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상 믿고 갑니다-3 >
“오 주임님.”
경도 차가 집 앞에 서자 안계홍이 다가왔다.
“명혜는요?”
“옷은 갈아입혔는데...”
“그럼 안고 나오세요. 제 차로 모시겠습니다.”
“하지만 병원비가...”
“뭘 걱정하세요? 의료지원금 있잖습니까? 수술이 가능한지부터 봐야한다니 서두르세요.”
“하지만 SS 병원이면 수술비하고 입원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
“제가 책임진다니까요.”
“아휴...”
안계홍은 안절부절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SS 병원이라니 겁부터 먹은 것이다. 보통 병원이라면 큰 걱정이 없다. 안계홍과 명혜가 의료수급대상자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 최대 300만원까지 지원이 가능하다. 그럼 300만원이 넘는 병원비는?
그 또한 걱정할 것 없다. 병원에는 의료수급대상자 관리팀이 따로 있다. 이들 역시 국가의 의료수급 제도를 꿰고 있으니 입원비가 많이 나오면 분할 수납을 유도한다. 즉 290만원 쯤 되었을 때 1차 청구서를 내서 국가에서 받아내고 나머지는 2차, 3차로 나눠서 청구한다. 물론 입원비가 거액일 때는 소용없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사회복지기금이나 사랑의 열매 등에서 지원을 하고 있었다.
“어서요. 그 박사님이 곧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경도가 재촉하자 안계홍이 안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아빠 품의 명혜는 사탕을 들고 있었다.
“이건 이따가 먹자. 검사를 받아야할 지도 몰라.”
경도가 사탕을 맡아두었다. 의료수급자들을 데리고 병원에 간 적이 많았다. 사탕이나 초콜릿 등은 모든 검사에 방해가 되었다.
“명혜, 기분 어때?”
도로를 달리며 경도가 물었다.
“명혜 기분 안 좋아요.”
명혜가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
“왜? 명혜 병이 나을 수 있나 없나 보러가는 건데?”
“선생님이 사탕 뺏었잖아요.”
“돌려줘? 명혜가 가지고 있을 거야?”
“네.”
명혜가 턱을 끄덕였다. 사탕은 결국 명혜 손으로 돌아갔다. 먹고 싶은 마음에 비닐 채로 입에 넣는다.
“명혜야.”
아빠가 눈치를 주자 다부지게 대꾸한다.
“먹는 거 아니야. 그냥 빨아만 보는 거야.”
뒷좌석의 부녀를 바라보던 경도가 가만히 웃는다. 잔뜩 긴장한 아빠와 달리 명혜는 천진난만하다. 그러다 잠이 오는지 하품과 함께 아빠 품에 무너졌다. 그 딸을 아빠가 고이 품어준다. 그냥 둬도 될 소변줄까지 가지런히 챙긴다.
‘황 할아버지.’
관상을 유니크 스펙으로 안겨 준 그분에게 기도를 했다. 제발 이 수술이 이루어지기를. 그래서 저 아이가 다른 또래들처럼, 소변줄 없이, 수액줄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기를.
기도하는 사이에 SS 병원이 가까웠다.
<전격 진단>
명혜의 경우가 그랬다. 신 박사의 요청이다 보니 병원에서 급행코스를 밟아주었다. 영상촬영에 들어간 동안 안계홍은 초조감을 숨기지 못했다. 그 얼굴이 너무 초조하니 찰색이 보이지 않았다.
찰색은 보통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청-황-적-흑-백색이 그것이다. 이것은 음양오행과도 다르지 않다. 명혜가 잘 되려면 아빠의 눈밑 와잠이 암시를 준다. 좌남우녀이니 우측 와잠이다. 거기 황금빛 윤기가 피어오르면 길하다.
그래도 안계홍은 잘 삭혀내는 편이었다. 눈썹의 복이다. 다른 곳은 다 허무하지만 그의 눈썹은 일자미에 가까운 첨도미형이었다. 일자미와 비교하면 선이 좀 약하고 뾰족한 형태다. 이런 사람은 외유내강형에 성실함을 갖추고 있다. 지금은 아내의 가출과 간암 회복 때문에 고전하지만 몸이 다 나으면 팔자가 피기 시작할 사람이었다.
진단에만 네 시간이 흘렀다.
두 의사와 함께 판독실을 나온 신 박사가 경도와 보호자를 불렀다.
“검사는 모두 끝났습니다. 수술 검토에 대한 사안도 역시...”
경도의 귀가 쫑긋 일어났다.
예스일까 노일까?
이 순간만은 명혜가 동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애가 탔다. 검사결과지를 들여다본 신 박사가 결론을 밝혔다.
“검토 결과 성공 가능성이 약 80%로 나왔습니다. 보호자께서 동의서 사인하시면 모레 수술일정 잡겠습니다.”
“우와.”
안계홍이 자지러졌다.
‘오 마이 갓···이 아니고 오 마이 관상...’
경도 역시 주먹을 불끈 쥔 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타닥타닥.
시청을 향해 뛰었다. 도착하기 직전에 비가 쏟아진 것이다. 조금 기다렸지만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까짓 것.’
