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이번 첫단추는 제대로 꿸 겁니다-3 > (42/245)

< 이번 첫단추는 제대로 꿸 겁니다-3 >

아까 아주머니가 제시한 이름은 본명인 모양이었다. 

연예인 이유빈.

빅 스타는 아니지만 알만 한 사람은 아는 연기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이글녀 스타로 주가를 높이던 그녀가 폐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좀 도와주세요.”

아주머니가 경도를 돌아보았다. 딸을 부축해 침대로 옮겼다. 딸은 곧 정신이 돌아왔다.

“뭐야? 저 남자?”

여자가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니야, 넌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말라고? 뭔데 우리 집에 들어왔냐고?”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야, 너 뭐야? 너 뭐냐고?”

여자가 경도 팔을 잡고 흔들었다. 여자 얼굴이 고스란히 경도 눈에 들어왔다.

“소연아...”

옆의 아주머니는 안절부절이다.

“엄마는 빠져. 야, 너 뭔데 말을 못해?”

악을 쓰는 여자의 얼굴이 저절로 읽혀진다.

건조하다. 이마와 턱에 윤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지위와 전재산을 날렸을 때의 특징이었다.

이마가 먼저 스캔된다. 연예인으로 성공하려면 공직자처럼 이마가 잘 나야한다. 그러나 이 여자는 이마가 좁은 데다 네모형이었다. 빅 스타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관상은 그 하나로 운명을 충족하지 않는다. 여자는 다행히 눈과 코, 입이 뛰어났으니 반전이었다.

‘명봉안...’

짜증빨에 섞여있지만 경도의 관상을 피하지 못한다. 눈의 앞머리와 눈꼬리가 뾰족하면서도 길다. 제법 길한 눈이다. 그러나 젊을 때 꽃피지 못한다. 명봉안이 피는 시기는 30세 이후였다. 코끼리 눈을 뜻하는 상안도 이 눈과 비슷한 운세를 가진다. 

코 역시 폐인풍임에도 불구하고 풍륭한 데다 콧대에 힘까지 실려 있다. 눈의 운세를 받쳐주는 힘이 엿보였다.

백미는 입에 있었다. 그러나 확인이 필요했다. 관상은 미세하고 미묘한 것이니 때로는 희노애락의 표정을 다 살펴야할 때도 있었다.

“나 말입니까?”

경도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래, 당신.”

여자의 눈에서 불이 쏟아진다.

“읍 행정복지센터 긴급복지담당공무원입니다만.”

“공무원? 엄마, 진짜 긴급지원인가 뭔가 신청하러 간 거야?”

여자가 자기 어머니를 잡아먹을 듯 악을 쓴다.

“그럼 어쩌냐? 당장 먹고 살 돈이 없는데...”

아주머니는 어쩔 줄을 모른다.

“아, 씨.”

여자가 벽에다 베개를 집어던졌다. 베개가 떨어진 자리에 박살난 액자가 보인다. 그녀와 지인들 사진 같았다. 이 순간과 달리 행복해 보였다.

“나가요, 당장 나가라고요.”

여자가 발악을 했다.

나름 스타 반열에서 놀았던 인기 연예인. 폐인이 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으니 자존심 상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경도는 그냥 나갈 수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서린 붉은 기운 때문이었다. 단순한 충혈이 아니었다. 죽음을 예고하는 상이었다.

경도가 이대로 가버리면,

여자의 선택은 하나였다.

수치심에 머잖은 날 다시 자살 시도.

<복지공무원, 수급자 입장 고려않은 무리한 방문으로 수치심 느껴 자살>

억!

뒷골부터 땡겨온다. 9급의 악몽이 징크스가 될 판이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살이 문제였습니다.”

그녀 앞에 태산처럼 선 경도가 선문답 같은 말을 토해냈다.

“뭐라는 거야?”

“체중 말입니다. 왜 뺐습니까? 당신은 살이 아니라 복을 뺀 겁니다.”

“뭐라고요?”

“잘 생각해보세요. 당신의 몰락, 살 빼 직후부터 시작되었죠? 정확히 말하면 작년 가을부터군요.”

“......?”

“내가 관상을 좀 보거든요.”

경도가 말했다. 

여자 뇌리에 작년 가을이 스쳐갔다. 몰락의 시작이었다. 야심차게 8kg을 감량하고 나섰던 먹방 합류였다.

먹는 모습이 왠지 재수없지 않냐?

뜻밖의 댓글들이 올라오면서 중도 하차하게 되었다. 그걸 시작으로 불행의 도미노가 폭발했다. 순식간이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지금 경도에게 들으니 영감 같은 게 스쳐간 것이다.

