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첫단추는 제대로 꿸 겁니다-4 >
여자가 차를 몇 모금 넘겼다. 하지만 입맛이 쓰니 바로 내려놓는다. 식음을 거의 전폐하며 살아온 탓이었다. 경도가 관상을 앞세워 재촉에 들어갔다.
“그 이마가 좁기는 해도 천기는 다 담겨 있습니다. 윗사람에게 밉보여 짤린 사연까지도요.”
“......!”
잔을 쥔 여자 손이 떨렸다. 위약금에 더불어 소속사에서 내쳐진 일.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걸 짚어내니 경악할 뿐이었다.
“이마의 이 부위 천양... 거기서 시작된 청색 기운이 여기 관록으로 이어지며 흔적을 남겼습니다. 웃어른이나 고용주에게 내침을 당할 때 인간의 이마는 그렇게 반응합니다.”
“.......”
“다 마시세요.”
경도의 다그침은 부드럽지만 묵직했다.
잔을 바라보던 여자가 남은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현실도피를 암시하던 칙칙한 색은 그 잔이 비워지는 순간 조금 맑아졌다.
‘좋아.’
경도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이제 절대 파국의 상황은 면한 것이다.
“계속합니다.”
“......”
“다시 말하지만 연예인은 둥근 모양에 높고 넓은 이마가 최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당신은 다른 스타들과 경쟁이 되지 못하죠. 하지만 다행히 그 이마가 옆으로 넓은 편에 속하는 데다 눈과 코, 입의 기세가 좋습니다.”
“눈이라면 도화살 말이죠?”
“도화살요?”
“전에 순백신녀라는 여대생 무당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그랬거든요. 제가 도화살이 있어서 연예계에서 밥 먹고 살 팔자라고.”
“그럴 리가요?”
“아니라는 건가요?”
“원래 도화는 색기를 말하는 겁니다. 그 눈을 복숭아눈이라고 하는 건 바라보는 순간 잘 익은 복숭아처럼 얼굴을 화끈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천박하게 말하자면 아랫도리에 반응이 오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게 만드는 게 도화인 것이니 진짜 도화는 쉽게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럼 왜 제게 도화라고 했을까요?”
“그냥 덕담입니다. 도화는 원래 좋지 않은 의미로 쓰였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부정의 긍정화로 연예인이나 프로선수, 유튜버 등 인기몰이를 하는 직업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 관상은 눈썹이 초승달처럼 둥근 형태에 눈이 촉촉하고 눈웃음을 치는 상이지만 점(點)으로 도화를 말하기도 하지요. 당신의 경우라면 눈의 앞머리와 눈꼬리가 뾰족하고 기니 관상전문가가 아니면 도화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눈은 도화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명봉안입니다.”
“명봉안?”
“관상에서는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눈을 귀안으로 꼽는데 용의 눈 용안, 소의 눈 우안, 봉황의 눈 봉안, 공작의 눈 공작안, 거북의 눈 구안 등과 함께 귀안의 반열에 드는 눈입니다. 이 눈은 치켜뜨고 흘겨보아도 흉하지 않으니 도화와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설명과 함께 두 개의 눈을 그려놓는 경도였다. 도화안과 명봉안이 한 눈에 보이니 확실히 명봉안 쪽이 귀격이었다.
“좋은 눈이지만 더 긍정적인 건 당신의 코입니다.”
“코?”
“잠깐만 손을 좀 대보겠습니다.”
경도가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피하지 않았다. 눌러보니 푹 꺼지지 않고 올라오는 힘이 좋았다.
“됐습니다.”
손을 닦으며 상괘를 이어갔다.
“얼굴이 제 아무리 예쁘고 인기가 좋으면 뭐합니까? 누구든 한두 번의 시련은 오는 것이니 그걸 극복할 수 있어야 진짜 스타가 되는 거죠. 아시겠지만 대스타들 비하인드 스토리 중에 한두 번의 시련이 없었던 사람이 있습니까?”
“......”
“그게 없다면 당신을 붙잡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이 시련을 극복할 에너지를 코에 가지고 있으니 관상 보는 사람으로써 외면하지 못한 겁니다.”
“내 코에...?”
