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승진운이 트이기 시작했어요-2 > (36/245)

< 승진운이 트이기 시작했어요-2 >

“아...”

술을 마시던 계 경위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만 마실까요?”

둘이 남자 경도가 물었다.

“그게 아니고요.”

계 경위가 살짝 오버액션을 한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실수죠. 오 주임님 인간입니까 AI입니까? 아니지, 레알 귀신?”

“취하셨어요?”

“아직은 아닙니다. 일이 그렇잖아요? 우리 작은 아버지 넋 나간 거 봤죠?”

“묵직하기만 하시던데?”

“뭐가 묵직입니까? 식사 중에 벌떡 일어나는 거 못 봤어요?”

“그거야 뭐...”

“무섭네, 무서워.”

“또 뭐가요?”

“그 눈 말입니다. 설마 사람 마음 속까지 투시하는 건 아니죠?”

“관상과 심상은 원래 통하는 건데요?”

“꺼업.”

계 경위가 엇박자 트림을 토했다. 제대로 놀란 모양이었다.

“완전 술 깨네.”

“아무튼 고맙습니다.”

“뭐가요?”

“수사과장님 말입니다. 수사하시는 거 맞죠?”

“아니겠어요? 나보다도 뻑 간 눈치던데.”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그거야 증거에 달렸겠죠. 빼박 증거가 나오면 하루 이틀에라도 끝날 테고...”

계 경위가 술잔을 비웠다.

“안 나오면요?”

“그러게요. 그게 아쉽네요. 법정에서 우리 오 주임님 관상을 증거로 채택할 리 없으니...”

“시간이 많이 경과된 게 문제로군요?”

“괜찮을 겁니다. 요즘 과거 의문사도 밝히는 시대잖아요? 오 주임님이 신들린 관상으로 찍어준 것들이 맞기만 한다면...”

자기 잔에 술을 따르던 계 경위, 잠깐 조용해지나 싶더니 그대로 무너졌다. 홀짝홀짝 마시더니 맛이 가버린 것이다. 들쳐 업고 밖으로 나왔다. 그의 차를 열고 조수석에 앉혔다. 겨우 땀을 닦으려는데 등짝이 묵직-뜨끈했다.

‘어웁.’

미친 듯이 코를 막았다. 그새 위 속의 것을 반납한 모양이었다. 시큼한 냄새가 코를 쪼지만 괜찮았다. 어쨌든 수사착수를 하게 된 것이다. 이 정도 대가는 얼마든지 치를 수 있었다.

이창교-정경주-오남일.

세 인물이 어지럽게 교차되었다.

오남일 국장은 애당초 이 과장의 의심 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의 얼굴에 살괘가 들었던 걸까? 미치도록 궁금해지는 경도였다.

**

수요일 아침은 일찍 일어났다. 2차 온천관광단을 보내는 날이었다. 이번 참가자는 더 많았다. 문화누리카드 사용자 외에 지역 어르신들도 신청을 해온 것이다. 그건 여행사 대표에게 일임을 했다. 그가 많은 애를 썼으니 그도 남는 게 있어야 했다. 인원이 늘어나면 부대행사 비용에 여유가 생기니 문화누리카드 사용자들에게도 손해날 일은 아니었다.

쌀알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아침햇살 속에서 쌀알을 구분했다. 얼굴색을 들여다보는 데는 이만한 연습이 없었다.

황-적-청-백-흑.

쌀알 속에 숨은 진리였다. 얼굴의 기색은 이 다섯 가지 조화 안에 있었다.

[수사 정식 착수하셨답니다.]

계 경위의 연락은 그 다음 날 왔다. 이제는 증거와의 싸움이었다. 그 사이에도 서재의 관상책은 자꾸자꾸 늘었다. 유년운기부위도 외에 십이궁분지도, 오성육요오악사독지도를 그렸고 육부삼재삼정지도와 오관지도 등을 숙지했다.

관상은 과학이다.

한 인간의 블랙박스다.

경도의 신념이 되어버린 관상. 미묘와 미세의 차이까지 짚어내자면 공부 뿐이었다. 다행히 관상용어는 친숙하게 이해가 되었다. 황 할아버지가 준 것은 관상능력만이 아니라 그에 연관된 이해력까지 포함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한계는 있었다.

“......!”

오늘도 그 한계를 만났다. 거울에 물끄러미 비춰보는 자신의 얼굴이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그 말이 진리였다. 거울 속에 한 얼굴이 있건만 그것만은 해독이 되지 않았다. 거울 속에서 경도를 바라보는 얼굴은 그냥 얼굴이었다.

“오 주임님.”

센터로 달려갈 때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조경철 기자였다. 온천관광을 취재해주겠다는 통지였다. 고마웠다. 엄 팀장과 이 과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미담이나 실적보도는 간부들이 반색을 한다. 하나로일보의 지명도 때문인지 읍장과 행정팀장도 나와 있다. 엄 팀장의 목에 또 한 번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기부물품 배분도 직접 맡았다. 이런 날은 9급도 할만 했다.

