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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귀격을 만났습니다-1 > (49/245)

< '인생' 귀격을 만났습니다-1 >

“......!”

엄 팀장의 시선은 하나로일보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경도의 미담기사가 사회면 톱으로 나온 것이다. 충격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방송 못 봤어요?”

민원실장의 반응은 신문기사보다도 컸다.

“무슨 방송요?”

“TTC요. 어제 저녁 뉴스에 오 주임 나오던데, 육 과장님 인터뷰도 나왔어요.”

“예?”

“아, 담당팀장님이 나보다 모르시네.”

“......?”

신문을 내려놓은 엄 팀장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제 퇴근시간이었다. 육 과장이 내려와 경도에게 가봐야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엄 팀장은 선약이 있었다. 다음 이동 때를 대비해 인사과장과 술 약속을 했던 것이다. 술을 마시다 보니 취했다. 경도 일을 체크할 겨를도 없이 돌아가서 뻗었다. 이제 보니 경도에게 가야했었다.

“배 주임.”

민지를 불렀다.

“이거?”

엄 팀장이 신문을 들어보인다.

“명혜 수술요?”

“배 주임도 갔었지?”

“예.”

“아, 일이 이렇게 되면 나한테 연락을 했어야지?”

괜히 인상을 긁어본다.

“팀장님은 바쁘시다면서요?”

“바빠도 그렇지, 사람이 그렇게 눈치가 없어?”

“팀장님...”

“나는 과장님이 진짜 가실 줄 몰랐지.”

“이 국장님도 오셨어요.”

“누구? 이창교 국장님?”

“네.”

“억.”

엄 팀장이 비명을 막았다.

“우리 수육도 쏘시고 명혜 성금도 주고 가셨는데?”

“성금까지? 얼마나?”

“100만 원요. 오 주임이 명혜 아빠에게 전했어요.”

“어억.”

“그럼 오 주임은? 오늘도 병원에 간 거야?”

“아뇨. 시청에 들어갔을 걸요.”

“시청에는 왜?”

“이 국장님이 시장님께 직접 보고하라고 하셨거든요. 육 과장님이 비서실에 전화했는데 아침 국과장 회의하기 전에 들어오라고 하셨대요.”

“그걸 왜 나한테는 보고 안 해?”

“지금 하고 있잖아요?”

“......!”

“됐나요? 저 아침 출장 준비해야 하는데...”

“잠깐, 그, 그거나 좀 연결해줘. 방송 나온 거.”

“유튜브에서 찾아보세요.”

“네이버에서는 안 되고?”

“폰 주세요.”

“여기...”

핸드폰을 받은 민지가 유튜브를 검색했다. 꼰대들이 아는 검색은 네이버 뿐이다. 뉴스 다시보기도 잘 할 줄 모른다.

“여기요.”

민지가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시작을 누르자 뉴스 화면이 나온다. 사탕이다. 그리고 명혜다. 신 박사도 나온다.

“어떻게 국내에서 이 수술을 집도하시게 되었나요?”

“말단 공무원의 사명감에 녹았습니다.”

두 마디가 귀를 뚫고 들어왔다. 50만불 차용증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나왔다. 경도의 진정성을 보기 위해 던진 말인데 그것조차 주저하지 않으니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기묘한 인연에 감동한 병원 측이 수술비 일체를 무료로 해주었다. 방송은 육 과장의 멘트로 끝났다.

<달고나라떼처럼 달달한 가슴의 용포읍 공무원 오경도>

마무리 자막이었다.

“......!”

육 과장의 인터뷰 자리가 눈에 맴돌았다. 엄 팀장이 나와야 할 자리였다. 그랬다면 비굴하게 인사과장에게 비빈 시간보다 백 배는 더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시장도 보고 부시장도 볼 일이 아닌가?

마누라 얼굴이 떠올랐다. 이러려고 그런 것인지 그 아침, 마누라의 체크인이 있었다.

-요즘 오 주임 잘 챙겨주고 있죠?

마누라 덕에 산다는 엄 팀장이었다. 마님의 명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어흑.’

억장이 무너진 엄 팀장, 결국 거품을 물고 늘어지고 말았다. 거품이 보글거릴 때 사람들이 찾아왔다. 최현배 사장이 경도에게 꽃과 케잌을 놓고 갔고 홍 의원도 꽃을 보내왔다. 김재웅 이장단 회장과 안선주 부녀회장도 꽃을 잊지 않았다. 그 꽃들이 쌓여가는 동안 엄 팀장은 좌절을 쌓았다.

같은 시각, 경도는 시청 회의실에서 경과를 보고하고 있었다. 보고는 시장의 지시였다. 지난밤 방송을 본 시장이 육 과장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다.

출근 시간 전, 시청으로 나간 경도가 시장을 만났다. 육 과장과 함께였다. 이 국장은 당연히 육 과장을 내세웠다. 경도의 공에 숟가락 하나 올리지 않았으니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 국장이 성금으로 100만원?”

