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승진운이 트이기 시작했어요-3 > (37/245)

< 승진운이 트이기 시작했어요-3 >

“어머어머, 웬일이래?”

“대체 왜요?”

“가짜 뉴스 아니에요? 오 국장님이면 시장님 최측근 중의 하나인데?”

“설마 여직원 성추행 미투?”

행정팀장 곁으로 모여든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그게 아니고...”

행여 민원인이라도 있을까, 주변을 돌아본 행정팀장이 비밀의 봉인을 열었다.

“집에서 골드 바가 나왔답니다. 그것도 1억짜리로 세 개나.”

손가락 세 개에 힘이 들어간다.

“어어억.”

직원들이 몸서리를 쳤다.

골드 바.

공무원도 살 수 있다. 공무원도 3억 이상의 재력가가 많다. 더러는 금수저 출신도 있고 조부나 부친에게 재산을 상속 받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골드 바가 주는 뉘앙스는 공무원이라는 신분과 어울리지 않았다.

“뇌물로 받았다는 겁니까?”

노 실장의 촉이 먼저 돌아갔다.

“도경 수사팀이 국장실하고 집을 싹 뒤져갔다니 그렇지 않겠어? 아, 이거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인사팀장 비리가 정리되기도 전에 오 국장님이라니?”

“곽 팀장님은 그 분 모신 적 있잖아요?”

“옛날 말이죠. 그분이 과장된 후로 승승장구하면서 코빼기 보기도 어려웠다고요.”

“그래도 성향은 알 거 아니에요?”

“아, 모릅니다. 시청도 지금 난리에요.”

행정팀장은 직원들을 헤치고 2층으로 향했다. 과장과 팀장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뭐야? 우리 센터에 붙었던 복마전 귀신이 시청으로 몰려갔나?”

현 주임이 중얼거렸다.

“그럼 오 국장님 짤리는 거예요?”

은빛도 관심이 없을 수 없다.

“그거야 모르지. 하지만 시청 집무실까지 전격 압색했다니 불길한데?”

“아우, 이번 인사에 국장님이 나 옮겨준다고 그러셨는데...”

“그새 운동했어?”

“그럼 여기서 썩어요? 말귀도 못 알아듣는 어르신들 입냄새 맡아가면서요?”

은빛은 짜증을 내며 화장실로 향했다.

경도가 돌아보니 다들 일손을 놓았다. 일부는 시청의 지인들에게 팩트 체크를 하느라 바쁘다. 이게 공조직이다.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떤 채널을 동원해서든지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리고, 그걸 잘 알아내는 사람이 능력자 대우를 받았다.

‘계 경위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그냥 두었다. 마침 수급자 상담을 하러 온 민원인이 있었고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해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민원인은 계속 이어졌다. 코로나의 여파는 무서웠다. K시에서도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경기가 침체되자 자금력이 약한 공장들에게 후폭풍이 몰아닥친 것이다.

흥미로운 긴급구조지원 신청자도 있었다. 상담을 하다 보니 직업이 웹소설가였다. 40대 초반이었는데 연소득이 800만원도 되지 않았다. 아내와 이혼하고 월 20만 원짜리 월셋방에 산다. 2금융권 대출이 있어 월 30여 만원씩 상환도 해야 한다. 부족한 돈은 점심시간 대의 김밥배달로 때우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든 안 오려고 했는데...”

소설가가 자기 소설 화면을 보여주었다. 유료소설 조회수는 회당 50 클릭 미만이었다. 벌써 5년 째 이 모양이라고 했다.

“직업 바꿔야겠어요. 글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나하고는 안 맞는 모양입니다.”

소설가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수급자는 될 수 없었다. 나이가 젊었고 김밥배달 때문에 소득이 올라갔다. 애로가 냉장고 고장이라기에 중고냉장고를 지원하기로 하고 현장 확인을 나갔다. 한숨이 나왔다. 이 소설가의 주거환경은 거의 쓰레기통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관상을 보았다. 눈과 눈썹 사이의 전택궁에 검은 점이 박혔다. 자녀궁도 부부궁도 좋지 않다. 그나마 코가 바르고 돌출된 관골의 기세가 귀까지 이어지니 다행이었다.

이런 사람은 외길을 가야한다. 그러나 단란한 가정과는 인연이 멀다. 코와 관골의 기세로 보아 중년이 되어야 성공을 한다. 바로 지금이다. 유년운기부위를 체크 했다. 마흔 둘의 운세는 왼쪽 눈의 정사였다. 시들거린다. 그러나 그 반대쪽, 즉 마흔 셋의 광전은 달랐다. 이쪽이 해가 지는 형세라면 저쪽에 해가 뜨는 것이다.

“선생님.”

“예?”

“원래 고생 많이 하셨죠?”

