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승진운이 트이기 시작했어요-1 > (35/245)

< 승진운이 트이기 시작했어요-1 >

사진 다섯 장이 테이블에 올려졌다. 맨 위의 것만 보였다. 시원하게 생긴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경도의 시선이 그 사진에 꽂혔다. 앞에 앉은 계 경위의 작은 아버지 계순철 시선은 대리석처럼 묵직했다.

“살인자를 찾아달라고요?”

경도의 첫 질문이었다.

“그래요.”

계순철이 답했다.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그가 던진 미션이었다. 다섯 명의 용의자들, 그중 하나가 범인인데 알리바이가 교묘해 증거 잡기가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테스트이자 관상에 대한 도전이었고, 경도가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현대의 기준으로 관상은 과학이 아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직접 겪어야만 공감을 한다. 그런 인증을 통과한 관상은 과학 위의 신앙으로 자리를 잡는다. 누군가의 블랙박스를 제대로 열어보이기만 하면 경계심이나 불신은 바로 무장해제가 되는 것이다.

사진을 펼쳤다.

“수사과장님.”

수 초의 시간이 흐르기도 전에 경도의 시선이 사진에서 떨어졌다. 경도 손이 사진을 모아 계순철 쪽으로 밀었다.

“......”

계 경위의 눈빛이 크게 흔들린다. 두 사람의 신경전이 아슬아슬한 것이다.

“지금 저를 시험하시는 거죠?”

“......”

계순철은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묵직한 눈빛을 거두지 않으니 그것으로 긍정을 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부탁합니다.”

경도의 목소리 또한 어느 때보다 힘이 실렸다.

“무슨 뜻이죠?”

“이 사진들...”

테이블의 사진에 한 번 눈길을 주고 남은 말을 이었다.

“살인자 따위는 없습니다.”

“......!”

계순철의 눈빛이 잠시 황망했다. 그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나 싶더니 다른 사진을 꺼내놓았다. 이번에도 다섯 장이었다.

“이 안에는 있습니다.”

테스트.

간보기는 통과한 모양이었다.

꿀꺽.

계 경위가 결국 이마의 땀을 닦는다. 선문답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신경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도는 그 사진을 보지도 않은 채 계순철 쪽으로 밀었다.

“왜죠?”

탁.

계순철이 묻자 경도 손이 사진 위에 올라간다. 다섯 장의 사진이 겹쳤으니 보이는 건 맨 위의 것 뿐이었다.

“볼 필요 없습니다.”

경도의 단언이 떨어진다.

“이 사람이 살인자니까요.”

사진은 다섯 장, 아래의 네 장은 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다 보지도 않고 말이오?”

묵직한 태클이 나온다.

“상괘가 이미 나왔는데 무엇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겠습니까? 살인범은 이 사람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눈 옆 간문이 붉은데 준두까지 붉습니다. 이마의 명궁에도 불이 났으니 살인은 피할 수 없죠. 아마도 사귀던 여자를 죽였을 겁니다.”

“......!”

“더 시험하시겠습니까?”

“아, 아니요. 아닙니다.”

계순철의 표정이 풀렸다. 그제야 계 경위 입에서 안도의 숨이 나왔다.

“작은 아버지, 이제 끝난 겁니까?”

계 경위가 계순철에게 물었다. 계순철은 도경의 수사과장으로 총경이었다. 계 경위가 경찰대를 가는데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전택궁이 좋았다. 전택궁은 눈과 눈썹 사이를 말한다. 가정사에 대한 기록이 새겨진 블랙박스다. 하지만 관운이나 출세에 대한 자료도 되는 것이다. 전택궁이 넓다면, 흙수저로 났어도 금수저가 될 수 있었다. 계순철 수사과장이 그랬다.

“이것 참...”

두 번째 그룹 사진의 맨 위의 것을 집어든 계순철이 쓴 입맛을 다셨다.

먼 과거, 경찰은 주로 경험과 직관수사를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과학수사로 전환한지 오래였다. 웬만한 사건은 유전자검사와 CCTV로 해결한다. 국과수에서 지원하는 과학검사는 세지도 못할 정도로 많았다. 그 모든 것을 머쓱하게 만드는 게 경도의 관상이었다.

“초능력이군요.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계순철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관상은 초능력이 아닙니다. 일종의 과학이죠.”

“과학이라고요?”

“수 많은 실험을 통해 증명되는 것을 과학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관상이 그렇습니다.”

