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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상 믿고 갑니다-5 > (48/245)

< 관상 믿고 갑니다-5 >

“뭐야? 50만불 보증은 해결된 겁니까?”

조경철이 물었다.

“그렇게 되었네요.”

“그럼 오 주임님 관상이 적중된 거잖아요?”

“그것도 그렇게 되었네요.”

“그럼 명혜 수술도 미리 상괘 좀 내봐요.”

조경철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명혜의 수술에 대해 알려면 그 아버지 안계홍의 상을 봐야했다. 그러나 보지 않았다. 이 순간만은 관상보다 신 박사의 의술을 믿고 싶었다. 

“아, 어서요.”

그 마음 모르는 조경철이 경도를 떠민다. 그의 성의도 있으니 하는 수 없이 안계홍의 관상을 관통하게 되었다.

눈밑 애굣살로 불리는 와잠이다. 명혜가 딸이니 당연히 오른쪽을 본다. 만약 와잠에 검은 기색이 올라오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건조하거나 푸석해도 좋지 않다. 다행히 와잠 자리는 밝았다. 윤기까지 엿보이니 이 수술은 성공이었다.

“표정 보니 성공?”

기자들은 눈치가 만렙이다. 조경철은 경도의 표정만으로 상괘를 알아차렸다.

“자녀궁에 화사한 윤기가 도네요. 이 수술은 성공할 것 같습니다.”

경도가 인증을 해주었다. 두 기자가 후끈 달아올랐다.

“고맙습니다.”

안계홍이 인사를 할 때였다.

‘엇?’

경도가 눈을 감았다 떴다. 안계홍의 눈꼬리 옆 간문 때문이었다. 머리카락 라인까지 이어지던 푸른 기색이 짧아지고 있었다. 그 표식은 아내가 가출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게 짧아진다는 건?

시선을 이마의 양 모서리 변지로 옮겨갔다.

“.......”

경도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변지에도 윤기가 돌고 있다. 이곳의 윤기는 먼 곳에 있던 연인이 가까이 온다는 뜻이다. 안계홍에게 있어 먼 곳의 연인은 누구인가? 바로 가출한 아내였다. 이건 상서로운 신호가 아닐 수 없었다.

'후우.'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집중한다. 이제는 유년운기부위였다.

43세 안계홍.

이 해의 운은 콧날 옆이다. 눈의 라인이 시작되는 광전...

앗싸.

감탄사를 삼켰다. 그곳의 기색에도 윤기가 돌았다.

확인사살까지 끝났다. 경도 혈관이 뜨끈해졌다. 개고생하던 안계홍, 그 인생에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후우.”

안계홍은 초조했다. 수술이 4시간을 넘은 것이다. 식사라도 하고 오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덕분에 경도도 함께 굶었다. 그나마 조경철과 방 기자는 배를 채우고 돌아왔다.

수술실의 화면은 맹탕이다. 정식 입원환자가 아니니 나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6시간이 지나갔다.

다른 수술실들은 여전히 바쁘다. 새 환자가 들어가고 수술이 끝난 사람들이 나온다.

“수술 잘 끝났어요.”

의료진의 한 마디에 보호자들이 안도를 한다.

수술 잘 끝났어요.

경도의 귓전에도 그 말이 아른거렸다.

그리고, 7시간 40분이 지났을 때였다. 마침내 기다리던 수술실 문이 열렸다. 슬쩍도 아니고 활짝이었다. 명혜가 먼저 나왔다. 아직은 의식이 없었다.

“명혜야.”

안계홍이 달려갔다. 방 기자도 내려놓았던 카메라의 각도를 잡기 시작했다.

“보호자분이세요?”

“예, 제가 아빠입니다.”

“회복실로 갈 거예요. 대기실에 있던 짐 옮기시고요, 자세한 건 신 박사님이 나오셔서 말씀해드릴 거예요.”

간호사의 설명이었다.

“수술은요?”

“성공이에요. 이제 이 아이, 기저귀 떼고 옆구리가 아니라 요도로 소변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와우!”

안계홍이 만세를 불렀다. 감정을 못 이겨 경도까지 안아버리는 그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경도 역시 눈덩이가 뜨끈해졌다. 안계홍이 진정되자 명혜 손에 사탕을 꼭 쥐어주었다.

고생했다.

이제 수영 하러 가야지?

