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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첫단추는 제대로 꿸 겁니다-2 > (41/245)

< 이번 첫단추는 제대로 꿸 겁니다-2 >

“자네가 그 오경도 맞지?”

화단 앞에서 육과장이 물었다. 발령장 수여가 끝나자 경도를 불러낸 과장이었다.

“예?”

“민원 많이 일으킨?”

“......”

“미안, 소문하고는 너무 달라서 말이야. 같이 근무하게 되었으니 확인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묻는 거라네.”

“제가 그 오경도 맞습니다.”

부인하지 않았다. 부인할 수도 없는 과거였다.

“관상?”

육 과장이 거두절미하고 핵심을 들이밀었다.

“예?”

“이 국장님 있잖는가? 잠깐 뵙던 날 그러시더군. 용포읍으로 좀 가줘야겠다고.”

“......”

“당신이 여기 있는 동안 너무 못난 모습만 보이셨다는 거야. 자네는 모르지만 나는 이해하지. 어이없게 날개가 꺾여버린 분이셨으니...”

“......”

“여기 가면 쓸만한 9급이 하나 있는데 잘 좀 갈궈보라시더군. 당신이 나에게 그랬듯이.”

“국장님이요?”

“그 9급이 자네더라고. 나도 풍문은 듣고 있었거든.”

“......”

“그래서 내가 그랬네. 향 싼 종이에서 향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서 비린내 나는 법이니 국장님 휘하였으니 믿을만하지 않겠냐고. 단박에 부정을 하시더군. 자네에게는 면목이 없다고.”

“......”

“우리 국장님, 시장님과 독대하면서 두 가지 요청을 하셨네. 뭔지 알겠나?”

“......?”

“기왕 명예회복을 시켜주시려거든 저 때문에 피 본 두 사람을 구제해주십시오. 그게 바로 자네와 나였네.”

“......”

“그 말 듣고 나는 좀 먹먹했네. 솔직히 국장님 원망도 좀 했었거든. 그 분 라인으로 찍히는 바람에 사무관 승진 때 여러 번 물 먹었으니까.”

“......”

“그 분이 그런 분이지. 자기 목이 달아나도 자기 부하는 챙겨주시는 분...”

그렇죠. 관상에도 나옵니다. 자기가 찜한 부하는 제대로 지키십니다.

경도가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내게 과제 하나를 주셨네.”

“......”

“용포읍 말이야, 이미지 개선하지 못하면 당신이 있는 동안 시청으로 돌아올 생각은 말라고.”

“......”

“내가 황당해 하니 자네 말을 하더군. 거기 일당 백의 9급이 있다고. 아니, 이제는 8급이지.”

“과장님...”

“관상을 기막히게 본다고 하더군. 내가 웃었더니 당신도 처음에는 웃었다고 그러셔. 하지만 국장자리까지 꿰어 차게 한 관상이니 자네가 말하거든 허투루 듣지는 말라고.”

“......”

“솔직히 관상은 잘 모르겠고... 어떤가? 그동안 마음 고생 심했다고 하던데 보직 옮겨줄까?”

육 과장이 물었다.

육 과장은 행정총괄과장이니 휘하 팀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무리하자면 경도에게 과 주무를 맡길 수도 있었고 부서 내의 편안한 보직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업무분장 보니까 사회복지 일을 하고 있더군. 용포읍은 작지만 그래도 예산이나 총무 쪽 업무가 행정실무능력 배양에 좋아.”

“과장님.”

“말해보게.”

“아시다시피 제가 많이 찌질한 이미지였습니다. 그래서 업무도 늘 찌질한 것들만 맡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읍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맡았을 리 없습니다.”

“......”

“여기서도 바닥을 기는 실적이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들어서야 겨우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업무 변동은 없었으면 합니다.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해 본 다음에 다른 업무를 맡고 싶습니다.”

“그래?”

“부탁드립니다.”

“알았네. 나는 자네가 어차피 행정으로 돌아올 사람이기에 물어본 것 뿐이네.”

“고맙습니다.”

“잘해보세.”

육 과장이 악수를 청해왔다. 지척에 서니 관상이 보였다. 육 과장의 이마도 빛이 들었다. 인당까지 제법 시원하다. 귀인의 후원이 있었다는 뜻이니 이창교 국장이 귀인이었다. 

