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상 믿고 갑니다-4 >
“마셔요.”
달리는 차 안에서 조 지국장이 산양삼 음료수를 내밀었다.
“이야, 산양삼 엑기스네요?”
“관상도 잘 먹어야 잘 보는 거 아닙니까?”
“고맙습니다.”
토 달지 않고 마셨다. 한 때는 거만의 상징처럼 보여 밥맛이었던 지국장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도 제대로 된 기자였다. 용포읍과의 관계도 그랬다. 그는 불합리한 행정처리에 딴죽을 걸었고 행정 하자와 실수에 대해 기사화했었다. 기자로서 당연한 책무였다. 업무상의 착오나 실수에 대해 개선할 생각은 않고 덮는 데에만 급급하다 보니 기사에 대해 반발했던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독지가를 소개하겠다는 마당이다. 설령 그의 이해관계가 걸렸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마셨으면 미리 좀 보세요.”
사진 한 장이 나왔다. 잡지의 기사에서 오려낸 얼굴이었다.
“뭐하는 사람 같아요?”
“이마와 눈썹... 광대를 보니 학자 같네요.”
“오, 역쉬.”
“언제 사진이죠?”
“7-8년 전? 아무리 찾아도 그것 밖에 없더라고요. 왕년에는 민변 최고의 변호사로 날렸는데 최근에는 2선으로 물러나서 대학강의만 하고 계십니다.”
“......”
“내가 본사 있을 때 정치부 차장을 했잖아요? 그 양반이 정계에서 러브 콜을 받을 때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콜을 받았으면 금배지는 따놓은 당상이었는데 둘 다 거절을 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멋지더라고요. 개나 소나 러브 콜 받으면 미친 개처럼 달려드는데 보장된 금배지를 거절하는 그 카리스마라니...”
“......”
“이 분이 나중에 대형 로펌으로 옮겨 굵직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명예 위에 부도 쌓았죠. 그때 내가 여기로 좌천된 걸 알고 불러요, 밥이나 한 번 먹자면서.”
“......”
“그날 48가지 반찬이 나오는 한정식을 먹었는데 진짜 감동 먹었습니다. 잘 가나는 로펌의 스타 변호사가 찌질한 지방지 기자를 불러 진수성찬으로 위로를 해주다니... 그렇지 않나요?”
“멋지시네요.”
“아까 오 주임님 말 들을 때 그 생각이 났습니다. 그 분의 인격이라면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 그 핑계로 나도 한 번 뵙고요.”
“감사합니다.”
“내 말 아직 안 끝났어요. 오 주임을 연결 시킨 이유가 하나 더 있거든요.”
“뭐죠?”
“점입니다.”
“점요? 사주팔자 등의 그 점?”
“맞습니다. 이 분이 그런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신봉이 아니라 민속학적 관점인데 조예도 상당하시지요. 그러니 오 주임님에게는 도 아니면 모가 될 수 있기에 미리 사진을 드린 겁니다.”
“그렇군요.”
지국장의 말을 이해했다. 조예가 깊다면 그만큼 더 신중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들어오세요.”
남산 아래의 주택가에 도착하자 저택의 대문이 열렸다. 담장으로 가려진 정원은 질박한 들녘을 옮겨놓은 듯 서정적으로 보였다.
“조 부장님.”
거실의 김병로 교수가 지국장을 맞았다. 두 사람이 인사하는 사이, 경로는 벌써 그의 관상을 꿰뚫고 있었다.
“......!”
경도, 호흡이 심장 밑에서부터 막혀왔다. 보기 드문 귀격이었다. 거기다 관록에서 명궁까지 미색이 맴돈다. 음덕을 쌓았다는 증거였다.
“......”
거기서 또 한 번의 충격파가 이어졌다.
“들어가시죠.”
지국장이 안 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경도의 대답은 반대로 나왔다.
“아닙니다. 그냥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
경도 말을 들은 지국장의 눈빛이 튀었다.
“오 주임.”
“교수님께 다른 일이 생기신 것 같습니다.”
경도가 현관의 김 교수를 바라보았다.
“호오, 관상을 본다는 젊은이가 이 분이시오?”
김 교수가 지국장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혜안이시군. 그렇잖아도 방금 우리 형님이 입원했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하지만 큰 병 아니니 괜찮습니다.”
김 교수가 웃었다.
“아닙니다. 교수님은 지금 가셔야합니다.”
경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위중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요 근래 사업체의 부침이 심해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렇다고 해요. 그런데 그걸 내 관상을 보고 안 거요?”
“예.”
“대단하시군. 우리 조 기자님이 관상천재라길래 기대는 했지만 이건 뭐...”
“그래도 지금 가보셔야...”
“이봐요.”
“죄송하지만 그 분 병원이 어디입니까?”
“인천 쪽이오만.”
“거기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른 형제분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
“형제궁인 눈썹에 목숨이 경각에 달린 표식이 떴습니다. 당시(當時) 방각(方角)으로 보아 서쪽이 아니고 동쪽입니다.”
