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상에도 반전 있어요-2 >
“여보세요.”
문 여사가 전화 저 편에 말한다. 허스키하지만 울림이 진국이었다. 시청에서 모시다 퇴임한 팀장이 생각났다. 그분이 즐기던 게 소잡탕이었다. 소의 허드렛살만으로 끓여내는 국밥집이었는데 보기와 달리 담백의 끝판왕이었다.
허드레가 모여 진국이 되듯 문 여사의 오로도 그런 격이었다.
딸깍.
하지만 현실의 풍경은 맛집 순례의 푸근한 맛이 아니었다. 통화에 실패한 문 여사 손이 대쪽처럼 문을 가리킨 것이다.
“그만 가주겠나?”
담담하면서 매운 목소리였다.
매사에는 때와 장소가 있다. 관상도 그랬다. 경도가 짚어낸 상괘는 문 여사 아들의 것이었다. 그녀의 명궁에 햇살이 깃들었다. 왼쪽 눈밑 애교살 부분도 함께 밝으니 아들에게 서광이 깃든다는 뜻이다. 문 여사가 기다리는 건 그 낭보였다.
상괘로 보아 모자지간은 아직 떨어져 있을 팔자. 그렇기에 ‘먼 곳의 소식’이라는 상괘를 낸 경도였다.
“알겠습니다.”
상괘는 맞지만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쿨하게 일어서는 상책이었다.
따릉따릉!
그때 골동품 전화가 옛날 신호음을 내며 흔들렸다. 문 여사, 경도와 전화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류 박사?”
아들이다. 문 여사의 주름살이 다림질이라도 한 듯 환하게 펼쳐진다.
‘아싸.’
쾌재와 함께 돌아섰다.
“전화했지. 어제 축하파티 때문에 술을 너무 마셔서 자고 있었다고?”
등 뒤에서 문 여사의 통화음이 이어진다.
“워싱턴 D.C의 국장보 승진이 결정되었다고?”
문 여사의 목소리가 한 칸 튀어 오른다.
“가시죠.”
입구로 나온 경도가 부녀회장에게 말했다.
“저기, 안 회장.”
잠시 후에 쫓아나온 문 여사가 부녀회장을 불렀다.
“젊은 공무원은 어디 가셨나?”
“먼저 내려갔는데요?”
“저런.”
문 여사가 무릎을 친다.
“왜 그러시는 데요?”
“내가 큰 실수를 했어.”
“관상은 잘 맞아요?”
“이건 뭐 사람이 아니라 신선? 그걸 몰라봤네.”
멀어지는 경도를 바라보는 문 여사 시선은 절반 쯤 풀려있었다.
“오 주임님.”
시동을 걸 때 부녀회장이 달려왔다.
“왜요?”
시치미를 떼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유, 그냥 가면 어떡해요? 사람까지 내쫓아놓고... 누구 말려죽일 일 있어요?”
“관상 때문에요?”
“그래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문 여사님은 아주 대만족이던데?”
“얼굴에 쓰인 운세를 읽어드린 것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나한테도 비밀이에요?”
부녀회장이 뾰루퉁해진다. 서운하면 곤란할 일이니 대충만 설명했다.
“회장님 말씀대로 굉장하신 분이셨어요.”
“정말요? 생긴 건 아주 개차반인데?”
“저런 상을 오로라고 하거든요. 얼굴의 여러 군데가 솟구치거나 삐져나온 건데 관상학적으로는 드문 귀격입니다. 부귀를 누릴 상이죠.”
“어머어머...”
“아드님이 두 분 계신데 한 분이 큰 감투를 쓰신 것 같습니다. 그 소식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것 뿐입니다.”
“큰 감투면 장관? 대기업 대표이사?”
“거기까지는 모르지만 감이 먼 걸 보니 한국의 감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문 여사 사별한 남편이 예전에 총리였다는 말도 들은 거 같아요.”
“국무총리요?”
“가정부가 마트에서 지나가듯 한 말이라 뻥으로 들었는데 정말인가 보네?”
“어쩌면 맞을 겁니다. 그 정도 귀격은 되세요.”
“아유, 나는 돈 푼이나 만지던 사채업자인가 했는데...”
“이제 됐죠?”
“아직 아닌 거 같은 데요?”
안선주가 고개를 들었다. 가정부가 달려오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문 여사와 거의 복사판이다. 그녀 역시 흉상이기 때문이었다.
“저기요, 선생님.”