속삭이는 경도도 끝내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거기 관상 공무원님.”

신 박사가 나왔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요관을 방광에 붙이는 문합도 잘 끝났고 요관확장도 성공입니다. 신우와 옆구리 피부의 누공을 제거하는 수술도 성공.”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무려 50만불 짜리 수술이었는데 그 정도는 돼야 하지 않았겠어요?”

“좋은 일 하셨으니 이제 돈 새는 일 줄어들 겁니다.”

“내 관상이 바뀌었습니까?”

“예, 콧날 말입니다. 거기 맺혔던 사색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중 옆의 점... 가능하면 그건 지워버리시기 바랍니다.”

“거참, 내가 보기엔 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

핸드폰의 카메라 화면에 얼굴을 비춰보며 신 박사가 웃었다.

찰칵, 찰칵!

방 기자의 카메라는 쉬임없이 돌아갔다. 조경철의 카메라도 그랬다.

낭보는 또 있었다.

“수술비 면제요?”

신 박사가 전해준 반가운 말이었다.

“정말입니까?”

경도가 되물었다.

“여기 원장님의 결단입니다. 소아과 닥터들에게 좋은 사례가 되었고 아이 사정이 딱하다고 하니 병원비는 전액 무료로 해주시겠답니다.”

“명혜 아버님, 들으셨죠?”

경도가 소리쳤다.

“박사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안계홍의 허리가 휘어진다. 덩달아 경도 짐이 홀가분해졌다. 이제 남은 건 명혜의 회복 뿐이었다.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내가 참관 닥터들과 마무리할 게 있어서...”

신 박사가 돌아섰다.

“고맙습니다. 박사님.”

경도와 안계홍이 합창을 했다.

“오 주임.”

그 복도 끝으로 민지가 들어섰다. 옆에는 육 과장도 있었다.

“과장님이 어떻게?”

“혼자 고생하는데 뭐가 어떻게야? 공무에다 출장도 아니고 연가를 단 사람을...”

“죄송합니다. 공무로 보기에는 조금 애매한 거 같아서...”

“업무에서 파생된 일인데 공무가 아니면? 책상에 앉아서 공문 만드는 것만 공무야?”

“......”

“아이 수술은?”

“성공입니다.”

“와아. 대박.”

옆의 민지가 먼저 환호를 질렀다.

“비용은 병원 측에서 무료로 해주기로 했습니다.”

“자네 정성 때문이군?”

“과장님이 후원해주신 덕분입니다.”

“숟가락 얹을 생각 없으니 그런 말 말게. 이건 오직 자네 힘으로 이룬 쾌거야.”

“감사합니다.”

“일은 다 끝난 건가?”

“그런 거 같습니다.”

“어, 우린 아직 아닙니다.”

조경철과 방 기자가 다가왔다.

“우리 관상박사님 직속 과장님 되십니까?”

방 기자가 과장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잘 됐군요. 저 TTC 기자인데요, 오늘 수술과 관련해서 우리 오 주임님의 평소 공직관에 대해 한 말씀만 부탁합니다.”

“이 미담에 대해서라면 저는 말 할 자격 없습니다. 이건 오직 우리 오 주임의 공이니 오 주임만 취재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말씀 들으니 더 취재하고 싶어지는 데요? 대개의 부서장들 보면 무임승차하려고 난리들인데 이런 모습 신선합니다.”

“글쎄, 아니라는 데도요. 정 그러면 같이 오래 근무한 우리 배 주임에게...” 

육 과장이 손을 젓지만 기자의 집요함은 당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경도에 대한 덕담 인터뷰를 당하고(?) 말았다.

자리를 옮겼다. 육 과장이 쏘는 식사였다.

“잘 먹겠습니다. 실은 점심도 굶었거든요.”

푸짐한 수육이 나오자 경도가 수저를 들었다.

“잠깐만 기다리면 안 될까?”

육 과장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왜요? 엄 팀장님 오시나요?”

“오실 때가 되었는데?”

육 과장이 돌아보는 순간 내실의 문이 열렸다.

“......!”

경도가 수저를 떨어뜨렸다. 들어선 사람은 엄 팀장이 아니라 이창교 국장이었다.

“국장님.”

경도가 굳어버렸다.

“오 주임, 초대형사고 쳤다고?”

“아닙니다. 국장님이 어떻게?”

