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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상 믿고 갑니다-2 > (45/245)

< 관상 믿고 갑니다-2 >

이 상괘는 신 박사의 점(點)에서 뽑았다. 그는 인중 옆, 그러니까 코와 입술 사이의 위치에 점이 하나 찍혀 있었다. 돈 점이지만 돈이 쌓이지 않는다. 들어오기 무섭게 나가니 버는 놈 따로에 쓰는 놈 따로인 것이다. 

거액의 징표는 코의 정위와 난대에 있었다. 두 쪽 다 죽은 색이니 모아둔 재산의 상당부분이 나갈 예정으로 보였다.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시면 막아드리겠습니다.”

“이, 이봐요. 당신 대체 무슨 수작을?”

신 박사가 펄쩍 뛰었다.

“수작이 아니고 관상입니다. 박사님 얼굴에 새겨진 평생 데이터의 해석.”

“관상? 푸웁.”

신 박사가 헛웃음을 뿜었다. 가소롭다는 뜻이었다.

“물론 의학을 하는 박사님 입장에서는 인정하기 싫은 학문이겠죠.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박사님은 눈썹과 눈썹부위가 남다르고 광대 역시 독보적이니 의사로서 일찍 대성하셨습니다. 눈썹이 와잠미인 덕분인데다 신중함에 더불어 끈기까지 있군요.”

“......”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습니까? 다 좋은데 눈이 원숭이 눈의 원목이라 이론능력은 노벨상감인데 손재주는 평범함에 겨우 근접합니다. 남들은 잘 모르는 핸디캡일 거 같은데 어떻습니까?”

“......?”

세 번째 공습은 약점공략이었다. 세상이 칭송하는 세계 소아비뇨과의 명의. 그도 인간이니 약점이 없을 리 없었다.“다행히 눈썹뼈가 거오골이라, 눈썹을 위에서 감싸듯 둥글게 돌출되었으니 뛰어난 집중력의 소유자. 그것으로 부족한 손재주를 만회해온 것 아닌가요?”

툭.

신 박사 이마에서 땀이 떨어졌다. 이 약점은 보스턴의 은사는 물론 와이프도 모르는 톱 시크리트였다. 그렇기에 매 수술 때마다 힘이 두 배로 들었던 신 박사였다. 미국 소아비뇨기과에서도 선두를 달리던 그였으니 서양 닥터들에게 약점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꿈틀.

정곡을 찔린 신 박사, 입술과 볼살이 출렁이도록 경련했다. 그리고 불쾌한 감정을 못 이겨 돌아서버렸다.

“박사님.”

이대로 포기할 경도가 아니었다.

“이 아이는 박사님의 수술이 필요합니다.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이봐요.”

신 박사의 목소리가 격한 감정으로 떨렸다.

“도와주시면 거액이 새어나가는 걸 방지해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평생 기저귀를 차고 살아가야 하는 아입니다. 아버지는 간암이고 집안은 가난해서 특수 수액바늘조차 제대로 살 수 없는 아이입니다.”

이번에는 명혜의 투병사진이었다. 가난에 찌든 그림이 제대로였다.

“당신...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공무원이라더니?”

“K시의 행정서기 맞습니다.”

“행정서기?”

“8급 공무원이죠. 긴급구제와 맞춤형복지, 수급자 관리 등의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그 신분증 진짜야?”

“당연하죠. 박사님의 면허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따낸 겁니다.”

“내 정보를 해킹한 건 아니고?”

“어쩌면 해킹 맞습니다.”

“뭐야?”

신 박사의 말을 경도가 받아쳤다. 조금이라도 물러서면 끝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해킹의 소스는 박사님의 이메일이나 핸드폰이 아니라 인생입니다. 박사님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진 인생의 기록들, 제가 들여다보았으니 해킹은 해킹이지요.”

경도의 결론은 진솔했다. 미묘한 위세에 눌린 신 박사는 다음 할 말을 잊었다. 이 모든 것들은 신 박사만 아는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그 거액이 얼마인 줄도 아나?”