족보상으로는 장남이 아니다. 그러나 집안에서 장남의 역할을 하는 상이다. 이마가 좁지만 관록궁에 살집이 많은 게 증거였다. 코밑 인중에도 수염이 풍성하게 돋아나니 매사에 만족할 줄 안다. 한 마디로 겸허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좋은 것은 아니다. 불운도 있었다. 아내 쪽이었다. 과장은 눈가 어미에 상흔이 진했다. 필연적으로 이혼이나 재혼의 상이다. 그러나 바른 인성 덕분에 간문이 맑으니 이혼은 면했다. 대신 아내가 병약하니 그게 근심이었다.

아직은 내색하지 않았다. 인간관계에 있어 과속은 경계할 일이었다. 빨리 데워진 물은 빨리 식기 마련이었다.

팀장들이 과장에게 불려갔다. 그들의 보직 변동은 없었다. 업무과중을 호소한 다른 팀의 직원들 두엇이 자리를 맞바꾸는 것으로 과 정리를 끝내는 육 과장이었다.

엄 팀장의 입맛은 썼다. 내심 행정총괄팀장을 원한 모양이었다. 그걸 본 은빛이 키득 웃음을 삼켰다.

“왜 웃어?”

엄 팀장이 바로 짜증탄을 쏘았다.

“아뇨. 아무 것도...”

은빛은 태연하게 시치미를 뗀다. 엄 팀장의 경륜(?)도 은빛의 새침 앞에는 약빨을 받지 못했다.

조용히 미소를 삼키고 로그인을 했다. 8급의 첫 테마를 고르는 것이다. 수급자들 명단을 넘기다 커서를 멈췄다.

<안명혜 5세>

의료수급자였다. 그 앞에는 다른 수식이 붙었다. 기초수급, 주거, 장애, 의료... 이제 곧 교육수급까지 예정된 이 아이였다. 커서를 아이의 아빠에게 옮겼다.

<안계홍 43세>

역시 화려한 대상자 스펙이 나온다. 기초수급, 주거, 의료...

안계홍은 간암수술 후 요양 중이고, 안명혜는 그런 아빠의 돌봄을 받고 있다. 이 아이의 병명은 무려 선천성 요관협착 및 수신증이었다.

선천성이니 날 때부터 그랬다. 태아 때 요관이 막힌 것이다. 가난한 부부는 전세보증금을 빼서 아이를 고치려했다. 아이 목숨은 건졌지만 옆구리로 소변을 빼야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이 병원 저 병원 옮기는 동안 아내는 가출을 했다. 그 와중에 아빠는 간암진단에 이어 수술을 받았다. 이 수술은 경도가 권한 것이었다. 어느 날 기탁품을 전하기 위해 갔다가 완전히 탈진한 아빠를 발견했던 것. 당시의 수술비 220만원은 긴급의료지원비를 연결해 해결했다.

안지은의 작은 집은 작은 병원이다. 아이는 24시간 수액과 기저귀를 달고 산다. 수신증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오염을 우려해 3일에 한 번씩 주삿바늘을 교체한다. 특수바늘이라 개당 4000원을 호가한다.

방문간호와 돌봄혜택 등을 붙여주었지만 근본 해결이 아니었다. 경도가 하는 일은 독지가들의 후원금으로 특수바늘을 사다주거나 기탁품을 건네주는 것 밖에 없었다. 아이의 방은 날마다 소변 냄새로 찌들어갔다.

안계홍은 트럭행상을 한다. 온갖 잡동사니를 싣고 작은 리(里)를 찾아가는 것이다. 아이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하니 수입은 100만원을 오갈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나순애 같은 악질 수급자들이 토할 돈을 명혜에게 주고 싶었다. 다른 나라의 어린이를 초청해 완치 시켜 보내는 미담기사를 볼 때마다 벤치마킹도 하고 싶었다. 마음 뿐이었다.

-저런 거 다 뒤에 누가 있는 거지 내가 전화하면 무료로 수술하고 비행기값 대주겠어?

-병원들 홍보용이야. 짜고 치는 고스톱.

비겁한 마음이 기대는 핑계들이었다.

선배들도 한몫을 했다.

-될까요?

-꿈 깨라.

한 마디의 대화로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명혜의 사진을 불러냈다. 독지가들에게 후원을 부탁하기 위해 찍은 것이었다. 후원부탁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첫 독지가가 난색을 표하자 지레 포기하고 만 것이다.

오경도.

스스로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는 다르잖아?

알탕도 제대로 먹었지 않아?

극혐 진상 민원 노순애도 해치웠고, 문화누리카드 실적도 대박을 쳤어. 게다가 이 국장님 일은?

그간의 성과를 줄 세우니 자신감 배터리가 조금씩 채워졌다.

경도 마음 속에 오랜 빚으로 남아있던 안명혜를 8급 첫 목표로 정했다.

그걸 궁리할 때였다. 중년의 아주머니 한 분이 센터로 들어섰다.