“코 역시 귀격이 따로 있습니다. 용비, 산비, 호비 등이 그것입니다. 당신의 코는 호양비에 속하는데 면양의 코를 닮았다 해서 그렇게 부릅니다. 이 코는 콧대에 힘이 있는데 당신의 경우에는 코끝까지 풍성하게 솟았으니 시련을 극복할 힘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호양비라고 해도 콧대가 물렁하면 허당입니다만 생각 이상으로 당신의 코는 탄탄합니다. 이런 코를 두고 현실도피를 하는 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
“다음 이유는 입이 되겠군요. 아까 제가, 웃을 때 입모양에 대해 물었었죠? 미안하지만 한 번 웃어보시기 바랍니다.”
“......”
“해보세요. 저를 거울이라 생각하시고.”
“···이렇···게요?”
주저하던 그녀가 억지미소를 지었다.
“좀 자연스럽게요.”
“이렇게?”
“다시.”
몇 번의 시도 끝에 제대로 된 미소가 나왔다. 그녀 앞에 거울을 대주었다.
“보세요. 웃을 때 입술의 형태, 하트모양을 닮았지 않습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 입술을 만궁구라고 합니다.”
“그게 뭐죠?”
“사자구, 앵도구, 용구와 함께 귀격으로 꼽는 입술의 하나입니다. 화살을 쏠 때 팽팽하게 당긴 활 모양새를 닮았다 해서 만궁구로 부르는데... 이런 입술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초반보다 중반 이후에 대운을 맞이하니 그때는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오게 됩니다.”
“대운이라고요.”
“그대로 계세요. 그 대운의 시기를 찾아보겠습니다.”
경도의 눈에 다시 불이 켜졌다. 이번에는 여자의 유년운기부위였다. 여자의 현재 나이는 서른 둘. 연예인으로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그 시기의 운을 보는 부위는 왼쪽 눈썹이 시작되는 지점의 자기(紫氣)였다.
유년운기부위는 남녀가 반전이다. 여자의 운은 남자의 그것과 좌우를 바꿔서 읽어야했다. 자칫 오른쪽을 중심으로 삼으면 엉뚱한 상괘를 낼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눈썹의 전후를 살펴 운이 트이는 때를 찾았다. 자기는 인당과 가까우니 그 또한 주의를 요했다.
서른 즈음을 주목하는 건 역시 상괘 때문이었다. 눈과 코가 뛰어나거나 하트모양의 입술을 가진 사람은 서른이 넘어야 성공하는 운명이기 때문이었다.
막연히 서른 너머?
어찌 보면 추상적이다. 이유빈은 자살까지 생각하는 상황이다. 오십이나 육십에 뜨는 건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와후.’
눈을 중심으로 얼굴의 중간 부위를 탐색하던 경도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반대편 눈썹 끝에서 반짝이는 희망을 보았으니 서른 셋을 뜻하는 번하였다. 마침내 여자의 인기가도가 열리는 때를 찾아낸 것이다. 다행히 그리 먼 시점도 아니었다.
“서른 셋. 당신의 성공은 가까이 와 있네요.”
“서른 셋이면 내년?”
“네.”
“그럴 리가요? 지금 이 모양 이 꼴인데...”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 이마에 잡다한 사기가 몰려있지만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닙니다. 대운이 가까우니 먹구름 사이의 일월에 미색이 얼비칩니다. 이 고난 속에도 당신을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누가요? 할리우드에서 들어온 개 같은 친일파 배역 걷어찬 죄로 소속사에 위약금까지 물어주고 짤리다시피 결별한 마당에.”
“잘 생각해보세요. 그래도 당신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있을 겁니다.”
“독립했다고 자기랑 일하자는 내 로드매니저요? 걔는 이제 고작 스물 일곱이예요. 걔가 무슨 능력이 있겠어요?”
“혹시 그 사람 사진 있나요?”
“사진?”
여자가 돌아보자 어머니가 망가진 액자를 챙겨들고 왔다. 아까 이유빈이 집어던졌던 그 액자였다.
“가운데 남자예요. 능력도 없는 주제에 계약하자는 전화를 해대길래...”
사진을 본 경도의 표정이 밝아졌다.
“계약 하세요. 이 남자가 당신의 귀인입니다.”