“5억 언저리... 약 50만불 쯤 되겠군요.”

“......”

액수를 제시하자 신 박사의 눈썹이 또 한 번 꿈틀거렸다.

“이마 모서리에 세 가지 빛이 혼란스러우니 먼 곳의 일입니다. 해외가 되겠군요.”

“기왕 수작부리는 거 누군지도 말해보시지?”

“부모궁도 아니고 형제궁도 아닙니다. 부부궁에서 가까우니 처남이나 매형일 것 같습니다.”

“......”

“더 검증하셔도 좋습니다. 이 아이 수술을 해주기만 하신다면...”

“미친.”

신 박사가 경도의 자료를 뿌리쳤다. 자료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러나 경도는 벌겋게 상기된 신 박사의 표정 속에서 안도의 숨을 삼켰다. 절반의 확신이 든 것이다.

“거액의 누수, 앞으로도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박사님에게는 음덕이 필요합니다. 이 수술은 그 음덕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자료를 주워 다시 내밀었다.

“이 아이를 수술해주면 바닥 뚫린 내 지출이 멈춘다?”

“예.”

“아니면?”

“저를 허위 공갈 기망에 의한 죄로 고소하셔도 좋습니다.”

“그런 건 필요 없고 그렇게 되면 그 50만불을 당신이 책임진다는 차용증을 써. 그럼 수술 추진해 보지.”

신 박사의 빅딜이 나왔다.

“50만불을요?”

이번에는 경도 목소리가 갈라졌다.

“왜? 관상신이라도 된 듯 폭주하더니 자신이 없나보지?”

“상괘는 자신 있지만 저는 고작 연봉 2천 5백만 원의 말단공무원입니다. 게다가 이 건 아이는 물론 박사님에게도 윈윈이 되는 길입니다.”

“그럼 말이야 당신이 나라면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이겠나?”

“......”

“차용증으로 대신해도 좋아. 공무원이라니 월급에서 차곡차곡 갚으면 될 것 아닌가?”

“......”

“딜을 받지 못한다는 건 결국 자신이 없다는 뜻이겠지?”

5억.

당혹이 엄습했다. 월 100만원씩 상환해도 40여년이다. 자칫하면 평생을 빚쟁이로 살아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지금 관상에 딜을 걸고 있었다. 이렇게 물러나면 경도 스스로 관상을 믿지 못한다는 꼴 밖에 되지 않았다. 스스로도 못 믿는 관상을 천기인양 떠벌리고 다녀도 되는 것인가?

더구나 입장을 바꿔보면 신 박사 말이 맞았다. 그로서는 더 강력한 담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경도의 자신감을 재확인하려는 것이다.

고뇌의 순간 바닥에 떨어진 명혜 사진이 보였다. 아이의 딱한 사정을 전하기 위해 찍은 사진들. 그 속의 명혜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옆에서 싸목 할아버지가 화로 위의 재에 얼굴을 그리는 모습이 보였다.

-받아주시게.

-관상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경험으로 인정하는 법.

-자네의 관상 자산이 50만불 밖에 안 되겠는가?

할아버지가 그림을 완성했다. 활짝 웃는 명혜의 얼굴이었다.

‘예지다.’

경도 심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써드리죠.”

싸목 할아버지의 예지가 경도의 용기에 불을 지른 것이다.

**

“선천성 요관협착으로 인해 신장에 소변이 저류되어 축적되는 hydronephrosis라?”

판독실로 옮겨온 신 박사가 CT와 MRI, 초음파 등의 의료정보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는 SS 병원의 귀빈대우였으니 그만한 편의제공은 받고 있었다.

“이 아이 출산에 대해서도 알아요?”

“대략적인 히스토리는 전부 알고 있습니다.”

“정상 출산이었나요?”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쉿, 이런 상태면 조금 빨리 꺼내서 수술을 했어야지.”

“어렵... 습니까?”

“천만에요. 50만불 벌려면 해봐야죠.”

“......”

“겁나요? 내가 실패할까봐?”