“그 말은 좀 생소한 데요?”

“다만 미묘함과 미세함을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관상은 보편적인 과학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들의 과학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오, 그건 공감이 되는군요.”

“테스트가 더 필요합니까?”

“아, 아닙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미안합니다.”

“우리 작은 아버지 뻑 가셨네. 아까는 잔뜩 벼르시더니...”

계 경위가 계순철에게 눈총을 주었다.

“얌마, 내가 언제...”

“그 사진들 말이에요. 하나하나 확인해본다면서요?”

“야, 그거야 관상이 시덥잖을 때 말이지 이런 고수님에게야 그럴 수 있냐?”

“괜찮습니다.”

경도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 주임님, 우리 작은 아버지 멋진 분이지만 속 마음은 그리 넓은 분은 아닙니다. 제 말 못 믿고 오 주임 부르라는 거 보면 알잖아요? 뒤끝 작렬할지 모르니 거기 사진들 다 좀 짚어주세요. 그거 다 전과자들 사진이에요.”

계 경위가 계순철의 염장을 제대로 질렀다.

“야, 계치훈.”

“이 사람은...”

둘의 신경전에 아랑곳없이 경도가 사진을 집어들었다.

“이 사람은 눈을 보니 절도범이고 이 사람은 콧구멍이 들린 것으로 보아 윗사람을 등처먹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치아를 보니 부모를 극했을 상이고 또 이 사람은 눈과 눈 사이에 눈썹 사이에 났으니 아내 문제로 범죄를...”

“......!”

계순철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아홉 사진에 대해 줄줄이 읊어대는 경도였다. 기가 막히게 맞았으니 메모를 꺼내 그들의 전과를 대조해볼 정도였다.

“이야, 이거 이거... 끊은 지 4년 된 담배가 급 땡기네.”

계순철이 혀를 내둘렀다. 그제야 경도도 긴장을 풀었다. 기선제압은 완전 성공이었다.

“됐습니다. 관상제보, 인정하죠.”

계순철이 승복을 선언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살짝 풀렸던 계순철의 눈빛이 다시 묵직해졌다. 도경의 수사과장다운 무게감이었다.

“투신한 정경주 말입니다. K시 6급주사...”

계순철이 화두를 꺼내자 경도도 시선을 가다듬었다.

“수사자료는 정밀재검토해 보았습니다. 몇 가지 허술한 점이 있기는 하더군요.”

“정밀검토까지 하셨어요? 저한테는 그런 말 없으시더니...”

계 경위가 볼멘소리를 냈다.

“네가 아직 경험이 일천하지만 허튼 놈은 아니지. 그래서 믿을만 한 부하직원에게 지시를 했었다.”

“오우, 역시 우리 작은 아버지.”

“한 가지만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범인으로 지목한 오남일이라는 사람의 관상에서 나온 정보 말입니다.”

계순철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기꺼이 정보를 주었다. 오남일이 투신 당일, 사망시각에 즈음해 그 건물에 같이 있었다는 것, 현금이 아닌 현물의 거액금품이 들어왔다는 것. 모두 공유했다. 알려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대화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식사가 들어왔다. 흑돼지묵은지찌개였다.

“계 경위, 골프 채널 좀 틀어봐라. 오늘 우리 청장님 아들이 나온다.”

계순철이 계 경위에게 턱짓을 했다.

“아, 그 KPGA 강자요?”

“오늘이 마지막 라운드지 아마? 내일 아침에 청장님하고 분위기 좀 맞추려면 봐줘야하지 않겠냐?”

“실력은 우승권이죠?”

“어제까지 2등이었는데 1타 차이인 데다 마지막 홀에서 강하기 때문에 뒤집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알겠습니다.”

계 경위가 리모콘을 찾아 화면을 켰다.

“아, 우리 관상박사님도 골프 좋아하십니까?”

계순철이 경도를 바라보았다.

“그냥 룰 정도만 압니다. 혹시 청장님 사진 있으신가요?”

“있습니다만, 왜요?”

“가장 최근의 것으로 보여주시면 제가 우승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요? 이야, 관상으로 못하는 게 없군요?”

계순철이 파일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 있습니다. 아침에 우수직원 포상 때 찍은 겁니다.”

“......!”

사진을 받아든 경도 눈빛, 급속도로 굳어버렸다.

“안 좋아요?”

계 경위가 물었다.

“오늘이 마지막 라운드라고요?”