“동쪽?”
“예.”
“동쪽이라면... 강동구의 대학병원에 관상동맥수술을 받은 동생이 있기는 합니다만... 거기는 수술이 아주 잘 되어서 퇴원을 앞두고 있어요. 그래도 거기까지 맞히는 걸 보니 대단하군요.”
김 교수가 반색을 했다.
“교수님.”
“자자, 그쯤하고 먼 길 왔으니 들어오세요.”
김 교수가 조 지국장을 재촉했다.
“들어가죠?”
지국장이 턱짓을 한다. 별 수 없이 경도도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게 얼마만입니까? 우리 조 기자도 제법 연륜이 배어가고 있군요?”
차가 나오자 김 교수의 덕담이 이어졌다.
“아휴, 교수님, 저도 이제 중늙은이입니다.”
“어허, 노인 앞에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지요.”
“우리 관상박사님은 공무원이시라고?”
김 교수가 화두를 돌리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우리 조카로군요.”
번호를 확인한 교수가 일어나 전화를 받는다.
“......!”
경도는 보았다. 그 얼굴을 스쳐가는 강력한 충격파. 어느새 창백하게 변한 교수가 경도를 돌아본다. 확장된 수정체조차 떨고 있었다.
‘부고로군.’
경도가 시선을 비켰다.
“알았다. 지금 가마.”
김 교수가 통화를 마감했다.
“교수님...”
낌새를 차린 조 지국장의 표정이 굳었다.
“당신...”
교수의 시선은 경도에게 있었다.
“대단하시군. 당신 말대로 부고가 왔어요. 회복 중이던 내 동생이 조금 전에 전격 심발작으로 숨을 거두었다는군요.”
“......!”
멋대로 튀는 건 조경철의 눈빛이었다. 경도는 그저 경건할 뿐이었다.
“맙소사, 병원이 지척이니 당신 말을 듣고 달려갔다면 임종을 볼 수 있었을 것을.”
“......”
“이게 정말 당신이 내 관상을 보고 맞춘 거요?”
“교수님.”
휘청거리는 교수를 지국장이 부축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후원비는 받아내지 못했다. 초상이 났으니 교수는 정신이 없었고, 그런 사람에게 관상 복채(?)를 말할 수도 없었다.
그 길로 강동구의 대학병원으로 달렸다. 경도는 몰라도 조경철은 조문을 해야 했던 것이다. 경도도 함께 조문을 했다. 봉투도 넣었다. 공직자는 5만원이 표준이므로 그에 준해 부의금을 넣었다.
“미안합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아, 우리 김 교수님, 제대로 녹는 표정이었는데...”
K시로 돌아오는 길, 차 안의 조경철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닙니다. 사람이 죽은 일을 어쩌겠습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사람 만나는 건데... 괜히 오 주임님 시간과 돈만 쓰게 만들고.”
“몇 푼 넣지도 않은 걸요.”
“아무튼 관심은 가지신 거 같으니까 나중에 다시 날 잡아보고... 내가 다른 사람 다시 수배해볼게요.”
“수고를 끼쳐 죄송합니다..”
“별 말을... 수술은 내일 오전?”
“예.”
“그럼 들어가요.”
센터의 주차장에서 조경철이 말했다.
조경철의 차가 멀어졌다.
후우.
쿨하게 허탕이다. 하지만 많이 허탈하지는 않았다.
부의금으로 음덕 쌓았잖아?
잘 될 거야.
스스로를 위로했다.
인생에 100%라는 건 없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에, 한 사람으로 안 되면 열 사람, 백 사람을 만나면 될 일이었다.
경도의 다짐대로, 이 허탕은 경도 일생에 일대 사건이 되었다. 오래지 않아 김 교수와 엄청난 인연으로 맺어지게 된 것이다.
아주 엄청난.
**
다녀오겠습니다.
이른 아침, 경도가 싸목도감에 손을 올렸다. 명혜가 수술을 받는 날이다. 하루 연가를 달았다. 출장으로 달까하다가 그만 두었다. 사적인 일은 아니지만 공적으로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었고 수술이 몇 시에 끝날 지도 알 수 없었다.
오늘은 여러 가지가 걸렸다.
첫째는 명혜의 운명이었다.
수술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두 번째는 경도의 운명이다.
50만불.
싸목도감을 바라보니 걱정이 조금 가셨다. 관상을 믿지 못한다는 건 경도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과도 같았다.
“어.”
수술실 복도 앞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조경철이었다. 그는 동행이 있었다.
“지국장님.”
경도가 다가섰다.
“뭐야? 내 건 없어요?”
지국장의 시선이 경도 손에 들린 커피에 머문다.
“죄송합니다. 사다 드릴 게요.”
“그럼 여기 방 기자 것도.”
지국장이 옆 사람을 가리켰다. 그런가보다 하고 커피 두 잔을 사왔다. 스케줄을 물었지만 와줄 줄은 몰랐다. 그런데 단순히 온 것만이 아니었다.