신문으로 머리를 가리고 뛰었다. 시청에 온 건 독지가 때문이었다. 명혜는 SS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내일이면 수술실로 향할 것이다.
“선생님.”
안계홍과 통화할 때 명혜 목소리도 나왔다.
“사탕 아직 안 먹었어요.”
자랑스레 목청을 높인다. 명혜는 어젯밤에 일찍 잠들었다. 아침에 깨어났을 때 경도도 그 자리에 있었다. 출근하기 전에 잠깐 병실에 들렀던 것이다.
“내일 오전 9시 30분요.”
안계홍이 수술시간을 알려주었다. 경도도 알고 있었다. 병실로 오기 전에 신 박사와 통화한 까닭이었다. 수술비를 알아본 결과 대략 1600만원이 든다고 나왔다. 일단 확보되는 건 의료지원금 300만원이다. 병원 코디네이터 말로는 800만원까지는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그 이상이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안계홍이 동원할 수 있는 돈은 150만원이었다.
그 돈은 받을 수 없었다. 명혜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돈은 있어야했다. 수술 같은 큰 사건에는 독지가가 나올 수 있지만 자잘한 생활비 명목의 지원에는 독지가들도 잘 나서지 않는 성향이 있었다.
-우미순 팀장이라면.
현 주임과 배 주임의 이구동성이었다. 사회복지직들 중에서는 발이 가장 넓다고 했다. 그녀라면 기부를 할만한 사람을 많이 알 것 같았다. 노하우에 더불어 소개를 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경도의 착각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아휴, 그때가 언젠데?”
그녀의 한 마디였다. 읍을 떠나면서 모든 인맥이 다 끊겼다는 뜻이었다.
‘최현배 사장님 찾아가봐야겠네.’
일단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기부금 결정은 빠를수록 좋았다.
“오 주임님.”
복도로 나오다 아는 얼굴을 만났다. 조경철 지국장이었다. 카메라를 맨 것으로 보아 취재를 나온 모양이었다.
“취재 나오셨어요?”
경도가 물었다.
“이창교 국장님요, 기사회생하셨으니 기사 좀 써보려고요.”
“저희 과장님이셨잖아요? 잘 좀 써주세요.”
“오 주임님도 승진했다면서요?”
“저야 뭐 개나 소나 다 올라가는 8급인걸요?”
“왜 이러시나? 요즘 9급, 8급이 7급, 6급보다 보기 힘들어요.”
“뭐 그렇다고는 하더라고요.”
“웬일이에요?”
“아, 참, 지국장님 재력가들 많이 아시죠?”
“재력가? 기부금 후리게요?”
“후리긴요? 찬조죠.”
“그럼 나갑시다. 어디 가서 차나 한 잔 마시면서 얘기하죠? 우리 이 국장님, 취재하는데 차도 한 잔 안 주네.”
“그 차 제가 살 게요.”
경도가 조경철의 등을 밀었다.
“안명혜?”
커피잔 앞에서 조경철이 시선을 들었다.
“아세요?”
“왜 몰라요? 간암 걸린 아빠와 선천성 요로폐색 딸이잖아요? 걔 태어났을 때 내가 기사도 내줬는데.”
“진짜요?”
“아, 걔가 아직 용포읍 살죠? 그럼 오 주임님 담당이겠네?”
“지금 서울 SS 병원에 있습니다.”
“SS 병원? 위독해요?”
“그 반대입니다.”
“반대?”
“미국 최고의 소아과 칼잡이에게 수술이 예정되어 있어요. 그것도 내일.”
“내일?”
“그래서 후원자가 좀 필요해요. 생각보다 병원비가 많이 나올 거 같은데 의료지원비만으로는 턱도 없고 회복하는 동안 돈도 필요할 테고...”
“그 수술 오 주임님이 알선한 겁니까?”
“운이 좋았습니다.”
“관상으로?”
“예.”
조경철이 꼬치꼬치 물어오니 경도가 얼굴을 붉혔다.
“우억, 대박... 미국 칼잡이를 어떻게?”
“저쪽 사거리의 소아과 원장님과 상담하던 중에 연결이 되었습니다. 한국 닥터들 수준으로는 어려운데 그분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죽기살기로 달라붙었죠 뭐.”
“이거 급 궁금해지는 데요? 대체 무슨 관상을 봐줬길래 미국 의사가?”
“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떡밥은 던졌는데 그 분이 저보다 한 수 위라서 관상이 적중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보험용 차용증을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별 수 없이 써줬습니다.”
“차용증?”
“조 지국장님과는 반대로 돈 새는 구멍이 있길래 그게 막힐 거라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안 막힐 때를 대비해서...”
“수술보증비를 써준 겁니까?”
“아뇨. 그 박사님에게서 새나갈 돈요.”
“그게 얼만데요?”
“50만불?”
“얼마요? 5만불도 아니고 50만불?”
“예.”
“어억.”
“그건 걱정마시고요 명혜 좀 도와주게 읍내 독지가나 몇 분 소개해 주세요.”