“예, 어제까지 1타 차 2위라고 들었습니다.”

계순철이 답했다.

“다른 날 찍은 사진도 있습니까?”

“뒤로 넘겨보세요.”

계순철의 허락으로 파일이 넘어갔다.

“청장님은 외아들이시군요?”

“예? 예...”

“가능하면 이 분에게 연락해서 아드님 출전을 막으면 좋겠습니다.”

“출전하지 말라고요?”

“청장님 눈 밑 와잠에 적색기가 진합니다. 이게 자녀분을 운을 보는 곳인데... 혹시나 싶어서 다른 날 사진들과 비교해보니 다른 날에는 그런 기색이 없습니다. 오늘 아드님에게 횡액이 생길 것 같습니다.”

“횡액?”

계순철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황당하다. 곧 미국 진출을 노리는 청장 아들이었다. 오늘 우승하면 그 또한 발판이 된다. 2위라지만 1위와는 1타 차이였고 마지막 홀은 청장 아들이 강한 골프장이었다.

“입장 상 전화하시기 어렵겠죠. 설명하기도 힘드실 테고요?”

경도가 먼저 질러갔다.

“그게...”

계순철은 답하지 못했다. 정곡을 찔린 것이다. 수사과장에게 있어 도경 청장은 하느님 위의 하느님이었다. 더구나 경찰은 일반직 공무원들과도 달랐으니 상명하복이 더욱 철저한 조직이었다. 그런 청장에게...

“아드님 오늘 횡액이 들었으니 마지막 라운드 기권 시키시죠?”

허얼.

경도의 관상은 인정하지만 그것만은 전할 수 없었다. 자칫하면 재수없는 말을 해서 말이 씨가 되었다는 덤터기를 쓸 판이었다.

그 사이에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화면에 청장의 아들이 나왔다. 전도유망한 선수라는 소개가 이어졌다. 우승확률도 굉장히 높게 받고 있었다.

초반 기세도 좋았다. 1위를 달리는 선수가 버디 찬스를 놓치자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여기서 버디를 치면 동타를 이루는 것이다.

“과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잠깐만요. 제가 보기엔 역전할 거 같은데...”

과장은 주저했다. 상황이 그랬다.

화면 속의 청장 아들이 퍼팅을 준비할 때였다. 임팩트의 순간에 0.1초 앞서 갤러리의 셔터가 터지고 말았다.

찰칵.

“우!”

지척 갤러리들의 비명이 나왔다. 청장 아들의 공이 홀에서 멀어진 것이다. 비극은 그 순간에 일어났다. 분노한 아들이 퍼터를 팽개치더니 그것으로도 모자라 갤러리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겨눈 것이다.

Fucking!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쌍욕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장면이 TV 화면에 적나라하게 잡혔다. 가운데 손가락의 각도까지 클로즈업으로.

“......!”

계순철이 일어선 건 그때였다.

“말도 안 돼.”

계순철이 부르르 떨었다. 그의 탄식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청장의 아들이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한 것이고 또 하나는 경도의 신빨 관상이었다.

“아아, 임경일 선수, 이건 좀 아닌 것 같은 데요? 엄청난 파장이 우려됩니다.”

화면 속의 아나운서와 해설자도 하얗게 질렸다. 갤러리의 셔터소리는 분명 비매너였다. 그러나 욱하는 마음에 오버해 버린 청장 아들의 행태는 극혐에 가까웠던 것이다.

“......?”

계순철이 경도를 바라본다. 경도는 깊은 강물처럼 담담한 표정일 뿐이다. 그 표정에 압도되어 버리는 계순철이었다.

돌아가는 길, 계순철은 뒷좌석에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었다. 운전은 대리기사에게 맡겼다. 관련기사는 일찌감치 올라와 있었다. Fucking의 손가락 사진과 함께.

그 옆에 실린 사진은 완전히 무색해 보였다. 기어이 역전을 일군 청장 아들, 트로피를 들고 있지만 모든 게 무의미했다. 기사의 타이틀 때문이었다.

<손가락 욕설파문 임경일 선수, 빗나간 우승, 3년간 선수자격정지 처분.>

관상의 적중이었다.

청장에게 면박을 당하더라도 막았어야 했던 일이다. 이제 와서 보면 그랬다.

허어.

허어.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팩트 앞에 계순철의 한숨만 길었다.

< 승진운이 트이기 시작했어요-1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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