“인사해요. 여기 TTC 방순호 기자님.”
조경철이 일행을 소개했다.
“TTC요?”
경도가 저절로 반응했다. TTC라면 대한민국 3대 지상파 방송국의 하나였다.
“어제 헛발질 하게 해서 말입니다. 내 밑에 수습으로 있다가 이 선배님의 기막힌 지도편달 덕분에 TTC로 옮겨간 친구입니다. 은혜 좀 갚으라고 멱살캐리해서 데려왔죠.”
“선배님, 그건 너무 오버인데요?”
방 기자가 받아치고 나왔다.
“이야, 이 친구, 요즘 잘 나간다고 항명하네? 어리바리 초보에게 기본기 가르쳐준 게 누군데?”
“그렇게 유능하신 분이 왜 K시 터줏대감으로 사는 건데요?”
“내가 속세가 싫어서 자연에 귀의한 거지 능력이 없어서 K시에 있는 줄 알아?”
두 사람이 애처럼 욱신각신거린다. 그만큼 친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우리 오 주임님, 대한민국 최고의 공무원이셔. 특히 관상은 대통령급이시니 알아서 보도하라고.”
“진짜 관상을 그렇게 잘 보십니까? 우리 선배님 입에 침이 마르시네요?”
방 기자가 경도에게 물었다.
“그냥 조금 봅니다.”
“수술 성공하면 제가 책임지고 뉴스에 밀어 넣겠습니다. 대신 언제 저 관상 좀 부탁합니다.”
“예, 그러시죠.”
조경철이 옆에서 윙크를 해대니 군소리없이 받아넘겼다. 다행이었다. 방송에 미담기사로 나가면 후원 걱정을 덜 수 있다. 지상파가 내리막이라지만 그 정도 위력은 있었다.
시작부터 좋았다.
명혜는 잠시 후에 등장했다. 침대 옆에는 안계홍이 찰떡처럼 붙어있었다.
“명혜야, 읍사무소 오 선생님 오셨다.”
안계홍이 말하자 명혜가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명혜, 기분 어때?”
경도가 다가섰다. 방 기자의 카메라가 돌기 시작했다.
“수술 잘 받을 수 있지?”
“네.”
“그러자. 그런 다음에 여름에 수영 고고싱?”
“네.”
“오케이.”
경도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명혜가 사탕을 쥐어주었다.
“저 아직도 안 먹었어요. 선생님이 가지고 있다가 수술 끝나면 돌려주세요.”
“......”
명혜의 하얀 웃음에 경도가 할 말을 잃었다. 숨이 터억 막혀버린 것이다.
“명혜 파이팅.”
수술실 앞에서 안계홍이 손을 흔들었다. 그 눈에는 이미 지향이 없다. 어린 딸 볼까봐 참았던 눈물을 결국 흘리고 마는 것이다.
“잘 될 겁니다.”
경도가 다가가 위로했다.
“이 미친 인간... 이럴 때 애 옆에서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면...”
안계홍이 고개를 떨군다. 가출한 아내 생각이 난 모양이다. 그는 아직도 아내를 기다리고 있다. 이마의 상정을 보면 알 수 있다. 황색 기운이 남았으니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하긴 그랬다. 어린 명혜가 이 사탕을, 경도가 아니라 엄마에게 맡기고 들어갈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더 힘이 되었을 것을.
“저기요.”
방 기자가 다가왔다.
“명혜 수술 기사 써주실 기자분이세요.”
경도가 짧게 소개했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에 참관의사들이 몰려왔다. 신 박사의 집도를 보기 위한 의사들이었다. 신 박사는 그들 뒤에서 등장했다. 경도를 보더니 성큼 속도를 높였다.
“당신.”
경도 앞에 서더니 다짜고짜 어깨를 밀어버리는 신 박사였다.
“박사님.”
“아, 이 사람 진짜...”
잠시 혀를 내두르더니 경도 가슴팍에 종이 한 장을 던져주었다.
“마지막으로 영상물 체크하는데 미국 처남의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왔어. 빌어먹을 처남의 페이퍼 기업이 미국조세당국에 적발되면서 구속 되었다고. 입금하기로 한 투자금 50만불, 입금 즉시 미국 조세당국에 압수 당하게 될 테니까 입금하지 말라고 말이야.”
“와우.”
듣고 있던 경도가 탄성을 질렀다.
“뭐야? 자기가 점괘를 내놓고 자기가 놀라?”
“당연하죠. 저한테 50만 불은 박사님의 50만 불과 다르거든요.”
“아무튼 그건 당신이 이겼어. 그러니 차용증 돌려주는 거야.”
“이제 박사님 차례군요. 수술에서 이겨주세요.”
“그래야지. 의학 체면이 있지 관상에게 질 수는 없잖아?”
경도의 어깨를 후려친 신 박사가 수술실로 향했다. 그가 들어가자 수술실 문이 닫혔다. 이제 명혜의 미래는 오롯이 신 박사의 손에 달려 있었다.
< 관상 믿고 갑니다-4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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