“못합니다.”
조경철이 손을 저었다.
“지국장님.”
“5만불도 아니고 50만불... 아, 그렇게 통 큰 사람에게 어떻게 읍내 독지가를 소개해 줍니까? 서울 사는 재력가나 명사들이라면 몰라도.”
“예?”
“오 주임님, 관상실력 아직 유효하죠?”
“그야...”
“수술 의사를 관상으로 낚았다니 유명인사 관상 정도는 봐줄 수 있겠죠?”
“후원금 받을 수 있다면야 물론이죠.”
“그럼 퇴근시간에 만납시다. 내가 쓸만한 사람으로 하나 수배해 둘 테니.”
“정말입니까?”
“그래요. 이 좁은 K시에서 심심하던 차에 잘 됐지 뭡니까? 관상박사 모시고 서울 나들이나 한 번 합시다.”
조경철은 남은 커피를 한 입에 비워냈다.
“수술?”
퇴근 직전, 경도의 보고를 받은 엄 팀장이 육 과장 옆에서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알기로 그 아이는 불치병으로 알고 있는데?”
“거의 그렇습니다. 하지만 미국 쪽 수술기법으로는 가능한 모양입니다.”
“그 의사와 매칭을 시켰다?”
“예.”
“이 일도 관상인가?”
“아닙니다.”
경도가 선을 그었다. 관상으로 신 박사의 허락을 얻은 것은 맞지만 관상이 수술까지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과장님, 이거 성공만 하면 큰 이슈가 되겠는데요? 보도자료내서 시장님께 올리죠?”
엄 팀장이 저만치 질러갔다.
“아직 수술 전입니다.”
육 과장이 선을 긋는다.
“그러니까 보도자료를 내야죠. 만약 수술에 성공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지 않습니까?”
“팀장님.”
경도가 슬쩍 주의를 환기 시켰다.
“어? 미안... 하지만 불치병 아닌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움직여야지. 자네가 힘들여서 성사 시킨 빅 딜인데?”
“빅 딜은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수술비?”
“조 지국장님 소개로 저녁에 독지가를 한 분 찾아갈까 합니다.“
“조 지국장이 소개해준데?”
“아까 시청에서 만났습니다.”
“그럼 걱정 없군. 지국장 발이 우리보다야 넓을 테고, 우리 오 주임이 관상으로 녹여버리면...”
“엄 팀장님.”
이번에는 육 과장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아니, 과장님이 아직 모르셔서 그렇지 우리 오 주임 관상이 거의 하느님 수준입니다. 듣다 보면 저절로 빠지게 된다니까요.”
엄 팀장 입에 침이 튀기 시작했다.
“행정을 관상으로 합니까?”
육 과장의 주의가 한 단계 높아졌다.
“그거야 그렇지만...”
“내일 오전이 수술이라고?”
육 과장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예.”
“준비는?”
“잘 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후원금은 나도 알아보겠네. 엄 팀장님도 여기 오신지 오래 되었으니 함께 알아보세요. 보도자료는 수술이 성공된 다음에 보호자의 동의가 나오면 준비하도록 하고요.”
“과장님.”
과장의 가이드라인을 주자 엄 팀장이 초조해졌다.
“미담사례라고 해도 환자와 보호자의 사생활이 걸린 일입니다. 도움 좀 주었다고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건 관의 횡포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건 우리 팀, 아니 과장님이 부각될 수 있는 절호의...”
“저 그런 일로 부각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건 오 주임의 노력으로 성사된 일인데 제가 왜 생색을 냅니까?”
“......?”
“그보다 내부 지원이나 잘 해주세요. 아까 엄 팀장님이 오 주임의 출장 지연 통보를 처리하지 않는 바람에 감사실 업무기강단속에 걸렸지 않습니까?”
“예? 감사실요?”
“그만들 나가보세요. 오 주임도 계속 수고하고.”
육 과장이 문을 가리킨다. 차분하지만 빈 틈 없는 질책에 엄 팀장은 반론 한 번 날리지 못하고 일어섰다. 신임이라고 헐렁하게 보았다가 본전도 차리지 못한 것이다.
“나참, 누가 나 잘 되려고 그러나? 다 자기 좋으라고 하는 거지.”
복도로 나온 엄 팀장이 투덜거렸다.
“그나저나 진짜 감사반에 걸린 거야?”
“예.”
“이 자식들이 밥 처먹고 할 일이 없으니 근태나 점검하러 다니고... 누가 나온 거야? 내가 전화해서 빼줄 테니 걱정 말라고.”
“권태술요.”
“권태술?”
“자술서는 과장님이 쓰셨습니다.”
“육 과장님이?”
“예.”
“오 주임이 늦었는데 과장님이 왜?”
“과원의 잘못은 과장의 것이니 대신 책임을 지신다면서...”
“...쩝.”
기세등등하던 엄 팀장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혔다. 괜한 가오 한 번 잡으려다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얼굴이 시뻘개진 팀장을 두고 주차장으로 걸었다. 조 지국장의 차가 도착하고 있었다.
< 관상 믿고 갑니다-3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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