“어떻게 오셨어요?”

기간제로 일하는 민원도우미가 아주머니를 맞았다.

“오 주임님, 긴급지원 상담하시러 오셨대요.”

도우미가 경도에게 사인을 보냈다.

“상담실로 모셔주세요.”

경도가 일어나 상담실로 향했다.

“아휴.”

아주머니는 눈물부터 흘렸다.

“천천히 말씀하세요.”

이런 경우는 너무 많이 보았다. 더러는 팔자기 기구해 울고 또 더러는 긴급지원금을 타기 위해 꾀를 부리기도 했다.

“우리 딸이 여기 간 거 알면 그냥 안 있을 텐데...”

“따님이 반대하세요?”

“예, 죽어도 그냥 죽는다고...”

“어려울 때 정부의 도움을 받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자고 평소에 세금 많이 내셨잖아요?”

“우리 딸이 세금을 좀 내기는 했었죠. 연예인이거든요.”

‘연예인?’

“그런데 이런 저런 일로 꼬이면서 여기로 밀려왔고... 결국에는 자살 시도까지 했어요.”

“저런, 그럼 지금 병원에 있나요?”

“목을 맸는데 줄이 풀려서 죽지는 않았어요.”

“......”

“우리 딸이 알면 날 잡아먹으려고 할 건데...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몇 달째 저렇게 폐인처럼 있으니 방세에 돈도 다 떨어지고...”

“잠깐만요, 우리 시로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으셨네요?”

아주머니의 신분을 조회한 경도가 말했다.

“강남에서 전세를 살았어요. 그런데 딸 아이가 소속사에 위약금인지 뭔지 물게 되어서 다 빼주고 왔는데 그 후로 딱히 수입도 없고...”

“따님은요? 방송출연 같은 건 전혀 안 하시나요?”

“위약금 이후로 방송출연이 없어요. 이제 자기 인생은 끝났다고 밥도 안 먹고 누워만 사네요.”

“어머니 소득은 없으시고요?”

“그동안 딸 아이 뒷바라지하느라... 이제라도 일을 좀 알아는 보는데 나이도 많고 게다가 여기가 낯설다 보니...”

“두 달치 밀린 월세에 따님은 수입원이 끊겼고... 예금액도 없으시다니 다른 문제가 없다면 긴급지원대상자이기는 하세요. 긴급복지지원법 제2조의 위기 사유, 그 밖의 복지부장관이 정하는 사유 4번 조항에 해당하거든요.”

월세계약서를 확인하며 말했다.

“그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가요?”

“하지만 이 신청을 받으려면 현장확인을 해야만 해요.”

“우리집요?”

“예.”

“딸이 싫어할 텐데...”

“다른 핑계를 좀 대세요. 저는 잠깐 둘러만 보고 나오겠습니다.”

“그렇게 좀 부탁해요. 딸 신경이 하도 날카로워져서 저도 겁이 나요.”

“알겠습니다.”

프로그램에서 로그아웃하고 아주머니를 따라나섰다.

집은 읍 외곽의 낡은 단층 주택이었다. 녹슨 대문에서는 붉게 산화된 철가루가 휘날렸다. 한 뼘이나 되는 마당에 들어섰다. 강남에서 온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집이었다. 그나마 소품가구들이 아주머니의 말을 입증해주었다. 낡은 집과 달리 세련된 것들이 눈에 띄었다.

“쉬잇.”

아주머니의 주의를 받으며 작은 거실에 들어섰다. 분위기를 살피던 경도 눈이 한 액자에 머물렀다.

‘이유빈?’

아주머니와 나란한 여자는 나름 유명한 연예인이었다. 훤칠한 키에 통통한 살집으로 인기몰이를 하던 여자. 그 여자의 사진이 틀림없었다.

설마? 이유빈?

설마에 대한 의혹은 장식장 위에도 있었다. 방송국에서 탄 상패들이었다.

그때였다. 방 안 쪽에서 고함과 함께 물건 내동댕이치는 소리가 들렸다.

“글쎄 안 한다고 했잖아?”

악 쓰는 소리 후에 짜증에 받친 한 여자가 걸어나왔다.

‘헙.’

경도가 굳어버렸다. 길거리에서 만났다면 노숙자거나 정신이상자처럼 보이는 폐인모드의 이 여자는 연예인 이유빈이 틀림없었다.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다 아물지도 않은 목의 상흔을 드러낸 채 기절해버린 것이다.

긴급 돌발.

“소연아.”

아주머니가 딸을 향해 뛰었다.

< 이번 첫단추는 제대로 꿸 겁니다-2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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