그녀가 차 앞을 막았다. 경도의 호칭은 선생님으로 격상되어 있었다.
“왜 그러시죠?”
경도가 차에서 내렸다.
“이거 우리 여사님이 꼭 좀 전해달라세요. 그리고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하다고 나중에 읍 센터로 찾아뵙겠다고 하세요.”
가정부가 내민 건 돈봉투였다.
“이런 건 받을 수 없습니다.”
“안 돼요. 이거 못 드리면 돌아오지 말라고 하셨어요.”
가정부가 애걸을 한다.
“그럼 문 여사님 이름으로 후원금으로 접수하겠습니다.”
“그건 선생님 마음대로 하세요.”
가정부가 겨우 숨을 돌린다. 돈은 부녀회장이 보는 앞에서 확인을 했다. 문 여사에게는 미안하지만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려면 별 수 없었다.
봉투 안에 든 건 200만원이었다.
“그리고...”
가정부는 쭈뼛거리며 경도 눈치를 살폈다.
“할 말 있으면 하세요.”
“문 여사님 말씀이 관상보는 게 신선 같으시다고... 우리 문 여사님이 누구 함부로 칭찬하는 분이 아니시거든요.”
“신선까지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가정부는 돌아선 채 주머니를 뒤지더니 오만 원 권 두 장을 꺼내들었다.
“가진 게 이거 밖에 없네요. 죄송하지만 저도 관상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아줌마, 우리 오 주임님은...”
부녀회장이 제지하는 걸 경도가 말렸다. 싸목 할아버지에게 거저 얹은 관상이었다. 가장 낮은 데서 사신 그 분이었으니 관상으로 신분을 가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제가 바빠서 간단히 봐드릴 게요. 뭐가 궁금하세요?”
“창가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 우연히 들었어요. 문 여사님 관상이 귀격이라고...”
“맞습니다.”
“제가 보기엔 여사님이나 저나 생긴 게 비슷한데...”
“얼굴 조금만 들어보세요.”
경도가 주문하니 가정부가 얌전히 따랐다. 사실 따로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가정부의 상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물어보기 무섭게 말하면 가정부가 믿을 리 없다. 가정부라서 대충 본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었다.
기왕 보는 것이니 주름과 점, 찰색까지 체크를 했다.
‘고한지상,,,’
가정부를 보면 그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관인팔법에 나오는 상의 하나다. 튀어나오거나 노출된 것 외에도 찌들고 고달픈 게 한둘이 아니었다. 어깨는 기울고 다리 역시 좌우 길이가 달랐다. 일생 고난의 길을 가야하는 관상인 것이다.
오로의 기준에서 보면 3.5로였다. 문 여사와 비교하면 입술이 뒤집히지 않았으니 그 하나의 부족함만으로도 귀격이 될 수 없었다.
“......!”
부녀회장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무슨 상괘가 나올까 궁금한 것이다.
“이 상도 귀격입니다.”
경도의 상괘가 나왔다.
“제 관상이 귀격이라고요?”
가정부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런데 왜 제 인생은 이렇게 쪼그랑 바가지 모양...”
“남에게 베푼 것의 차이입니다.”
“누군 베풀고 싶지 않나요? 베푸는 것도 돈이 있어야 베풀죠?”
“가진 게 없어도 베풀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어떻게요?”
“무재칠시라는 게 있거든요.”
“무재칠시?”
“가진 게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입니다.”
“......?”
“우선 화안시와 언사시를 들 수 있는데 밝은 미소로 사람을 대하고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을 쓰라는 겁니다. 나아가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임하라는 안시, 힘든 일은 내가 먼저 하라는 신시, 온정을 베푸는 심시,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내가 앉은 자리를 내주는 좌시, 남의 마음을 헤아려 도와주는 찰시가 그것이죠. 모두 돈 한 푼 없이 행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저도 문 여사님처럼 귀격이 되는 건가요?”
“그럼요.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꼭 그렇게 될 겁니다.”
“무재칠시...?”
가정부가 종이를 꺼내 메모를 했다.
그녀의 눈빛은 그 사이에도 많이 누그러졌다. 관상은 한 인간의 운명을 담고 있고 블랙박스다. 그러나 그 미래의 기록은 살짝 가변적이다. 가정부의 첫 인상은 고한지상이지만 밝은 미소와 상냥한 마음으로 살다보면 청수지상도 되고 후중지상도 되는 것이다.
“이 복채는 수급자들 기부금으로 올려놓을 게요. 그러니까 무재칠시의 테이프는 이미 끊으신 겁니다.”