경도의 보고를 받은 시장이 입맛을 다셨다. 그가 입맛 다시는 사이에 경도는 천기를 엿보았다. 시장의 관상을 스캔한 것이다. 다른 뜻은 없었다. 현직 시장의 관상은 어떤 상인가 궁금했던 것이다.

중년운을 상징하는 재백궁이 시원하다. 과연 2선 시장다웠다. 단점이라면 중간부분이 다소 돌출형이다. 이런 사람은 교만을 조심해야 한다. 또 하나의 백미는 입술이었으니 양쪽 끝이 위로 올라가는 앙월구다. 올라가는 기세가 좀 시원했더라면 김영상 대통령의 입술과 견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관상은 그 조금이 큰 차이를 내는 것이다.

<현직시장> 대 <홍 의원>

어렴풋이 그림만 맞춰보았다. 시장선거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그 사이에 또 다른 주자가 부각될 수도 있다. 진짜 그림은 그때 맞춰도 늦지 않을 일이었다.

시장 지시로 국과장 간부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8급 말단으로 고위간부들 앞에 서니 살짝 긴장도 되었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간단히 경과를 보고하고 몇몇 질문을 받았다. 국과장들의 관심은 50만불짜리 차용증에 있었다. 그들 모두가 경도의 배포에 혀를 내둘렀다. 더구나 상대는 세계 최고의 소아비뇨기과 권위자였던 것이다.

“만약 실패하면 어쩔 셈이었나?”

부시장의 궁금증도 그것이었다.

“그럼 우리 시 직원여러분께서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경도가 순발력을 발휘했다.

“관상은 대체 뭘 봐준 건가?”

이 질문은 장두환 국장에게 나왔다.

“그건 신 박사님 개인사라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냥 간단한 것 하나 봐드렸는데 운 좋게 맞은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건 답하지 않았다. 공과 사는 칼처럼 구분하는 경도였다.

“그 십시일반 말입니다만...”

침묵하던 시장이 발언을 시작했다.

“우리 이 국장님이 환자 회복비로 100만원을 기탁하고 왔답니다. 시장에게 말도 안 하고 먼저 냈으니 괘씸하지만 좋은 일에 위아래 따질 수 없으니 본인도 성금 기탁합니다.”

시장이 봉투를 내놓았다.

“그럼 저도 그냥 있을 수 없군요.”

부시장이 동참했다. 그게 기폭제였다. 국장들도 지갑을 열었고 과장들도 그 뒤를 따랐다. 대단한 건 이 국장이었다. 어젯밤에 단독 기탁을 했으니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기꺼이 지갑을 열어주는 이 국장이었다.

“감사합니다.”

정중히 답사를 했다.

“수고했어.”

시장이 다가와 경도를 끌어안았다. 진심인지 아닌지 몰라 조금 어색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수고했어.”

국과장들도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격려를 받다보니 얼굴이 뜨거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할 일은 잊지 않았다. 그 봉투를 취재하던 조경철 앞에 공개한 것이다. 총액은 조경철과 함께 확인을 했다. 시장이 100만원, 부시장이 100만원, 나머지 국장과 과장들은 대개 20만원에서 10만원 사이였다.

“짠돌이들이 제법 냈는데?”

조경철이 웃었다. 경도도 웃었다. 명혜에게 큰 보탬이 될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감사실의 쪼잔한 저승사자 권태술이 뜬 것이다.

“급 잘 나간다?”

복도 옆에서 내뱉은 말은 여전히 태클형이었다.

“뭐가?”

“TTC 방송에 하나로일보에... 로또 물주라도 당첨되었냐?”

“쏘리, 너처럼 든든한 빽이 없어서 그런 재주는 없어.”

“잘 나갈 때 조심해라. 무리하면 부러진다.”

“그건 내가 할 소린데?”

“뭐야?”

“지금부터라도 마음씨 좀 곱게 써라. 아니면 몇 달 안에 쓴맛 보게 될 테니까?”

“감히 나한테 협박이냐?”

“아니, 애정 어린 어드바이스. 공덕을 위해 너도 명혜 성금 좀 낼래?”

“관상?”

태술의 입에서 냉소가 새어나왔다.

“그게 뭐?”

“헛소리 말고 그 돈 출처나 잘 남겨라.”

“무슨 뜻이냐?”

“성금 걷는답시고 중간에 슬쩍 하는 인간들이 있어서 말이야. 나중에 내가 확인 들어갈 거다.”

“그럼 확인하고 주던가?”

경도가 봉투를 안겨주었다.

“왜 이래?”

정색을 한 태술이 봉투를 밀어냈다.

“만난 김에 하나 물어보자.”

“뭐?”

“너 왜 나한테 이렇게 각별하냐? 설마 나 좋아하는 건 아닐 테고.”

“미친.”

태술은 눈을 부라리고 멀어졌다.

“오 주임.”

육 과장이 다가왔다.

“다 끝난 겁니까?”

“그래. 수고 많았어.”

“저보다 과장님이 애쓰셨지요.”

“그건 그렇고 축하해. 자네한테 국무총리상이 떨어졌어.”

“예?”