“어, 읍사무소에서 그런 것도 알 수 있습니까?”

“제가 센터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많이 만나다 보니 관상을 좀 배웠거든요.”

“관상?”

“부모님이 주신 유산을 다 써버리셨네요?”

“......”

“자녀는 따님 한 분인데 효도 받기는 힘드실 거 같아요.”

“......”

“대충 맞나요?”

“......”

“죄송합니다. 기분 나쁘실 수 있지만 선생님의 불운은 이제 끝나가는 것 같아서요.”“내 불운이 끝나간다고요?”

“또 죄송하지만 내년까지만 글을 써보시겠어요? 선생님 문운이 꽃 피는 시기는 내년 같거든요?”

“내년...”

“여기 사인하세요. 돈은 통장으로 보내드릴 거고요, 냉장고 들어오면 사진하고 영수증 찍어서 보내주세요. 확인은 다음에 와서 할 게요.”

그렇게 마무리를 짓고 일어섰다. 길어지면 그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

“엇.”

센터 주차장으로 들어설 때였다. 반가운 사람이 손을 들어보였다. 계치훈 경위였다.

“경위님.”

경도가 반색을 했다.

“뭡니까? 관상 좀 본다고 사람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도 되는 겁니까?”

계 경위가 괜한 으름장을 놓았다.

“연락 온 거 없었는데?”

경도가 카톡을 확인했다.

“보안이잖아요? 중요한 건 온라인으로 하면 안 된다고요.”

“......?”

“시간 되요?”

“예... 잠깐은...”

“그럼 커피 한 잔 쏘세요. 금방 들어올 거라는 사람이 30분이나 걸리고 말이야.”

계 경위가 먼저 커피점으로 걸었다.

“......!”

계 경위의 설명에 경도 촉각이 곤두섰다. 수사는 이틀 전부터 급물살을 탔다. 수사팀은 결국 오 국장의 아킬레스건을 찾아냈다. 자택 서재에 은닉한 골드 바 두 개였다.

“내 돈으로 산 거요.”

그는 버텼지만 출처를 밝히지 못했다.

“그게 쥐약이었죠. 작은 아버지 말로는 골드 바가 나오지 않았다면 성과를 보지 못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계 경위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골드 바는 투신한 정 팀장이 공원부지 입찰업체에게서 받은 뇌물로 밝혀졌습니다. 원래는 4개를 받았는데 하나는 15살 어린 내연녀에게 준 모양이더군요. 내연녀의 현금영수증과 신용카드 사용자료를 뒤져 자백을 받아냈답니다.”

“와우.”

수사 히스토리는 관상만큼이나 흥미가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니 삼정, 사독, 오악, 십이궁 등으로 이어지는 관상과 닮아있었다.

“오 국장님의 범행동기가 궁금하군요.”

듣고 있던 경도가 속내를 밝혔다. 현재까지의 스토리로는 오 국장이, 정 팀장이 뇌물로 먹은 골드 바의 일부를 취한 형태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경도는 잊지 않고 있었다. 이 과장의 관상에 뜬 살괘, 그건 결코 우연일 수 없었다.

“범행동기는...”

아득.

얼음을 문 계 경위 입에서 얼음 깨지는 소리가 났다. 경도의 궁금증을 날려버리는 소리도 같이 나왔다.

“당시 공원기획과 과장이던 이창교 죽이기가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이창교 과장이 타겟>

경도의 시선이 냉혹하게 가라앉았다. 상괘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창교 과장은 잘 몰랐던 같은데 오남일과 이창교 과장은 비슷한 시기에 9급 임용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남일은 8급을 시작으로 7급, 6급까지 거푸 이창교 과장에게 밀리며 승진에서 물을 먹었다고 합니다.”

“아...”

“이창교 과장이 사무관을 달고 알짜부서를 돌 때 오남일은 퇴직한 인사과장에게 뇌물을 써서 감사담당관실에 입성했더군요. 감사팀장 자리를 꿰차고 호시탐탐 이창교의 비리를 수집한 모양입니다. 집요한 사람이더군요.”

“......”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죠. 이창교의 허점은 출퇴근이나 근무시간의 일부 이탈 외에는 흠이 없었답니다. 하지만 오남일은 마침내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되니 이창교가 공원부지 비리의혹이 있는 공원기획과의 과장으로 내정된 후입니다.”

계 경위의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고 그랬던 건지 투신한 정경주 팀장과 오남일 역시 지인 관계였습니다. K시 임용은 정경주가 빨랐지만 용포중 2년 선후배 사이였다네요.”

“......”

“압수수색결과 관련 서류들이 나왔습니다. 오남일은 감사실 발령 이후로 자기와 이해관계가 있는 공무원들의 비리 파일을 따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 건은 그가 데리고 있었던 직원에게 확인했다고 합니다.”