“아닙니다.”

“나야 안전장치 된 거 아닙니까? 당신에게 차용증을 받았고, 이거 시도하면 음덕인지 뭔지도 생겨서 거액이 새나가지도 않는다고 하고...”

“......”

“겁나면 지금이라도 말하세요. 이깐 차용증 당장 돌려주고 없던 일로 하면 되니까.”“겁나지 않습니다.”

“혹시 내 얼굴에 그것도 써있어요? 수술성공?”

“예.”

경도가 웃었다.

“허, 이 사람 참...”

신 박사가 혀를 찼다.

“생후에 실시한 수술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요관이 흔적 뿐이니 renal pelvis를 양 쪽 옆구리까지 연결하려고 시도했군요. 아, 레날 펄비스는 신우라고 신장의 가장 안 쪽에 자리합니다. 소변이 모이는 장소죠.”

“......”

“하지만 최상의 방법은 아니었어요. 이건 성공한다고 해도 요로 문제에 대한 근본해결책이 되지 못하죠.”

“......”

“아이 상태는 어때요?”

“거기 최근 검사자료가 있을 겁니다.”

경도가 자료를 가리켰다. 서류를 넘기던 신 박사의 시선이 검사슬립에서 멈췄다.

“기다려봐요.”

신 박사가 일어섰다.

‘후우.’

텅 빈 판독실 안, 벽에는 온갖 부위의 CT와 MRI 필름이 걸려있다. 거의 다 소아환자들 것이다.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건강하다는 게 저절로 행복해졌다.

시간은 이미 11시를 훌쩍 넘었다. 센터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출장규정 따위에 얽매일 수는 없었다.

“팀장님.”

엄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늦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해두었다. 시에서 복무감사를 나오지 않거나 내부에서 찌르지만 않는다면 큰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신 박사는 12시가 가까워서야 돌아왔다.

“우리 병원이 아니다 보니 쉽지 않네.”

의자에 앉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좁아진 요관 부위를 커팅한 후에 방광에 연결하는 수술입니다. 소변이 나가는 길을 여는 것이죠. 나아가 신우와 옆구리에 생긴 피부누공도 제거해야 합니다.”

“수술이 되는 겁니까?”

경도가 반색했다.

“얘기 더 들으세요.”

“예...”

“즉 양측 방광요관의 재문합술과 함께 신우성형술이 필요합니다. 피부의 누공은 신우성형 때 동시에 하면 될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첫째 나는 나흘 후에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다행히 모래 수술일정 하나가 캔슬되어 자리가 난다고 합니다. 아까 한 수술과 연관되는 수술이라고 둘러대서 병원 측 허락은 받았습니다.”

“......!”

“문제는 아이입니다. 검사결과만 보면 가능할 것도 같지만 변수가 있을 수 있지요. 즉 아이의 상태가 맞지 않으면 수술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경도가 묻자 신 박사가 잘라말했다.

“관상 볼 때는 베테랑 재판관처럼 굴더니 왜 이럽니까? 당장 가서 아이 데려오라는 말 아닙니까?”

“아버님, 저 용포읍 맞춤형복지팀 오경도입니다.”

차를 몰면서 전화부터 때렸다. 시간도 없거니와 반가운 소식을 전해야했다.

“우리 명혜 수술이 가능할 거 같다고요?”

응답하는 안계홍의 목소리가 떨렸다.

“미국에서 오신 유명한 분인데요, 명혜를 한 번 보자고 합니다. 그러니 외출 준비 좀 시켜주세요.”

시간이 없으니 통화는 간단히 마쳤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지났다. 그래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이게 바로 일의 보람이라는 것일까?

1시 15분, 경도가 센터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었다.

“오경도.”

주차를 마치고 돌아설 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태술?’

순간적으로 미간이 찡그러졌다. 이 인간이 왜 등장한 걸까? 설마 승진축하?

“승진하더니 바쁘네?”

그가 경도에게 다가왔다.

“웬일이냐? 축하해주려고 온 건 아닐 테고.”