“낮에 전화하셨더라고. 자네 잘 쪼고 있냐고. 그래서 별 수 없이 말씀을 드렸네.”

육 과장의 설명이 나왔다.

“수술은 성공이라고?”

이 국장이 육 과장 옆에 자리를 잡았다.

“예, 덕분에...”

“사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더니 이런 엄청난 사건을 벌이면서 나한테는 말도 안 해?”

“죄송합니다. 크게 자랑할 일도 아니고 수술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이런 일이 결과가 중요한가? 이건 과정이 중요한 거야.”

“죄송합니다.”

“일단 먹게. 복도에서 듣자니 점심도 굶었다면서.”

“......”

“오 주임 미담이 방송에 나올 모양입니다. TTC와 하나로일보에서 취재를 해갔습니다. 병원비 또한 오 주임 활약으로 무료로 주선이 되었고요.”

육 과장이 배경설명을 했다.

“보도자료를 미리 준비했던 건가?”

“아닙니다. 오 주임이 개인적으로 손을 쓴 모양입니다. 보도자료는 이제 준비하겠습니다.”

“이미 보도가 되었는데 무슨 보도자료? 시장님께 보고할 자료나 준비하시게.”

“국장님.”

두 간부의 대화 중에 경도가 운을 떼고 나왔다.

“뭔가?”

“보고는 하지 않는 게 어떨까합니다.”

“보호자가 거부하시나?”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보고하는 게 맞네.”

“하지만 이건 신 박사님과 병원의 공이지 저야 연결한 것 밖에 없는데...”

“자네가 의사인가? 자넨 공무원이야. 최적의 연결로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게 하면 되지 수술까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릴까?”

“그건 아닙니다만.”

“자네가 잘 하는 관상에서는 얼굴보다 마음이고, 공덕보다 음덕이라고 했지? 하지만 우린 행정가네. 잘 한 건 감추지 말고 드러내야 하네. 그래야 공직자들의 분위기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야. 그 자네가 잘 하던 말, 그 뭐지? 천천히를 뜻하던 싸모?”

“싸목싸목요?”

“그래. 싸목싸목.”

“......”

“요란을 떨자는 게 아니니 내 말대로 하게. 열심히 일한 공무원이 뭘로 보상을 받겠나? 기관장의 격려 밖에 더 있겠나?”

“......”

“아무튼 병원 측이 큰 결단 내려주셨군. 그럼 다른 부대비용 부담은 어떤가?”

이 국장이 경도에게 물었다.

“회복하는데 돈이 좀 들 것 같습니다. 간병 때문에 명혜 아빠께서 당분간 트럭행상을 하지 못할 테고... 해서 긴급구제자금 알아봐드리고 공동기금에 연락해서 추가지원 여부를 알아보겠습니다.”

“이거 보태 쓰게.”

이 국장이 봉투를 내놓았다. 100만원이었다.

“국장님.”

“센터 떠나갔다고 막보기로 갈 텐가? 나도 기여할 틈을 좀 줘야지.”

“고맙습니다.”

봉토를 집어드는 경도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제 식사나 하시게. 이 식사는 내가 쏘겠네. 이 집 수육 다 먹어도 좋아.”

이 국장이 카드를 꺼내놓았다.

“그럼 마음 놓고 좀 먹겠습니다.”

경도가 다시 수저를 들었다. 몇 입 정신없이 먹다보니 허기가 가셨다. 이 국장의 봉투는 바로 안계홍에게 전해주었다.

“아이고, 이러시면 안 되는데...”

안계홍이 또 한 번 자지러졌다.

“......”

침대 머리맡에 서서 잠든 명혜를 바라보았다. 아이 얼굴이 웃고 있다. 저만치 다가오는 엄마를 꿈에서 만나기라도 하는 걸까? 그러길 바랐다. 명혜의 회복에는 엄마만 한 게 없을 테니까.

“힘내세요. 앞으로 좋은 일 더 많이 생길 겁니다.”

-당신 아내가 돌아올 것 같아요.

안계홍에게는 암시만 주었다.

병실 입구에서 잠시 돌아보았다. 경도 눈에는 보였다. 돌아온 아내와 셋이서 단란한 안계홍 가족. 그들의 겨울은 이제 끝난 것이다.

< 관상 믿고 갑니다-5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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