“내 방으로 가지. 차 한 잔 낼 테니까.”

관광버스가 떠나자 읍장이 센터를 가리켰다. 경도도 말석 한 자리를 얻었다. 6-5-4급이 진을 친 자리에 앉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 주임, 말씀드려.”

몇 차례 덕담이 오가자 엄 팀장이 경도 옆구리를 찔렀다.

“뭔가?”

읍장이 촉각을 세웠다. 최근 용포읍의 낭보는 그 출처가 거의 맞춤형복지팀이었다. 그야말로 인생역전이었으니 찬밥 부서에서 효자부서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아직 한 주가 남았는 데요?”

“대세가 있잖아? 이럴 때는 대세 타고 가는 거야.”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나. 말해보게.”

읍장의 재촉이 들어왔다.

“이 친구 말입니다. 지난 두 주간의 문화누리카드 실적을 우리 시 1위로 올려놨지 뭡니까?”엄 팀장이 결국 발설을 하고 말았다.

“그래?”

읍장과 생활과장, 행정팀장 등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태연한 건 업무보고를 받았던 이 과장 뿐이었다.

“그것도 압도적입니다. 그동안의 실적이 쳐져서 최종실적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것 때문에 피 볼 직원들 많습니다.”

“피를 보다니?”

“내기를 했거든요. 오 주임이 상위권 목표를 달성하느냐 못하느냐?”

“달성할 거 같나?”

읍장의 질문이 경도에게 향했다.

“아직 한 주가 남았습니다. 하는 데까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경도의 답은 겸손했다. 조금 나간다고 허풍이나 떨 생각은 없었다.

“그나저나 공석 중인 인사팀장은 누가 온답니까?”

엄 팀장이 읍장에게 물었다. 그건 엄 팀장 초미의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그도 나름대로 스캔을 하고 있지만 읍에 나와 있다 보니 시청 안에 있는 것만은 못했다.

“왜? 엄 팀장이 생각 있나?”

읍장이 염장을 질렀다.

“아이고, 아닙니다. 제가 끈 떨어진 지가 언제인데요. 게다가 우리 관상천재님께서 말씀하시길 저는 당분간 이동운이 없다고 천명을 하셔서...”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오 주임이 잘 알겠네? 하마평 나오는 사람들을 대략 아는데 신통력 한 번 발휘해 보겠나?”

읍장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오, 그 생각을 못했네요.”

“그래. 한 번 맞춰봐.”

행정팀장과 생활과장까지 거들고 나선다. 읍장이 짚어주니 행정팀장이 사진을 구해왔다. 네 명의 사진이 경도 앞에 펼쳐졌다. 경도 시선이 사진을 꿰뚫는다. 읍장실은 이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경도의 답은 김 빠진 사이다와 같았다.

“죄송합니다. 집중이 안 되는 데요?”

관상을 심심풀이 땅콩으로 전락시킬 생각은 아예 없었다.

“......!”

긴장하던 간부들이 일제히 탄식을 토했다. 그래도 이 과장만은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그만은 경도의 관상을 심심풀이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역시 우리 과장님...’

흐뭇한 시선을 거둘 때였다. 경도의 시선이 저절로 튀어올랐다.

‘윽.’

발작적인 신음은 안으로 밀어넣었다. 서광이었다. 이 과장의 인당과 명궁에 찌든 느낌으로 끼어있던 살괘의 징조들. 그게 벗겨지고 있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나?”

눈치를 차린 과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곧 좋은 일이 있을 거 같아서요.”

“사람, 싱겁기는...”

이 과장이 일어섰다. 이제 업무를 볼 시각이었다.

톳.

화면을 열고 이번 주 문화누리카드 실적을 입력했다. 용포읍의 실적이 반짝거린다. 엑셀로 정리된 파일의 맨 꼭대기였다.

1등이다.

등수에 목을 매는 건 아니지만 보기가 좋았다. 공무원 시험에서도 전략과목의 답안을 밀려 써 수석에서 턱걸이 합격으로 수난을 겪었던 경도. 잃었던 자리를 찾은 것만 같았다.

“오 주임 전화.”

민지가 경도를 불렀다. 전화를 당겨 받았다.

“오 주임?”

발신자는 희망복지과장이었다.

“이거 웬일이야? 진짜 실적 제대로 쳐내고 있네?”

이제야 두 주간의 실적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아직 한 주 남았습니다.”

“내가 말이야 혹시나 싶어서 여행사 대표에게 전화했더니 자네 얘기하더라고. 관상을 그렇게 잘 본다고?”

“온천관광 못 해준다길래 그냥 한 번 던져본 겁니다.”

“그냥 한 번? 이 사람아, 그 양반이 그래 뵈도 Y대 나온 사람이야. 얼렁뚱땅에 넘어가지 않아.”“......”