“......”

“오남일은 성동격서의 꾀를 짜냈으니 이창교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그 수하 팀장의 비리를 극단으로 몰고 갔던 겁니다.”

“......”

“수사 결과 오남일은 정경주의 비리를 치밀하게 확보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이미 봐주었던 것들까지 다 들춰냈으니...”

계 경위가 주저하자 경도가 담담하게 빈 말을 메워주었다.

“여자관계죠?”

“아셨습니까?”

“관상이죠. 정경주 팀장은 여난을 겪을 상이었습니다.”

“맞습니다. 투신 이전에도 몇 건이 있었답니다. 어린 내연녀로도 모자라 기간제 여직원에게 무기직을 약속하며 성관계, 기타 음주 후에 성매매를 한 적도 여러 번 있더군요. 오남일은 자기 선에서 무마했던 그 건까지 빌미로 삼아 정경주를 파국으로 몰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성폭행이나 성매매 등은 공직자에게 쥐약 아닙니까?”

‘투신 강압이었나요?’

혀 끝에 걸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듣는 게 최고의 왕도였다.

-다 까야겠다. 나도 어쩔 수 없다.

"골드 바 하나를 내주며 봐달라는 제의를 자르고 폭탄선언을 하자 정경주가 자포자기했다고 하더군요. 투신한 건물은 정경주가 오래 전에 투자목적으로 한 칸을 매입한 곳인데 구식 중앙냉난방이랍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소유주들의 합의를 보지 못해 그냥 살다 보니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아 쉼터로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골드 바 역시 거기에 보관하고 있었고요.”

“......”

“병가는 오남일의 강권이었다고 합니다. 이창교 과장이 본격적으로 추궁하자 일단 떼어놓은 거죠. 그리고 그대로 두면 정경주가 이창교의 설득에 넘어갈 것 같아서 범행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

“뇌물관계는 이미 고백을 받았고 골드 바 위치도 확인했었답니다. 정경주가 추락하자 미리 준비한 워드를 투신 위치에 놓았다고 합니다.”

<모두에게 미안합니다.>

시청에는 유서로 알려진 그 것이었다.

“그런 다음, 투신자의 방으로 돌아가 골드 바를 챙겨 비상계단으로 나왔답니다. 당시 그 건물은 굉장히 낡은 편이라 현관에도 뒷문에도 CCTV가 없었으니 그걸 계산에 넣은 거죠. 거주자가 극소수다 보니 목격자도 없었고 업무상 연관된 라인도 아니었기에 용의 선상에서 빠졌던 겁니다.”

“......”

“이창교가 좌천되고 사건이 잠잠해지자 골드 바 하나를 처분해 새 시장 후보인 김경동의 막역지우에게 선을 댔다고 합니다. 이후 그의 소개로 김경동 시장을 소개 받았고 시정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신뢰를 받았습니다. 이후 김경동이 당선되자 그걸 바탕으로 사무관이 되었고 재선 가도에서도 충성도가 인정되어 국장...”

“그럼 우리 시장님 직도 흔들리는 건가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지인이 김 시장과 식사를 한 적은 있지만 금품제공의 단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식사만으로는 선거법 위반이 되지 않거든요.”

“예.”

“이상입니다. 당시의 건설회사 이사도 뇌물공여로 구속되었고 오남일은 살인죄가 적용될 것 같습니다. 압수된 골드 바 두 개는 국고에 귀속될 거고요.”

“살인이군요.”

“그 자신은 정경주가 스스로 뛰어내린 거라고 주장하지만 여러 정황상 법정 인정은 되지 않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요, 팩트로 말하자면 꽁 먹은 사건이지요. 주임님께서 주신 제보에 따른 것이니...”

“아닙니다. 제게 수사권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뿐 아니라 골프 사건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모양입니다.”

“골프 사건요?”

“도경 청장님 자제분 말입니다. 죄송하지만 작은 아버지께서 오 주임님 말을 녹음했던 모양입니다. 그걸 청장님께 들려줬더니 바로 기절했다고 하더군요.”

“녹음을 했다고요?”

“저도 뭐라 했더니 직업의식이라네요. 진술을 뒤집는 사람들이 하도 널려서...”

“......”

아무튼 이제 오 주임님 부탁은 들어드린 겁니다.”

계 경위가 일어섰다.

경도도 일어섰다.

센터로 돌아와 2층 간부실로 향했다. 이제 이 과장에게 전해줄 차례였다.

‘아.’

문을 연 경도가 걸음을 멈췄다. 창가의 이 과장, 그 이마와 인당에 차라리 햇살이 들어선 듯 아롱지고 있었다. 막혔던 관운이 완전히 뚫린 것이다.

뻥!

< 승진운이 트이기 시작했어요-3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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