 정치가 괜찮겠습니까? 거기 들어가면 현명한 사람도 집단 특권과 오만에 취해 국민농락이라는 오물에 중독되는 판이니...”

“그걸 아시려면 사모님께 큰 결례를 한 번 범해야합니다. 괜찮겠습니까?”

경도가 김 교수의 와이프 노부영 여사를 바라보았다.

“저요?”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예.”

“아들 관상에 제 관상도 필요하나요?”

“관상이 아니라 배꼽상이 필요합니다.”

“네에?”

경도 말에 노 여사가 소스라쳤다. 현숙한 귀부인 자태의 여자였다. 교양이 있으니 시시콜콜 끼어들지도 않았다. 

꽃으로 치면 모란과 국화를 섞어놓은 듯 고아한 모습이다. 거기다 대고 배꼽을 들먹이니 사모님은 물론 남자들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조경철 역시 살짝 사색이다. 그러나 경도는 미동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속이 타고 있었다. 김윤광의 관상은 어머니의 배꼽을 봐야만 하는 상이었다.

“배꼽...”

노 여사가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죄송합니다. 관상이라는 게 얼굴만 보는 게 아니라 때로는 골상(骨相)에 육상(肉相), 점상, 모상(毛相)까지도 보게 됩니다. 대표님의 상은 그만큼 조심스럽다 보니 무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만 기왕 말이 나온 것이니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경도는 완곡했다.

“이것 참...”

노 여사가 주변을 돌아본다. 누구도 이렇다 말을 하지 못한다. 눈치 빠른 조경철은 이미 자리까지 피해주었다. 그러자 큰 아버지도 의자에서 일어섰다. 남은 건 김 교수와 김윤광 뿐이었다.

“이걸 꼭 봐야 해요?”

그녀가 다시 한 번 물었다.

“큰 정치를 하시려면 어머니의 배꼽이 깊어야합니다. 만약 그 배꼽이 얕다면 관상이 좋아도 한계가 있게 됩니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흔들리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니 냇물을 이뤄 바다로 간다하지 않았습니까?”

“여보...”

노 여사가 남편의 허락을 구한다.

“보여드리구려. 우리 관상박사께서 당신 배꼽보려고 허튼 말을 하겠소?”

“아유, 남세스럽게...”

노 여사가 돌아섰다. 주섬주섬 옷을 올리더니 다시 경도 쪽으로 턴을 했다.

“보세요. 내가 배꼽이 좀 예쁘지 못한데...”

마침내 그녀의 배꼽이 드러났다.

여기서 왜 하필 배꼽이었을까?

관상에는 두 가지 화룡점정이 있었다. 하나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눈이다. 눈이 좋으면 다른 상이 조금 나빠도 커버가 될 수 있었다. 남은 하나의 화룡점정이 바로 배꼽이었다. 그렇기에 먼 옛날 왕궁에서는 왕비나 세자비 간택에 배꼽 관상을 맞춰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 배꼽으로 경도의 눈이 향했다.

< ‘인생’ 귀격을 만났습니다-3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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