“희망복지 차 과장님 말이야, 자네한테 상 하나준다고 약속했다며?”

“예.”

“보아하니 시장상이나 하나 주려던 눈치 같은데 위에서 국무총리상 주라고 오더 떨어진 모양이야. 이번 수술 건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거겠지.”

“정말입니까?”

“이만한 일이면 총리상 쯤은 줘야지. 그깐 시장상과 도지사상은 이미 몇 개 있을 거 아냐?”

“저 표창은 처음 받는 건데요?”

“뭐야? 처음?”

“예...”

경도가 얼굴을 붉혔다. 공무원이 되면 개나 소나 받는 상장이었다. 한 마디로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돌려먹기로 받는 게 상장이었다. 한 직급에서 상장 하나 받지 못하고 넘어온 건 아마도 경도가 유일할 지도 몰랐다.

“그게 정말이야? 그 흔한 시장상도 하나 못 받았어?”

“제가 워낙 대형사고 전문으로 존재감이 없다보니...”

“그래도 그렇지. 그럼 해외탐방은?”

“그것도...”

“아니, 그 사기진작용으로 보내주는 해외여행도 한 번 못 갔단 말이야?”

“예.”

“우리 읍 말고, 다른 부서에서도?”

“예.”

“이거야 원.”

“......”

“알았어. 그동안 못한 거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해보자고.”

“고맙습니다.”

경도가 말했다. 자신감과 자발적이라는 놈은 참 신기한 것 같았다. 이걸 품으니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였다. 이래도 저래도 즐거운 것이다.

코로나-메르스-사스.

나쁜 바이러스들이다. 코로나에 대한 기억은 떠올리기도 싫었다. 그러나 좋은 바이러스도 있다. 해피 바이러스와 긍정 바이러스 등이 그것이다. 경도가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축하하네. 진작 하나 못 챙겨줘서 미안해.”

읍장이 국무총리상장을 안겨주었다. 공무원의 상장 수상은 직원조회 때 많은 직원 앞에서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개별적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하지만 총리상이다 보니 읍장이 직접 전달한 것이다.

짝짝!

현 주임과 배 주임, 은빛과 우석이 박수를 쳐주었다. 과장과 엄 팀장도 박수를 보탰다.

“고맙습니다.”

경도는 인사를 했다. 이 상은 이제 7급으로 승진할 때 가점 스펙으로 작용한다. 다른 누구와 경쟁해도 비교우위가 될 수 있었다. 이제는 은빛도 경쟁상대다. 그녀도 행정직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은빛의 표정은 그리 쿨하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사실 다른 사람의 상장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더 좋은 상일수록 그렇다. 하는 일은 오십보백보인데 상의 훈격을 다르게 내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는 시장상을 받고 누구는 장관상을 받는다. 차례차례 받다보니 복불복이다. 상을 돌려먹는 부서들이 특히 그랬으니 격무에 시달리는 사람이 훈격 낮은 상을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경도가 점심을 쐈다. 이례적으로 읍장도 참석을 했다. 그에게도 이제 경도만한 직원이 없었던 것이다. 

“커피는 내가 쏜다.”

돌아오는 길, 엄 팀장이 인심을 썼다.

“부탁해.”

은빛이 경도의 등을 밀었다. 같은 8급이지만 선임 대우를 받으려는 것이다. 기꺼이 배송임무를 맡아주었다.

“옵빠, 방송에도 나오고 상도 받았다면서요? 축하해요.”

인희가 인사를 전해왔다.

“땡큐 베리머치.”

가볍게 답하고 커피를 받아들었다.

커피는 달았다. 오후도 달달했다. 찾아온 수급신청자들이 모두 매너가 좋았다. 설명도 잘 이해한다. 정보이용동의서를 받고 잠시 숨을 돌릴 때였다. 경도 핸드폰이 살포시 울렸다.

“오 주임님.”

조경철 지국장이었다.

“웬일이세요?”

상담실 쪽으로 걸어가며 경도가 물었다. 핸드폰 받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일 안하고 핸드폰으로 시시덕거린다고 민원을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녁에 시간 좀 될까요?”

“일 있으세요?”

“전에 서울에서 뵈었던 김병로 교수님 말입니다. 장례식 끝나고 나니 그때 오 주임에게 실례가 컸던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차에 TTC에 나온 미담을 본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한테 다시 볼 수 없겠냐고 연락이 왔어요. 어때요? 이 참에 다시 밀어붙여보는 게?”

“좋죠.”

주저없이 답했다. 명혜 수술비는 해결 되었다. 회복비 역시 대략 해결을 했다. 간부회의에서 나온 돈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수술은 안계홍의 차에도 필요했다. 기왕이면 자활까지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경도. 여세를 몰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이름을 듣는 순간 경도의 머리가 시원하게 맑아졌다. 맑고 청수한 그의 관상이 경도를 잡아끈 것이다. 거대한 중력이라도 만난 듯 운명 같은 이끌림이었다.

김병로와 오경도.

둘은 어떤 인연이기에 중력이 당기는 것일까?

< '인생' 귀격을 만났습니다-1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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