“파티는 이미 끝났잖아? 동기들 불러서 제대로 마셨다고?”

말하는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감사실에서 권력(?)의 맛을 보더니 사람을 아래로 보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왜? 단톡방 강퇴된 사람은 동기도 만나면 안 되냐?”

“아아, 그럴 리가 있나? 만나야지. 막차지만 8급 단 건 단 거니까.”

“말투가 어째 좀 싸아하다?”

“까칠하게 나오는 걸 보니 찔리는 데가 있나보지?”

“나?”

“출장 미귀.”

태술의 입가에 얄쌍한 미소가 스쳐갔다. 아차 싶었다.

“8급 달면 그만한 책임감을 가져야지. 첫날부터 이러면 쓰나?”

태술의 거만이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자술서 내놔라. 사인해줄게.”

선수는 경도가 먼저 쳤다. 감사에 걸리는 건 찜찜하지만 출장 미귀 하나 걸린다고 초상 날 것도 아니었다.

“오, 쿨한데?”

“어차피 봐줄 사람도 아니잖아?”

“나야 당연히 봐주고 싶지. 하지만 내 직분상 누구 봐주고 안 봐주고 할 수 없는 거 이해해라. 그러게 이제 신규도 아닌데 뒤처리는 깔끔하게 하고 다녀야지.”

“알았으니까 자술서.”

“아아, 트렁크 좀 까보고.”

“트렁크는 왜?”

“가끔 주제 모르는 인간들이 근무시간에 골프 치러 다니거나 뇌물 받아서 싣고 다니더라고.”

“야, 권태술.”

“열어. 자술서는 그 다음.”

자술서를 꺼내든 태술이 트렁크를 두드리는 순간, 뒤에서 나온 손이 자술서를 채가 버렸다.

“뭐야?”

발끈한 태술이 돌아보았다. 그 발끈은 바로 풀렸다. 손의 주인공은 육 과장이었다.

“과장님.”

“우리 직원이 출장 미귀라고?”

“예, 부시장님이 복무기강 특명을 내리셨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골프하고 뇌물 검사한다고?”

“감사 메뉴얼입니다.”

“오 주임, 열어드려.”

육 과장이 턱짓을 했다. 경도가 트렁크를 열었다. 골프채 따위가 나올 리 없었다.

“됐나?”

육 과장이 태술을 바라보았다.

“자술서 돌려주십시오. 그건 작성해야 합니다.”

“이건 내가 사인하지.”

“과장님.”

“과원의 문제는 과장의 문제 아닌가? 다 내가 관리감독을 잘못한 거잖아?”

“과장님, 이러시면...”

“뭐가 문제야? 어차피 자네도 8급 잡는 거 보다야 5급 잡는 게 고과에도 좋을 거 아닌가?”

육 과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

“가져 가게. 이 문제로 출두해야 하면 그것도 내가 가겠네.”

육 과장의 사인이 담긴 자술서가 태술에게 돌아갔다.

“뭐하나? 복무점검에 투철할 사람이 다른 기관 점검할 생각 안 하고.”

“......”

육 과장이 몰아치자 태술은 대충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죄송합니다.”

경도가 과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 아까 엄 팀장하고 통화하는 거 들었네.”

“엄 팀장님은?”

“오후에 열리는 시청 정례회의에 들어간 모양이야. 별 일 없겠거니 하고 넘어간 거겠지.”

“죄송합니다.”

“들어가세.”

“죄송하지만 출장 달고 또 나가봐야합니다.”

“응?”

“안명혜라고 소변줄을 달고 사는 꼬마가 있습니다. 수술 알선이 될까 알아보는 중이라 보고 드리지 못했는데 잘 하면 서울의 병원에서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자네가 주선하는 건가?”

“열심히 뛰고는 있는데 결과는 아직 모릅니다.”

“그럼 뭘 꾸물거려? 빨리 가보지 않고.”

육 과장은 두 말없이 경도를 믿었다.

< 관상 믿고 갑니다-2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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