“좋아, 좋아. 다 좋고... 이렇게만 하라고.”

차 과장은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다.

“오 주임.민지가 다가왔다.

“나도 관상 하나 부탁하면 안 될까?”

“뭔데요?”

경도가 웃었다. 삭막한 맞복팀에서 그나마 경도에게 호의적이었던 배 주임이었다. 장난만 아니라면 못 봐줄 이유가 없었다.

“나 말고 우리 오빤데...”

민지가 얼굴을 붉힌다. 

“최근 사진 있어요?”

“여기...”

그녀가 핸드폰 사진을 열어보였다.

“돈 필요하시네요?”

사진을 확대한 경도가 상괘를 내놓았다.

“우와, 보기만 해도 아네?”

놀란 민지가 입을 막았다.

“뭐가 궁금하세요?”

“실은...”

주변을 살핀 민지가 나지막이 사연을 밝혔다.

민지는 3남매였다. 그건 관상을 알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외의 것은 잘 알지 못했다. 같은 부서에 근무한다고 해도 가정사까지 알기는 어려웠다.

그녀의 오빠는 사업가란다. 새 사업에 손을 대면서 자금이 딸렸다. 민지는 싱글이니 돈의 여유가 있었다. 은빛처럼 멋을 즐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공포가 사라지면서 소비가 기지개를 켜잖아? 이럴 때 한몫 잡아야하는데 실탄이 부족해.

오빠의 사연이었다.

“세 달만 쓰고 돌려준다고 1억 빌려달라는데... 줘도 될까?”

민지는 조심스럽다. 7급 10호봉이라야 연봉 4천만 원 안팎이다. 그녀에게도 1억은 큰 돈 일 수 밖에 없었다. 

상을 보니 허당이다. 장남이지만 차남의 상을 가지고 태어났다. 장남은 대개 이마가 넓다. 관록궁의 살집도 풍부한 편이다. 하지만 민지의 오빠는 반대였다. 이런 경우에는 장남 구실을 못한다. 부모에게 재산이 있어도 상속받지 못할 팔자였다.

눈과 눈 사이에 눈썹까지 자란다. 그럼 부부관계도 꽝이다. 귀가 낮으니 재산을 받는다 해도 지킬 수 없다. 성격조차 급할 상이니 사업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었다.

“빌려주세요.”

경도의 상괘는 거꾸로 나갔다. 주지말라고 해야 할 곳에 오케이 사인을 낸 것이다.

“우리 오빠 관상 괜찮아? 이번에는 대박날 거 같아?”

민지가 반색을 한다.

“그건 아닙니다.”

경도가 선을 그었다.

“그런데 왜? 돈 빌려주라며?”

“주임님 때문이죠.”

“내가 왜?”

“주임님은 형제 우애가 깊은 편이라 돈을 안 빌려주면 마음의 가책으로 편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차라리 빌려주고 편하게 지내시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

“......”

“죄송합니다. 판단은 주임님이 하세요.”

경도가 마무리를 했다. 민지의 표정은 어둡다. 하지만 경도는 알고 있다. 이 여자는 거절할 수 없다. 온순한 얼굴에 일자눈썹의 이목구비가 시원하다. 목소리 또한 느리고 순하니 품성이 어질다. 그 덕으로 평생을 살 수 있으니 벌어둔 재산이 조금 샌다고 해도 일생 밥그릇 걱정은 없을 상이었다.

고민하는 민지를 뒤로 하고 의자에 앉을 때였다. 2층에서 내려온 이 과장이 새로 위촉된 위원을 배웅하고 있었다. 돌아서는 그 얼굴이 경도 시선을 잡아챘다.

“......”

경도는 숨이 막혔다. 인당을 중심으로 황금빛 윤기가 손마디만큼이나 커졌다.기어이 막힌 운이 터지는 것이다. 

그 여운이 다 가시기도 전에 센터의 정보통 행정팀장이 센터 안으로 들어왔다.

“엄 팀장님, 노 실장님 소식 들었어요?”

행정팀장의 숨이 넘어갔다.

“왜 그래요? 코로나가 다시 활개라도 친답니까?”

노 실장이 물었다.

“지금 코로나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시청에 난리가 났습니다.”

“시청?”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오 국장님 있죠? 자치행정국장님... 그분이 전격 구속되었답니다. 아까 도경 수사팀이 나와서 국장실 압수수색해 갔대요.”

“예에?”

직원들이 뒤집어졌다. 직원 구속이라면 일개 9급 서기보, 아니 기간제 직원이 당사자라고 해도 놀랄 판이었다. 그런데 K시를 대표하는 오남일 국장?

모두가 놀라는 순간, 경도 혼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구속이라면 경도의 관상제보가 제대로 먹혔다는 뜻이니 기다리던 낭보가 온 것이다. 

이 과장의 인당과 명궁에 뜬 황금빛 윤기와 궤를 같이 하는...

< 승진운이 트이기 시작했어요-2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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