경도는 10만원의 의미를 100만원처럼 붙여주었다.
“아호.”
가정부가 돌아가자 부녀회장이 이마를 짚었다.
“왜요?”
경도가 물었다.
“오늘 좋은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나봐요. 머리가 진리에 감염된 것 같아요.”
부녀회장은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
기세라는 게 있다. 한 번 불 붙으면 겉잡을 수 없다. 꽉 막혔던 경도의 공직생활이 그랬다. 하루하루 무미건조했던 지난 날, 아침에 눈 뜨면 민원인 대할 생각에 겁부터 났다. 위에서 내려오는 공문과 지시는 과도했고 선배들은 각개전투만을 벌였다. 팀장과 과장은 며느리 갈궈대는 시어머니와 다르지 않았다.
“젊은 친구가 왜 저래?”
잊을만 하면 들리는 소리였다. 그들은 첫 잘못 끼워진 첫단추의 비애를 몰랐다. 문제아로 점 찍어놓고 심심하면 즐겼던 것이다.
이제 그 이미지는 날아갔다. 경도는 알았다. 이건 관상파워만이 아니었다. 만약 경도가 그때의 찌질한 마인드를 유지했다면...
“야, 오경도, 너 내 관상 좀 봐라.”
비위맞춤용이나 심심풀이용 관상으로 나갔다면 관상은 오히려 혹이 되었을 일이었다. 거기에 자부와 자신감을 입히니 일상이 변했다.
센터가 가까워져도 심장이 뛰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들어가서 이 낭보를 전하고 싶을 뿐이다. 센터 입구에 들어설 때였다. 경도 핸드폰이 울렸다. 계 경위였다.
“오 주임님, 통화 가능해요?”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전에 말씀하신 그 건 말입니다.”
“예.”
경도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제가 어제 비번이라 도경에 갔었거든요. 친한 분 만나서 제 명예를 건다며 수사 좀 부탁했더니 제가 무슨 명예가 있냐고 가슴을 쥐어박아요.”
“......”
“하앗, 농담입니다. 아무튼 없는 명예까지 걸고 한 잔 쐈는데... 그 분이 주당이거든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제가 술에 좀 약해요. 결국 선배의 유도심문에 걸려서 취중에 오 주임님 얘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
“죄송합니다. 술에 안 취하려고 의대 간 동기 놈에게 비방까지 받아서 먹고 갔는데...”
“그래서... 물 건너 간 건가요?”
“그건 아닌데, 선배님이 오 주임님을 한 번 보자고 하시네요. 제 말처럼 신빨이 철철 넘치면 재수사 검토해 보겠다고...”
“저는 괜찮습니다.”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되겠어요? 아니면 제가 3일 후에나 시간이 나서요.”
“내죠.”
“거듭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분이 그래도 당시 수사자료 재검토까지는 한 모양입니다. 가능성이 없다면 거절할 텐데 그런 말이 없는 걸 보면 아직 가능성은 있습니다.”
“어차피 제가 벌인 일이니 제가 해결하는 것도 괜찮죠. 경위님 부담도 덜고요.”
“그럼 저녁에 약속 잡아둡니다.”
“예.”
통화가 끝났다.
‘후우.’
호흡을 고르며 생각했다. 기회가 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계 경위 말처럼 아직은 끝난 게 아니었다.
“진짜?”
문 여사의 기탁금 200만원과 가정부의 10만원을 꺼내놓자 은빛의 입이 벌어졌다. 현 주임과 민지도 다르지 않았다. 엄 팀장은 봉투를 든 채 내려놓지도 못했다.
“이거 기탁식 가져야하는 거 아니야? 보도자료도 거하게 내고.”
엄 팀장의 홍보본능이 발산되었다.
“근간 센터에 나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온천관광 끝나면 몰아서 하시죠.”
“과장님과 읍장님께 보고는 해야지?”
그래도 안달복달이다. 공무원도 직장인이다. 위의 인정을 받는 일이 좋지 않을 리 없었다.
읍장의 치하를 받고 과장의 격려도 받았다. 그 자리에서 이 과장의 명궁을 확인했다. 명궁은 여전히 흐린 하늘이다. 그냥 저물 수도, 햇살이 날 수도 있는 그런... 저 명궁의 명운은 경기도경이 쥐고 있었다.
7시 20분.
계 경위가 보내준 약속시간이었다.
< 관상에도 반전 있어요-2 > 끝
ⓒ 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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