“관상?”

그녀 독기가 잠시 흔들리는 게 보였다.

“미안하지만 한 번만 웃어보시겠습니까?”

경도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나보고 웃으라고요?”

여자는 어이상실이다. 핏대가 오를 대로 오른 사람을 농락하는 거야 뭐야? 그녀는 폭발직전이었다.

“당신, 작년 겨울에 파산했죠?”

경도가 상괘를 하나 더 보태놓았다.

“엄마가 말했어?”

여자의 분노가 자기 어머니를 향해 폭발한다. 그녀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당신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당신이 이유빈이라는 사실도.”

경도가 상황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는 건 당신 이마와 턱 때문입니다. 황사라도 내려앉은 듯 칙칙하잖아요? 파산한 관상의 특징입니다.”

“......”

“찰색이라는 게 있거든요. 이해하기 쉽게 혈색이라고 할까요? 관상은 황-적-청-백-흑색의 다섯 찰색으로 인간의 운명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

경도의 엄숙함이 여자를 당혹으로 몰고 갔다. 덕분에 여자의 내적 갈등은 극한까지 치달았다.

“좋습니다. 지금 웃을 기분 아닐 테니 그냥 묻죠. 혹시 웃을 때 입이 하트 모양 같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까?”

“있어요. 쟤 친구들이 노상 하는 말이에요.”

대답은 어머니 입에서 나왔다. 바로 대답하는 걸 보니 꾸며내는 것도 아니었다.

“좋아요. 그럼 희망은 두 배입니다.”

“희망이 두 배라고요? 무슨 희망?”

여자가 경도를 쏘아보았다.

“더 자세히 말해드려요?”

“......”

“듣고 싶으면 용모단정하게 하고 나오세요. 관상도 점괘인데 점괘는 아무렇게나 받으면 안 됩니다. 천기누설을 받으려면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죠.”

경도가 묵직하게 돌아섰다. 여자를 위한 주문이었다. 자포자기의 극에 도달한 여자였다. 옷을 갈아입든 머리를 빗든, 약간의 공이라도 들인다면 그녀에게 삶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었다.

작은 거실로 나와 의자에 앉았다. 초조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운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 운명이 정확에 수렴하면 할수록.

10분쯤 후, 아주머니가 먼저 나왔다. 그 팔이 여자를 잡아끈다. 경도 입가에 엷은 미소가 스쳐갔다. 

이 여자, 평상복이지만 옷을 갈아입었다. 벼락을 맞은 듯 멋대로 뻗치던 머리도 손으로 대충 눌러놓았다. 이제야 이유빈의 이미지가 조금 엿보였다. 동시에 그녀의 삶에 대한 의지도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녀가 경도 앞에 앉는다.

“결론부터 말해줄까요? 아니면 과정부터 시작할까요?”

경도의 시선이 여자를 겨누었다. 같이 쏘아보던 여자가 시선을 피했다. 기선제압은 성공이었다. 경도가 던진 상괘의 위력이었다.

“기왕이면 다 말해주세요.”

“나는 왜 못 뜨는가?”

“예.”

“정확하게는 뜨려다말고 뜨려다 말고였죠.”

“......”

“비슷하게 연예계 데뷔한 사람들 있죠? 그 중에서 스타가 된 사람들이 몇이죠?”

“...세 명?”

“그 사람들 사진 있어요?”

“예.”

“가져와보세요.”

경도가 말하자 아주머니가 알아서 움직였다. 딸을 구하려는 모정이 그녀에게 없을 리 없었다. 아주머니가 화보집을 가져왔다.

“얼굴 중심의 사진으로 찾아보세요.”

경도가 옵션을 걸었다. 여자가 화보집을 넘겨 톱스타들 사진 세 장을 꺼내놓았다.

<한가윤> <서나은> <쥬디>

세 여자의 사진이 펼쳐지자 방 안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방송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는 연예인들이었다. 경도가 느낀 서광은 그녀들의 인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들 이마가 LED처럼 자체발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 사진 있으면 꺼내놓고 이마 비교해 보세요.”

“이마요?”

하고 많은 매력포인트를 두고 이마는 왜? 연예인 인기는 이마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섹시심볼, 청순미, 보호본능, 글래머, 키스를 부르는 입술, 살인미소, 섹시 허벅지... 여자의 머리 속에 인기의 바로미터들이 맴돌 때 경도의 설명이 나왔다.