“예?”
“당신을 짜른 사람, 혹시 분명 뼈대가 굵고 네모난 이미지 아닙니까?”
“어머, 맞아요.”
“보기에는 부드럽고 자상해 보이지만 아니다 싶으면 칼처럼 냉정하게 사람을 쳐내죠?”
“어머어머.”
“그럼 사람을 토형이라 하는데 관상학상 토극수라고 당신과 케미를 형성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금형입니다. 금생수라는 말에서 보듯 두 사람은 케미가 잘 맞을 겁니다. 더구나 이 사람은 당신과 반대로 젊어서 대성할 관상입니다. 당장은 이 사람의 능력에 의심이 갈지 모르지만 이 사람이 자리를 잡고 나면 당신이 들어갈 자리는 없습니다.”
“정말요?”
“이 사진 언제 거죠?”
“일 년 조금 못 됐을 거예요. 이 직후에 독립 준비한다고 그만뒀으니까.”
“이 직전에 부모의 사전 상속이나 증여를 받았을 겁니다. 이마가 훤하고 눈썹 융기 부분의 복당에 윤기가 흐르거든요. 이 사람, 분명 그 부모가 재력가입니다. 나중에 따로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재력가요? 우리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이마를 보세요. 이렇게 훤한 이마라면 초년운이 대박입니다. 좋은 집안이라는 뜻이죠. 어깨가 고르니 사람을 적재적소에 쓸 줄 알고 게다가 이 코... 쓸개주머니를 거꾸로 매단 듯 하니 당신 코보다도 귀격입니다. 돈을 쓸어담을 상이니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선생님 말을 정리하면 이렇군요. 저는 서른이 넘어야만 뜰 팔자다. 그걸 견인해줄 사람이 전 로드 매니저다?”
여자가 말했다. 경도의 호칭은 어느새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경도의 긴장은 이제 심각에서 경계를 지나 보통으로 내려와 있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경도가 추가사항에 대한 운을 떼었다.
“더 있다고요?”
“당신 같은 수형 상은 살이 빠지면 재물과 건강에 수난이 옵니다. 이제부터 펼쳐질 톱스타의 운을 맞이하려면 전처럼 적당히 살찐 게 좋습니다.”
“로드 매니저도 그 말 하더니... 저는 볼살이 통통할 때가 가장 매력적이라나요.”
“제 상괘는 끝났습니다. 주제 넘은 말이지만 인생은 birth의 B와 death D 사이의 choice C라는 말이 있더군요. 좋은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화아.”
여자가 혀를 내둘렀다. 세세하고 미세한 곳까지 짚어준 경도의 상괘였다. 목숨을 버리려는 여자였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상괘와 함께 여자의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다행히 경도의 관상에 동화되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눈동자에 맺혔던 붉은 기운이 거의 가신 상태였다. 8급 달기 무섭게 찾아온 위기.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낸 것이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긴급지원금은 며칠 내에 입금이 될 겁니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읍 센터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경도가 일어섰다.
“복채는요?”
“필요 없습니다. 당신의 목숨을 받은 걸로 하면 되니까요.”
“네?”
“죽지 말고 사세요. 톱스타가 코앞인데 이렇게 져버리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좋아요. 몇 달은 속아보죠. 만약 관상대로 되면 복채는 그때 거하게 챙겨드릴 게요.”
“그렇다면 그건 고맙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긴급자금은 필요 없어요. 엄마가 모르는 보석이 있어요. 살아가는 게 귀찮아서 말하지 않았는데 그거 팔면 당분간은 큰 걱정 없습니다.”
“그것도 이유빈 씨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이유빈의 집을 나왔다. 아주머니가 따라 나와 몇 번이고 고마움을 전했다. 돌아가는 걸음은 날 듯이 가벼웠다. 이유빈의 눈동자에서 적기가 가셨기 때문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자살의 우려는 당분간 없었다.
‘유훗.’
신명이 절로 났다. 관상으로 사람 목숨도 구할 수 있다니. 긴급지원 레벨로 치자면 SSS급 지원이었다.
8급의 첫 업무치고는 대박. 그냥 대박도 아니고 초대박이었다.
< 이번 첫단추는 제대로 꿸 겁니다-4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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