“당신, 늘 궁금했을 거 아닙니까? 저 인간, 나보다 못한 거 같은데 떴네. 대체 어떻게 인기가 있는 거야?”

그 말이 여자의 거부감을 눌렀다.

“뭘 보라는 거죠?”

“그 세 스타들... 당신보다 이마가 커요. 게다가 둥근 모양에 높고 넓은 형태죠. 거기 비하면 당신 이마는 좁은 데다 네모난 각까지 지고 있죠.”

“......”

“당신의 가치관은 다르겠지만 연예인 인기의 바로미터는 이마입니다. 연예인으로 대성하려면 둥글고 높고 넓은 이마가 최적입니다. 둥글 이마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고, 높은 이마로 최고 인기점에 도달하며, 넓은 이마는 넓은 대지처럼 더 많은 수확물, 즉 수입을 가능하게 하니까요.”

“......”

“그 이마도 3등분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맨 윗부분이 뛰어나면 프로그램 진행자, 아나운서 등으로 인기를 끌고 가운데는 PD나 영화감독, 방송인, 마지막으로 하부가 뛰어나면 가수나 연기자, 모델 등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릴 수 있습니다.”

경도 말과 함께 여자가 사진을 체크했다.

한가윤, 서나은, 쥬디...

하나하나 체크하던 여자의 눈동자 속 깊고 깊은 안핵에 균열이 느껴졌다. 셋 다 이마가 수려했다. 특히 데뷔 이듬해부터 상종가를 휘날리는 한가윤은 이마의 중단과 하단이 눈부실 정도였다.

“......”

가슴이 덜컥 막혀왔다. 몇 해 동안 같이 방송과 드라마 등에 같이 출연하면서도 몰랐던 일이었다. 연예인들은 상대적으로 이마보다 눈, 코, 입술, 피부, 주름, 볼륨 등에 더 목을 매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몇 가지 더하면 애교, 살인미소 등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스폰서처럼 부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어쨌든 그녀들에 비해 그녀 자신의 이마는...

속절없는 3패.

이마 따위로 좌절하고 싶지 않지만 완패였다.

“그럼 내가 빅스타로 뜨지 못한 게 이것 때문에?”

자기 사진을 집어든 여자가 경도를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당신은 그 이마의 핸디캡 때문에 빅 스타로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몇 달 전까지는.”

경도가 짓눌린 여자의 숨통을 슬쩍 터주었다.

“몇 달 전? 무슨 뜻이죠?”

암시를 알아들은 여자가 전격 반응했다.

“알려드려요?”

경도가 은근슬쩍 여자를 자극했다.

“네.”

“그 천기를 알려면 현실도피로 가득 찬 생각부터 버려야합니다.”

“현실도피?”

“아닌가요?”

“......”

대답하지 못한다. 지금 그녀의 심정을 딱 꿰뚫은 것이다.

“그것도 관상으로 알 수 있나요?”

“아까 말했잖아요? 사람의 얼굴에는 눈 눈썹 코 입 귀의 오관만 있는 게 아니라 다섯 가지 찰색이 있습니다. 그 색은 사람의 운명상황에 따라 얼굴의 각 부위에 드러나죠. 현실도피는 양 눈썹 사이에 위치한 인당에 푸르스름한 기세로 엿보입니다. 그게 이마의 양 쪽 모서리 변지까지 치고 올라갔으니 현실도피로도 모자라 목숨의 도피까지 꿈꾸고 있는 거죠. 당신은 숨겨도, 당신의 찰색은 숨겨지지 않습니다.”

“......!"

여자의 눈동자가 격하게 출렁거렸다. 반박불가였다. 상괘가 거듭될 때마다 여자는 경도의 위엄에 빨려들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일단은 어머니께 사과부터 하세요. 힘든 건 이해하지만 자살이라뇨? 어머니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흑.”

경도의 말에 아주머니가 눈물을 훔친다.

“미안...해.”

여자의 사과가 나왔다. 간절하지는 않지만 사과 자체가 중요했으니 그 정도로 넘어갔다.

“따님이 뭐 좋아하죠? 차나 커피 같은 거?”

경도가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녹차 좋아해요. 이제는 잘 안 마셔서 그렇지.”

창가에서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답했다.

“있나요?”

“네, 먹던 게 좀 남았어요.”

“한 잔 타오세요.”

경도가 말하자 아주머니가 주방으로 걸었다. 여자가 돌아보지만 말리지 못했다. 어느새 관상에 대한 호기심이 그녀의 의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 이번 첫단추는 제대로 꿸 겁니다-3 > 끝

ⓒ 초빛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